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내일이 한글날이다. 친북좌파들은 이날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기념할까? 어찌되었던 한반도에 태어나 어미로부터 듣고 배우는 첫 음의 찌찌와 맘마란 발음을 귀담아 들으며, 똘방 똘방 해지는 시기 5~6세가 되면 한글을 접하고, 깨우친다. “가, 갸, 거, 겨, 오, 요, 우, 유, 으, 이,” 이렇게 한글의 닿소리 홀소리를 듣고 보며 외우고 습득하며 큰다. 당시 세종께서 한글을 창제하고 기념한날인 한글날을 “가갸날” 이라고 불렀는데 그 뒤 거듭되는 반론과 중론 끝에 한글날로 부르게 됐다. 그러나 지난 친북좌파정권 10년은 한반도 역사를 송두리 채 아작 내는 모략 선동정권이었으며, 大韓의 역사는 한낮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으로 폄훼시켰다. 그러나 인류역사에서 보기 드문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해야 하며, 한민족의 자긍심을 갖는 10월 9일 한글날이 어떻게 “가갸날”에서 한글날로 변경 됐는지를 알아야 한다. 1926년 음력 9월29일(11월4일) “가갸날”선포(한글 반포 8회간=480돌) 1928년 “가갸날”을 “한글날”로 이름을 고침, 1931년 음력으로 기념해 오던 “한글날”을 양력 10월 29일로 정하여 기념함, 1934년 음 · 양력의 환산 방법을 그레고리오력으로 고쳐 10월 28일로 정하여 기념함, 1940년 “훈민정음” 원본의 발견으로 정통 11년 9월 상한이란 한글 반포의 날이 대강 밝혀졌으나 나라 안팎의 사정으로 기념식을 갖지 못합, 1945년 훈민정음 원본에 따라 1446년 10월 9일이 한글 반포의 날임을 확정함, 1946 한글 반포 500ef을 맞이하여 “한글날”을 공휴일로 정함, 1981년 “한글날” 기념식이 정부(서울시) 주관으로 바뀜(535돌) 1982년 “한글날” 기념식을 서울시에서 문화공보부 주관으로 함, 1990년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합, 그런데 내일로 닦아온 10월9일 한글날까지도 외곡 날조할 수 있는 從北者들이다. 그랬었기에 저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국민들은 결단을네렸다. 531만 표라는 어마어마한 표로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했고 172석의 한나라당을 지지했다 그러나 나락으로 처박힌 골수 친북 노무현은 정권인수는 뒷 전이였으며, 오히려 e지원의 저장디스크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원본데이터 디스크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측의 의도적 유출일 가능성이 있다는 한나라당 이진복의원이 지난 6일 국무총리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이는 참여정부 5년간의 대통령 통치기록을 담은 72테라바이트(TB) 분량의 238개 원보디스크가 사라진 것이다. 당시 사라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기록은 A4용지 236억장 분량 이를 쌓아놓으면 7천200Km 높이에 달한다고 한다. 써버를 도륙하고 뒤이어 반역모의로 정권전복을 목적으로 저항하는 지난 3개월여의 반역 난동 친북세력들에 멀쩡한 대낮에 천둥치는 소리를 내며, 밤이면 밝게 켜진 가로등 등불 밑에 “거짓 촛불”켜들고 술판을 벌리며, 거짓을 진실 이냥, 사실을 외곡하며, 어용언론을 총동원해 나라를 들 쑤셔댔던 자들이다. 이렇게 좌편향 수령사상에 심취해 있는 친북좌파들에 허구성 괴변속에 혹?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 기념일을 어버이수령님에 교시의 날이다. 라고 욱이지는 않을까? 아마도 모를 일이다. 삐딱선 타고 좌로 꺾인 목을 흔드는 좌향좌 인간들이여 언제나 사람 같은 사람이 되려는지 하늘은 아실까? 문득 생각이 난다.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 위로는 단 한사람만 섬기면 되지만, 아래로는 온 백성을 다스린다. 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한반도 아니 해방이후의 大韓의 역사를 보면 一人之下 萬人之上으로 성공한 예가 참으로 드물다는 데 있다. 萬人之上 백성을 잘 다스렸으나 소인배들의 권력다툼에 휩쓸리거나, 一人之下, 정권을 거머쥐는 데는 성공했으나 萬人之上 국민을 다독이고 이끄는 데에는 실패한 예가 비일비재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