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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 피터 하비

  • No : 72081
  • 작성자 : 22
  • 작성일 : 2016-01-24 22:56:14
  • 조회수 : 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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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동성애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 피터 하비
[해외논단] 피터 하비 / 심재관 옮김
[9호] 2001년 12월 10일 (월) 피터 하비 심재관 옮김
    이 글은 Peter Harvey, An Introduction to Buddhist Ethics: Foundation, Values and Issues(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의 10장 “Homosexuality and other forms of ‘queerness’”을 번역한 것임.

‘호모섹슈얼리티(homosexuality)’라는 말은 ‘사람’을 뜻하는 라틴어 homo에서 왔다기보다는 ‘같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homos에서 왔으므로 남자들 사이의 또는 여자들 사이의 성을 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즈비언주의(主義)’는 흔히 여성간의 성관계를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1) 1) Herdt, G., ‘Homosexuality’, in Eliade, 1987: vol. Ⅵ, p.445.

동성관계는 형제애나 부모자식간의 사랑처럼 보편적으로 권장되는 관계에서 시작해 정신적인 스승에 대한 존경이나 친구간의 강한 우애에 이르기까지, 또는 동성의 사람들에게 느끼는 애욕적 느낌들이나 동성의 사람들과 나누는 성적 행위, 그리고 자신을 ‘동성’이나 ‘게이’ 또는 ‘레즈비언’으로 생각하는 자기정체성의 의식까지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영역을 포괄한다.

현대 서양문화 속에서는 동성애적 행위에 연관되거나 연관되어 왔던 사람이면 누구나 동성애적인 것으로 취급하고 있지만, 자신의 성적 취향에 따라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것은 다른 문화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길버트 허트(Gilbert Herdt)는 상이한 문화들 속에서 ‘동성애적’ 행위를 이루는 세 가지 문화적 구성형식을 다음과 같이 찾아낸다.2)2) Herdt, G., ibid, p.446.

    ① 연령에 의한 동성애의 구성 : 나이는 다르지만 동성의 사람들이 성적으로 관련되었을 때.
    ② 성 전도의 동성애 : 옷이나 취향, 그리고 자신과 반대되는 성의 역할을 맡는 경우.
    ③ 역할에 의한 동성애 : 사회나 종교집단 내에서의 역할 때문에 동성애적 행위에 연루되는 경우

첫번째 경우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서 소년을 애인으로 두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연하의 상대자가 나중에 결혼하거나 아이를 갖는 경우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리스에서는 동성연애자가 어른일 경우 ‘적극적’으로 삽입을 하는 자보다는 삽입을 당하는 수동적인 동성연애자가 강하게 비난을 받았다.3) 3) Herdt, G., ibid, p.447.

초기 기독교는 동성연애에 대해서 적대적이었으나, 그 다음 11세기까지 그것에 대한 입장은 다소 애매하다. 토마스 아퀴나스 당시부터 동성애를 거세게 비난해 왔으며, 화형에 처할 수 있을 정도였다. 허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게이(gay)라는 말이 의미하는 현대 사회의 범주와 연애감정의 정체성은 고대나 다른 문명권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동성애적 조직이나 역할과는 상이한 것이다. …… 몇 가지 점에서 동성애는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독특한 발달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명백하게 성(性)이 뒤바뀐 채로 여성화가 계속되다가 대중문화 속에서 동성애의 표현이 만개하여 남성화가 가속화되어 가는 변화를 암시한다.4) 4) Herdt, G., ibid, p.452.

‘게이 프라이드(gay pride)’라는 말은 확실히 만개한 동성애적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이 단어는 ‘게이와 레즈비언, 양성애자, 그리고 성전환자’가 한때 자신들을 한 집단으로 부르기 위해 사용했던 ‘퀴어(queer)’라는 단어를 긍정적으로 전유할 수 있게끔 했다.5) 5) R. Corless, 1995, ‘Coming Out in the Sangha : Queer Community in American Buddhism’, pre-publication version of a paper now in C. S. Prebish and K. Tanaka (eds.), The Faces of Buddhism in America, Berkeley(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p.1.

동성애나 동성연애자, 그리고 이제 스스로를 ‘퀴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 대해 불교의 입장이 무엇이었는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정상적인 성의 주인공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태도를 갖고 있었는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1. 성전환

초기 불교경전에 따르면, 사람의 성(性)은 삶을 윤회하는 동안 바뀔 수 있으며, 한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에도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율장에는 여성의 성징(性徵)을 가진 비구와 남성의 성징을 가진 비구니가 등장하는 경우가 있는데6), 부처님께서는 두 경우 모두 인정하고 있으며, 과거에 비구였던 비구니는 비구니의 계율을 따라야 하고, 비구니였던 비구는 비구의 계율을 따라야 한다고 간단히 말하고 있다.6) Vinaya Pit.aka(Th.);(tr. I. B. Horner), The Book of the Discipline, 6vols., London, PTS, 1938∼66. Vin. Ⅲ and Ⅳ are translated as Book of the Discipline, vols. Ⅰ, Ⅱ and Ⅲ, and Vin. Ⅰ and Ⅱ are translated as Book of the Discipline, vols. Ⅳ and Ⅴ. Note, also, that in Horner’s translations, the page number of the original Palitext, which appears in bold in the midst of the English, means ‘Page x ends here.’ In all other translations by the PTS, it means ‘Page x starts here.’ Vin Ⅲ.35; c5. Miln. 267,  Abhidharma-kos첺-bha?yam(of Vasubandhu; a Sarva?tiva?a work);(tr. from Louis de La Valle첿 Poussin’s French translation by Leo M. Pruden, Abhidharmakos첺bha?yam), Berkeley, Calif., Asian Humanities Press, 1988∼90. References are to chapter and section numbers in original text. Ⅳ.13c, 그리고 38을 각각 참조할 것.

주석서에 따르면 한 사람의 성은 수태기간에 결정이 되지만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성전환의 원인들은 본질적으로 업에 의한 것으로 설명한다. 《법구경》의 주석서에서는 한 비구승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낀 한 남자가 순간적으로 여자로 변화한 경우를 보여주고 있다.7) 7) At.t.hasa?inl?Buddhaghosa’s commentary on Dhs.)(Th.);(tr. Pe Maung Tin), The Expositor, 2 vols., London, PTS, 1920 and 1921. p.32. 생물학적으로 성적인 정체성은 10주간의 회임기간이 지나야 나타난다.

그 여자는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한 다음, 그 비구승의 용서를 구한 다음에야 다시 남자로 되돌아왔으며, 결국 아라한이 된다.8) 따라서 성전환을 영적 능력에 장애를 주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8) Dhammapada (Th.);(tr. Na?ada Thera), The Dhammapada, London, John Murray, 1954(the same translation, accompanied by the Pali text, is also published by the Buddhist Missionary Society, Kuala Lumpur, 1978 - available from Wisdom Publications, London);(tr. Acharya Buddharakkhita), The Dhammapada: The Buddha’s Path of Wisdom, Kandy, Sri Lanka, BPS, 1985. In verse. Ⅰ. pp.325∼332.  Abhidharmakos첺bha?yam Ⅳ. pp.55a∼b 참조.

2. 양성인(兩性人)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계를 받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며, 심지어 성을 변환할 수 있다고 해도, 양성(兩性)을 동시에 가진(ubhato-byan?anaka) 자웅동체(雌雄同體)의 인간형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율에 따르면, 양성을 가진 사람은 비구나 비구니 도반들을 유혹해서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계를 주어서는 안 된다.9) 9) Vin.Ⅰ. 89, Vin. Ⅱ.271.

상좌부 주석가인 붓다고사에 의하면, 임신도 시킬 수 있고 수태도 할 수 있는 여자 양성인과, 임신만 시킬 수 있는 남자 양성인들이 있었으며, 이 두 경우 모두 성적으로 남자와 여자를 미혹할 수 있다고 하였다.10) 이 경우, 그는 양성(hermaphroditism)과 양성애(bisexuality)를 같이 취급한 것으로 보인다. 10) At.t.hasa?inl? pp.322∼323.

7세기경 중국이나 중앙아시아에서 찬술된 《대승조상공덕경(大乘造像功德經)》은 양성의 존재로 태어나게 되는 업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존경해야 할 곳을 더럽힐 경우,
    ② 다른 남자의 몸을 탐하였을 경우,
    ③ 자기 자신의 몸으로 욕정의 행위를 했을 경우,
    ④ 여자로 가장하여 다른 남자들에게 자신을 노출시키거나 매춘한 경우.

붓다고사가 양성(hermaphroditism)과 양성애(bisexuality)를 동일하게 본 것처럼, 이 경전에서도 동성애적인 행위(homosexual activity)가 양성(hermaphroditism)을 초래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경전에서는 만일 그 사람이 깊이 참회하고 신심을 가지고 불상(佛像)을 조성하게 된다면 그러한 과보를 피할 수 있다고 설한다.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에서는 양성을 가진 사람을 ‘장애’가 있는 사람의 부류로 보며, 따라서 올바르게 수행한다고 해도 법을 증득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본다. 그 이유는 제시되지 않지만 법을 증득하는 데 장애가 있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열거되고 있다. 이들은 빤다까(pan.d.akas), 잡귀, 망견인(妄見人), 사기꾼, 5악(五惡)을 행한 자, 스스로 수계한 자, 다른 종파로 개종한 비구와 비구니, 비구니를 유혹한 자, 승가가 공식적으로 회합을 가질 정도로 위법을 행한 자, 그리고 7세 이하의 어린이 등이다.11) 어린이와 잡귀, 그리고 빤다까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부도덕한 행위자를 지칭하고 있다. 11) Milindapan?a(Th.);(tr. I. B. Horner), Milinda’s Questions, 2 vols., London, PTS, 1963 and 1964. p.310.

빤다까(pan.d.akas)

빤다까, 즉 ‘고환이 없는 자’는 양성(兩性)을 가진 자와 유사한 맥락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내시(eunuch)’라고 번역을 해왔는데, 레오나르 췰링(Leonard Zwilling)은 인도에 회교가 들어오기 이전에는 내시의 존재가 없었으므로, 이러한 번역은 잘못된 것이라 말한다.12) 12) Leonard Zwilling, ‘Homosexuality as Seen in Indian Buddhist Text’, in Buddhism, Sexuality and Gender (Cabezo쳌 ed,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2). p.204.

오히려 그는 단지 “성적으로 부실한 사람을 ‘고자’라고 부르는 것처럼” 은유적으로 그 단어와 유사 단어들을 사용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그들은 왕자가 사라졌을 때 여자처럼 울었노라고 전해진다.13) 13) Ja?aka with Commentary(Th.);(tr. by various hands under E. B. Cowell), The Ja?aka or Stories of the Buddha’s Former Births, 6 vols., London, PTS, 1895∼1907. Ⅳ. p.502.

이 단어가 정확히 의미하는 바를 논의하기에 앞서서 이 단어가 정상적인 남성의 특성이 결핍된 남자나 또는 경우에 따라서14) 여성의 특성이 결여된 여자를 가리키는 말임을 상기시키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인간과 동물의 다양한 성적 유형을 열거하면서 율장에서는 여성과 남성, 양성, 그리고 빤다까를 말하고 있다.15) 14) Vin.Ⅱ. 271. 15) Vin. Ⅲ. 28.

양성이 남녀의 성적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경우인 반면, 빤다까는 양쪽의 성적 특성이 모두 없는 경우를 말한다. 이것은 불교문헌에서 빈번히 표현되는 4구(四句) 논리와 일치한다. 즉 x가 어떤 것의 속성일 경우 그것은 x일 수 있으며, 이것은 x가 아닐 수 있으며, (부분적으로) x이면서 동시에 (부분적으로) x가 아닐 수 있고, x가 아니며 동시에 x가 아닌 것도 아닌 경우를 말한다. 주석서에서 빤다까를 지칭하는 다른 단어로는 나뿡사까(napum.saka : 남자가 아님)가 있는데, 이 단어는 일반적인 남자나 여자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 즉 중성(neuter)의 인간을 지칭할 때 사용한다. 비구니의 관능적 본성을 규제하는 다양한 승가의 금지조항을 설명하는 율장 가운데에는, 만일 그러한 성적 행위가 남자 인간과 이루어질 경우는 중대한 위반사항이며, 만일 비남성적 인간이나 빤다까(비남성적 인간으로서의)와 이루어질 경우는 훨씬 경미한 위반사항이 된다는 내용이 있다.16) 16) Vin. Ⅳ. 215, 233, 269.

췰링은, 불교 이전에 이미 《아타르바 베다》에서 빤다까를 일반적인 남녀와 구별하고 있었으며, 변태성욕자를 암시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붓다고사는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중성적 감정의 상태가 수반되는 특수한 의식이 수태기간에 일어나는 것으로 보았고, 그 다음에는 그것이 장님과 벙어리·백치·광인(狂人)·양성인·중성인(napum.saka) 등의 인간이 태어날 수 있는 의식의 배후력으로17) 또는 간단히 인간에게서 ‘빤다까’가 태어날 수 있는 배후력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았다.18) 17) At.t.hasa?inl? pp.264∼265. 18) Visuddhimagga(of Buddhaghosa)(Th.);(tr. Bhikkhu n??.amoli), The Path of Purification, 3rd edn, Kandy, Sri Lanka, BPS, 1975, and 2 vols., Berkeley, Calif., Shambhala, 1976. p.457.

붓다고사는 다시 다섯 가지의 빤다까 유형을 구분하고 있다.

    ① 사정해야 하는 빤다까(asitta-pan.d.aka): 다른 남자의 성기를 핥아 사정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욕망을 사그라뜨리게 하는 자.

    ② 시샘해야 하는 빤다까(usu?a-pan.d.aka): 타인들이 성교하는 것을 지켜봄으로써 질투심을 일으켜 자신의 욕망을 사그라뜨리는 자.

    ③ 도구를 사용해야 하는 빤다까(opakkamika-pan.d.aka): 특별한 도구를 이용해서 정자를 빼내야 하는 자.

    ④ 보름간의 빤다까(pakkha-pan.d.aka): 전생의 업으로 인해 보름 동안만 빤다까로 변하고 나머지 보름 동안은 자신의 욕망을 극복할 수 있는 자.

    ⑤ 남성이 아닌 빤다까(napum.saka-pan.d.aka): 태아일 때부터 남성이 존재하지 않은 자.

여기서 ①∼③의 유형은 비일상적인 방법을 통해서 성적인 자극을 얻을 수 있고, ④의 유형은 달포 동안 성불구가 되어야 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⑤의 유형은 태어나면서 생식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사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경우이다. 세친(世親)은 이러한 유형을 ‘불완전한 몸(a?mabha?a)’을 가진 것으로 보았다.19) 19) Abhidharma-kos첺-bha?yam Ⅳ.97b∼c.

이 경우는 아마도 고환이 없이 태어난 ‘남자’를 말하거나, 또는 고환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하바스투(大事)》에서, 빤다까는 왕실에서 왕을 시봉하는 ‘곱추, 난장이’ 등과 같은 사람들에 속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20) 20) Maha?astu(of the Lokottarava?a school);(tr. J. J. Jones), The Maha?astu, Translated from the Buddhist Sanskrit, 3 vols., London, PTS, 1949∼56. Ⅱ. p.469: Ⅱ.p.47 참조.

이러한 존재들은 여자들의 별실이나 심지어는 왕비의 거처까지 출입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로 분류되고 있다.21) 이러한 점은 그들의 몸이 비정상적이며, 따라서 왕의 첩실들이나 여자들에게 성적인 위협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췰링은 빤다까라는 단어가 ‘다양한 형태의 성불구자’를 의미하며 이러한 성불구자들은 ‘나뿡사까, 즉 남성을 결핍하고 있는 자와 동일한 성격을 갖는 것으로 취급되었다고 보고 있다. 21) Maha?astu, Ⅱ. p.469.

즉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성인 남자에게 기대할 수 있는 정상적인 성의 역할을 맡을 수 없는 존재이다.여자 빤다까 역시 몇몇 경우가 설명되고 있다. 율장의 두 곳에서 ‘여성 반다까’는 남자를 위한 성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22) 22) Vin. Ⅲ. 129, 144.

췰링은 그 단어가 ‘남성 빤다까와 유사하기 때문에, 의학서에 등장하는 나리샨다(na?l?.an.d.a) 즉, 여성 동성애자(레즈비언)에 해당하는 여자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성 빤다까를 여성 동성애자와 동일시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그 여자가 여성들에게 성적인 매력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동시에 그 여자가 비정상적인 성기를 가졌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비구니로서 수계를 주어서는 안 되는 자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말하자면 이들은 다음과 같다.

성적 특성이 없는 자, 성행위에 결함이 있는 자, 피가 없는 자, 패혈이 있는 자, 항상 생리대를 차고 있는 자, (생식기가) 젖어 있고 변형된 자, 여성 빤다까, 남자 같은 여성(vepurisika?, (항문과 성기를) 같이 사용하는 자, 그리고 양성인 등이다.23) 23) Vin. Ⅱ. 271.

빤다까의 성적인 행위

부처님은 어떠한 빤다까라도 그에게 수계하는 일을 금지했으며, 이미 수계받은 자에게는 환속을 요구했다고 전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사연 때문이다.24) 어느 한 빤다까 승려가 젊은 비구들과 어리숙한 행자승들, 그리고 코끼리 조련사 무리와 신랑들에게 접근하여 각각에게 자신을 ‘더럽혀달라고’ 요구했다. 첫번째 두 부류의 사람들은 그를 물리쳤으나 마지막 집단은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들은 이 일을 통해 불교 승려들이 빤다까이고, 빤다까가 아닌 자들도 빤다까를 ‘더럽혔다’고 소문을 냈다. 24) Vin. Ⅰ. 85∼86.

이것은 빤다까가 일종의 난잡한 수동적 동성연애자로 보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남자)빤다까들이 남성에게 성적 행위의 상대자로 가능했다는 것은, 훌륭한 승려일지라도 그가 만일 매춘굴이나 미망인, 어린 여자아이, 빤다까, 심지어는 비구니에게 탁발을 했다면 의심받을 수 있다는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다.25) 25) An?uttara Nika?a(Th.);(tr. F. L. Woodward and E. M. Hare), The Book of Gradual Sayings, 5 vols., London, PTS, 1932∼1936. Ⅲ. 128. Vin. Ⅰ. 70.

따라서 붓다고사는 빤다까를 매춘부나 천한 아이와 같이 욕정에 사로잡히고 누구와도 사교를 원하는 자들로 보았다.26) 26) Commentary on Vin.; untranslated directly into English, but translated from the Chinese translation: Bapat and Hirakawa, 1970. Ⅴ. 991∼992.

그들은 ‘남자가 아니며(napum.saka? 해갈되지 않는 욕정의 오욕(汚辱)으로 가득한’ 자들이다. 따라서 비구는 비록 여성과 사적인 자리를 같이하는 것보다는 죄가 경미하지만 빤다까와 자리를 같이하면 안 된다.27) 27) Vin. Ⅳ. 96.

췰링은 율장에서 빤다까라는 말이 거의 모든 경우에 성적인 상황에서, 특히 동성연애적 행위를 설명하는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빤다까를 ‘사회적으로 수동적인 변태성욕자이거나 동성연애자로 낙인찍힌’ 사람들로 자신의 견해를 요약하고 있다.

남성 독신수행자 집단에 그러한 사람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으므로 그들에게 수계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비구가 자신의 성기를 다른 사람이나 빤다까를 포함해28) 무엇이든 구멍에 넣는 것은 승단에서 축출될 수 있는 죄목에 해당한다. 흥미롭게도 ‘다른 사람과 빤다까’를 구분한 것은 간음당한 사람이 반드시 빤다까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비구가 강간당한 경우를 암시할 수도 있는 것이다. 28) Vin. Ⅲ. 28.

세기경 《대승조상공덕경(大乘造像功德經)》에서조차 과거에 다른 남자들을 낙담케 하거나 여자처럼 옷입기를 즐겼던 과거의 업력(業力)으로 인해, 빤다까로 태어날 사람과 ‘여자의 욕망을 가지고 다른 남자들에 의해 여자로서 취급되는 것을 즐기는 자’를 구분하고 있으므로, 수동적인 동성연애자 모두가 빤다까로 구분되지 않는다. 게다가 율장에서는 다른 남자나 빤다까에게 성기를 삽입하는 일로 그 자신이 빤다까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힌두교의 성전(性典)인 《까마수뜨라》에서도 (타인에 의해) 삽입되어지는 경우는 ‘비정상적인 성행위’이며 그를 ‘기이하게 별난’ 사람으로 보는 결정적인 일이 되었다.29) 29) Sweet, M. J. and Zwilling, L., 1993, ‘The First Medicalization : The Taxonomy and Etiology of Queerness in Classical Indian Medicine’, Journal of the History of Sexuality, 3(4), p.595.

췰링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수계를 금지한 것이 단순히 당대의 관례에 따라 정한 적당한 규제에 지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30) 30) Zwilling, L., ibid, p.209.

과거에 비도덕적인 성행위라고 정의했던 것은 당대의 타부를 반영하고 있으며 전근대적 인도의 사회상을 고려한 것이므로, 그러한 계율의 조항들은 각각의 상황에 따라 당시의 사회적 관습을 반영하여 재구성한 것은 아니었을까? 여기서 살펴본 문헌적 근거들은 적어도 동성연애를 주로 신체기관의 특성이나 유전적인 경향성으로서 보았던 당대의 견해와 일치하고 있는 편이며, 이성애(異性愛)가 갖는 도덕적 의미(또는 그 무가치함)도 역시 당대의 견해와 동조를 이룬다.31) 31) Zwilling. L., ibid, p.210.

이 점에 대해서, 일본과 미국의 일부 경향을 제외한다면, 불교는 ‘상대적이고 상황적 윤리’를 따르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검토한 인도의 문헌적 전거들은 빤다까라는 말이 비록 수동적인 동성애의 특정한 형태를 지칭하는 말일지라도, 그 존재는 ‘생래적(生來的)인’ 기원을 갖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구에게 있어서 한 남자나 빤다까와 성교한다는 것은 여성과 성교하는 것보다 더 나쁘게 묘사되지 않는다. 즉, 남성 출가수행자에게 ‘동성연애적’ 성교는 ‘이성애적’ 성교보다 더 나쁜 것이 아닌 셈이다. 하지만 (수동적이고-동성연애적인) 빤다까의 존재는 다양한 정신적 장애자로 취급되는데, 이제 이것을 살펴보도록 하자.

빤다까의 심리학적 본성과 장애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 310에는 빤다까를 자웅동체(雌雄同體)의 양성인(兩性人)과 같이, 그들이 수행을 올바로 한다고 해도 법을 증득하는 데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하나로 취급하고 있다. 상좌부 주석가인 붓다고사는 빤다까와 양성인, 망견(妄見)에 집착하는 자들은 《비방가(Vibhanga)》 341에 기술된 것처럼 “오염(染汚)에 의해 장애가 있는 자”라고 말한다.

즉 그들은 어떠한 명상의 과제도 진척시킬 수 없는 자들이다.32) 그러한 장애가 있는 사람 가운데에는 다음 생애에서 곧 그 업보를 받게 되는 중대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도 포함된다. 이러한 모든 자들은 확고한 정념(正念)의 상태에 이를 수 없는 자들이다. 마찬가지로 세친은 자신의 《구사론(俱舍論)》에서 빤다까를 ‘염오의 장애’에 의해 살아가는 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만성적이고 지속적인 염오를 겪기 때문이다. 32) Visuddhimagga, p.177.

가끔씩 밀려오는 염오의 때는 비록 그것의 영향이 강력하다 해도 극복할 수 있지만, 지속적인 염오의 때는 비록 그것의 여파가 잔잔하여도 극복할 수가 없다. 이러한 상태가 나타나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찾을 수 없다. 작은 것으로부터 그 염오의 때는 점점 커지고 그 중간의 크기에서 그것들은 강한 것이 된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장애를 형성하게 된다.33) 33) Abhidharma-kos첺-bha?yam, Ⅳ. 96.

이 말은 빤다까가 팔정도(八正道)에 대한 식견을 갖거나 그것을 위한 사전 준비를 하는 데 장애가 생긴다는 말이다. 게다가 세친은 빤다까와 양성인들이 일상적인 선행(관용의 행위와 같은)을 할 수는 있어도 그들이 규율(sam.vara)이나 비규율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말한다.34) 34) Abhidharma-kos첺-bha?yam, Ⅳ. 43a∼d; Ⅱ. 1b 참조.

첫번째 이유는 그들이 극단적인 단계에까지 더럽혀진 두 성(性)을 가졌기 때문이며, 이러한 염오의 상태와 싸워보고자 하는 자각능력이 결핍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긍심의 원천과 자아에 대한 배려가 그들에게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번째 이유는 죄를 저지르는 의도가 그들에게는 강하지가 않기 때문인데, 비규율은 규율에 반대되기 때문이다. 규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만이 비규율도 인지할 수 있는 것인데…… 그들의 몸은 마치 소금이 스며든 토양과 같아서 호밀이나 잡초도 성장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티베트의 전승에 따르면, 카규파의 개조인 감뽀빠(1079∼1153)는 빤다까와 ‘성불구자’(귄터의 번역을 따르면35))도, 만일 그 계율이 비구와 비구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요익중생(饒益衆生)을 내용으로 하는 보살의 계율이라면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한다.36) 35) 티베트어로 za.ma, 범어로 s.an.d.ha이다.
36) Guenther, H. V., 1959, sGam-po-pa’s Jewel Ornament of Liberation, London, Rider; reprinted Berkeley, Calif., Shambhala, 1971(translation). p.107.

세친 또한 빤다까와 양성인를 관능주의자로 구분하고 있으며, 그들의 근기(a?쳑aya)는 유동적이어서 나쁜 윤회를 거듭하는 자들과 같이 확고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신들이 선근(善根)을 끊어버리지 못한다고 말한다.37) 마찬가지로, 《나선비구경》에서는 빤다까들이 자신들의 ‘비정체성’ 때문에 비밀을 지킬 수 없노라고 말한다.38) 다시 세친은 만일 이들이 자신들의 부모를 살해한다면,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사악한 죄가 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부모에 대한 그들의 애정과 존경이 경미하기 때문이다. 37) Abhidharma-kos첺-bha?yam, Ⅳ. 80a∼b. 38) Milindapan?a(Th.);(tr. I. B. Horner), Milinda’s Questions, 2 vols., London, PTS, 1963 and 1964. pp.92∼93.

빤다까에게 불완전한 육신(a?mabha?a)을 전해주고 자신들의 아들에게 어중간한 애정을 기울였던 빤다까의 부모들은 그들 자신이 어중간한 은인으로 남기 때문이다. 한편 빤다까는 자신들의 부모에 대해 깊은 존경을 체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도덕적으로 위배되는 죄를 범하게 된다.39) 39) Abhidharma-kos첺-bha?yam, Ⅳ. 97b∼c.

위의 구절은 결국 빤다까가 일상적인 선행을 행할 수는 있지만, 지속되는 정신적 염오의 상태로 말미암아, 선정(禪定)에 들거나 법을 증득하거나 또는 팔정도를 이해하는 통찰력을 얻는 데 장애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관능적이며 수치심이 없고 두 성 모두 더러운 염오의 상태에 있지만, 그의 본성은 불확실하고 유동적이며 자신의 더러움을 성찰하지 못한다. 그는 정신적인 수양을 쌓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으므로 그가 의도적으로 비규범적인 행위를 한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 그는 부모들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다.

빤다까와 윤회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것’으로 탄생하는 것은 간통의 경우에 해당하는 일을 저지름으로써 빚어진 과보이다.40) 《출가장애경(出家障碍經, Pravrajya?tara?a Su?ra)》에서는 만일 한 재가자가 어떤 사람이 수계받는 것을 방해하거나 법을 능멸할 경우, 또는 비구와 브라만들에게 화를 내거나, 이러한 일에 습관이 배어 있을 경우, 이러한 자는 내생에 빤다까와 같은 여러 가지 불쾌한 형상으로 환생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41) 《대승조상공덕경(大乘造像功德經)》은 빤다까로 태어나게 되는 네 가지의 업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40) Therl?ga?ha?Th.);(tr. K. R. Norman), Elders, Verses, vol. Ⅱ, London, PTS, 1971. This translation is also found, with C. A. F. Rhys Davids’ 1937 translation of the texts and extracts from the commentary, Psalms of the Sisters, in C. A. F. Rhys Davids and K. R. Norman, Poems of Early Buddhist Nuns, Oxford, PTS, 1989. In verse. pp.436∼447.   Ja?aka with Commentary(Th.);(tr. by various hands under E. B. Cowell), The Ja?aka or Stories of the Buddha’s Former Births, 6 vols., London, PTS, 1895∼1907. Ⅳ. pp.237∼239. 41) S쳃ks.a?samuccaya(My.);(tr. C. Bendall and W. H. D. Rouse, S쳃ks.a?samuccaya: A Compendium of Buddhist Doctrine, Compiled by ntideva Chiefly from the Early Maha?a?a Su?ras, Delhi, Motilal Banarsidass, 1971(1st edn, 1922). pp.73∼74에서 인용.

    ① 다른 남자를 거세시키는 일.
    ② 계를 지키는 수행자를 조롱하거나 비방하는 일.
    ③ 욕정으로 인해 스스로 계를 위반하는 일.
    ④ 스스로 계를 위반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그렇게 하도록 충동하는 일.

그러나 신심을 일으켜 불상(佛像)을 조성하면 이러한 행위의 과보를 피할 수 있으며, 언제나 ‘자신의 모든 능력을 온전히 갖춘’ 사람이 될 것이다.42) 세친도 또한 거세될 운명에서 자신의 고환을 지킨 빤다까는 다시금 남자의 성징(性徵)을 회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43) 42) Beyer, S., 1974, The Buddhist Experience - Sources and Interpretations, Encino, Calif., Dickenson.l, p.53. 43) Abhidharma-kos첺-bha?yam, Ⅳ. 55a∼b.

확정적인 문맥에서 말한 바는 아니었지만, 미국의 선사(禪師)인 맥필라미(MacPhillamy)는 동성애에 대한 ‘전통적인 불교’의 해석에 따르면, 동성애자의 이전 생애는 지금과 반대의 성을 가진 사람이었고, 특정한 경향과 기억 역시 전생에서 전해져 현재의 삶을 물들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44) 더구나 아이언 스티븐슨(Ian Stevenson)은 자신들의 과거 인격에 대해 상세한 것을 알고 있었던 소년들을 연구함으로써, 성정체성에 대해 몇몇 흥미로운 사례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44) MacPhillamy, Ro?hi D., 1982, ‘Can Gay People Train in Buddhism?’, Journal of Shasta Abbey, 9(1978), reproduced in Sexuality and Religious Training, a 1982 booklet of Throssel Hole Priory, near Hexham, England, p.29.

그는 전생의 인격이 지금과 반대되는 성을 가진 경우를 많이 조사했으며, 그러한 경우 다섯은 그가 ‘반대되는 성의 특징들을 보이는 어린이’라고 썼던 경우였다. 그리고 여기에는 옷입기나 놀이의 양상에서 특정한 성에 대한 편향성을 보여주었던 경우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행위들은 아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라지지만 예외적인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2차대전 당시 일본 군인이었다고 주장하는 미얀마의 한 여인은 ‘자기의 행동이나 20대 중반의 삶에 대한 포부 속에 비타협적인 남성성을 유지하고 있었다.45) 45) Stevenson, I., 1977, ‘The Explanatory Value of the Idea of Reincarnation’, Journal of Nervous and Mental Diseases, 164(5), p.318

3. 동성애적 행위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만일 어떤 승려가 자신의 성기를 가지고 어떠한 사물이건 사람이건 구멍에 삽입하게 된다면 사원의 규율에 따라 그를 교단에서 축출하게 된다. 그 외에 여성이나 빤다까 또는 남자와 함께 관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은 비교적 덜 엄격하게 취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에서 추방될 소지가 있는 그러한 행위들을 막기 위해 많은 규율들이 만들어졌다.

승려에게 있어 자위행위는 중대한 과실이며 이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액을 쏟는 일을 포함한다.46) 즉 비구가 행자에게 자신의 몸에 사정하도록 하거나, 잠자고 있는 행자에게 사정하는 행위가 여기에 해당하는데,47) 이것을 동성연애적 행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성적 불만으로 고통받는’ 비구니가 ‘스킨쉽을 즐기는’ 자와 더불어 각자의 성기를 자신들의 손바닥이나 그 외의 도구로 문지르는 것은 훨씬 경미한 과오에 해당한다.48) 또한 한 침대에 두 비구니가 함께 누워 있는 것도 참회해야 할 과오에 해당하는데49) 잠재적인 동성애적 행위를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50) 46) Vin. Ⅲ. 113. 47) Vin. Ⅲ. 117.
48) Vin. Ⅳ. 260∼261. 49) Vin. Ⅳ. 288∼289. 50) Wijayaratna, M., 1990, Buddhist Monastic Life: According to the Texts of the Therava?a Tra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95.

비구들이 같은 그릇으로 먹거나 한 침상을 쓰는 것도 경미한 과실에 해당하는데,51) 이것은 여성들에 의해 타락한 비구들이 행하는 관능적인 행위로 규정되고 있다.52) 마지막으로 《앙굿타라 니카야(An?uttara Nika?a)》 Ⅲ.270에서 부처님은 한 비구가 다른 비구를 대할 때, 지나치게 헌신적인 ‘친애’로써 대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비구는 다른 승가의 구성원을 존경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비구에게서 법을 구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췰링은 이것을 다른 비구들에 대해서 ‘동성연애적 감정’이 생기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53) 51) Vin. Ⅱ. p.124. 52) Vin. Ⅱ. p.10.
53) Zwilling, L., ibid, p.208.

이러한 모든 사례들 가운데, 동성연애적 행위들이나 그러한 감정과 관계 있는 규율들은 단지 비구와 비구니가 표현할 수 있는 성적 표현의 발로를 가능한 한 감소시키는 데 그 목적의 일단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동성애는 특별한 어떤 비난 그 자체를 위해서 거론되지 않는다. 따라서 췰링이 “인도불교 문헌에서 동성애적 행위가 거론될 때는, 그것이 거의 이성애적 행위와 비교할 만큼의 수준으로 인식되었다.”고 말한 것은, 당시 사원의 상황을 정확히 읽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54) 54) Zwilling, L., ibid, p.209.

그러나 존 존스(John G. Jones)가 말한 바처럼, 율장에서 비구 비구니의 동성애적 관계를 이성애적 관계보다 더 관대하게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55) 그가 이렇게 본 것은 율장이 동성애적 행위보다 이성애적 행위에 대해 더 많이 언급했고, 이것은 동성애적 관계가 아이들을 출산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성애적 행위에 훨씬 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던 것은 단순히 그것이 훨씬 일반적인 경우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만일 아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어떤 비구가 한 남자와 성교를 갖는 것이 묵인할 만한 것이 된다면 빤다까가 수계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적절한 규정이 아닐 것이다. 55) Jones, J. G., 1979, Tales and Teachings of the Buddha: The Ja?aka Stories in Relation to the Pali Canon, London, George Allen & Unwin. p.79.

재가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동성애적 감정이나 행위들에 대해서는 이성애와 동성애에 대한 반대의 입장이 공정하지 못하다. 호세 카비존(Jose Cabezo쳌)에 따르면, 불교에서 동성애를 비난했던 이유는 단지 동성애적 행위가 독신의 삶을 파기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며, 동성애가 이성애보다 특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56) 이와 같이 동성애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일반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디가 니카야(Dl?ha Nika?a)》 주석서에서 상좌부 전통을 따라 붓다고사는 “남자들끼리, 그리고 여자들끼리 서로를 갈구하고 집착하는 것”을 “그릇된 법(miccha?dhammo)”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회의 도덕적 몰락의 징후로서 과거 특정한 시간에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임을 뜻한다. 대승불교의 맥락에서, 싼띠데와(寂天)의 《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은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56) Cabezo쳌, J. I., ed., 1993, ‘Homosexuality and Buddhism’, in A. Swidler(ed.), Homosexuality and World Religions, Valley Forge, Penn., Trinity Press International, p.82.

    마찬가지로, 두 남자에 빚어지는 잘못된 성교에 대해서는 (후생에 나타날) 무한히 다양한 처벌들이 열거된다. 소년들과 함께 추행을 벌인 자는, 자신을 부르며 황산(黃酸)의 강에 휩쓸려 가는 소년들을 보게 되며, 그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낳은 고통 때문에 그들을 따라 그 강에 뛰어들게 될 것이다.57) 57) S쳃ks.a?samuccaya(My.);(tr. C. Bendall and W. H. D. Rouse, S쳃ks.a?samuccaya: A Compendium of Buddhist Doctrine, Compiled by S첺?ntideva Chiefly from the Early Maha?a?a Su?ras, Delhi, Motilal Banarsidass, 1971(1st edn, 1922), p.80을 참고할 것. 그러나 이 번역은 췰링이 제시한 부분 번역을 가져온 것이다. Zwilling, ibid, p.209.

그러나 로저 콜리스(Roger Corless)는 《대승집보살학론》이 “하나의 경구집(警句集)이며 여기에는 마치 경전 위에 떨어진 콧물을 훔치는 자는 책으로 환생할 것이라는 예언과 같이, 여러 가지 기괴한 표현이 담겨져 있으며…… 그러한 표현들은 중요한 가름침의 골간이 아니”라고 본다.58) 비난을 할 경우라도 아이 남색가들이 처하게 되는 과보에 대해 일말의 연민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58) Corless, R., 1995, ‘Coming Out in the Sangha : Queer Community in American Buddhism’, pre-publication version of a paper now in C. S. Prebish and K. Tanaka (eds.), The Faces of Buddhism in Americ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1995: p.3.

어느 정도의 동성애적 성행위가 불사음(不邪淫)이라는 세번째의 계율을 깨뜨리게 되는 것일까? 상좌부 전통의 붓다고사는 이 계율이 위반되는 경우는 “부도덕한 수단을 통해 그 의지가 육체를 거쳐 실현되고, (그 의지가) 전해지지 말아야 할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졌을 때”를 말한다. 콘제(Conze)는 관련 부분59)을 번역하면서,60) “‘전해지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란 여기서 무엇보다 남자를 뜻한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즉 이 구절은 단순히 ‘남자들이’ 다양한 부류의 여성과 성교를 갖는 것은 계율을 깨뜨리게 된다는 뜻이다. 59) Commentary on Majjhima Nika?aⅠ.199. 60) Conze, E., Horner, I. B., Snellgrove, D. and Waley, A., 1954, Buddhist Texts Through the Ages, Oxford, Cassirer; 1964, London, Luzac & Co., New York, Harper & Row(anthology of translations). 1959: p.71.

《우파사카자나랑카라(Upa?akajana?an?a?a)》는 12세기경 스리랑카에서 쓰여진 대중적 불교개요서로서, 여기서도 역시, 남자들이 성관계를 갖지 말아야 할 여자들의 부류를 설명함으로써 세번째 계율을 해설하고 있다. 췰링에 따르면, 인도 주석가 가운데 오직 붓다고사와 《집량론》에 해설을 붙인 무명의 주석가만이 남자가 동일한 남성의 섹스 파트너가 되는 것을 금지했던 사람들이다.61) 이러한 주장은, 경전에서 동성연애적 행위들을 용인했다기보다, 세번째 계율을 파기하는 가장 일상적인 경로들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대부분의 인도 주석가들은 그러한 행위를 비난하는 일에 무언가를 골몰히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여성들 사이의 성적인 행위에 대하여 인도불교 문헌들은 율장에서 그러한 점을 언급했던 것과는 달리 사실 완전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61) Zwilling, L., ibid, p.207.

그러나 티베트의 감뽀빠(1079∼1153)는 자신의 《해탈보장론(解脫寶莊論, Jewel Ornament of Liberation)》 속에서 세번째 계율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동성애를 거론하고 있다. 부분적으로 《구사론》――여기서는 동성연애에 대한 언급이 없다――에서 차용한 방법을 통해 남녀의 다양한 성적 불륜 형태를 논의한 다음, 그는 동성애가 “남성과 성교를 갖거나 빤다까의 입과 항문 속에 성기를 집어넣은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62) 62) Guenther, H. V., 1959, sGam-po-pa’s Jewel Ornament of Liberation, London, Rider; reprinted Berkeley, Calif., Shambhala, 1971(translation). p.76.

《본생경(本生經)》 설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존 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생경의 설화를 통해 이성간의 성관계가 얼마나 위험한가를 경고하는 말들이 엄청난 양에 달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동성애적 성관계가 갖는 위험에 대해 일언반구 없다는 점은 아주 특이한 점이라 할 수 있다. 유일하게 표현된 단서라고는 사악한 벗이 미칠 수 있는 부정한 영향에 관한 것이다.63) 63) Jones, J. G., ibid, p.115 .

그 설화들은 확실히 이성간의 성관계를 통해 발생하는 고통에 대해 수많은 예들을 보여주는 반면, 남성간의 절친한 교분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예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존스는 ‘동성애적 정서가 발동하는 좋은 단서’를 보고 있다.64) 비록 인도의 전통이 서양화된 방법으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코 “남자들 사이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랑의 감정들을 보았던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공동의 선을 위해 의기투합할 때처럼 그런 좋은 감정을 보았던 것이다.”65) 64) Jones, J. G., ibid, p.113. 65) Jones, J. G., ibid, p.113.

그러나 동성애적 행위에 관한 예들을 찾는 과정에서 존스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다음 세 가지 설화였다.66) 설화 211번에서, 어떤 소년은 왕의 시종이 된 다음 아주 총애받는 측근이 되었다. 존스는 왕들이 거의 성행위의 제약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 관계가 성적인 것이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설화 253번은 인간 형상을 한 뱀과 친밀한 애정(sineha)을 간직한 고행자를 그리고 있다.67) 66) Jones, J. G., ibid, pp.113∼115.

비록 성적인 욕망(paril.a?a)에 대한 표현은 없지만, 만일 그러한 표현이 있었다면, 그 설화는 그 고행자가 독신수행자의 삶을 파기한 것으로 그렸을 것이다. 설화 346번은 단지 한 브라만과 그의 늙은 스승 사이의 우정어린 사랑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존스가 인용한 것68)과 카비존이 ‘동성연애적 함의’를 가진 사례로서69) 선택한 것은 498번 설화이다. 이 설화는 “함께 생각에 잠기고, 함께 서로에게 안겨 머리와 머리를 맞대고, 코에 코를 맞대고, 뿔과 뿔을 맞대며 함께 돌아다니는 두 마리의 사슴에 관한 것이다.”70) 67) Ja?aka with Commentary(Th.);(tr. by various hands under E. B. Cowell), The Ja?aka or Stories of the Buddha’s Former Births, 6 vols., London, PTS, 1895∼1907. Ⅱ. p.283. 68) Jones, J. G., ibid, p.107. 69) Cabezo쳌, J. I., ibid, p.89. 70) Ja?aka with Commentary(Th.);(tr. by various hands under E. B. Cowell), The Ja?aka or Stories of the Buddha’s Former Births, 6 vols., London, PTS, 1895∼1907. Ⅳ. 392.

그러나 카비존은 이 두 마리가 형제로 묘사되었으며, 따라서 여기서는 단지 형제애를 예화한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본생경》은 깊은 우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인 반면, 동성애적 행위에 대해 도덕적으로 수긍하고 있다는 구체적인 단서는 없는 것 같다.

4. 불교문화 속의 동성애

카비존은 역사를 통해 불교가 동성애에 대해 ‘양가적(ambivalent)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증거는 불교 전체가 대부분 동성애에 대해 중립적이었음을 말한다.”고 주장한다.71) 그는 불교가 이러한 ‘본질적 중립성’을 통해 다른 문화들 속의 성풍속을 수용할 수 있었고, 따라서 불교의 입장은 동성애를 비난하기도 하고(동성애에 대한 박해가 아닌) 묵인도 하면서, 일본과 같이72) 긍정적으로 찬양하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포괄적인 불교의 ‘본질’이 존재한다는 다소 의문이 가는 전제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근거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71) Cabezo쳌, J. I., ibid, p.82 72) Cabezo쳌, J. I., ibid, p.82.

남방 불교국

현대의 선수행(Insight Meditation) 지도자인 인도 태생의 고엔카(N. Goenka)는 “동성애가 위험한 것은 그것이 남성 에너지와 여성 에너지가 서로 섞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지속적인 명상으로 “동성애는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다.73) 금세기초 태국의 승가를 이끌었던 프라 차오(Phra Chao)는 빤다까에게 수계하지 않는 것을 동성애에 적용되는 것으로 보았다.74) 73) Corless, R., 1995, ‘Coming Out in the Sangha : Queer Community in American Buddhism’, pre-publication version of a paper now in C. S. Prebish and K. Tanaka (eds.), The Faces of Buddhism in Americ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Corless, 1945: 4쪽, 1994년과 1995년에 있었던 개인적 대화를 통해서.
74) The Entrance to the Vinaya(Bangkok: Mahamukutarajavidyalaya, 1969), vol. 1, P. 57, 췰링, 1992: 213에서 재인용.

그러나 태국의 사회비평가 슐락 시바락샤(Sulak Sivaraksa)는 “부처님이 결코 동성애를 언급한 적은 없고 단지 우리가 성을 해악되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을 뿐이라”고 주장해왔다.75) 방콕에는 실지로 게이 클럽이 존재하며 동성연애는 태국의 급증하는 에이즈 위험에 일조를 하고 있을 것이다. 75) Corless, R., ibid, p.6 : Eric Kolvig의 1994에 이루어진 대담을 통해.

물론 매춘도 여기에 한몫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미얀마의 경우, 멜포드 스피로(Melford Spiro)가 말한 대로 비구들 대부분은 독신수행의 청정함을 지키는 일에 대단히 단호한 면모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에서 벗어난 동성애나 이성애 모두 멀리하고 있다. 재가신도들은 승려들이 율을 지킬 것으로 확신하며, 방문객에게 사원을 개방토록 하여 규율에 어긋난 성행위를 숨길 수 없도록 하고 있다. 19세기 기독교 방문객들 역시 이곳 비구들이 뛰어난 계행을 하고 있노라고 보고한 적이 있다.76) 76) Spiro, M. E., 1971, Buddhism and Society: A Great Tradition and its Burmese Vicissitudes, London, George Allen & Unwin. pp.366∼368.

스피로는 스리랑카에 있을 때, 비구와 비구 사이에, 또는 비구와 행자, 승려와 재가자 사이의 동성애가 적지 않게 행해진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77) 그러나 마틴 수드얼드(Martin Southwold)는 스리랑카의 재가신도회가 대부분 비구들의 인격적인 특성 속에는 잠재적인 동성애적 기질이 있다는 견해에 흥분하며 반발했다고 전한다. 그들의 경험을 통해볼 때, 일반적인 비구는 여성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들에게 더 마음이 끌렸던 것으로 보인다.78) 77) Spiro, M. E., ibid, p.368. 78) Southwold, M., 1983, Buddhism in Life: The Anthropological Study of Religion and the Sinhalese Practice of Buddhism,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p.38.

태국이나 미얀마와는 달리, 스리랑카에서 수계 출가한다는 것은 통상적으로 평생 동안 지켜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성적인 욕망을 극복하지 못한다고 해서 환속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점은 중요한 승가의 규율들이 많이 손상을 입는다 해도 일부 승려의 성욕이 다른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표현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티베트

티베트의 재가집단에서 동성애는 극히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는데, 동성애는 거의 전적으로 다돕(lDab ldobs)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돕은 규모가 큰 사원들을 육체노동으로 돌보거나 운동경기에 참가하거나 또는 경찰처럼 활동하던 비정식적인 승려라고 할 수 있다.79) 멜빈 골드슈타인(Melvyn Goldstein)은 그들이 사찰 생활의 규범에는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지만 환속을 함으로써 승려였을 때의 존망과 경제적 안정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79) Goldstein, M. C., 1964, ‘A Study of the Ldab ldob’, Central Asian Journal, 9, Cabezo쳌, J. I., ibid, p.93.

그들은 사회 부적응자들로서 계행을 잘 지키는 승려의 집단으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그 주변부에 머물게 함으로써 사원체계에 따라 그들을 훈육시키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규모가 큰 사원에서는 그들의 비율이 전 구성원의 10%에까지 이른다.80) 다돕은 소년들과 성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지지만 어떤 구멍에 자신의 성기를 넣어서 승가에서 쫓겨나는 과오는 저지르지 않는다. 80) Goldstein, M. C., ibid, p.125, 137∼138, 140.

오히려 그들은 뒤에서 상대방의 다리 사이에 성기를 집어넣음으로써 쾌감을 얻는다.81) 다돕이 젊은 비구나 어린 재가자들을 납치하는 경우가 있으나 다돕의 보복이나 동성연애의 상대자가 된 것에 대한 치욕 때문에 그 피해자는 그 일을 감추는 것으로 보인다.82) 81) Goldstein, M. C., ibid, p.134.   Cabezo쳌, J. I., ibid, p.93. 82) Goldstein, M. C., ibid, p.135.

다돕은 경우에 따라 배우자가 요구하는 대가 때문에 싸움하기도 하는데, 이로 인해 사찰의 큰스님에게 싸움한 것과 동성연애에 대한 벌을 받기도 한다.83) 그러나 그들이 이러한 과실을 저질렀다고 재가자들이나 스님들한테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데, 그 이유는 사회에 그들이 공헌한 바나 부귀와 인정에 집착하지 않는 장점 때문이다.84) 그들이 질 나쁜 승려로 인정받기는 하지만 자비의 손길 뒤로 자신의 악행을 숨기는 위선적인 사람처럼 가장 사악한 부류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85) 다돕은 적어도 정직함의 미덕을 가지고 있으며, 티베트 인들은 이를 칭송하고 있다. 83) Goldstein, M. C., ibid, p.135. 84) Goldstein, M. C., ibid, p.138. 85) Goldstein, M. C., ibid, pp.138∼139.

극동의 불교국

중국의 경우, 불교 전래 이전의 한대(漢代, 기원전 206∼220년경) 문헌에 따르면 어떤 황제들은 남자 애인을 데리고 있었다. 남창(男娼)이나 여장(女裝)을 한 남자는 송대(宋代, 960∼1279)에 흔히 나타났으나, 그 이후로 약 1111명의 남창에 대해 육체적 처벌이나 벌금형이 부과되었으며, 동성애는 간간이 규제되었다.86) 성에 대한 억압은 청대(淸代, 1644∼1912)에 더 두드러지며, 여기에 서양의 관념들이 여기에 혼합되었지만 현 공산정부에 의한 가혹한 탄압과 처형은 전례가 없던 것들이다.87) 86) Wawrytko, S. A., 1993, ‘Homosexuality and Chinese and Japanese Religion’, in A. Swidler(ed.), Homosexuality and World Religions, Valley Forge, Penn., Trinity Press International, pp.200∼201.   Faure, B., 1991, The Rhetoric of Immediacy: A Cultural Critique of Chan/Zen Buddhism, Princet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p.254. 87) Wawrytko, S. A., ibid, p.206.

근대화 이전 중국의 비불교도들은 동성애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유교주의자들이 권력의 가운데에서 집안의 안녕과 존속, 그리고 몰락을 고려했기 때문이었고, 또한 도교인들은 특히 남성의 경우, 성적 에너지를 이용한 건강술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88) 88) Wawrytko, S. A., ibid, pp.204∼2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가족이나 사회의 의무들을 손상시킨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성애를 비난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명대(明代, 1368∼1644)에는 남성 동성연애자들이 가족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허용한 경우도 있었다. 사랑을 목말라하던 여성들간의 동성애는 오히려 간통보다 더 나은 것으로 여겨졌다. 17세기경 예수파(Jesuit) 선교사들은 동성애적 행위에 도덕적인 분노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 놀라움을 표현한 적이 있었다. 동성관계는 남자 배우들 사이에, 또는 귀족들의 규방에서나 첩실(妾室)들끼리, 또는 매춘굴에서 드물지 않게 이루어졌었다.89) 89) Wawrytko, S. A., ibid, pp.201∼213.

샌드라 와우리코의 설명에 따르면, 명대의 문학 속에는 일부 비구니들이 레즈비언이었다는 의혹이 심심찮게 표현되고 있다고 한다. 한 ‘레즈비언의 고전’ 속에는 내생에 남편과 아내로 다시 태어나기를 서원하는 두 여장부가 나타나며 그들의 ‘결혼’을 증명하는 존재로 ‘붓다’를 염호했다고 전한다.90) 19세기 금란회(金蘭會)라고 부르는, 불교 영향하에 등장한 독립 견직 직조 여성들의 모임에서는 경우에 따라 레즈비언 부부를 포함하고 있었다.91) 90) Wawrytko, S. A., ibid, p.203. 91) Cabezo쳌, J. I., ibid, p.84.

20세기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이전에, 홈즈 웰취(Holmes Welch)의 글에 따르면, 승려들은 사원에서의 동성애를 극히 드문 경우로 보고 있었고, 그것을 ‘밥맛 없고’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환속한 한 사람의 말을 빌면 노승과 젊은 승려 사이에는 상당한 정서적 호감이 존재했다고 전한다.92) 존 블로펠드(John Blofeld)는 9개월간 중국 사찰에 머물렀던 기간에 어떠한 성애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모두가 동성애 취향에는 무관심했다고 전한다.93) 사실, 중국문화 속에는 남자와 여자들은 다른 집단 속을 빈번히 이동해갔고, 이것은 동성간의 가까운 친교를 조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손을 잡는 것은, 인도와 같이, 그러한 가까운 친분을 보여주는 표시이며 연애의 감정에 의한 것은 아니다.94) 92) Welch, H., 1967, The Practice of Chinese Buddhism, 1900∼1950, Cambridge, Mass., Harvard University Press. p.118. 93) Blofeld, J., 1972, The Wheel of Life - The Autobiography of a Western Buddhist, London, Rider. p.164. 94) Wawrytko, S. A., ibidl, p.199.

미국에 사찰들을 건립한 존경받는 중국의 선화(宣化) 선사는, “동성애는…… 저급한 중생계로 태어날 윤회의 씨앗을 심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95) 중국과 유사한 한국의 전통을 보면, 숭산 스님은 동성애가 업의 결과라고 말하고 있지만, 적당한 주문을 염송하게 되면 동성애를 이성애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96) 95) Buddhism: Essential Teachings, compiled by Bhikshu Heng Shure(Talmage, Calif., City of 10,000 Buddhas, 비매품, p. 65), Corless, 1955: 4에서 재인용. 96) Corless, 1955, 4, ‘Relationships Aren’t a This or a That: An Interview with Bobby Rhodes’, Turning Wheel(Fall, 1922), 19에서 재인용.

일본의 경우, 최근 형법상에는 동성애나 남색(男色)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97) 1987년 한 남자 대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적극적인 동성연애자였던(4.5%) 학생들은 자신들의 성적인 취향을 감추고자 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가족을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98) 이것은 아마도 유교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더구나 우메자와(Umezawa)는 일본인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움을 사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일본인의 사유방식으로는 쉽게 동성연애자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99)97) Wawrytko, S. A., ibid, p.219. 98) Wawrytko, S. A., ibid, p.2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일본문화 속에서도 남녀간의 일반적인 구분은 동성간의 친밀한 유대관계가 이루어지도록 유도해 왔다. 더구나 신도(神道)와 같은 토착적인 종교는 성애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완전한 자연적 특성의 하나로 보는 관용적 입장을 취해 왔다. 상대방에게 서로 헌신과 연민의 정을 쏟을 수 있을 정도로 동성애 관계는 전통적으로 쉽사리 관용의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1192년 이후 지배층으로 부상했던 무사(武士)들 사이에서 동성애가 번성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 있었던 ‘젊은이의 도(道)’라는 것은 연령에 따라 형성된 동성애가 존재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여자가 배제된 채 엄격하게 짜여진 군사조직 내에서 가능했던 남성 결속의 한 모습이었음이 분명하다.100) 99) Umezawa, K., 1988, ‘Medical Ethics in Japan’, Biomedicine and Pharmacotherapy, 42, p.171. 100) Wawrytko, S. A., ibid, pp.212∼213.

이와 같이 남성적인 직업과 동성애 사이의 유대는 역시 고대 그리스나 티베트의 다돕에게서도 나타난다. 도쿠가와(德川) 시대(1603∼1805)에 동성애는 나이든 남자들로부터 젊은이들이 순결과 정직, 심미안을 키울 수 있는 방법으로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권장되기도 했다.101) 도쿠가와 시대에는 또한 매춘부와 다수의 애첩들, 버림받은 부인들 사이에 동성연애가 있었다는 단서들이 있으며, 19세기의 성교본(性敎本)들은 동성연애적 행위들을 명시하거나 삽화를 그려 넣고 있다.102) 101) King, 1993: 146∼147, Tsuneo Watanabe and Jun’ichi Iwata, The Love of the Samurai: A Thousand Years of Japanese Homosexuality(London: GMP Publishers, 1989), p. 88을 재인용하면서. 102) Wawrytko, S. A., ibid, pp.213∼214.

일본에서는 불교와 동성애 사이에 몇 가지 연관성이 나타난다. 14세기 문헌인 《치아관음연기(稚兒觀音緣起)》에서는 관음보살이 열심히 기도하는 승려에게 아름다운 소년의 형상(稚兒)을 한 애인이 되어 나타난다.103) 15세기의 한 시(詩)와 3개의 후대 문헌 속에는 9세기 일본 진언밀교의 개창자인 공해(空海)가 남성간의 동성연애를 중국에서 일본으로 들여왔다고 전하고 있다. 15세기부터 진언밀교의 다양한 외전(外典)들은 이성간의 성행위를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으로 찬양했으며, 앞에 언급한 문헌들은 동성연애가 승려들에게 여법한 행위라고 덧붙였던 것이다.104) 103) Cabezo쳌, J. I., ibid, p.91. 104) Schalow, P. G., 1992, ‘Ku?ai and the Tradition of Male Love in Japanese Buddhism’, in Cabezo쳌, 1992:215∼30. Schalow, 1992, pp.215∼216, 228.   Faure, B., 1991, The Rhetoric of Immediacy: A Cultural Critique of Chan/Zen Buddhism, Princet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p.254 참조.

1598년의 《홍법대사서(弘法大師書)》에서는 공해의 환영이 등장해 승려들과 행자승들이 서로 성교를 하는 방법에 대해 강설하는 내용이 나온다.105) 1667년 독신 수행의 승가 이념이 결혼한 승려들에 의해서 무너지기 시작하던 시기에 한 학자가 동성연애 시집인 《돌 진달래》를 지었는데 대부분이 승려가 자신의 애인인 행자승에게 바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1687년에 나온 《남색어경(男色御鏡)》106)의 주장에 따르면, 공해는 사원 밖에서는 남색을 가르친 적이 없지만, 지금은 사무라이와 상인들 사이에 대중적인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107) 그 책은 남성간의 사랑에 대해 긍정적이지만, 다양한 종파의 승려들은 위선적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즉 승려들은 자신들이 행자들이나 어린 남창들과 더불어 성을 탐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숨기려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책은 임제종(臨濟宗)의 선승들이 어린 남창을 찾음으로 해서 그들의 화대가 부풀려졌다고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105) Schalow, P. G., ibid, pp.216∼220.
106) P. G. Schalow 번역, The Great Mirror of Male Love by Ihara Saikaku(Stanford: Stanford Univ. Press, 1989) 107) Schalow, P. G., ibid, pp.222∼228.

16세기 일본을 방문했던 기독교 선교사 프란시스 자비에르(Francis Xavier)는 특별히 불교 승려 사이에서 ‘육식의 혐오’가 사라지고 있으며, 그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도 깊어지고 있다는 사실 모두에 충격을 받은 바 있다.108) 베르나르 포르(Bernard Faure)는 중국과 일본에 있었던 동성애와 불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108) Faure, B., ibid, p.249. Wawrytko, S. A., ibid, p.213.

대부분의 저자들은, 남성간의 동성애가 일본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잘 용인되었으며 일본 승원 생활의 일반적인 특징이 되었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이것은 특별히 도쿠가와 지배하에 강화되었던 금지사항, 즉 사찰 내에 여자들이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금지에 대해 취했던 일종의 보상행위라고 보았다……. 그것의 비규범적 성격은 시간이 갈수록 사라지게 되었고, 따라서 그것은 결국 승려들의 특권처럼 인식되었다.109)109) Faure, B., ibid, p.255.

물론 근본적인 인도불교의 척도로 보건대 일본을 제외한(그리고 일본의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도 어느 정도) 모든 불교국가에서 승려가 고의적으로 성기를 삽입하는 어떠한 형태의 성행위를 했다면, 그 승려는 자동적으로 승적이 박탈되어야 한다. 천태종 승려인 원신(源信, 942∼1017)은 자신의 《왕생요집(往生要集)》에서 동성연애자들이 바로 지옥으로 가는 이유는 그들이 도덕을 위배했으며 세간적인 집착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10) 110) Faure, B., ibid, p.253.

중세 때, 성행위를 통한 요가를 깨달음의 방법으로 주장했던 태밀(台密)의 한 종파인 입천류(立川流)에서는 동성연애를 쓸모 없고 비생산적이라고 비난했었다.111) 선승들 역시, 행자들이나 어린 소년과 성관계를 갖는 비구들은 무서운 업보를 체험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가르쳤던 것은 의심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휴(一休, 1481 사망)는, 비록 그가 선수행을 시작하는 행자일 때 사원의 동성애를 경험한 적이 있지만, 그것이 사원 내에서 질투심과 경쟁을 유발시킨다는 이유 때문에 그것을 비난하게 되었다.112)
111) Stevens, J., 1990, Lust for Enlightenment: Buddhism and Sex, Boston, Mass. and London, Shambhala. p.82. 112) Faure, B., ibid, p.257.

그는 스스로 자신이 독신 수행의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들을 도외시했으며, 공공연히 여자들과의 성행위를 즐겼다.113) 113) Stevens, J., ibid, p.97.

서양불교

서양에서 불교는 어떠한가? 서양불교교우회(the Friends of the Western Buddhist Order: FWBO)는 동성애를 환영하며, 여러 사회단체에 대한 봉사활동 가운데에는 게이나 레즈비언을 위한 참선수련회를 마련하는 일도 포함하고 있다.

교우회의 많은 회원들은 한쪽 성에 편향된 집단들 속에 살고 있으며, 동성간의 친분을 더 두텁게 증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이성간의 우정이 가질 수 있는 긴장과 문제점들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동성간의 우정은 일반적으로 더 친밀해 보이며, 깊은 신뢰와 정신적인 유대, 그리고 정신적인 지도가 용이한 것으로 보인다.114) 114) Subhuti, Dharmachari, 1994, Sangharakshita: A New Voice in the Buddhist Tradition, Birmingham, Windhorse Publications. p.155.

하지만 만일 남자들이 남자들과의 동성애적 우정에 대해서 신중한 편이라면, 또는 그러한 우정의 한 측면인 육체적 접촉조차도 민감하게 느낀다면, “친구들에 대해서도 성적인 매력의 요소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115) 비록 성적인 접촉이 동성간의 친분을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라고는 볼 수 없어도,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만일 그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을 완전히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116) 115) Subhuti, Dharmachari, ibid, p.166. 116) Sangharakshita, 1987, ‘Buddhism, Sex and Spritiual Life’(an interview), Golden Drum(journal of the Friends of the Western Buddhist Society), no. 6(October), p.12 Subhuti, Dharmachari, ibid, p.166.

최근 서양불교교우회의 입장은 세번째 계율, 즉 불사음(不邪淫)이 침해받지 않았으며, 이성애와 동성애, 그리고 이성모방증(transvestism)이 모두 똑같이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고 본다.117) 117) Subhuti, Dharmachari, ibid, p.172.

이러한 ‘중립성’은 일부 교우회 회원들이 가지고 있었던 동성애 관계에 대한 초기의 개방적인 태도에서 멀리 이동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사가라마띠(Sagaramati)에 의하면:

    언제가―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경에―동성애 관계는 이성애의 상황이 갖는 것보다 훨씬 덜 ‘양극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성애는 시기와 집착, 강압성, 그리고 다른 부정적인 의식상태를 유발시킨다는 점 때문에, 동성애 관계가 아마 ‘정신세계’에 가장 유익할 것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체험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즉 동성애 관계도 이성애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그러한 부정적인 상태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현재 상가락쉬따의 견해라는 것을 알고 있다.)118) 118) Letter, 21 November 1995.

“이성간의 성교보다 게이들의 성교가 다소 뒤떨어진 것일 이유는 없다.”는 반면, “불교에 있어, 성애는 궁극적으로 초월해야 할 것이며, 독신에 만족하는 것을 그 이상으로 한다.”는 것이 현재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119) 과거에는 서양불교교우회가 집착을 멀리하는 일환으로 혼음(promiscuity)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독신생활이 집착으로부터 멀어지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120) 119) Maitreyabandhu, 1995, ‘Homosexuality: Has Everyone Got it Wrong?’, Golden Drum(journal of the Friends of the Western Buddhist Order), No. 37(May/July), p.28. 120) Subhuti, Dharmachari, 1983, Buddhism for Today: A Portrait of a New Buddhist Movement, Shaftesbury, Dorset, Element Books. p.167.

성애는 단지 한 사람에 대한 주변적인 관심에 지나지 않으므로, 따라서 점차적으로 완전한 독신을 향해 움직여갈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121) 마찬가지로, 정신적인 발달은 한 사람의 남성성이나 여성성과 같은 극단화된 정체성을 점진적으로 극복할 때 수반되는 것이라 생각된다.122) 서양불교교우회의 이상은 일종의 양성적 존재(androgyny)에 있는데 처음에는 성(gender)에 입각한 자기정체성을 남녀 각자가 극복해내고 한쪽 성으로 구성된 환경 속에서 다른 사람과 연관된 성격들을 각자 계발한다면, “남자나 여자 같은 자기정체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123) 이러한 이유 때문에 상가락쉬따(Sangharakshita)는 자기정체성을 자신의 성적 경향에 기초를 두고 있는 동성연애자들까지 비판하는 것이다.124) 121) Sangharakshita, ibid, p.14. 122) Subhuti, Dharmachari, 1994, Sangharakshita: A New Voice in the Buddhist Tradition, Birmingham, Windhorse Publications. p.171. 123) Subhuti, Dharmachari, 1994, ibid, p.166. 124) Sangharakshita, 1987, ibid, p.12, Subhuti, Dharmachari, 1994, ibid, p.172.

잭퀴(Jacqui)와 앨런 제임스(Alan James)와 같은 영국의 선수행자들은 동성애에 대해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남성 동성애는 ‘인생 여정의 여성적 국면’을 거부하지만 때로, 어떤 여성적 속성들을 모방하는 ‘문제 구간’으로 보고 있다. 레즈비언은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들은 동성애를 다음과 같이 인식한다.

    음과 양의 원리들을 혼합하고자 하는 욕망의 혼돈이다. 그것은 혐오를 통해서 잘못된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이다……. 한쪽 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동성애를 수반하며, 명상적 삶의 과정에서 진정한 성취를 의미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의 통합과 초월에 중대한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125) 125) Sangharakshita, 1987, ibid, p.42.

흥미롭게도 이들에게 “좀더 나쁜 문제”는 단순히 성행위의 공포 때문에 독신을 지키고 있는 일이며, 그 결과 성의 실체를 맹목적으로 부정하여 그것을 억압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의 본질을 뒤섞는 것에 따른 책임의 공포”를 느끼며…… “남성들은 자신들의 본성 속에 유연함과 자비로운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126) 한편 서양에서 태국의 선수행 전통을 계승하고자 하는 영국의 포리스트 상가(Forest Sangha)는, 독신수행을 할 수 있고 그러한 의지가 있는 동성애자에게는, 그들이 ‘완전한 남자’가 아니라 해도(즉 빤다까), 수계를 하고 있다.127) 126) Sangharakshita, 1987, ibid, pp.43∼44. 127) Ajahn Sucitto, 1995 11월 16일자 편지.

미국의 경우, 샌프란시스코 베이 내의 불교 집단을 연구한 로저 콜리스(Roger Corless)에 따르면, ‘퀴어 수행자’에 대해서 “그 집단들은 중립적이며 개방적으로 수용”하고 있다.128) 마찬가지로 호세 카비존은 동성애공포증이 불교인들 사이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단체 가운데 게이 재가자들을 도외시하거나 그들의 성적인 자제를 요구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또한 북미 지역에서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수계받는 것이 금지된 사례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129) 범박하게 말해, 대체로 이러한 태도는 선과 정토종을 통해 들어온 일본의 입장과, 상좌부 계통의 선정법(禪定法)을 크게 탈전통화시켜 대중화에 성공한 서양의 자유주의가 서로 혼합된 결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28) Corless, R., 1995, ‘Coming Out in the Sangha : Queer Community in American Buddhism’, pre-publication version of a paper now in C. S. Prebish and K. Tanaka (eds.), The Faces of Buddhism in Americ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pp. 253∼265, 328∼333. 1995, p.6.
129) Cabezo쳌, J. I., ed., 1993, ‘Homosexuality and Buddhism’, in A. Swidler(ed.), Homosexuality and World Religions, Valley Forge, Penn., Trinity Press International, p.94.

임상심리학자이자 조동종(曹洞宗) 선사인 맥필라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성애는 해탈에 이르는 장애물이 아니며 게이도 역시 불교 수행에 동참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달리 어떤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어떻게 중생들간의 사랑이 불성(佛性)에 위배될 수 있다는 말인가? …… 모두가 하나이고 동시에 모두가 다른 것이라는 것을 불교는 이해한다.130) 130) MacPhillamy, Ro?hi D., 1982, ‘Can Gay People Train in Buddhism?’, Journal of Shasta Abbey, 9(1978), reproduced in Sexuality and Religious Training, a 1982 booklet of Throssel Hole Priory, near Hexham, England. p.28.

그는 샤스타 애비(Shasta Abbey)에 있는 조동종단 내부에는 게이 수도자와 게이 신도들 모두가 포함되어 있으며, 수행의 진행상황도 일반 수행자들과 전혀 다를 바 없고, 적어도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완전한 견성(見性)을 이루었다고 말한다.131) 유일한 차이는, 그들이 자신들을 사악하고 변태적인 것으로 보는, 사회적으로 내면화된 동성애 혐오증을 견뎌내야 하며, 따라서 게이라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다는 정도이다.132) 게이 수행자는 현재 자신의 성적 정체성도 기꺼이 포기하고자 할 것이다. 진지한 수행자는 게이이거나 그렇지 않든 간에, 실지로 깨달음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기꺼이 포기할 것이기 때문이다.133) 어떤 동성애자는 수행에 의해서 그렇게 변화할 수도 있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견성을 얻었던 그 사람과 같이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131) MacPhillamy, Ro?hi D., ibid, p.28.
132) MacPhillamy, Ro?hi D., ibid, p.32.
133) MacPhillamy, Ro?hi D., ibid, pp.29∼30.

현재 다양한 게이, 레즈비언 불교 집단이 존재하고 있는데134), 1994년 뉴욕시에서 있었던 게이 선언(Gay Pride) 행진에는 ‘젠 퀴어(Zen Queer)’라는 깃발 아래 선불교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135) 그러한 그룹들의 목적은 서로 소속감을 나누고, 사회화된 동성애 혐오증과 에이즈에서 얻은 상처를 치료하는 데 서로 돕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퀴어’ 불교도들은, 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말, 즉 “비구들이여, 그대가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않는데 누가 그대를 돌볼 것인가? 비구들이여, 누가 그대를 돌보건 그는 고통을 치유코자 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곧잘 인용한다.136) 134) Corless, R., 1995, ‘Coming Out in the Sangha : Queer Community in American Buddhism’, pre-publication version of a paper now in C. S. Prebish and K. Tanaka (eds.), The Faces of Buddhism in Americ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p.5, pp.14∼17. 135) Indra’s Network Newsletter(October/Nobember 1995), Ⅱ, Arline Klatte이 Trends에 실은 기사, ‘Mindful Warriors’를 재편집한 것임. 136) Vin. Ⅰ p.302.
Corless, R., ibid, pp. 253∼265, 328∼333. 1995: Ⅱ.

하트포드 스트리트 젠센타(Hartford Street Zen Centre)는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단체, 마이뜨리(Maitri)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러한 취지로 설립된 최초의 단체일 것이다.137) 콜리스는 에이즈 공포에 대한 도덕적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불교 내의 ‘퀴어들’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말한다.138) 137) Corless, R., ibid, p.5. 138) Corless, R., ibid, pp.9∼10.

에이즈 위기에 대한 또 다른 해법은 매사추세츠 바어(Barre)의 선정수행센터(Insight Meditation Center)에 있는 에릭 콜비그(Eric Kolvig)에 의해 제시되었다. 그는 1993년 게이들에게 에이즈 때문에 생기는 공포와 분노, 슬픔, 그리고 사회로부터 받은 자기혐오를 치유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방법으로 선수행(Insight Meditation)을 가르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왔던 것이다.139) 139) Corless, R., ibid, pp.10∼11.

미국 정토종 불교포교당의 스님이기도 한 타이테츠 우노(Taitetsu Unno) 교수는 불교 게이 그룹간의 법회를 위임받아 주관해 왔다.140) 또한 일본을 중심으로 한 국제창가(創價)협회는, 처음에는 동성애가 이성간의 결혼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었는데, 1995년에 이르러 동성애 사이의 결혼을 인정하고 전자의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141) 티베트 전통의 경우, 치가 콩츄(Dzigar Kongtrul) 링포체는 한 게이 불교도와 가톨릭 게이 신자가 결혼하는 것에 동의했다.142) 140) Corless, R., ibid, p.6.
141) Corless, R., ibid, p.5. 142) Corless, R., ibid, p.6. Jeff Logan-Olivas의 기사 ‘Story of a Gay Wedding’, Turning Wheel(Fall, 1992), p.20을 재인용.

최근 달라이 라마가, 동성애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전통적인 티베트의 관점에 따라 구강과 항문에 성교하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말한 다음, “동성연애적 행위는 양쪽 상대방이 서로 동의하는 한 잘못된 것이 아니며, 독신 수행의 서원보다 저열한 행위도 아니다. 그 행위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을 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143)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6년 그는 《교리를 넘어서(Beyond Dogma)》144)에서 “성적인 행위는 그 짝들이 성교를 위해 만들어진 기관들을 이용할 때 올바르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적고 있다.145) 이것은 일부 자유로운 미국 불교도들, 특히 게이를 고려한 말이었고, 그들은 불교가 성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비규범적이라고 생각해왔던 사람들이었다. 1997년 6월에 달라이 라마는 많은 게이들이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신자들과 언론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143) Corless, R., ibid, p.6, Scott Hunt, ‘Hello Dalai’ Out(Febrary/March 1994), 102.에서 재인용. 144) Berkeley, Calif: North Atlantic Books 145) The Sunday Times, 1997년 6월 15일자., ‘Gays Rails at Straight Talk by Dalai Lama’

    우리는 신앙자와 비신앙자를 구분해야 합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의 성관계는 사음(邪淫)에 해당합니다. 사회의 관점에서 보자면 상호 합의에 의한 동성관계는 서로에게 유익하고 기쁘며 아무런 해악이 없는 것일 수 있습니다.146) 146) San Francisco Chronicle, ⅡJune 1997, David S. da Silva Cornell, ‘More re: Dalai Lama and Sex’ 1997년 7월 7일 인터넷 포럼인 ‘Buddhist’에 올려졌던 것임. 또한 1997년 6월 15일자 The Sunday Times의 기사, ‘Gays Rail at Straight Talk by Dalai Lama’를 볼 것.

이 말은 청중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샌프란시스코의 불교 에이즈 사업단의 공동설립자인 스티브 퍼스킨(Steve Peskin)은 달라이 라마가 반(反)게이 감정을 부추긴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147) 달라이 라마 역시 이성연애자나 게이 신자들에게 불편함을 느낀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47) 1997년 6월 15일자 The Sunday Times의 기사, ‘Gays Rail at Straight Talk by Dalai Lama’를 볼 것.



    남자와 여자들에게 사음에 해당하는 것은 구강섹스나 항문섹스도 포함됩니다……. 여러분의 부인일지라도 자신의 입이나 다른 구멍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사음입니다. 자신의 손을 사용하는 것, 그것도 역시 사음입니다.

그러나 달라이 라마는 또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제3자가 아닌, 당신이 돈을 지불한 매춘부와 성관계를 갖는 것은 부정한 행위가 아닙니다.” 달라이 라마의 연설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레즈비언과 게이, 양성인, 그리고 트랜스젠더(LGBT)의 불교연합회는 그에게 동성애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고자 비공식적인 면담을 요청했고, 그는 6월 11월 그 대표단을 만났다. 모임 이후, 그는 간략한 보도문을 발표했고,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달라이 라마께서는 게이와 레즈비언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생각하게끔 한 이야기들에 굉장히 관심을 두고 계십니다. 성하께서는 성을 근거로 한 폭력과 차별에 반대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모두에 대한 존경과 관용, 자비, 그리고 인권의 완전한 자각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성에 대한) 이러한 문제들은 복잡하고 주의 깊은 사려가 요구되는 것이며, 성하께서는 차후 일부 모임의 참석들이 구성하게 될, 인간의 성애에 대한 연구와 토론을 위한 초청과 제안을 기꺼이 환영하는 바입니다.148) 148) David S. da Silva Cornell, ‘Official Press Release from Lesbian and Gay Meeting with Dalai Lama’ 1997년 7월 7일 인터넷 포럼인 ‘Buddhist’에 올려진 것.

그 모임으로 인해 감명을 받은 트렌스젠더(LGTB) 불교도들 역시 다음과 같은 보도문을 내었다.

    온화하며 부드러운 만남 속에서, 달라이 라마께서는 성에 대한 전통 불교문헌들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명확히 밝혀 주셨다……. 그분은 이러한 가르침의 일부가 특정한 문화와 역사적 맥락 속에 한정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기꺼이 고려해 보겠다는 견해를 밝히셨다. 그분은 자신이 불교 경전들을 일방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계신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셨으며, 그러나 현대 사회에 맞도록 경전의 이해를 전체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다른 불교 전통과 집단들 사이에 합의를 구축할 수 있도록 참석자들에게 촉구하셨다. 성하께서는 이러한 경전을 새롭게 이해시킬 수 있도록 하는 현대과학적 연구의 통찰력과 그 가치에 흥미를 나타내셨다. 성하께서는……. 독특할 정도로 개방적이었으며 그리고 양보적인 판단(non-judgemental)을 내리셨다.149) 149) Ibid.

결과적으로, 미국과 홍콩의 트렌스젠더 불교도들은 어떻게 새로운 합의를 세울 것인가를 놓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점을 인터넷 토론 포럼에 올려놓기 시작했다.150) 150) David S. da Silva Cornell, ‘After HHDL’s Meeting w/LGBT Buddhists’ 1997년 6월 27일 인터넷 토론 포럼인 ‘Buddhist’에 올려져 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코넬의 이메일로 연락해볼 것. 이메일은: cornelld@hayboo.com이다.

어떤 게이 불교도가 게시판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즉, 달라이 라마는 일전에 구강섹스나 항문섹스, 그리고 수음이 문제되는 것은 그것들이 밀교 수행에 중심이 되는 내면의 에너지 체험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따라서 그런 불교도가 그러한 수행에 가담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성행위는 용인될 수도 있을 것이다.151) 151) David S. da Silva Cornell, ‘Re: Dalai Lama and Sex-Reply’ 1997년 7월 7일 인터넷 토론 포럼인 ‘Buddhist’에 올려져 있다.

결론

깊은 교분은 사찰에서 용납될 수 있는 것이지만 동성연애적 행위는 일본과 같은 나라나 티베트의 비정규 승려 사이에 벌어지는 경미한 행위를 제외하고는 용납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빤다까로 불리는 성적인 기능장애나 수동적 동성연애자에게는 수계하는 것이 금지되어 왔으며, 그러한 사람들이 현세에서 이룰 수 있는 정신적인 능력은 제한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불교에 다소간 영향을 미쳤던 일본의 경우, 사원 내의 독신생활의 이념에 대한 저항은, 승려의 결혼을 용인하는 것으로 그 정점에 이르고, 마침내 사원 내의 동성애적 행위를 고무하는 정도까지 다다르게 된다. 재가자들 사이의 동성애는 남방과 북방불교에서는 빈번하게 비도덕적인 것으로 비난받아 왔지만, 그러한 동성연애적 행위 때문에 박해를 받거나 했던 단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것에 대한 관용적 입장은 계속 존재해 왔는데, 중국에서 훨씬 관용적이었으며, 일본 역시 긍정적으로 지지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피터 하비(Peter Harvey) 
선더랜드 대학교(University of Sunderland) 교수. 초기불교 전공.

심재관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 졸업. 동대학원 인도철학과 박사과정 수료. 현재 강릉대 강사. 논저서로 《탈식민시대 우리의 불교학》 〈오리엔탈리즘과 유럽의 브라만교 형성〉 〈비판불교란 무엇인가〉 〈19세기 근대불교학의 탄생에서 문헌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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