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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공부

유식30송 제22송

故此與依他 非異非不異 고차여의타 비리비불리
如無常等性 非不見此彼 여무상등성 비부견차피


故此與依他 非異非不異

 고차여의타 비리비불리
如無常等性 非不見此彼

여무상등성 비부견차피


그러므로 이것이 의타와 더불어 있어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마치 무상(無常)과 성(性)이 같아서 이것과 저것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고차여의타(故此與依他)의

고(故)는 위 제21송에서 원성실어피(圓成實於彼) 상원이전성(常遠離前性)인 고로 라는 의미이다.


어피(於彼)의

피(彼)는 의타기자성(依他起自性)이니, 의타기자성 안에 원성실성이 있으니

이는 항상 전성(前性)을 멀리 여읨에서 드러난다.

전성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니 의타기자성에서 변계소집성을 여읜 마음이 원성실성이라는 뜻이다.


세상에 모든 존재는 의타기자성하는 진리를 깨닫고

나와 너를 분별하여 이익을 얻고자하던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멀리 여의었을 때

원성실성(圓成實性)이 드러난다고 했다.


이는 나를 여의고 너와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 된다.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남을 만났을 때 일어나던 모든 아상(我相)을 소멸하고,

법(法)을 접할 때 자기 중심적으로 일으키던 모든 법상(法相)을 소멸하였으니

이 22송에서 말하는 원성실성(圓成實性)은 변계소집성이 없는 마음이니 진성(眞性)을 의미하고

의타(依他)는 의타기성(依他起性)이니 일체가 의타기(依他起)하는 진리를 깨달은 마음이니 자기 욕망에서 일으키는 변계소집성이 아니라 남을 위해 일으키는 의타기성이다.


의타기성(依他起性)은 인(因)이 연(緣)을 만날 때 일어남이 있고 연을 잃을 때 사라지는 성질이다.

그러므로 의타기성은 연생(緣生) 연멸(緣滅)하는 이치를 알고 위타(爲他)하는 생멸작용이다.


원성실성(圓成實性)은 원만하게 일체를 이루는 실성(實性)이니, 곧 법성(法性)이다.

법성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수명을 가졌으니 무량수(無量壽)라고 하는데,

흔히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일체 생멸작용이 이에 의지하여 이루어진다고 한다.


즉 제8식의 역할이다.


원성실성을 증득한 성자(聖者)가 중생에게 자비심으로 다가가는 것이 의타기성이다.

이렇게 볼 때 원성실성은 진성(眞性)이고 의타기성은

그 진성에서 비롯되는 언행(言行)의 모습으로 상(相)이 된다.

바다에 비유하면 성은 바닷물이고 상은 파도에 비유될 수 있다.


고차여의타(故此與依他) 비이비불이(非異非不異)
고차여의타(故此與依他)의 차(此)는 원성실성(圓成實性)을 의미하니,

‘그러므로 원성실성은 의타(依他)와 더불어 나타나는 것이니, 원성실성과 의타기성은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가 된다.


의타기성은 원성실성에서 나오는 것이니 다르지 않다고 하고,

원성실성은 의타기성의 성(性)이고, 의타기성은 원성실성의 상(相)이니,

성인 원성실성과 상인 의타기성은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불생불멸은 생멸과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닌 관계에 있다.

생멸은 불생불멸인 근본에 의지해서 일어나는 면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지만

불생불멸은 생멸의 성(性)이 되고,

생멸은 불생불멸의 상(相)인 면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가 된다.


 또 다르게 표현하면 제8식은 제6식과 다르지 않고, 다르지 않는 것도 아니다가 된다.

제6 의식은 제8 아뢰야식에 의지하여 작용하는 면에서는 다르지 않지만,

제6 의식은 제8 아뢰야식의 상(相)이고, 아뢰야식은 의식의 성(性)인 면에서 보면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없다.


또, 우리의 몸과 마음의 관계를 보면

몸의 모습은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표상(表相)이고

말과 행동은 현재 마음의 표출(表出)이라는 면에서 몸과 마음은 다르지 않다가 된다.


그러나 몸의 모습과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은 마음대로 분명히 있으니 몸과 마음은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니다가 된다.


또 바닷물과 파도의 관계도 서로 다르지도 않고 다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파도는 바닷물에 의지하여 일어나지만 파도도 그 자체가 바닷물이므로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바닷물은 파도를 일으킬 수 있는 성(性)을 가지고 있고,

파도는 바닷물이 움직이는 상(相)이라는 점에서 보면 성과 상이 다르지 않다고만 할 수는 없다.


수행을 통해 견성(見性)을 했다는 것은 본성을 보았다는 뜻이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저자거리로 나오는 자비행은 본성의 상이 된다. 본성은 성이고 자비행은 상이니 본성과 자비행은 같다고 아니할 수도 없고 같다고 할 수도 없는 관계이다.   


여무상등성(如無常等性) 비불견차피(非不見此彼)
여무상등성(如無常等性)은 ‘무상과 성이 같은 것과 같이’이다.

위에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무상(無常)은 항상하는 것이 아니므로 생멸하는 일체 만법을 의미하고

성(性)은 생멸하는 작용의 본성(本性)이니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성질이다.


무상한 것은 불생불멸하는 본성에 의지해 일어나는 현상이고,

불생불멸하는 본성은 생멸하는 무상한 현상에 의지해 드러남으로 무상과 성(性)은 등가(等價)라고 했다.


그리고 이와 같이 비불견차피(非不見此彼),

즉 원성실성과 의타기성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생멸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이나 물건의 성품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성품을 알면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물가가 올라가면 경기가 나쁘다는 것을 모를 리 없고,

경기가 좋아지면 물가가 안정될 것이라는 것을 모를 수 없다는 말씀이다.


이치를 알면 결과를 알 수 있고, 결과인 현상을 보고 그 원인을 모를 수 없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무상(無常)과 무상의 성(性)은 등가이기 때문이다.


무상(無常)과 그 무상의 성(性)이 등가(等價)가 되려면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을 먼저 소멸해야만 된다.

변계소집성이 있으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계산하는 마음이 있고

그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계교(計較)가 함유됨으로 무상과 그 성이 등가일 수 없다. 예를 들면, 물이 오염되고 있을 때는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가 있기 때문에 무상과 그 성이 등가일 수 없다. 우선 오염의 원인을 제거하고 오염된 물을 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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