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향할 求心点은 어디인가?
民族中興의 役事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피로하여 잠시 쉬고 있을 뿐입니
다.
누대의 가난을 털고 잘 살아보자던 중흥의 역사가 궁정동 총성과 함께 멎은
지 이제 4반세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오래 쉬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 5천년, 가장 암울한 역사의 뒤 안을 박차고 일어선 인간, 살아서는
“내 무덤에 침을 배트라”던 朴正熙, 그는 죽어 민족의 제단에 몸 바치고 외칩
니다. "내 무덤을 딛고 다시 일어서라“고.....
빈궁과 地政學적 민족의 운명을 고민하며 진정으로 나라와 겨레를 사랑했던
인간 박정희는 45년 전 이미 민족이 나아갈 교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自助 自立 協同. 한 민족공동체가 그 시대에 부족함 없이 살아가는 데는 이
세 단어에 더 수식할 것이 무엇이 또 있었겠습니까.
英雄은 時代精神을 읽고 시대의 갈망을 바로 찾아 현실로 이루어내는 人物입
니다. 그가 다름 아닌 先驅者입니다.
<하인에게 영웅이 있을 수 없는 이유는 주인이 영웅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하인이 한갓 하인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는 헤겔의 영웅 관을 음미하면
서 오늘의 사회적 混沌상를 봅니다.
바로 어제 광복 60돌에, 우리는 협동의 교훈을 저버린 분렬의 난장판을 보았
습니다. 1945년 해방된 조국에 돌아 온 건국의 아버지 李承晩 박사의 귀국
제1성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의 의미가 더욱 강조되는 현실입니다.
한 민족공동체가 거센 세계화의 물결을 헤쳐 살아가기 위해서는 뭉쳐도 어려
운 터에 각자위심 갈갈이 찢기운다면 또다시 백 년 전 역사를 되풀이 할 수밖
에 없슬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이런 생각 가진 사람이 어디 나 혼자뿐
이겠습니까. 그래서 무덤 속의 박정희는 몇 번이고 외칩니다. “내 무덤을
딛고 다시 일어서라”고.....
고희를 살아오며 일제를 거쳐 8.15해방을 맞았고, 피비린 6.25동난을 겪었으며
, 베트남전을 체험했고, 석유에너지의 위력을 알았으며, 공산권 붕괴도 지켜보
았고, 이제 시간 거리개념이 없는 세계화 물결에 휩쓸리면서 한국이라는 나라
가 시대의 조류를 제대로 타고 잘 흘러가느냐를 걱정하게 됩니다.
外來와 傳統의 상극, 갈등 속에서 스스로 비극을 잉태하고 있던 정신풍토.
지나친 邪心으로 四色黨爭을 방불케 하던 정파의 극한대립.
의사당 亂入, 1일 1천 건의 데모사태를 몰고 온 정치과잉.
가자 北으로! 오라 南으로! 판문점으로! 향방을 잃어버린 國論破裂.
막대한 미국원조에도 불구하고 春窮조차 벗어나지 못한 民生苦 등
이것이 5.16혁명 당시의 사회상이었습니다. 이렇듯, 風前燈火였기에 혁명은
오히려 역사적 당위성을 인정받았습니다.
민주 헌정질서를 파괴할 수밖에 없는 혁명을 결코 찬양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박정희는 소위 청중민주주의(Audience-Democracy)논자들의 정치야바위 행위를
종식시키고 사실상의 민주주의 기초를 닦기 위해 구국일념으로 민족중흥의
기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대통령이 잘해서가 아니라 시대
여건이 그랬고 국민이 열심히 일한 덕분이라고..... 그러면 지금 우리 경제가 어
려운 것은 대통령은 잘 하는데 국민이 게을러서 그렇고, 또 북한이 저 지경에
이른 것도 지도자는 잘 하는데 주민이 못돼서 그런 것이냐? 감히 말합니다.
“당치않은 귀변 늘어놓지 말라”고....
당시 대표적 지성 함석헌선생은 “민주주의 질서를 유린하는 군사혁명은 비난
받아 마땅하나, 공산도배의 침략위협을 제거하고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
기 위해서는 5.16혁명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고 <思想界>에서 갈파 했습니다.
직업군인출신 박정희는 시급한 민생고 해결을 위해 당시 재무관료 김학렬 집을
드나들며 경제 과외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를 만나본 외국인사들 그리고
언론인들치고 그의 해박한 경제지식과 정확한 통계인용에 탄복하지 않은 사람
없었습니다.
그는 혁명 당시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를 집권 말기에는 1700달러 거의 30배나
끌어 올렸고, 기껏 광산물 텅그스텐을 비롯, 김 등 해산물을 몽땅 내다팔아야
3400만 달러이던 수출액을 逝去 2년 전 1977년에 100억 달러를 올리는 요새말
로 CEO대통령이었습니다. 한편, 소위 민주화세력이라 하는 90년대 이후 집권자
들, 남이 차려 놓은 밥상에 둘러앉아 입맛 없다는 방정이나 떨지 말았으면 합니
다.
필자 같은 좁은 안목으로 어찌 시대의 거인 박정희를 함부로 론할 수 있겠습니
까. 다만, 그가 남긴 民族中興이라는 위대한 유산 한 조각을 들여다볼 뿐입니다.
65년 존슨 대통령 방한시 뭘 도와 줄까에 박 대통령은 과학기술연구소 하나 갖
는게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존슨과 박정희가 합자해서 세운 한국과학기술연구
소(KIST), 지금의 한국과학원이 경제발전의 밀알이되었습니다. 다른 어느 누가
이런 생각을 했겠습니까.
포항제철은 연산 40만톤 이상은 안된다며 차관국들이 거부했지만 조상의 피의
댓가 對日 請求權資金 사용을 강행하여 오늘날 연산 2400만톤의 세계굴지의
산업의 쌀 생산공장을 지었습니다. 이 또한 그 말고 누가 감히 20년 30년 앞을
내다보고 포항 앞바다를 메웠겠습니까. 어디 그 뿐입니까. 소위 먹물들은 고속
도로 건설을 얼마나 비웃었습니까. 산에 나무가 거져 자란 것이 아닙니다. 산림
녹화사업은 유엔이 인정하는 세계적 모범입니다.
몇 날 몇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해도 다 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선대 시인 李殷
相 선생의 다음과 같은 인물평으로 이 글을 가름하면서 단 한 가지 감히 제안하
고자 합니다.
**10.26을 잊지말고 뜻 있는 국민 모두 동작동 국립묘지 박정희대통령 유택을
방문하자고 말입니다. 김대중이 약속했던 박정희기념관 건립은 물거품되고
말았습니다. 원래 그 자의 거짓말이야 식은 죽 먹기이니까요
.
----<박정희는 세종과 이충무공을 합해놓은 인물로 후세 史家들이 평가할 것이
다. 世宗은 성군이다. 한글창제를 비롯 內治 外治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중략--재위 32년 오랜 집권에서 그 같은 업적이 가능했다. 그때 우리나라 인구
는 약 1천만 명 내외로 극소수 양반층 말고 많은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렸다.
정치란 무엇인가! 백성들에게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해 주는 것, 이것이 곧 정치
의 근본이다. 세종은 백성들의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 해주지 못했다.
李忠武公은 성웅임이 분명하다. 적과 맞서 싸워서 이긴 장수이며 자기 몸을
죽임으로써 나라를 구했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백번 싸워 백번 다 이기는
것
이 최상은 아니다. 싸우지 아니하고 이기는 것이 으뜸이라 했다. 오늘 南北韓
체제경쟁에서 박정희는 북한의 김일성을 싸우지 않고 이긴 사람이다. 그는
민족의 正統性을 확립할 수 있는 경제와 문화의 기초를 닦아 놓았으며 한국민
족을 世界史의 중심에 우뚝 세워 놓았다.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
노산 이은상
지금 와 보면 이 얼마나 정곡을 찌른 말인가?
2005/ 8/16 華山 /2008. 8. 24. 재록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