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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아무개(48)씨의 목소리는 나직하지만 분노가 서려 있었다. 양씨는 이어, "세상이 다시 그렇게 가자는 것이냐, 난 정치인도 노사모도 아니지만 우리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월요일 시청에 왔는데 전경버스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이 좁은 곳에서 분향하고 있는데 저 넓은 데는 문화광장이라고 60일 전에 신고해야 하다니. 울분이 치솟더라 말이요.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되는 거요. 그러면 이 전에 북파공작원들이 위패 놓을 때는 60일 전에 신고했어? 이러면 안 되는 것이오. 이 나라가 대체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이오."
국민장을 하루 앞둔 28일 밤 9시, 서울시립미술관 앞 정동로터리에 모인 5천여 명의 시민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이윽고 "이명박 대통령은 사죄하라",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는 구호가 이어졌다. 촛불이 구호에 따라 앞뒤로 흔들렸다.
"이 나라가 대체 어디로 가려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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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저녁 7시 30분부터 서울지역 시민사회·노동·학생 단체로 구성된 '6월 총궐기 성사를 위한 서울조직위원회' 주최로 열린 'MB퇴진 시국토론회'에선 그동안 참고 있던 시민들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제2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 "이명박은 퇴진해야 한다", "내일 청와대로 가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중학교 교사 정은교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지만, 이 죽음에 책임져야 할 세력이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며 "작년 촛불집회에 데인 저들은 촛불시민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노 전 대통령을 죽여 촛불을 끄고자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씨는 "우리는 민주주의를 다시 살리자고 말만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상을 떠난 노 전 대통령을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추모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의 현실을 슬퍼하기 때문"이라며 "용산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참담하게 죽는 현실과 거리로 내쫓기는 쌍용·기아차 노동자들의 문제 등도 해결돼야 진정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가 이뤄진다"고 강조했다.
대학생 '동률'(21)씨는 "많은 이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민주주의의 죽음'이라며 슬퍼하고 있지만 민주주의는 아직 죽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사람에게만 맡기기엔 민주주의는 너무나 무거운 것"이라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용산 철거민, 화물연대·건설연대 노동자들의 싸움과 함께 할 때 민주주의를 잃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려대에 다닌다는 기민도(22)씨도 "지금 끊이지 않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행렬은 미안함과 민주주의라 불리는 숭고한 가치 때문이라 생각한다"며 "그러나 마음만으론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말했다.
기씨는 "우리는 내일 영결식을 치르는 노 전 대통령에게 미안해하고 있지만 용산 철거민 등 아직 장례식도 못 치른 분들도 정말 많다"며 "우리가 다시 한 번 미안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이들을 위해 다시 촛불을 들고 지지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들 수준 너무 낮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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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밤 늦은 시간까지도 '마지막 분향'을 위해 덕수궁을 찾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광화문 방향으로 선 시민들의 줄은 정동 세실 레스토랑 골목으로 휘어져 들어가 시청역 지하계단 안까지 들어가 있다. 특히 정동 극장 방향으로 선 행렬은 <경향신문> 사옥을 넘어 <문화일보> 사옥까지 다다르고 있다.
대다수 추모객들은 이날 정부가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를 거부하고 노제 때 만장 이동을 금한 것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박현진(30)씨는 "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추도사와 만장을 막는 것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꼴"이라며 "추모 움직임이 반정부 시위로 움직일까봐 그런 것 같다"고 기분 나빠 했다. 박씨와 함께 조문을 하러 온 이성일(30)씨도 "국민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것 같다"며 "순수하게 추모하러 온 사람이 대부분인데 (정부는) 시민들의 진심을 보지 않는다"고 거들었다.
어린 딸과 함께 온 박아무개(42)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충분히 분노할 만한 일"이라며 "전직 대통령 예우에 대한 개념이 없는 정부"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촛불이 두려워 노심초사 하는 정부의 꼴이 우습기만 하다"며 "현 정부는 노 전 대통령의 '소통'을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양아무개(26)씨는 "추모사를 거부한 것은 당파를 떠나서 한 인간에 대한 모독이자 연장자인 분에게 예의를 저버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양씨는 또 "국민장 형식을 대통령 임의로 변경한다는 것 자체가 국가 기반을 흔들어 놓는 일이다"며 "만약 그것이 정치적 노선이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라면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라고 꼬집었다.
총학생회 단체 참여도..."최소 60만, 많으면 1백만 이상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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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시국토론회 사회를 맡은 이상규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은 "인터넷 여론만 살펴봐도 '하루 휴가가 아니라 이틀 휴가를 내고 오겠다'는 여론이 비등하다"며 "이런 열기로 볼 때 노제가 끝난 뒤에도 추모의 마음을 가누지 못한 대다수 시민들이 광화문과 광장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00만 명 정도가 영결식에 참여한다면 10만 정도는 남지 않겠느냐"며 "물론 내일이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인 만큼 대규모 시위로 번지진 않겠지만 일부 분노를 터뜨리거나 하는 분들도 있을텐데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덕수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영결식 집단 참여 의사를 밝힌 박해선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은 "수업을 빠지고서라도 참석하겠다는 학우들이 많다"고 전했다. 일부 학교 총학생회는 학생들에게 문자를 넣어 영결식 참여를 안내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전대통령 국민장에는 얼마나 많은 시민이 참여할까?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1987년 이한열 장례식때 1백만명이 모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30만명 정도 모였다"면서 "이번에는 최소한 60만명은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노제가 오후 2시경쯤 끝난 뒤에도 시민들이 남아 모처럼 되찾은 서울광장을 지키자는 분위기가 자연스롭게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한열 장례식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주도했던 우상호 민주당 전 의원은 "이한열장례식때는 서울에서 시청앞에만 30명, 연대-신촌-이대-시청으로 이어지는 도로에 30만명 등 60만명이 모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번 노전대통령 장례식에는 100만명정도 모이지 않겠느냐"고 보았다.
이구경숙 여성연합 정책국장은 "작년 촛불시위 때 제일 많이 모인 게 60만명 정도였는데 적어도 그 이상은 모일 것"이라면서 "마음속에 큰 슬품과 분노를 느낀 시민들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이 서울광장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봉하마을의 참여정부 인사들은 "얼마나 많은 시민이 모일지 도저히 예상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장례준비에 최선을 다할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