佛典을 통해 본 護國護法의 原理

  • 등록 2007.06.29 17: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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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典을 통해 본 護國護法의 原理


佛典을 통해 본 護國護法의 原理




在圓 金德洙 *




서언


제1장 佛典上의 국가설


1. 인류와 인간생활 시원


2. 국가기원설


3. 석존 당시의 인도제국


4. 轉輪聖王의 국가설


제2장 佛敎의 護國觀


1. 護國의 原理


1) 正法主義


2) 慈悲主義


3) 平等主義


2. 王政論


1) 政治(국왕)의 課題


2) 왕의 정치론


3. 전륜성왕 사상


4. 국민의 호국 윤리


제3장 한국불교의 호국사례


1. 신라


2. 고려


3. 조선조의 의승군 활동


맺음말. 호국 호법의 실현방법


 





서언



불교는 존재의 實相에 눈떠서 일체의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고 살리는 것을 본령으로 한다. 그래서 불교를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한다. 이러한 불교의 실천은 대승에서 自利와 利他, 自覺과 覺他를 새의 두 날개처럼 함께 실천하는 보살의 삶으로 강조되고 있다. 실로 成佛과 이 땅을 불국정토로 가꾸는 淨佛國土는 불교의 양대 목표라 할 것이다.


이러한 불교에서 국가에 대한 관심과 가르침은 어떠한가? 흔히 불교는 나라를 다스리고 운영하는 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거나 소극적이지 않는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왜냐하면 한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국방의 문제나 또 국가 간의 분쟁도 있을 수 있고, 그에 비해 불교는 不殺生의 소중한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럴까? 그렇지 않다. 불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 삶의 생생한 한 부분인 국가생활이 무시되거나 논외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그의 삶을 통해서나 가르침에서 한 나라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며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소중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본고에서는 佛典上에 나타난 호국사상의 개념과 국가, 정치사상에 관한 것을 종합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제1장에서는 먼저 『호국삼부경』에 나타난 국가기원설을 간략히 살펴보려 한다. 제2장에서는 불교의 호국관과 호국의 原理, 그리고 佛典上의 政治思想을 고찰하기로 하고자 한다. 또한 불교의 이상적 지도자(국왕)는 轉輪聖王이 되어야 한다는 호국사상에 관하여 살펴보고, 제3장에서는 한국불교 역사상에 나타난 호국의 사례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 국가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제1장 佛典上의 국가설


 



1. 인류와 인간생활 시원


 



고대 인도나 서양의 우주창조설은 모두 唯一神이나 多神중심이었으나 불교의 우주관이나 인류전개설은 神中心이 아니라, 욕계6천, 색계18천, 무색계4천등 28천 중에서 색계 二禪天, 三天(小光 無量光, 光善)중 하나인 光音天의 天人이 福盡命終하여 이 世界에 來生하여 인간, 중생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간으로서 최초의 생활문제는 식생활이었다. 처음에는 자연의 甘泉水를 마시고 점차 地味등 자연에서 얻어먹다 물질로서의 식량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생활고가 시작된 것이다.


물질의 욕망에 따라 사회적 윤리가 시작되고 공유하던 것이 사유하게 되고 이에 따라 토지분할문제와 토지(국토)영유권을 주장하게 되고 이것이 뒷날 국토 영유제의 시원이 되었다고 하겠다.


 



2. 국가기원설



토지의 분할사유화에 따른 욕심은 盜心이 되고 사리사욕으로 사회혼란이 생기고 이를 통제할 주권통치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것이 족장 등으로 시작되어 점차 국가적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국가의 기본요소는 국토, 국민, 통치기구 등이 구비되어 하나의 국가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 說示되어 있는 것을 볼 때 불교의 원시적 국가기원설은 충분히 성립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교 경전 상에 나타난 국가기원에 관한 說은 원시경전인 四阿含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석존의 直說에 가장 가까운 경전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므로 석존의 사상을 찾아보는데 가장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는 것이다.


원시국가설의 論端은 고대 인도인들의 종족차별인 사성계급의 발생기원을 밝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小緣經에 이르러 “今當爲汝 說 四性本緣 天地始終 劫盡壞時… 이제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사성계급의 근본인연과 천지의 시작과 그때가 다하는 이치를 말하노니…”라고 하여 說할 바의 문제를 제시하고, 이어서 “衆生命終皆生光音天 自然化生 以念爲食 光明自照 神足飛空 基後此書燮 爲水無不周邊 當於兩時…… 變成天地 光音諸天 福盡命終 來生此向 雖本生此…… 便有王各 以正法 治民 故各刹利 於世間始有 刹利各生…”이라고 하여 땅위에 인간이 태어난 동기로부터 정착하게 된 과정을 說하였다. 이 같은 說은 다른 경전 에도 많이 나타나 있으나 거의 비슷한 내용이다.


이는 인도 고대의 “諸神共同의 宇宙人生造說”로서 희랍의 올림푸스산을 중심으로 12神 공동통치의 신화설이나, 구약성서의 창세기 신화설과 같이 인간세계의 가장 가까운 우주관계 인간세계의 展開說이라고 할 수 있다.


 



3. 석존 당시의 인도제국



석존이 정반왕의 태자로 출생하였을 때 아시타(Asita)선인이 태자의 모습(相)을 보고 두 가지 길을 제시 하였으니 하나는 태자가 왕으로 재직하게 되면 轉輪聖王이 되고, 다른 하나는 출가수도하면 大法王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그는 천하를 통일한 대제국의 왕[전륜성왕] 보다 큰 전세계 모든 인류의 완전한 구원(四難八苦)을 위해 출가수행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고오타마의 출가소식을 들은 당시 인도 16대국 중 가장 큰 마가다국의 빔바사라왕이 ‘만약 그대의 국가가 적은 것이 불만이라 출가하는 것이라면 내나라 영토의 반을 割愛해서 주겠으니 출가하지 말고 나와 함께 전륜성왕의 길을 가자’고 한 사실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즉 석존의 출가는 자기 자신의 일신 뿐 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生, 老, 病, 死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세상을 구제하겠다는 大聖으로 四生의 慈父요, 三界의 大導師라 불리어지는 석존께서 어찌 국가에 無心할 수 있겠는가. 국가 간의 平和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은 諸經典에 나타나고 있는 인도 16대국의 정세와 교설에서 넉넉히 알 수 있다.


한 예로 마가다국의 아사세 왕이 밧지국을 침공하려고 신하무사를 시켜서 세존께 자문했을 때 정치하는 법을 일러줬는데, 그대로 시행한다면 어떤 침략도 성공할 수 없다고 해 침략을 포기하게 하였다.


그리고 또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이 16대국 중에서도 가장 국토가 광대하고 부강한 고대 문명국이었는데 마가다국 아사세왕과 코살라국 파사익왕이 서로 위배되는 일이 생겨 전쟁하려 할 때, 석존은 양쪽에 설법해 전쟁을 막았다.


즉 아사세 왕이 파사익왕을 치려 할 때,


 


석존께서는 “戰勝增怨敵, 敗苦臥不安


                 勝敗二俱捨, 臥覺寂靜樂”


󰡒전쟁에 승리해도 원한과 적으로 남게되고,


전쟁에 패하여도 신음하고 고통받게 된다.


이기고 지는 두가지 다 버리면 앉으나 누우나


편안하고 즐거움을 깨닫게 되리라.” 하셨다.



또 파사익왕과 아사세 왕에게 和解의 설법을 하여 서로 기뻐하며 부처님께 禮하고 돌아가 평화를 누리게 하였다.


 



4. 轉輪聖王의 국가설



전륜성왕이란 수레바퀴가 굴러서 가지 않는 곳이 없듯이 聖王의 위덕은 天下의 水陸을 막론하고 두루 미쳐서 태평스러운 정치가 이루어진다는 호국삼부경의 내용에 의한 것이다.


전륜성왕의 국가설은 인도제국과 전세계의 모든 국가의 정치 지도자들의 이상형의 정치를 제시한 것이다. 즉, 불교의 이상적 통치이념이 곧 전륜성왕인데 이는 세속제왕으로 현실적 인류구원을 실현케 한 것이다.


각국의 제왕들을 지도교화 하여 인류에게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하였던 것이다. 즉 제왕에게 정법정치를 부촉하신 내용이라 하겠다.


 




제2장 佛敎의 護國觀


 



1. 護國의 原理


 



넓은 뜻에서는 一切衆生, 좁은 뜻에서는 人類를 구제하는 것이 불교의 목적인 이상 종교적으로 完全한 구제를 하기 전에 먼저 인류에게 복리를 주어야 할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인류의 居所인 국가의 존재가 절대 必要한 것이므로, 이에 국가의 存在를 인정할 뿐 아니라 國利의 도모에 努力하여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宗敎에 國境이 없다는 말과 같이 佛敎의 大慈大悲한 衆生救濟의 思想이야말로 人種의 色別(차별)이나 國境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相對的인 多數國家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던 것은 佛陀 당시에 16大國이 竝立하여 그 國王들이 모두 동일하게 佛陀의 敎化를 받아 相衝함이 없었던 사실에 의해서도 알 수 있다.


하물며 種族이 서로 다르고 언어 사상이 각각 다를 뿐 아니라, 지역이 넓어 同一治下에 들어갈 수 없는 遠隔地域이라면 다수의 국가가 따로 세워져야 할 것은 必然한 이치다. 즉 각각 다른 民族이 多數의 國家를 따로 세워 서로 침범함이 없이 平和를 유지해 가자는 것이 佛敎의 國家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佛陀께선 多數의 국가들이 그 각자의 국가를 평화스럽게 유지하고 또 국민으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기위해 어떠한 가르침을 주셨을까? 우리 凡夫들이 住居하고 있는 穢土에는 天變地妖가 있고 日月失度難이 있으며, 疾疫이 流行하고 自界叛逆이 있으며, 밖으로 他國侵逼 등 소위 七難이 倂起하는데, 이러한 가운데에서 국가를 保護함을 護國이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娑婆 즉, 不如意 忍苦의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할 지도자는 一國政治의 責任者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의 책임자로서 그러한 七難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 能力의 所有者가 古來를 통하여 한사람이라도 있었던가? 佛陀께선 世間의 정치가 이상으로 항상 이 문제에 대해서 勞心焦思 하였던 것이다. 佛心者는 大慈大悲心是也라 한다. 大慈悲心의 發露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곧 衆生救濟요 중생구제의 地盤은 國家安穩이니 어찌 국가의 鎭護를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 인간 각자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국가를 어떻게 改造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귀결되는 것으로, 불타께선 小·大乘의 諸經典上에서 前者는 衆生成佛이라 하고 後者는 淨佛國土라 하여 一切衆生의 救主로서 鎭護事業을 하는데 諸天善神을 總指揮하는 形式으로 表現되고 있다. 護世 四天王 등 諸天, 善神이 佛陀의 指揮를 받게 되는데는 불타의 威神力과 法力에 의하는 것이다. 그들은 佛陀의 說法을 聽聞하고 隨喜發心하여 “저희들은 後世에 이 法이 流布되는 곳과 法師, 또 이 法을 擁護하여주는 帝王과 國家를 鎭護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한 것이 이 鎭護國家說이 興起한 起源인 것이다.


小乘的으로 말해서 鎭護, 大乘的으로 말하면 護世思想이 大乘經典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實踐化되고 宗敎化 되었던 것이다. 즉 그것은 다름아닌 仁王百高座會니 金光明經會니 하는 등의 法會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護國法會의 所依經典은 古來로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仁王般若波羅蜜多經』과 『金光明最勝王經』『法華經』등이다.


호국법회를 開說하라는 敎說로는 仁王護國品 第五에


“그때에 佛은 大王에게 이르시되 汝等은 善聽하라. 내 이제 바로 국토를 護하는 법문을 설하리라. 여등은 마땅히 般若波羅蜜을 수지 할지니라. 국토가 어지럽고자 하여 破壞 刦燒하고 賊이 와서 나라를 破할 때에는 마땅히 百佛像과 百菩薩像과 百羅漢像과 百比丘衆과 四大衆, 七衆을 청하고 百法師를 청해서 반야바라밀다를 청하라……. 대왕이여 一日二時에 이 경을 강독하여 너의 국토중에 백부의 鬼神이 있고……이 經 듣기를 즐겨해서 이 모든 神은 너의 국토를 守護하나니라. 대왕이여 국토가 亂時에는 먼저 귀신이 亂하고 만민이 난하여 적이 들어 군신백관이 시비를 공생해서 천지가 괴이하고……일월이 度를 잃어 백성이 亡喪하게 되나니 대왕이여 만약 火難 水難 風難 등 일체제난이 있거든 마땅히 이 경을 독송하라.…… 天上 人中과 六道衆生은 다 마땅히 七佛의 名味句를 수지할 것이며 미래세 중에 무량한 국왕이 있어 국토를 護하고자 할진데 마땅히 법사를 청해서 반야바라밀을 설하라.”라고 있다.


본경 受持品 第七에는 佛이 파사익왕께 告하시되, “내가 멸도한 후, 법이 멸하고자 할 때 이 반야바라밀다를 수지하고 佛事를 大作하라. 일체국토가 안위하고 만백성이 快樂하리니 다 반야바라밀다에 말미암이다. 이런 故로 모든 국왕에게 부촉하고 비구 비구니 청신남 청신녀에게는 부촉하지 않노라. 어쩐 연고냐 하면 王力이 없는 까닭이다. ……반야바라밀다를 독송하면 七難이 즉시 소멸하고 七福이 卽生하여 모든 백성이 안락하고 제왕이 환희하리니……그리고 이 반야바라밀다는 이 제불보살과 일체중생 心識의 근본이며. 일체국토의 父母다. 또한 神符라 명하고, 또한 辟鬼誅라 명하며, 또한 如意珠라 명하고, 護國主라 명하며, 또한 天地境이라 명하고, 또한 龍寶神王이라 명한다. ……대왕이여, 만약 미래세에 제왕이 있어서 三寶를 호지하는 자는 내가 오대력보살 등으로 하여금 나라를 수호케 하리라. …대왕이여 내가 이제 삼보를 그대 일체 제왕에게 부촉하노니, 16대국왕은 이와 같이 마땅히 반야바라밀다를 수지할지니라.”라고 간절하게 부촉하여 있다. 이는 그 당시 16대국왕에게 평등하게 화친하는 법을 부촉하고 있는 점에 불타의 至公無私한 대자비심의 發露를 엿볼 수 있다.


그 다음에 『金光明最勝王經』은 『인왕반야경』과는 달리 호국법회에 관한 구체적인 교설은 없고 다만 本經을 受持 讀誦講說하면 그 法力에 의해 국토내의 재난이 모두 다 소멸한다는 것이다. 本經 漢譯은 현재 세 종류가 전래하고 그 범본원전(suvarṇapraṃbhāsottamarāja-sūtraṃ)까지도 전래하고 있다.


그러면 이 경전에 나타난 사천왕의 위치는 어떠하며 또 이 경전과 사천왕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세존이시여, 이 經은 능히 제천궁전을 비추고, 이 經은 능히 중생에게 快樂을 준다. 이 經은 능히 지옥, 아귀, 축생 등의 諸河가 集乾枯竭게 하고 이 經은 능히 一切의 怖畏를 제거하며 이 經은 他方然賊을 물리치고 일체의 질병을 낫게 하며 악성의 변이를 없애고 일체의 근심과 번뇌를 제거하나니, 擧要言之 하면 이 경전은 능히 일체중생의 무량무변한 백천고뇌를 없앤다.”라고 하여 있다. 그리고 끝으로 “…是故로 人王은 각각 국토에서 應然法炬하고 熾然正法을 增益하라.”라고 있으니 이 경전이 호국경으로 숭앙될 근거가 여기에 있다. 그러면 사천왕 등 모든 善神들은 이 經의 正法을 들으므로서 어떠한 究竟的인 이익이 있기에 그와 같이 열성을 다하여 이 經의 설법을 권하는가.


‘我等及與 無量天衆은 以是聽法 善根因緣으로 得服 甘露無上法味하여 增益我等 所有眷屬과 並與天神에 皆得勝利 種諸善根하니 然後에 證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나이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되


‘我等 四天王은 正法을 修行하고 正法을 常說하여 法으로써 化世할 것이며, 我等 天龍藥叉와 …諸人王이 常以 正法으로 化世케 하리라’고 하여 사천왕 자신만이 아닌 사바세계 모든 국토를 정법으로써 化人化世케 하겠다고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경을 강설하는 나라에는 四種의 福利善根 및 國王無病, 無諸災厄, 壽命長遠, 無障碍, 無然敵, 兵衆勇健, 安穩豐樂 正法流通을 얻는다고 하였다. 이 經이 어찌하여 그와 같이 治國化民의 위력을 가졌는가?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 經이 正法을 설하기 때문이다.


즉 어떠한 경전이든지 一切衆生 悉皆成佛의 意義와 佛國土顯現의 意義인 불타의 二大要旨를 설한 經이면 그것은 모두 正法이다. 다만 上記 經을 說할 때 때마침 法會席上에 사천왕이 聽法하고 正法外護의 誓願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金光明經』「正法正論品」등에는 모든 국토의 王은 正法없이는 국가를 오래 다스릴 수도, 백성을 안온케 할 수도, 왕위에 오래 머물 수도 없다고 하였다.


 


그 大旨만 要約해 보면 다음과 같다.


 


一. 國民 惡業은 正敎와 善根에 依하여 如法히 다스려야 한다.


二. 악업을 禁制치 않으면 非法이 횡행하게 되고 奸詐한 일들이 날로 增加한다.


三. 악업이 禁制치 않으면 三十三天의 天衆까지도 忿怒한다.


四. 非法이 횡행하면 敵侵을 받아 국토가 파괴된다.


五. 국왕이 正法에 의한 정치를 하지 않으면 국민의 총화가 깨어지며 年事는 不農하여 기근에 빠지고 惡黨들이 서로 결탁하여 왕위가 위태로워지며 국가 또한 패망할 것이요, 질병이 유행하는 등 국왕과 국민의 불행을 자초한다.


六. 惡人은 罰로써 다스리고 平人(一般百姓)은 十善行을 닦도록 敎化하여야 한다.


七. 국왕은 正法王이 되어 非法을 물리치고 國內에 偏黨이 없게 한다.


八. 국왕은 正法에 의지하여 국왕이 된 것이므로 正利에 순종하여야 하며 身命을 버릴지언정 非法에 순종하여선 안된다.


 


이와같이 정법정치와 비법정치의 결과에 까지 언급하고 백성은 십선행을, 국왕은 十德을 갖추고 신명을 바쳐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이상에서 經典, 講讀, 奉讚 등으로 국난이 진정되며, 또 사천왕 등이 佛陀의 부촉에 의하여 鎭護하겠다는 서원까지도 하였던 사실까지도 대강 논증하였다.


불타의 모든 교설은 원리원칙에 입각해 있으므로 이 호국사상도 이상에서 밝힌바와 같이 불타는 불타대로, 또 범천, 제석, 사천왕, 기타 선신들은 그들대로 국가를 鎭護할 수 있는 원리가 있는 것이다. 만약 원리가 없다면 그것은 한낮 口頭禪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 正法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것을 명확히 제시한 곳은 그다지 흔하지 않다.


大集經에는


“如是不善業 惡王惡比丘 毁壞我正法


損減天人道 諸天善神王 悲愍衆生者


棄此濁惡國 皆悉向餘方…


過去諸如來 依壽而滅道 彼於七月後


正法皆隱沒 今我涅槃後 正法五百年”


등이다. 이는 앞서 인용한 바와 같이 佛法이 즉 正法이라는 것이다. 佛法이란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 했고, 사천왕은 “當願開覺我 無上寂菩薩”라 願하였고, 이에 대한 佛陀의 授記에 “彼等當來世 得成於佛道”라고 하신 바와 같이 불교의 究竟目的은 佛道를 성취하는데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成就衆生 淨佛國土”가 호국사상의 원리이다. 이는 正法主義요, 慈悲主義요, 平等主義인 것이다.


국왕은 法王(如來)의 법을 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니 만큼 궁극에선 국왕과 법왕의 길은 성취중생 정불국토에 귀결되는 것이다.


 



1) 正法主義



진리를 정법이라 일컫고 이는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가치를 가졌다고 하여 『法句經』에는 “법의 시여는 어느 시여 보다도 훌륭하고, 법의 맛은 어느 맛 보다도 훌륭하며, 법의 즐거움은 어느 즐거움 보다도 즐거웁나니, 탐욕을 멸진함은 모든 괴로움을 이긴다.”고 하였고


 


또 『잡아함경』에는


“진리인 연기법은 여래인 내가 창조한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사람이 창작한 것도 아니다. 여래가 세상에 출현하거나 아니하거나 진리인 법은 법계에 언제나 가득 차 있나니 여래는 이 법을 깨달아 正等覺을 이루었나니라.”고 하였다.


범부이었던 悉達太子가 이 법의 증득에 의해 佛陀가 되셨다 함은 범부인 인간은 누구라도 진리인 법을 증득함에 의하여 성자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故로 법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依法不依人”이라고 하여 인간에게 권위가 있는 게 아니라 법 그 자체에 최고의 권위가 있음을 밝혔다.


따라서 불교의 실천은 정법의 구현에 있고 이는 人人個個의 최고의 실천이념이 되는 것과 동시에 국가정치의 기본이념이 되기도 한다. 이 같은 정법은 원래 諸天 · 人類 · 鬼畜 등 일체유정을 위하여 있는 것인데 유정들을 수호 안온케 하자면 국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니, 유정은 정법을 실천 체득할 자요 국가는 정법의 실천 체득의 장소이며 정법의 구현장이 되는 것이다. 故로 국가는 잘 保護育成 되어야 한다.


법에 依한 승리만이 최상의 승리이기 때문에 불타께선 누누이 법의 실현을 강조하시어 戰爭을 禁하셨다. 무력에 의한 정복이나 지배에는 필히 전쟁이 따르고 전쟁에는 많은 재정적 손실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을 잃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로 이긴자는 끝내 칼로 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에 의한 승리는 무력(전쟁)에 의한 승리와는 다르다. 여기엔 人命의 피해도 비참한 파괴도 없고 재정적 손실도 없으며 또한 승리 뒤에 따르는 양심적 후회나 슬퍼할 일도 없고 상대적인 힘에 의한 원한도 보복도 있을 수 없다. 오직 현세 및 후세의 이익안락과 희열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법에 의한 승리야말로 최상의 승리요 참된 승리인 것이다.


法은 眞理를 말함이요, 般若智를 말함이요, 善事를 말함이니, 이는 곧 佛說의 護國原理인 正法主義인 것이다.


 



2) 慈悲主義



불타의 정치사상을 일관하고 있는 또 하나의 기본이념은 자비의 사상이다. 불전 어디에서나 자비의 정신이 구현되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하였다. 본래 자비란 말은 “慈”와 “悲”의 두 개의 낱말이 합성된 것으로 “慈”란 남에게 이익과 안락을 안겨주려는 마음이고, “悲”는 남에게서 불이익과 苦를 除去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大慈與一切衆生樂 大悲拔一切衆生苦”라고 하였음이 그것이다. 이러한 자비정신은 순수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속적인 사랑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된다. 세속적 사랑은 憎惡에 대립되는 것이지만 자비는 애증대립을 초월한 淸純한 마음의 露出인 것이다.


“성자는 아무것에도 머무르지 않고 사랑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또 슬퍼함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않는다. 마치 연꽃잎에 물이 묻지 않는 것처럼”


이것이 성자의 마음이요 자비정신이 충만한 상태인 것이다. 세계를 정복하고 勇名을 떨치는 權王이라 할지라도 자비행을 실천하는 성자의 공덕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국왕으로서 세속적인 國家經綸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여도 국왕이 공덕을 쌓기 위해서는 자비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가르쳐 주는데 그 근본적 의미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또 “항상 安忍行을 하고 愛語를 하여 喜怒가 없으면 그 왕은 세간인민들이 모두 敬奉한다.” “항상 柔軟語로써 群生을 愛念하면 진실상응하여 마땅히 天主가 되리라”고 한 것은 이상적인 국왕은 누구나 유연한 愛語를 사용해야 함을 일깨워 주는 말이다.


이렇게 자비사상은 불타의 정치사상의 기본이념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넘어선 생명을 가지고 있는 일체의 생물에게 두루 屠殺을 행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혐오한다. 그러므로 『법화경』「안행품」에는 “보살 마하살은 살아있는 짐승을 수렵하고 물고기를 잡는 등 殺生業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 『화엄경』에서는 이상적인 국왕은 마땅히 생물을 도살하는 모든 악업을 제거하여 멈추게 해야 하며, 이것이 두려움을 없게 하는 보시라고 하였다. 큰 자비로서 살생에서 벗어나게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것만으로도 자비사상은 불타의 정치사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다란 비중을 차지한다.


 



3) 平等主義



인도의 사성계급 제도란 바라문, 왕족, 서민 노예의 사종 계층인데 이 가운데 바라문과 왕족의 두 계급은 승리자로서의 번영을 누리는 지배계급이고, 서민과 노예의 두 계급은 피지배 계급으로 사회인의 취급도 종교의 신앙도 생명권마저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는 아리안 민족이 인도에 침입하여 선주민들을 정복하고 그 지역의 통지자로서 군림하여 자신들의 관념을 투영한 자아철학(승리자의 철학)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자아철학은 만민평등의 원칙에 바탕을 둔 것이 못될 뿐만 아니라 이같은 승리자의 철학 속에서 패자의 사상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佛陀께선 이같은 사성계급의 장벽을 깨뜨려 버리고 인간평등을 주창하여 인간의 직업이란 자타가 상관관계 속에서 협동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 이외에 다른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숫타니파타』에 “날 때부터 賤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며 날 때부터 바라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은 그 行爲로 말미암아 천한 사람도 되고 바라문도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자기 자신의 行爲如可에 따라 귀한 사람도 되고 천한 사람도 될 수 있는 것으로 처음부터 어떤 사람은 천민이라고 낙인을 찍어 두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사성제도가 철저하게 뿌리박은 당시 인도사회에서의 이같은 불타의 주장은 대혁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佛陀의 교단은 그 입문절차에 있어서 지극히 개방주의적이다. 노예출신도 받아들였고 윤락여성도 받아 들였으며 凶賤에게도 문호는 개방되었던 것이다. 명기 암바빠리, 凶賊 앙굴마라가 그러하다. 상층계급의 많은 바라문들이 귀의하였고 마가다국의 빈비사라 왕을 비롯하여 대국의 왕족들이 입문하였는가 하면 자선사업의 일인자인 부호 수달다장자가 귀의하여 많은 후원을 아끼지 않았음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원시불교경전이 증거하는 석존의 제자들 가운데 이름이 밝혀진 것은 1,160인이며, 이 제자들을 사성계급에 의하여 분류하면 바라문 계급이 219명, 왕족계급이 128명, 서민계급이 155명, 노예계급이 30명, 계급불명자가 628명이라고 한다.


이 통계에 의하면 상층계급이 많고 하층계급은 적지만 하층계급이 입문하였는데도 다수의 상층계급 사람의 입문자가 있다는 사실은 불교교단에서 실질적으로 四姓平等이 실시되고 있음을 웅변으로 말하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성계급의 차별관을 타파한 불타의 평등사상은 “他의 存在”를 바르게 인식함에서 비롯한다. 정복하기 위하여서만의 他가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서 他를 발견하고 자기와 함께 他를 인정하며 他를 위하여 盡力하여 自他平等의 아름다운 세계를 건설하려는 위대한 理想과 意志가 있는 곳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삶을 바라고 죽음을 싫어하며 樂을 즐기고 苦를 괴로워함은 인간들의 常情이다. 자기 스스로가 바라지 않고 싫어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他에게 요구하는 즉, 자기 자신이 바라지 않는 危害나 殺戮을 恣行하는 일들이 排除될 때에만 평등사상은 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교살라국의 파사익왕과 왕비 말리 두 사람이 자기애에 대한 문답에 석존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의 생각은 어느 곳에나 미칠 수 있지만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스러운 것을 발견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 있어서도 자기는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사랑스러운 것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해롭게 하여서는 안된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입장과 다른 사람의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하여 보는 것으로 이는 인간이성의 가장 높은 작업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기의 입장을 전환하여 생각하여 보라는 가르침은 석존교설의 기본이다. 他의 인격을 인정하는 경우가 아니고서는 평등관이 성립하지 못한다. 열반의 평화사상도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정치 경제는 물론 윤리, 철학, 종교 등 문화 일반도 이 자기부정을 통한 他의 존재가치의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교에 있어서 사성평등의 이념은 지극히 명료하다. 계급부정이 관념상의 擧論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實際에 있어서 불교 교단 내에서는 사성평등이 실행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불교의 이러한 평등관이 사회의 완고한 계급관을 뿌리 뽑지는 못하였지만 이는 인도사회에 있어서의 커다란 역사적 사실임은 정당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의 석존은 인종문제와 계급제에 대한 평등과 질서의 이념을 명확하게한 세계 최초의 人道主義者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세존의 교설을 바탕으로 하는 불교도의 정치사상에도 이러한 평등사항이 그 기본적 이념이 되고 있음은 再言을 要치 않는다.


 



2. 王政論


 



1) 政治(국왕)의 課題



앞에 국가기원설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대중의 필요에 의해서 대중들에 의해 選拔된 것이 왕이니 만큼 왕의 지위는 절대 부동이 아닌 가장 민주적인 정치사상, 이것이 불교의 정치사상이다.


그러므로 국왕의 정치적 과제는 매우 중요한 것이며 불전 가운데도 허다하게 왕의 정치적 과제에 대한 논술들이 발견되고 있다. 비교적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는 경전으로 『大乘大集地藏十輪經』과 『法句譬喩經』등을 들 수 있는데 前者는 三種業輪이 그리고 後者에는 五事가 논술되어 있는데, 먼저 삼종업륜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첫째, 建立帝王業輪으로 軍陣과 戰鬪를 군인들에게 잘 가르쳐서 타국의 병중을 항복받아 인민을 撫育하는 것이요.


둘째, 建立田宅業輪으로 집을 짓고 농사를 짓는 일을 인민에게 잘 가르쳐서 안온하게 飮食이 충족하게끔 하는 것이다.


셋째, 建立財寶業輪으로 공상잡예를 인민에게 잘 가르쳐서 갖가지의 珍玩資財를 뜻대로 수용하여 여러 가지 쾌락을 증득하도록 한다.



다음 『법구비유경』에서는 국왕이 五事를 행하면 그 이름이 四海에 떨치는 福祿을 自然히 받게된다. 만일 이 五事를 행하지 않으면 衆網不擧하고 民困하며 따라서 思亂하고 士勞하며 勢不擧하게 된다. 그리하여 無福하여지고 천신이 도웁지 않으며 스스로 大理를 잃어 충신은 諫言을 하지 않고 마음은 放逸하여 臣蘗民怨이 생기게 되어 현재에 있어서 令名을 잃게 되고 내세에는 無福하게 된다고 하고 五事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만민을 領理함에 枉濫(굽고 펴짐)이 있어서는 아니되며,


둘째, 壯士를 養育하여 때에 따라 禀與하여야 하며,


셋째, 본업을 念修(專念)하여 복덕이 단절하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넷째, 忠臣의 正直한 諫言을 믿어 讒言을 받아들여 정직을 손상케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하며,


 


다섯째, 欲賓과 樂心을 節製하여 放逸하지 말아야 한다.”



이상의 내용이 동일한 것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그 내용인 즉 국왕의 정치적 과제는 이적을 방어하여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치안확보의 문제와 여러 가지 산업을 진흥하여 인민의 물질적 생활을 풍요 안락하도록 하는 정제활동의 문제, 그리고 이러한 일을 성취하기 위하여서는 국왕의 자세 등이 국왕의 정치활동의 중심과제임을 알 수 잇다. 이 이외에도 여러 경론에 국왕의 직무에 관한 것이 많이 열거되어 있는 것이 있지만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大差없다.


또한 국왕이 왕으로서 담당하여야 할 정치적 과제를 훌륭히 遂行할 수 있는 자질을 王德이라 하는데, 이는 후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으로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불교도들은 생각하였다. 다음 각 경론에 나타난 국왕의 정치적 과제를 훌륭히 수행할 수 있는 자질 즉 王德說을 살펴 봄으로써 국왕의 정치적 과제를 엿보기로 한다.


 



王德說로는


「七支二德說」「十德說」「十種功德說」「二十一德說」등을 들 수 있다. 『사십화엄』의 소설인 「七支」라 하는 것은


 


첫째, 군덕이 있어 천하가 우러러 받들음이 사람의 머리와 같은 것


둘째, 보좌하는 신하가 있어 左右忠良이 사람의 어께와 같은 것


셋째, 국경이 있어 寬富로 포용함이 사람의 배(腹)와 같은 것


넷째, 險固가 있어 萬方囊結함이 사람의 배꼽과 같은 것


다섯째, 창고가 있어 財食이 충영하여 所往에 無難함이 넓적다리와 같은 것


여섯째, 兵威가 있어 士馬가 정예하여 璪由己함이 사람의 종아리와 같은 것


일곱제, 隣境이 있어 貢賦함에 때로하고 往復王命이 사람의 발과 같은 것이다.


또 二法이 있어 七支를 능지하나니,


 


첫째는 위용이요.


둘째는 지모이니 二德이 相資함이 사람의 눈과 발과 같아서 七支에 의하여 머무르며 正敎가 시행되어 향하는 곳에 유포되지 아니함이 없다.



또 十德說은 『心地觀經』에 “만약 왕이 正見을 성취하여 如法히 化世하면 天主라 부른다. 왜냐하면 天의 善法의 세간을 교화하는 까닭이다. 諸天善神과 護世의 王이 항상 가호하며 … 정법왕으로 十德을 성취하나니


一名, 能照니 지혜의 눈으로 세간을 비치는 까닭이오.


二名, 莊嚴이니 큰 복과 지혜로 나라를 장엄하는 까닭이오.


三名, 與樂이니 큰 안락으로 인민에게 기여하는 까닭이오.


四名, 體怨이니 일체의 원적이 자연히 항복하는 까닭이오.


五名, 離怖이니 八難을 제압하여 두려움을 없애주는 까닭이오.


六名, 任賢이니 모든 賢士를 모아 국사를 평론하게 하는 까닭이오.


七名, 法本이니 만백성이 편안히 사는 것은 국왕에 의지하는 까닭이오.


八名, 持世니 天王法으로 세간을 유지하는 까닭이오.


九名, 業主니 선악의 모든 업이 국왕에 속하는 까닭이오.


十名, 人主니 一切人民은 왕을 主로 하는 까닭이다. 일체국왕은 先世의 복으로 이와 같은 十種德을 성취하나니라.”


 



다음의 十種功德說은 『佛為優填王說王法政論經』에 설해진 내용이다.


“대왕의 공덕에 대략 열가지가 있으니


一은 종성이 존귀한 것


二는 대자재를 얻은 것


三은 성품이 포악하지 않은 것


四는 발분함이 경미한 것


五는 은혜가 맹리한 것


六은 정직한 말을 받아 들이는 것


七은 先敎에 善順하는 것


八은 善法을 顧戀하는 것


九는 差別을 善知하는 것


十은 스스로 縱蕩하거나 방일하지 아니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일은 種性功德이오, 나머지 아홉가지는 自性功德이라고 한다.


 



또 『화엄경』에는 왕의 21德을 설하였으니,


“1) 큰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작은 일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 것,


2) 高居俯視하여 政事의 萬端을 듣는 것,


3) 寂然不動하되 感通無礙하여 말을 헛되이 하지 않고서도 一切가 自成하는 것,


4) 말은 반드시 柔實하게 하여 법으로써 사람을 이롭게 하며 중생을 교화하여 필경에 성취하는 것,


5) 庶政을 克權하여 마음에 걸림이 險易함이 없이 珍財를 能捨하여 一切에 調給하는 것,


6) 大智와 勇健으로 모든 怨敵을 調禦하고 賦稅의 옳음을 분별하여 止足함을 恒知하는 것,


7) 賞罰은 때에 따라서 하는 것,


8) 萬方을 均濟하는 것,


9) 義가 疆禦하여 伏하는 것,


10) 비밀(간교)한 말을 듣지 않는 것,


11) 淸心寡欲하여 內宮에 放縱하지 않는 것,


12) 발언을 審諦하여 밖으로 違命이 없는 것,


13) 주는 것만을 취하여 百姓의 衣食을 충당하기에 힘쓰는 것,


14) 마음을 調禦하여 허물이 없이 하기에 精勤하는 것,


15) 바른 마음을 성취하여 엉터리 아첨(謟侫)에 친하지 않는 것,


16) 萬方이 공헌하여 땅을 맡기되 틀림이 없는 것,


17) 儉時에 少奉하여 慚愧心을 恒懷하는 것,


18) 所作事가 吉祥하여 安眼을 얻는 것,


19) 마음에 正見이 있어 動念을 便覺하는 것,


20) 德을 중히 여기고 친절을 존중하여 貧賤을 愍哀하는 것,


21) 생각을 庶品에 두어서 護念에 때가 있고 威勇이 自在하여 모든 寇難이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21종의 공덕을 갖춘 왕이라면 일체원적이 자연히 散滅하며 모든 外寇가 능히 나라에 들어오지 못한다. 또 만약 이 21종을 갖추지 못하고 다만 三德만 있어도 능히 治人할 수가 있으니,


一은 珍財를 能散하여 一切를 賙給할 것


二는 身命을 버릴지언정 헛되고 기만하는 말(虛誑言)을 하지 않을 것


三은 大勇猛을 갖추어서 怨敵을 能制할 것 등이다.


또 설사 이 三德이 없더라도 大福德智의 一德이라도 있으면 능히 政化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불교경전에 이와 같이 王德이 누누이 설명되어 있는 것은 그 당시의 불교도들이 한 나라의 정치가 훌륭하게 되고 또는 그러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국왕의 有德如何에 달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다.


 



2) 왕의 정치론



이상과 같이 국왕이 갖추어야 할 자질에 대해선 王德이란 이름으로 누누이 강조되고 아울러 정치의 과제도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佛典에 강조되고 있다.


善因善果 · 惡因惡果의 因果思想은 현재의 국왕이라는 지위를 前世 善業의 직접적 반영이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국왕은 현재나 미래에 있어서 선업을 지성스러운 마음으로 실천하라고 계고하는 적극적인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三世의 善惡因果觀에 있어서 과거 보다도 현재와 미래에 보다 많은 역점을 두고 국왕의 적극적인 윤리, 즉 행동규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국왕의 行動論道에 관한 불타의 교설이 대소승경론에 허다하게 발견되는 터인데 그 몇 개의 例를 들어보기로 한다.



“왕은 마땅히 橋梁이 만민을 제도함과 같이 하여야 하며


왕은 마땅히 저울이 親疎에 모두 평등함과 같이 하여야 하며


왕은 마땅히 道의 聖縱을 어기지 아니함과 같이 하여야 하며


왕은 태양과 같이 세간을 두루 비칠 것이며


왕은 마땅히 만물에 청량을 주어야 하며


왕은 마땅히 부모와 같이 思育慈矜 하여야 하며


왕은 하늘과 같이 모든 만민을 위하여 惡患을 태워 버려야 하며


왕은 물과 같이 사방을 윤택하게 하여야 한다. …”


 


여기서 우리의 주의를 이끄는 것은 봉건군주제에 있어서는 국왕이 절대시되는 나머지 人政의 존재는 국왕에 예속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에 반하여 국왕이 인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하게 될 정도로 국왕은 인민을 위하여 무제한의 은애를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왕도에 대한 불교도들의 사상은 그대로 국왕의 행동을 규제하는 대전제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자못 인민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서만 베풀어지는 “이타의 정신” 이것은 그대로 보살행의 정신인 것이다. 이 보살행은 공사상을 철저히 체득한 정신의 실천이며 자비의 행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자비의 정신을 가지고 참회와 이타에 힘쓰는 곳에 惡을 미워하고 善行을 向하려는 王者의 정신은 싹튼다. 그러므로 불타께서 왕에게 요구하는 행동윤리는 인민 위에 군림하는 왕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인민을 보호하고 애육하는 王者의 행동윤리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금광명경』에는


“王法論을 설하여 모든 유정을 利安하고 세간의 의혹을 끊어 버리기 위하여 모든 過失을 滅除하거라”고 하셨다. 『금광명경』에서 왕법정론을 설한 것은 국왕을 위함이 목적이 아니고 일체중생의 이익을 도모함이 목적이고 일체의 의혹을 끊고 일체의 악업을 멸제함이 그 방법이라는 뜻이겠는데, 이는 곧 현실적인 사회적 불안을 제거하고 인민의 이익을 도모함에 불교도의 정치이념을 둔 것이어서 국왕의 행동윤리가 중요한 뜻을 가지고 등장하게 된다.


 



또 『증일아함경』에는 국왕이 준수하여야 할 열가지 윤리덕목을 들고 있다.


첫째, 국왕은 군신의 간언을 받아들여 그 말을 거스르지 않을 것.


둘째, 국왕은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성을 내지 않으며 또 조그만 일로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을 것.


셋째, 국왕은 항상 보시하기를 좋아하여 즐거움을 국민들과 함께 할 것.


넷째, 국왕은 법으로써 재물을 거두고 비법으로써 하지 않을 것.


다섯째, 국왕은 남의 여자를 탐하지 말고 항상 자기 아내만 보호할 것.


여섯째, 국왕은 술을 마시어 마음이 거칠거나 어지럽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


일곱째, 국왕은 戱笑하지 말 것이며 외적을 항복시킬 것.


여덟째, 국왕은 법을 따라 다스리고 교화하여 삐뚜러짐이 없을 것.


아홉째, 국왕은 신하들과 화목하여 다툼이 없도록 할 것.


열째, 국왕은 병이 업고 기력이 강성할 것.


 


여기에 열거한 열가지 윤리 덕목은 국왕이 국왕의 자리를 오래 유지하는데 필요한 열가지 법이라고 하는 것인데 불교도들은 이와 같이 국왕을 추앙하고 절대시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국왕에게도 윤리적 실천을 강력히 요구한다. 국왕의 지위를 보존하기에 필요한 열가지 덕목을 한마디로 바꾸어 말하면, 이러한 덕목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국왕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국왕의 권력이 절정에 이르렀던 고대인도 봉건사회에 있어서 이러한 불타의 교설은 폭풍우 같은 제창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附隨하여 주목할 만한 것이 있으니 불전 가운데 국왕이 지켜야 할 덕목으로


“국왕도 굳게 우정을 지켜야 한다.”


 


“善知識이 아닌 無益한 벗에 가까이 하지 말라.”


“올바르게 妻子를 보호하라.”는 등의 말이 있다. 국왕에게 우정을 논하고 왕비, 왕자 등의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처자운운하고 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것은 요컨대 국왕도 일개의 인간으로 보고 인간으로써 실천하여야 할 윤리덕목을 국왕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불타의 국왕에 대한 생각이 지극히 민주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적 사상이 바탕이 되어 불교도들은 국왕의 전제적 도선을 경계하기도 하였다. 즉 국왕은 정치를 함에 있어서 널리 회의를 열어 賢者, 元老, 群臣들의 의견을 청취할 것을 요구할고 있다.


 


“왕의 정전에 衆寶로 장엄한 논좌를 설치하여 국내의 대지혜있는 사문, 바라문으로 도과를 얻은 자를 청하여 정법을 연설케 하며 그 義를 聽聞하고 … 무엇이 선법이며 무엇이 악법인가를 자문할 것이며 … 때때로 宿舊智臣, 高道 등을 招致하여 … 국정을 자문하고 그 득실을 평가하도록 하라.” 이는 현재의 대의정치를 방불케 하는 것으로 불타(불전)의 정치사상이 다분히 민주주의적이었음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다.


 



또한『대무량수경』에 “부처님이 유행하시며 다니시는 곳(遊履) 國邑丘聚로서 佛化를 입지 아니함이 없다 … 인민은 평안하며 兵戈를 사용함이 없고 德을 숭상하고 仁을 일으키며 禮讓을 닦음을 힘쓴다.” 이는 불타의 교화가 우주자연의 조화와 세계 인류의 화합 협동에 의한 평화실현을 의도함을 말하고 있다.


 


“强力을 가지고 타인을 위협하고 핍박하는 일이 없다.”


“덕으로써 四隣를 항복받는다.”고 설하고 있다. 아울러 「七種法」을 설하여 마가타국이 이웃 약소국인 발지국(跋耆)을 침공하려는 것을 막기도 했다. 그러나 이 칠종법에는 군비나 무력장비에 관한 것은 하나도 언급되어 있지 않음이 특징이다. 하지만 『사십화엄』에는 “잘 타일러도 듣지 아니할 경우는 王師를 권하여 이를 討伐한다.”고도 하였다. 여러 가지 方便으로도 분쟁이 해결되지 아니할 때 부득이 전쟁에 돌입하게 될 때에라도


첫째, 적왕에게 자비심이 없는 이유에서 살육전이 시작되는 것이기는 하나 될 수 있는 한 중생의 생명을 보호하여서 인명의 살육이 적도록 할 것.


 


둘째, 어떠한 방편으로라도 적왕이 항복하도록 하여 종전할 것.


셋째, 될 수 있는대로 적병을 생포하여 살해하는 일이 적도록 할 것.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자비심을 간직한 다음 象, 馬, 車, 步의 四軍을 배분하고 號令하기 시작한다. 요컨대 불교의 국방을 위한 생각은 부득이한 전쟁을 인정함은 사실이나 근본은 德化에 의한 平和第一主義인 것이다.


 



3. 전륜성왕 사상



위에서 우리는 불전에 나타난 호국의 원리와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어떤 덕과 실천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한마디로 불타의 가르침에 의하면, 단순히 힘이나 무력으로의 통치가 아니라 정법으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轉輪聖王 사상으로 집약될 수 있다.


 


전륜성왕이란 법으로 다스리고 교화하여 끝내 살생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살생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도둑질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도둑질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음탕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음탕하지도 않으며, 스스로도 거짓말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거짓말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이간하는 말로써 남을 싸우게 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이간하는 말을 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질투하거나 성내거나 어리석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그런 법을 익히게 하지 않으며, 스스로도 바른 소견을 가지고 남을 시켜서도 삿된 소견을 가지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성취하여 나와 더불어 모두가 행복하고 안녕할 수 있게 하는 그 사람을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 하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를 공양해 마지않는다.


전륜성왕의 통치에 있어서는 ‘일곱가지 퇴전하지 않는 법’과 ‘열가지 착한 법’이 널리 행해진다. 먼저 칠불퇴법은 ①자주 모여 옳은 일을 서로 의논하고 ②임금과 신하는 서로 화순하고 서로 공경하며 협력하여 ③준법하여 예도(禮度)를 어기지 않으며 법을 악용하거나 탈세하지 않고 ④부모에 효도하고 노인들을 잘 봉양할 것 ⑤헌법을 존중하고 종묘사직을 수호할 것 ⑥음란한 풍속이 없고, ⑦사문을 높이 받들고 계(戒)행이 밝은 이를 존경하여 공양하고 하는 등의 건강한 사회 풍토를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국정의 운영이 투명하고 밝게 처리되며, 정부와 국민이 서로 신뢰하고 화순하며, 법이 바르고 잘 지켜져서 위법과 탈법하지 않아 일처리에 밝은 절차가 있는 것이다. 또한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이 안정되어 가정파탄과 같은 사회문제가 발생되지 않으며, 국민들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을 소중히 하며, 나라의 문화와 풍속이 건전해서 유흥과 성문화도 건전한 사회인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외적의 침로가 어려운 것이다.


‘열가지 착한 법(十善法)’이란, ①살생· 도적질․ 삿된 음행․ 한입으로 두말하는 것이나․ 나쁜 말․ 헛된 말․ 꾸민 말․ 서로 미워하고 시기함․ 성냄․ 어리석음과 같이 흉악한 것을 마음에도 남겨두지 않았으며, ②부모에게 효순하고, ③구친(九親)을 경애하며, ④어진이를 따르고, ⑤성인을 존귀하며, ⑥부처님을 믿고, ⑦법을 믿고, ⑧사문의 말을 신뢰하며, ⑨선한 일에는 복이 있음을, ⑩나쁜 일에는 화가 있음을 믿어 바로 아는 것이다. 전륜성왕은 이같은 진심어린 정치와 열가지의 선하고 밝은 가르침(十善明法)을 몸소 실천하고, 엄중한 칙(勅)으로 총리와 장관에서 일반 국민에게까지 이르게 하며, 모두에게 명(令)하여 존중히 봉행하고, 서로 이끌어서 선(善)을 행하게 한다.


이러한 전륜성왕의 사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 사회구성원 각자가 단지 개인적 차원에 십선법을 행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 전체에 행해지게 한다는 점이다. 바로 여기에 전륜성왕의 정법치국(正法治國)의 의의가 있다. 실재로 역사상에 구현하고자 한 많은 노력들이 있으며, 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은 鐵輪王으로서 여겨지고 있다.


전륜왕에게는 수레바퀴 모양의 보물[輪寶]이 있다고 한다. 이 윤보가 굴러가며 모든 외적과 장애를 물리치고 평화로운 국토를 실현시키는데, 윤보에는 금·은·동·철의 네 가지가 있어, 金輪寶를 지닌 금륜왕은 네 대륙을 다스리고, 銀輪寶를 지니니 은륜왕은 세 대륙을, 銅輪寶를 지닌 동륜왕은 두 대륙을, 鐵輪寶를 지닌 철륜왕은 한 대륙을 다스린다고 한다. 신라의 진지왕과 진평왕 때의 王名에서 ‘金輪’이나 ‘銅輪’을 찾아볼 수 있음에, 한국사에 있어서 전륜성왕의 통치이상이 낯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정당한 방법으로 세상을 통일하고 화합시킬 뿐만 아니라, 정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이상적인 통치자를 기대하는 것은 비단 어제 오늘의 염원만은 아닌 것이다.


 



4. 국민의 호국 윤리



국민의 호국윤리, 즉 국민으로서 지쳐야 할 윤리를 바꾸어 말하면 곧 護國倫理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타께서 본 윤리적 실천은 단순히 인간에만 국한치 않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 주위에는 소위 十界中 人間을 제외한 九界의 衆生들이 있고, 또 공간적 지연 관계와 시간적 시연 관계 등 總而言之하면 우주 전체가 모두 인륜적 행위에 직접, 간접으로 상호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도덕적 원리는 인생 개체를 주로 한 개별적인 원리가 있는 동시에 우주적 전체로 본 전체적 원리가 있는 것이다. 이엔 종교적 원리와 철학적 원리 등을 들어 설명해야겠지만, 본 논문에서는 생략하고 人倫行爲의 실천론(선악론)만을 들어 국민(중생)의 호국관을 대변코자 한다.


 


앞에서 正法(般若智)에 의한 자비와 평등의 구현이 곧 鎭護國의 길임을 밝힌 바와 같이 백성도 “諸惡莫作 諸善奉行”의 실천이 호국의 길임을 제시하고 있다.


 


“佛言하사되 중생은 열가지 일로써 선과 악을 행하니 그 열가지 일이란 몸으로 행하는 세가지, 입으로 행하는 네가지, 뜻으로 행하는 세가지 일이다.”고 한 것과 같이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이나 한 사회나 한 국가나 다 因緣果의 법칙에 따라, 지은 바 행위는 그것이 願(業)으로서의 불멸의 세력을 남기게 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惡自受罪하고 善自受福하며 亦各須熟하여 彼不相代니라”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국민윤리의 도덕적 행위의 목적은 自利와 他利의 二利圓滿에 있는 것으로 악을 그치게 하는(止惡) 攝律儀戒와 선을 닦게 하는(修善) 攝善法戒는 自利의 行이며, 濟度衆生 위주의 攝衆生戒는 이타행이다. 즉 불교도덕은 요컨대 止惡과 修善과 濟生의 三에 귀결되는 것이다. 이를 요약하여 圖示하면 다음과 같다.


 



倫理의 目的 󰌼 自利→止惡→攝律儀戒→修善→攝善法戒→法門


󰍄 利他→濟生→攝衆生戒→衆生



煩惱無盡誓願斷 󰀋


法門無量誓願學 | → 佛道無上誓願成


衆生無邊誓願度 󰀗


 



여기엔 하지 말라는 율의계 보다도 적극적으로 행하라는 섭선법계와 섭중생계에 그 중점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떠한 선법을 행할 것이며 또 어떻게 중생들을 받아들여 요익케 할 것인가? 그 구체적인 내용이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덕목화하여 보살행의 요목으로 제시한 것이 소위 육바라밀 내지 십바라밀 사상이다. 波羅蜜이라 함은 범어의 Pāramitā로서 Pāra는 피안의 뜻이고, mitā는 도달의 뜻이다. 즉, 到彼岸의 의미인 것이다. 이는 소위 上求菩提 下化衆生, 즉 스스로 행하는 동시에 또 타인을 교화하는 自利利他의 饒益衆生 사상인 것이다.


 


또 이러한 실천은 원시불교 시대부터 일반에게 四攝法이라는 방법으로 권장되어 왔다. “四攝法이 있으니 무엇이 그 네 가지인가. 一은 惠施요, 二는 愛信이며, 三은 利行이요, 四는 等利이다.”라고 한 바와 같이 布施攝, 愛語攝, 利行攝, 同事攝이 그것이다. 또 “諸菩薩行 菩薩道時에 以四事로 攝無量百千衆生하나니 所謂 布施 愛語 利益 同事니라”라고 한 바와 같이 이는 대승보살의 교화방법으로도 중요시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이와 같이 사섭법은 갖가지 가능한 수단을 다하여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또 물질의 실질적인 이익을 주는 동시에 정신적으로는 佛法의 理想에 이끌어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일반적인 국민의 실천윤리가 곧 護國이라는 것이다. 환언하면 知恩報恩行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나라의 은혜,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중생의 은혜 등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사회적 제반의무와 道德行이 원만성취 하는 것, 이것이 곧 호국의 길임을 밝혔다.


 


이같은 것을 국제상으로 볼 때에는 국가의 이익이요, 국내적으론 공익인 것이다. 이 공익은 꼭 法에 의해서 行하여 져야만 한다. 법의 布施, 법에 의한 親善, 법의 分與, 법에 의한 結緣과 같이 훌륭한 보시는 없다. 이 가운데는 함께 일을 하는 아랫사람이나 종사자에 대한 올바른 처우, 부모에 대한 유순, 친구나 지인 친족 아울러 사문 바라문에 대한 보시, 모든 생명에 대한 불살생 등을 포함한다.


 


국민 개개인은 善事(法)를 하라는 것으로 그 좋은 일의 내용이란 柔知(少漏), 衆善(善良), 慈愍, 布施, 眞諦, 淸淨(三業의) 등인데 구체적으로 말해서 부모에 대한 孝順, 스승에 대한 柔順, 耆宿에 대한 禮節, 朋友·知己·親族에 대한 禮讓, 바라문에 대한 보시, 貧者·窮人·奴隸·從業에 대한 정당한 처우, 有情의 不殺害와 生類의 不屠殺, 眞諦를 말하는 것 등이다. 거듭 말해서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해야하고 지켜 나가야 할 올바르고 당연한 일 즉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선을 법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 法의 실현이 곧 護國임을 제시하고 있다.


 




제3장 한국불교의 호국사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불교가 이 땅에 전래 된지도 1600여년을 넘었다. 장구한 세월 속에 불교는 민족의 혼이 되고, 민족정신의 지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 왔으며 개인이나 사회, 국가의 모든 시련과 어려움을 함께 해왔다. 다시 말해서 불교는 이 나라 이 민족과 흥·망·성·쇄의 운명을 함께 해왔다.


 



고구려에는 소수림왕 2년(서기372년), 백제는 그 12년 후인 백제 침류왕원년 (서기384년)에 전래되었고, 신라에는 법흥왕15년(서기528년) 이차돈의 순교로 공인되었다.


 



1. 신라



뒤늦게 신라에 들어온 불교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여 원광법사의 화랑오계정신으로 삼국을 통일하였고 신라의 역대 왕들은 불교의 전륜성왕이 되고자 王名까지도 불교식으로 썼다.


 


예컨대, 부처님의 바른 법을 흥성케 하겠다는 뜻으로 법흥왕, 부처님의 진리를 흥성케 한다는 뜻으로 진흥왕, 부처님의 지혜를 구현한다는 뜻에서 진지왕, 부처님의 진리로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진평왕, 부처님의 선덕을 펴겠다는 뜻에서 선덕왕, 참된 진여의 공덕을 구현하겠다는 뜻에서 진덕왕 등을 들 수 있다.


 


호국사상으로 일관된 불교는 진흥왕 때는 팔관회를 개최하여 전몰장병과 국민을 위로했고 원광법사는 화랑오계와 걸사표(乞士表)를 지어 나라의 은혜를 알게 하였고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는 황룡사의 9층탑을 세워 주변9국의 제압을 발원했다.


도옥스님은 전선에 뛰어들어 순직함으로 승전을 거둘 수 있게 하였다.


 


원효스님은 화쟁사상·원융회통사상으로 회삼귀일케 하여 思想的으로 신라통일을 튼튼히 했다. 그는 “萬法唯識 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신라에 없는 진리가 당나라에 간들 있겠으며 당나라에 있는 진리가 신라엔들 없겠는가?” 라는 유명한 말과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양질의 저술을 남겼다.


 


의상스님(625~702)은 중국화엄종 제3조의 위를 버리고 신라를 위해 급히 귀국하여 당의 야심을 알리고 사천왕사를 창건하고 명랑법사로 하여금 밀교법으로 오랑캐의 침략을 막았다.


이 같은 불교문화의 금자탑이 모두 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발로였다. 왜구침략의 불침번으로 외곽지역에 절을 세웠으니 그 한 예를 들면 김대성발원으로 불국사와 석굴암을 창건한 것을 들 수 있다.


 



2. 고려



고려태조의 훈요10조 중에 제1조 건국이념부터 “우리국가 대업은 반드시 불보살의 위호의 힘에 의한다”고 했다.


불교를 보호 유지하며 국가의 모든 행사를 불교사상에 의거하여 연등제, 팔관회 등을 통해서 국가발전과 안녕을 발원했다.


 


이같이 고려건국이념이 호국대도에서 출발하였으며 제8대 현종, 元文王 11년 5월에 궁궐에서 백고좌법회를 열어 3일간 『仁王經』을 강설하는 것을 필두로 인왕경도장, 금광명경도장, 장경도장, 연등회, 팔관회, 반승회 등 그야말로 눈부신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고려조의 빈번한 불사가 모두 고려태조의 10개 훈요를 근거로 한 불교국가로서 그 면모를 굳건히 다졌던 것이다.


 


불보살의 가피력으로 國泰民安코자한 고려왕조의 최대불사는 고려대장경 판각불사라 하겠다. 현종2년(서기 1011년)에 착수하여서 文宗까지 40년동안 1106부 5,048권의 목각판 경전을 새긴 것이다. 몽고족(栔丹)의 침략으로 개경이 함락되고 나주까지 피난 중에도 국난극북을 살상무기로 맞서기보다 높은 정신무장에 뜻을 두고 한 佛事였다.


 


符仁寺에 모신 대장경이 高宗19년(1232년)에 황룡사 9층 전탑과 함께 몽고군 침략으로 모두 전소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강화로 수도를 옮긴 高宗은 몽고군과 장기전에 돌입, 다시 대장도부를 두고 대장경불사를 시작하여 16년에 걸쳐서 1,512부 6791권, 81,258판의 대장경을 완성시켰다. 이것이 오늘날 해인사에 보관되어있는 ‘고려대장경’ 이다


 


문종의 아들로 11세에 출가한 문종-숙종 때의 의천(大覺國師義天, 1055~1101)은 三歸一 사상으로 고려불교를 드높인 사람이다.


 


이처럼 신라원효의 화쟁정신, 고려의천의 회삼귀일정신, 이 모두가 원융 무애한 부처님의 正法사상으로, 각각 다른 시대에서 실천적 화쟁사상과 원융한 無碍行으로 민족적 자각과 창의적 민족이념을 정립하고 구현했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이러한 정신을 이론적으로 구현해 한층 더 승화시켰다. 즉, 定慧雙修論으로 頓悟漸修하여 禪·敎가 和諍 圓融하는 이론을 천명했다.


고려 숙종 때에는 오랑캐의 침략을 막기 위해 항마군이라는 승병의 상비제도가 창설되어 나라의 정규군으로 전쟁터의 선봉, 호국의 선봉이 되기도 했다.


또 고려 말에는 전선조병, 조총사격수, 화약제조병 등 전문적 기술은 승군이 거의 독점하였다.


 



3. 조선조의 의승군 활동



고려 말 비대해진 사원경제와 여기에 결탁된 지방권력의 전횡은 국가재정을 파산으로 몰아갔고 기성 승단과 승려에게 부여된 특권은 왕왕 악용되었으며, 승려들은 특권의식과 안일에 빠져 法을 망각하며 지도력을 상실하였다.


 


이태조의 건국에 神照 僧將을 중심으로 참신한 승려들이 건국의 기반이 되었고 왜적을 물리치는 주역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경작지에 근거한 국가경제의 회복을 위해서는 토지개혁이 절실하였다. 이에 파탄지경에 이른 국가경제 회생과 공신들에게 나눠줄 보상의 땅을 마려하기 위해 1차적으로 부패한 려말권승들의 사찰을 폐사해서 그 토지를 몰수해 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하에 조선왕조에 와서는 혹독한 폐불정책이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사원 수를 대폭 줄이고 불교재산을 박탈하고 종파도 선․교 양종으로 정리해 버리고 승려를 七賤의 하나로 묶어 도성출입까지도 막아버렸다.


 


결국 正法인 佛法을 不法으로 억측하는 암흑시대가 도래하였다. 世祖나 문정왕후와 같이 불교를 비호하는 때도 없지 않았으나 5백년 동안 불교억압 정책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같이 계속되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말미암아 신라와 고려시대 동안에 꽃피운 찬란한 불교문화와 국민의 호국정신은 사라지고, 계속되는 당파싸움으로 결국은 망국의 길을 걸어서 임진왜란을 겪게 된다.


선조대왕 25년(1592) 4월13일 새벽 짙은 안개 속에 일본왜군이 부산에 상륙하고 2~3개월만에 3도가 함락되었고 서해안 일부지역을 제외한 전 국토가 파죽지세로 유린당했다.


선조대왕의 失政과 벼슬아치들의 부패, 그리고 끊일 줄 모르는 사색당쟁으로 관군은 별반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가기에 급급했고 왜군의 방화 .살육으로 국민들만 죽음의 들판에 내몰리게 되었다. 전국의 각 사찰로 몰려드는 피난민과 사찰보호를 위해 승려들이 각 지역 각기 사찰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항전하다가 6월 이후 전국 팔도 승려들이 연대하여 봉기하게 되었다.


 


선조대왕은 왜군이 서울(한양)로 북상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절부절 하다가 도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간다. 왕이 떠나면서 졸지에 왜군 앞에 무방비로 버려진 백성들은 임금이 탄 수레에 돌을 던지고 궁궐에 불을 질렀다.


 


압록강 아래 의주까지 피신한 선조는 아예 명나라에 몸을 의탁할 생각이었다. 이때 유성룡은 대가(임금수레)가 동토(우리땅)를 떠나면 조선은 우리 것이 아니다고 반대하였다. 하지만 유성룡의 만류 때문에 선조가 압록강을 못 건넌 것이 아니라 명나라에서 압록강을 건너오면 한 건물 안에 유폐시키겠다하여 명나라로 가려던 계획을 포기한 것이다.


 


절대왕권국가였지만 민심은 이미 떠났고 부패한 벼슬아치들은 자신보호에만 급급했다. 그러니 “병사를 소집해도 모이지 않았고 설사 군사로 뽑혔다 해도 모면하려는 이들로 가득했다”라고 국보132호「유성룡징비록」은 기록하고 있다. 조선의 장수들은 전장에 나가지 않는다고 부하들의 목을 베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장수들이 부하와 백성을 속이고 자기 가족들끼리만 도망친 예도 허다하다. 그러니 병사가 모일리가 없고 또 전투를 그르친 장수들을 조정에선 문책도 안했다.


 


그러나 부패한 관군의 무력함에 반하여 승려들은 갖은 탄압 속에서도 백성보호와 사찰수호를 위해 목숨을 던져 전쟁터의 최선봉에 서서 봉기함으로 의승군의 성립을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인류사에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혹독한 천시와 탄압을 받는 상황아래서 임진왜란이라는 일대 국난에 방관하지 않고 생사를 초탈한 중생구호의 보살도정신은 곧 애국애민하는 호법정신 호국정신이었다. 이와 같은 護法으로 護國하는 부처님의 正法사상은 꺼져가는 조선을 구하는 희망의 불씨를 당겼다.


 


선조는 영규대사(1592)가 권율과 합세하여 500명의 승려를 이끌고 처음으로 청주성을 탈환하였다는 낭보를 받고 급히 서산대사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었다. 즉, 淸虛 休靜(西山大師, 1520~1604)에게 선조대왕은 ‘八道 선교 도총섭’으로 임명 승려들의 총궐기를 요청하였다.


 



이에 따라 서산대사는 제자 惟政 四溟大師(1544~1610)에게 명하여 전국팔도의 승려들에게 호소문을 보내 의승군을 모집, 총궐기를 결의한다.


 


첫 전승을 가져오게 한 영규대사는 조헌의 700의병과 함께 800의승이 왜적3만과 맞서 전원이 옥쇄했다. 후일 유생들에 의해 800의승은 빠지고 조헌의 700의병만 기리는 사당을 세워, 오늘에 이른다. 이 같은 통한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조차도 의승군을 연구하는 이가 없는 실정이니 말해 무엇 하리오.


조정의 아무런 지원 없이 이름뿐인 “팔도 선교 도총섭”으로 죽음의 전쟁터 선두에서 나약한 관군을 대신하여 국난극복을 위한 최전선에서 전투의 주역으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적의 보급로 차단, 정보수집, 평양성탈환작전, 행주대첩 및 선조대왕어가 환도 호위까지 모두 의승군이 도맡았다.


 


이같이 최선선 전투에서 군수조달, 산성축조 후방 경계 임무까지 거의 모든 게 의승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유생과 벼슬아치들은 그 공을 가로채기에만 급급했다.


 



가등청정과의 평화회담 전개도, 벼슬아치나 유생들은 모두 하나같이 기피하여 할 수 없이 사명대사가 그 일을 도맡아 하게 되었고, 宣祖37년(1604년) 강화사절로 일본까지 건너가 국교를 재개하고, 일본에 끌려간 우리동포 포로 3500명을 데리고 돌아오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仁祖5년의 丁酉再亂, 仁祖14년의 丙子胡亂 등 조선조 5백년의 국방은 승군에 의해 지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휴정의 제자 1000여명 중 70여명은 뛰어났다. 그 중 대표적인 제자가 정관일선, 유정사명, 편양언기, 소요태능 등이다. 그 중 靜觀日禪은 명종2년(1547년) 15세에 출가해서 백하선운스님에게 법화사상을 배우고 후일 서산대사의 법을 전해 받았다. 일선스님은 광해1년(1609년)에 입적당시, 세수 76세, 법랍61세, 문하에 임성충언, 태호등 많은 제자로 정관문파를 이루었고, 정관집1권이 있다. 그는 승려들이 임진왜란에 참전하는 것을 승려의 본분이 아니라고 보고 승단의 장래를 걱정하며, 사명대사에게 글을 보내어 “전쟁이 끝났으니 빨리 관복을 벗고 승가의 본분을 다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四溟도 이에 따랐지만 조정의 집요함에 다시 일본에 건너가는 등 추가소임을 다하고 선조에게 편지를 남기고 가야산으로 들어간다.


 


불교입장 <계율>에서 보면 승려의 전쟁참여는 不殺生 계율에 위배되는 일이다. 정관일선스님은 호국불교라는 이름으로 승려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보았다. 불교가 정치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교리로 왕왕 이용되었는데 그 연장선상에서 승군이 조직되었다고 본 것이다. 산성축조 및 보수, 병영 설치 주둔까지 ‘義僧입승제’ 등으로 국방에 필요한 모든 노역과 경계 임무 수행까지 승려에게 도맡겨졌기 때문이다.


 



선조 25년 4월13일(혹은14일) 임란과 함께 흩어진 민심을 모으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간 것은 승려였다. 심지어 선조 27년에는 지리산 구성산성 · 악견산성 · 합천 이숭산성 · 서울 남한산성 등(승도 각성스님) 축성의 모든 노역을 승려에게 전위시키고, 아무런 대우없이 국토수호의 중임이 스님들에게 맡겨졌다.


 


조선전기 연산군 때는 승려를 강제 환속시켜 법란을 일으켰다. 명종 때에는 문정왕후 후원으로 잠시 선·교 양종의 승과가 부활했으나 곧 폐과되었으며, 임란을 당해서 승려에게 승직을 주게 하고 이를 이용하였다. 젊은 승려는 노역장과 전선에 투입되고 노약자는 전승기원을 하게 하였다.


이처럼 서산·사명을 비롯한 많은 승려들이 국가존망의 위기에 의용군을 조직하여 국방에 투신한 예는 인도 · 중국 등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특유한 역사적 사실이며, 이것이 한국불교의 호국사상을 보여주는 산 증거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불교가 전래되면서부터 護國的 佛事와 외적퇴치, 그리고 국위선양과 民族安全을 보장해 왔다. 그 속에서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워 왔으며 民族魂으로 民族精神으로 자리잡아 왔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우리가 본래부터 구족해 있는 佛性을 깨쳐서 自利利他의 삶을 살게하는, 正法정신, 慈悲정신, 平等정신을 구현함에 있다. 正法·慈悲·平等 사상이 곧 護國 護民하는 護法의 原理인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실을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곧 열 가지 악행을 버리고 열가지 착한행을 실행하는 것이며, 이에 四聖諦 · 八正道 · 六波羅蜜行의 실천덕목을 강조하는 것이다.




맺음말. 호국 호법의 실현방법



이상에서 현실적 국가관과 국가존립의 필요성 및 국제적 친선평화주의 그리고 지도자의 정법정치 등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불전상에 나타난 호국사상은 護法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과 애민 호국하는 길이 곧 成就衆生[自我完成]와 淨佛國土[社會淨化]로 요약될 수 있다.


불교는 또한 현실적 국가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 국가실현, 즉 불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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