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국민소득과 국가정권 유지

  • No : 67606
  • 작성자 : 뉴스관리자
  • 작성일 : 2009-08-26 18:33:27
  • 조회수 : 2114
  • 추천수 : 0

참고로 '강철군화'라는 필명을 쓰는 한 40대 기자의 글을 싣는다.
 
 <애덤 쉐보르스키와 페르난도 리몽기는 1950년에서 1990년 사이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을 조사했다 (1985년 달러화 기준).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인당 국민소득이 1500달러 미만인 국가들의 정권 평균수명은 8년으로 나타났다. 1500달러에서 3000달러 사이는 18년 정도 지속되었고, 6000달러 이상의 국가들에서는 상당히 탄력적으로 나타났다.
  1인당 6000달러 이상을 버는 국가에서 민주 정권이 붕괴될 확률은 1/500이었다. 일단 부유해지면 민주주의는 불멸하는 것이다. 대략 9000달러 이상의 소득이 있는 32개의 민주정권들의 지속연수는 총 736년이다. 단 한 곳도 붕괴되지 않았다. 대조적으로 69개 빈국 중 56%인 39개 민주 정부는 실패하고 말았다.(파리드 자카리아, '자유의 미래')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장 파리드 자카리아는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1인당 3000달러에서 6000달러의 소득 수준에서 민주주의 전환을 시도한다면 성공하리라는 결론이 나온다"고 역설한다.
  그는 "다수의 국가들이 1945년 이후 대략 1인당 GDP 6000달러를 전후한 시점에 안전한 자유민주주의가 되었다"면서 지난 30년 사이에 권위주의 독재에서 자유민주주의로의 전환에 성공한 스페인,그리스와 포르투갈을 그 예로 들고 있다.
 
  파리드 자카리아는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그는 김대중을 바츨라프 하벨, 넬슨 만델라, 레흐 바웬사 등과 함께 '자유의 역사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그러나 자카리아는 "그들의 승리가 왜 가능했는가"를 묻는다. 그리고 그는 "혹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1인당 소득이 아니라 '도덕의지'라며, 위 관심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 사람은 YS나 DJ,혹은 그 추종자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그에 대해 자카리아는 신랄하게 따지고 든다.
  " 우간다와 벨로루시, 그리고 이집트는 결의에 찬 도덕적 명사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국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
  한국의 운동가들도 1960,1970,1980년대에 모두 실패했다. 실제로 반체제 인사였던 김대중 前 대통령 역시 그 당시 대부분 기간 동안 투옥되어 있었다. 왜 그가 1970년대에는 실패했으며, 1990년대에는 성공했는가? 그가 1990년이 되자 갑자기 '도덕 의지'를 갖게 되었는가?
 
  자카리아는 독재정권은 여러가지 요인으로 붕괴되지만,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정부가 들어섰을 때, 무엇이 민주주의를 지속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역사적으로 가장 간단하고 훌륭한 대답은 국가의 富"라고 말한다.
 
  자카리아는 그 이유로 첫째, 국가의 경제발전은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분파(사기업과 광범위한 부르주아지)들이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권력을 획득하도록 하고, 둘째, 이 분파들과의 협상에서 국가는 덜 폭압적이고 덜 변덕스러워지며, 규칙 지향적으로 사회의 요구(최소한 사회 엘리트 집단의 요구)에 응답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 과정에 자유화로 귀결되었다고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좋은 것들의 功을 한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모든 惡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돌리는 것처럼 비과학적이다.
 -
 金大中 前대통령의 死後평가
  -그의 生涯(생애)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6·15선언이 될 것이다.
  趙甲濟
 
  오늘 他界(타계)한 金大中 前대통령(만 86)은 파란만장한 生涯(생애)를 살았다. 그의 생애는 4期로 나눌 수 있다. 1. 좌익활동가 시절(해방 직후) 2. 야당정치인 3. 대통령 4. 전직 대통령.
 
  그의 활동을 네 가지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1. 좌익 활동가 2. 야당투사 3. 대통령 4. 6·15선언자. 그의 생애는 2000년 6·15선언 前後로 크게 나뉘어진다. 6·15선언 이전의 故 김대중씨는 민주투사로 불렸다. 6·15선언 이후의 김대중씨는 지지자에 의하여서는 평화의 使徒(사도), 반대자에 의하여서는 反헌법·反국가적 행위자로 불리게 되었다. 그의 생애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서는 6·15선언이 될 것이다.
 
  1. 6·15선언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왔는가, 아니면 핵폭탄을 가져왔는가.
  2. 6·15선언이 한민족의 통합을 가져왔는가, 분열을 가져왔는가.
  3. 6·15선언이 자유민주 체제를 강화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4. 6·15선언이 韓美(한미)동맹을 강화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5. 6·15선언이 북한 동포·국군포로의 인권을 향상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6. 6·15선언이 헌법의 敵(적)을 강화시켰는가, 약화시켰는가.
  7. 6·15선언이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증진시켰는가, 후퇴시켰는가.
 
  이상 일곱 개의 평가기준을 적용하면 故 김대중씨의 역사적 位相(위상)이 대충 설정될 것이다.
 
  故人은 朴正熙·全斗煥 정권에 맨주먹으로 맞섰던 사람이다. 박정희 정권에 의하여 납치·투옥되었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선 사형선고를 받고 연금도 당했다.
 
  그는 그런 불굴의 용기를 稀代(희대)의 학살자 김정일 앞에서는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700만 인명의 학살에 책임이 있는 김정일과 손을 잡고 연합제·연방제 혼합 통일 방안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의 유일한 合法 정통국가인 대한민국을 反(반)국가단체인 북한 정권과 同格(동격)으로 놓는 치명적 과오를 범하였다. 그리하여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희대의 학살 독재자와 同格으로 평가받거나 동격으로 이미지 메이킹되는(특히 영상을 통하여) 사태를 自招(자초)하고 말았다. 그는 박정희에 의한 유신선포 직후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면서 북한 정권의 조종을 받는 在日(재일)인사들과 손잡고 反(반)국가단체인 韓民統(한민통)을 만들었다. 그가 사형선고를 받은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故 김대중씨는 李承晩(이승만)과 함께 大衆(대중)을 권력의 기초로 보았던 대중정치인이다. 이승만은 대중을 계몽·교육함으로써 한민족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김대중씨는 계몽보다는 선동적 설득을 더 앞세웠다는 비판이 강하다.
 
  김대중씨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그가 추구했던 민주주의가 어떤 민주주의였냐에 의하여 대충 결정될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 그리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촛불난동과 같은 법치파괴, 6·15선언과 같은 헌법파괴까지도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설명하곤 하였다. 권력을 잡은 이후의 이러한 그의 민주주의觀(관) 때문에 민주투사로서의 그의 역할까지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내가 만난 한 전직 미국고관은 "국제사회에서 김대중 씨의 영향력을 능가하는 한국 사람은 이승만·박정희뿐일 것"이라 평했다. 그의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한 章(장)이 넘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 장의 역사에서 그는 어떻게 기록될 것인가. 
 

추천

네티즌 의견 0

스팸방지
0/300자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