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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반도의 무력 적화통일..그 후를 미리 본다

  • No : 67575
  • 작성자 : 퍼오미
  • 작성일 : 2009-05-11 23:33:43
  • 조회수 : 2067
  • 추천수 : 0

글번호

4981 조회수 : 707 추천수 : 1 다운횟수 : 0
작성자 천지파열무 / 출처 유원용 군사세계
제목 2012년 한반도의 무력 적화통일..그 후..
홈페이지
북한에서 탈북한 고위간부 출신인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의 남한침략 전면전 개시가 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래의 글은 미래의 상황을 상상하여 꾸며 본 글입니다.
월남의 교훈을 잊으면 반드시 이렇게 됩니다.
 
 
보트피플 [한국 패망의 교훈]
삶과 죽음의 바다를 건너
역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유 대한민국은
6.25의 교훈을 반세기도 안되어 잊었습니다.
월남의 교훈을 30년만에 잊었습니다.
이 글은 이대로 가다가는 실제로 일어나게 될 일을
2013년의 시점에서 되돌아 본 글입니다.
이 글을 보고
친북좌파들의 위장 술책에 속아
시민운동이라는 미명 아래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고
북한공산정권에게 남한 적화공작의 기회를 주고 있었던
판단력을 잃어버린 많은 국민들이
현실을 직시하고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역사는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역사를 반복해서라도 깨닫게 한다"

자유 대한민국은 2012년에 패망(공산화) 했습니다.
북한에 의해 자유 대한민국이 점령되어 통일(적화통일) 되었습니다.
망한 이유는 단 한가지였습니다. 나라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정과 부패가 난무했습니다. 민족주의에 세뇌당한 종교지도자, 학생들이 연일 반미시위를 했습니다. 미국도 지쳤습니다. 2012년, 드디어 북한이 제안한 <평화협정>에 속아 넘어 갔습니다. 그리고 한미연합사가 해체되면서
철수 했습니다.
미군이 나간 후 2012년 7월, 남한이 순식간에 점령됐습니다. 동북아 오룡의 하나로 불리우며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의 이목을 받으며 세계 경제 10위를 바라보던 부국이, 한국의 발전의 상징이었던 서울과 부산이 살인과 폭력과 죽음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치품들이 있던 자리에 피와 파편이 즐비했습니다. 총끝 앞에서 목숨을 구하는 자들의 아우성이 타이타닉호의 최후처럼 처절했습니다. 스스로를 지킬 줄 모르는 국민이 당하는 최후였습니다. 하늘이 스스로 돕지 않는 자를 외면한 것입니다.
*한국 정부에는 간첩이 많았습니다. 간첩들은 민족주의자와 인도주의자로 위장했습니다.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수천만 민족이 공산주의 치하에서 죽고, 갇히고, 신음하고, 도망 한 이후에야 알려졌습니다. 2007년 12월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여러 명의 입후보자가 난립했습니다.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 됐습니다. 차점으로 낙선한 야당의 후보는 그 이전 대통령이었던 김대중과 노무현의 친북 정책을 주창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이전 좌파 10년 정권의 뒤를 이어 좌파 정권을 세우려 했으나 좌파 정권들의 실정으로 인해 성공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좌파 정당과 시민단체들은 새로운 우파 정권인 이명박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국가를 혼란으로 빠뜨리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2012년 대선에서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 이명박 정권을 실패한 정권으로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여기에 남한을 적화통일하기 위한 북괴의 간첩들과 좌파 단체들이 좌파 정권들과의 정략에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그들이 택한 정치적 이슈는 반미, 반전, 친북을 통한 평화통일, 반독재, 반MB 였습니다.
이러한 좌파 정당과 단체들의 정책은 학생들에게 그릇된 민족주의(올바른 민족주의가 아니라)와 반미를 부채질하고 미국에 반전 여론을 자극했습니다. 여론에 밀린 미국은 북한과 중국에서 비밀 평화회담을 했습니다. 북한은 한쪽에선 평화회담으로, 다른 쪽에서는 대남공작으로 집요하게 공산화 전략을 추구했습니다. 2011년 10월 30일, 드디어 미국과 북한의 직접대화를 통해 북한은 한반도에서의 영구적인 평화를 약속하였고, 그 대가로 미국은 북한에 백만톤의 중유와 매년 수백만톤의 식량을 지원과 영구적인 체제 보장을 약속하였습니다. 아울러, 미국은 한미연합사의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까지 약속하였습니다.
오바마는 북한에 중유와 식량 그리고 체제 보장 약속을 주고 '평화협정서'라는 종이조각을 샀습니다. 그러나 그건 거짓 문서였습니다. 오바마는 확실한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6자 회담국가들의 서명을 받으면서 이것을 보장 받았습니다. 
한국과는 새로운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북한이 평화협정을 파기하면, 즉각 해공군력이 개입하여 남한을 방위 하기로 굳게 약속했습니다. 미군이 보유하던 각종 최신 무기를 모두 남한에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남한의 공군력은 전세계에서 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장치를 마련했기 때문에, 오바마는 주한 미군이 철수하더라도 안전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낙관했습니다. 이로써 세계의 공기는 전쟁에서 평화로 옮겨지는 듯 보였습니다.  오바마와 북한의 김정일이 노벨평 화상 수상자로 거론 되었습니다.
김정일은 "나는 한 일이 별로 없다. 나보다 평화에 기여한 사람이 많다"며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세계는 이를 동양적 겸양의 표시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더욱 신뢰했습니다. 모두가 환상이었습니다. 환상으로 인해 쥐가 고양이를 잡아먹는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한반도는 매년 150만t의 식량부족, 물자 부족에 시달리던 북한에게 자유대한민국이 장악된 것입니다! 남한은 힘으로 망한 게 아니라 속임수에 망하고, 간첩들에 망하고, 극성맞은 시위에 망하고, 부정 부패에 망했습니다. 북한의 오극렬의 증언에 의하면, 남북한 국경에는 수많은 땅굴이 있었고, 그 땅굴 속에는 특수기지까지 들어서 있었습니다. 남한정부의 각 부처, 남한군 국방부에서 이루어지는 극비 내용이 단 하루만에 여기에 보고됐습니다.
정부도 공산 프락치로 둘러싸여 있었던 것입니다. 중요 요직들 중에도 간첩이 많았습니다. 가장 모범적으로 보였던 많은 정치인 관료들이 간첩이었습니다. 이는 망한 다음에야 드러난 사실들입니다.
정보기관에도 간첩이 침투해 있었습니다. 80년대 이후 남한은 북한보다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에서도 월등히 앞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한 지도부와 국민들은 상황을 너무도 쉽게 낙관했습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의 하나 북한군이 도발하더라도 즉시 미국의 해공군이 개입하여 남한 방위를 재개할 것이고 이후 북한 경제원조도 중단하면, 당시 세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월등한 남한군이 기동력과 화력으로 북한군의 공세에 당연히 맞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누구도 공산군이 남침하리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오랜 대결국면에 지친 국민들은 평화무드에 들떠 있었습니다.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또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됐습니다. 2012년 12월에 남한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정치인들은 대선 승리를 위해 이합집산과 분열, 반목, 대립, 갈등을 유감없이 연출했습니다. 고질적인 사회악이었던 뇌물과 마약, 매춘과 도박이 정치 혼란과 어우러졌습니다. 국민의 사기가 떨어지고 계층간 갈등이 증폭됐습니다. 좌익들의 활동공간이 점점 더 넓어진 것입니다. 일반국민들은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퍼져 나가 공산군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월등히 높은 경제력과 막강한 화력을 가졌던 남한 군대가, 식량 부족으로 고민하던 북한군에게 허수아비처럼 붕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부패한 군대, 분열된 사회는 최신 무기를 고철로 만든 것입니다. 좌익이 시민단체, 종교단체를 장악했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의 신부들, 불교계의 스님들이 구국 평화 회복 및 반부패 운동 세력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활동했습니다.
이 산하에 한국총학생회, 시민단체들이 시민연대를 구성하여 반부패 운동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이 순수한 반부패 운동에 공산당 프락치들이 대거 침투하여, 거대한 반정부 반체제 세력으로 변질시켰습니다.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군이 철수하자, 남한 전역에는 수백 개의 애국단체, 통일단체들이 수십 개의 언론사를 양산하여 남한의 적화 공작에 앞장섰습니다. 목사, 승려, 학생 그리고 좌익인사들이 한데 섞여 반미운동, 반전운동, 국가보안법 철폐운동, 민주주의운동, 인권운동, 노동운동, 촛불시위, 문화운동 등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운동단체들을 총동원하여 이명박 정권 타도를 외치고 반정부 반미 시위를 벌였습니다.
남한은 군사력으로 망한 게 아니라 이들 좌익 단체의 선전-선동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입니다. 암살과 각종의 압력들이 사회적 공포감을 확산시켰습니다. 반공을 외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우익 인사, 언론인들이 다음날이면 시체로 발견되고 그들의 친척들이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지식인과 중산층, 언론이 침묵했습니다.  사람들은 더욱 자유분방해지고 안일해졌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까지도 65만이라는 막강한 군사력에 도취돼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2012년 6월 25일 드디어 북한군 75개 사단 총병력이 남한 공격에 투입됐습니다.
6월 30일 서울이 함락됐고, 북한군 75개 사단이 부산을 향해 무인지경으로 달렸습니다. 7월 10일 북한 특작부대가 임시수도였던 대전을 점령했습니다. 7월 25일 드디어 부산 마저 북한군의 수중에 들어가니, 자유대한 그 영욕의 역사는 여기서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35명의 남한 장군들이 자결하고 나머지는 외국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부산이 함락된 후 남한의 군인, 경찰은 수용소에 연행됐습니다. 공무원, 지도층 인사, 언론인, 정치인들은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됐습니다. 남한의 형무소와 남한군 부대시설을 개조한 것입니다. 한번 가면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좌파였던 반정부, 반체제 운동을 벌이던 교수, 종교인, 학생, 민주인사, 시민단체 회원들도 예외 없이 모조리 처형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반정부 활동을 하던 인간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똑같은 짓을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천오백만에 이르는 이들이 처형되거나 재교육 캠프에 끌려가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350만명의 난민이 나라 없는 민족이 되어 바다를 떠도는 보트피플이 되어 일본과 대만을 향해 항해하다가 대부분이 바다에서 북한 해군에 사살되거나 파도에 휩쓸려 죽었고 무사히 일본에 도착한 사람은 몇십명에 불과하였다. 

결 론
1. 미군의 입장: 스스로 애국하지 않고 정부를 반대하는 국민을 위해 우리가 왜 피를 흘려야 하는가?
2. 남한 병사의 입장: 솔직히 우리는 군대오기 싫었다. 북한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3. 오늘의 우리 사회현상은 옛날 월남과 너무 닮았다.
4. 적(북한)을 의심하기를 싫어하며 안일하게 자기만 지키려 했던 사람들은 냄새나는 감옥
   에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갔다. 아기들까지도 같이 죽였다.
5. 테러, 압력, 압박에 몸조심하며 입을 다물었던 사람들은 무식한 공산집단에 의해
   찔러 죽임을 당했다.
6. 집권 공산당은 반정부 데모, 적과 내통했던 남한 내 좌익 세력도 한 번 배반자는
    영원한 배반자라며 예외없이 죽였다.
(2013, 전 주한대사 캐슬린 스티븐스의 글 중 발췌 - 이 글은 미래의 일을 가정한 것이다)  
테러 태그 방지용 -->
2009-05-11 19: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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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