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늘 푸를 것만 갖던 초록 빛 나뭇잎에 수줍은 새색시처럼 곱게 연지 곤지 찍고는 단풍잎 한잎 따 살포시 땅에 내려놓을 때 이며, 가을은 토실, 토실한 알밤이 가시 옷을 벗어 저치고 동내아이들을 부를 때이며, 가을은 겨울, 봄, 여름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종자의 씨앗을 머금어 지나는 바람결에 실려 보냄에 있다. 가을은 청군백군 나뉘어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할 때 이며, 들녘엔 머리 숙인 황금물결이 일렁이며, 풍년의 노래 가락이 들려오매있다. 가을의 끝자락은 집집마다 여인네들에 겨울김장 담그는 소리가 떠들썩할 때 이다. 이렇게 가을은 어김없이 찾아든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찾아들며, 누가 뭐라 해도 어김없이 몽땅 내어주는 게 가을이다. 이런 가을이 때론 기상이변으로 주춤거리기도 하고, 때론 아장 아장 간난아이 걸음마 배우 듯 띄뚱, 띄뚱 올 듯’ 말듯 , 그러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휙 지나 갈 때도 있지만, 그러나 가을은 언제나 같이 소리 없이 다가와 내 곁에 꼭 머물고 간다. 이렇게 만남 뒤엔 이별이 있고, 이별 뒤엔 만남이 있듯이 가을은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10년 세월은 부질없는 자들에 개 껌 씹는 세월 이였다 구요, 지은이 장재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