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해서는 안 되는 명백한 이유 | ||||||
연중특별기획 - 이 시대를 진단한다 / 자살과 생명의 소중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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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이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자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단호하게 제시된 적이 없다.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사람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는 지금, ‘왜 자살해서는 안 되는가’에 대한 더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해답이 한시 빨리 명확하게 제시되어야만 한다. 자살하면 눈앞의 고통에서 벗어나리라는 막연한 희망만을 붙들고 있는 자살 충동자들에게, 왜 자살해서는 안 되는지를 한 번도 일러주지 않은 채 한두 번의 상담만으로 마음을 바꾸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 기대는, 자살하면 위기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자살 충동자들의 허황된 생각만큼이나 막연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자살, 가장 불행한 죽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자살 사례들을 생사학의 관점에서 검토해, 자살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다음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자살은 더 큰 고통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둘째, 자살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셋째, 자살은 고통의 끝은 아니다. 자살한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다. 넷째, 우리에게는 자살권이 아니라 인간답게 죽을 권리만 있다. 다섯째, 자살은 남은 사람에게 더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준다. 여섯째,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영혼의 성숙을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자살하면 모든 고통이 소멸되어 버리고 평안해질까? 섬유회사 사장 S씨는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졌고 부인마저 경쟁회사의 이사와 함께 달아나 버렸다. 그는 자살하면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고, 사후의 세계에서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자살을 감행했다. 얼마 뒤 그는 “오, 정신이 드나?”라고 묻는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간신히 눈을 떴다. 그는 가사상태에 있었던 7시간 동안 무서운 사후세계를 체험했다. 그는 현실보다 더 무섭고 괴로운 사후세계에서 구출된 것을 크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살 행위로 인해 커다란 고통을 겪은 그는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사람은 그가 누구건 그가 살아온 모습과 살아온 마음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삶을 더 의미 있게 살면 살수록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역시 더 평안하고 후회 없는 시간이 될 수 있다. 바로 지금 이 삶에서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죽음의 순간이건 죽음 이후건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달라이 라마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화롭게 죽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폭력으로 가득 차 있거나 성냄, 집착, 공포 같은 감정으로 마음이 크게 혼란스럽다면, 평화롭게 죽을 수 없음 또한 자명한 일이다. 따라서 평화롭게 죽음을 맞이하고자 한다면, 올바르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죽음의 순간과 죽음 이후에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과 직결되므로, 잘 사는 사람만이 잘 죽을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죽음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가장 불행한 죽음인 자살을 선택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어떻게 인간답게 죽을 것인가 자살사례 또는 자살 충동자들을 조사해보면 자살 이유는 크게 3가지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는 개인적 이유, 둘째는 사회병리 현상 또는 사회구조적 문제, 셋째는 자살과 죽음에 대한 오해. 개인적 이유와 사회적 문제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자살은 자살의 원인을 쉽게 제거하기 어렵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자살 동기, ‘죽음과 자살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진 자살의 경우, 자살예방교육을 통해 당사자가 가진 잘못된 죽음관이나 자살관을 바꾸기만 한다면 자살 충동을 상당 부분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살하면 자기 삶도 끝나고 그에 따라 고통도 사라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런 생각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죽음이란 삶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는 것을 가르치기만 해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김인자(가명, 40세) 씨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남편이 실직하면서 가정이 무너졌다. 남편과 이혼했고 이후 10여 년 동안 죽어야겠다는 생각만 반복하는 등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상담도 받았지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그는 자살하면 고통도 다 끝나고, 자기 판단에 따라 자살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두 딸과 어머니 생각에 자살을 잠시 유보해둔 상태에서 수업(자살예방교육)을 듣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죽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그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지긋지긋한 이 삶을 자살로 끝낼 수도 없다는 말이냐, 그럼 나는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는 식으로 처음에는 격하게 반응했다. 자살을 잠시 유보해 두었다가 언젠가 때가 되면 자살하리라는 희망을 그는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살한다고 해서 다 끝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면서, 또 그런 마지막 기대가 무너지면서 수업 듣는 내내 혼란에 휩싸였다. 그는 수업시간에 추천해 주었던 책을 차분히 정독하는 등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수업을 들으면서 뭔가 마음속에서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죽음은 도피구가 아니다. 어떻게 인간답게 죽을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과제로, 삶의 완성이다. 자살한다고 해서 고통으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다. 삶이 주는 무게를 견딜 수 없어 사람들은 죽고 싶다고 말하지만, ‘나는 살고 싶다’고 말하는 습관을 지니면 어떨까.”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금 당장 직면하고 있는 문제이지만, 정말 심각한 문제는 자살이 해결책이 된다거나 우리에게 자살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 죽으면 고통도 끝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살률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대책을 임시방편이나 미봉책으로 세워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자살 예비징후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죽음이나 자살에 대해 체계적이면서 심층적인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 오진탁 _ 고려대 대학원 철학과 철학박사. 현재 한림대 철학과 교수, 생사학연구소(www.lifendeath.or.kr) 소장으로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건강하지 못한 죽음을 예방하기 위해 죽음준비교육의 활성화에 전념하고 있다. 역저서에 『자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죽음』, 『마지막 선물: 웰다잉, 죽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티베트의 지혜』, 『능엄경』, 『한글 세대를 위한 법화경』 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