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블레어하우스 무대에 등장한 制服과 私服들--2--
트루먼 대통령이 와싱턴에 도착했을 때 애치슨 이외에 루이스 존슨 국방장관 제임즈 웨브 국무차관이 공항에
출영했다.
3인과 대통령이 차에 동승한 순간부터 어떻게할 것인가는 알고들 있었다.
"좋아, 놈들을 해치우자"고 트루먼은 말했다.
존슨은 곧바로 트루먼에 동의했다.
웨브는 대통령에 국무성이 정리한 몇가지 원안에 주목해 줄것을 당부했다.
한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단편적 보고에 대한 당면 대응으로 다양한 권고안이 작성되어 있었다.
단편 보고는 나쁜상황을 전하는 것들뿐이었다.
대통령에 요청한 국무성 대처방안들은 다음과 같다.
맥아더장군에의 권한 부여와 더불어.....
한국군이 필요로하는 무기제공,
재한 미국인 철수 엄호에 필요한 미 해공군의 투입 및 이를 위한 한국내 항만의 확보작전이었다.
동시에 대통령의 금후 결정에 따라 합동참모본부는 북한군 저지에 필요한 군사계획을 수립하고 제7함대를
대만해협으로 이동시켜 모택동의 대만 공격을 저지한다. 동시에 장개석 국부군의 중국본토 침공작전도
사전 억제한다.
그리고, 미국은 베트남의 프랑스군을 지원하는 군사계획을 개시하고 버마와 태국에 군사원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것 등이었다.
대통령이 당시 쓰고 있던 블레어하우스에 전용차가 도착하였을 때 대통령과 단 둘이된 웨브는 잠간사이 또
한가지 제안을 했다.
와싱턴은 북한의 침공문제를 유엔에 가져갈 의향으로 국무성으로서는 대만과 한국과를 분리시킬 결정을
겁토해야 할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날 38도선이라는 한줄기 라인이 밟히지 않았더라도 라인은 화실히 희미해져 가고 있으며 그것은 반드시
한국에 국한하지 않았다.
2차세계대전 직후 한동안 전쟁에 휩쓸려온 구질서의 붕괴와 그밖의 혼란에 대처하려고 한 와싱턴의 정책입안자가
직면한 주요과제는 아마도 다음 두 가지였을 것이다.
첫째, 유럽에서 소련의 팽창주의에 선을 긋는 것.
가장 긴박하고 명백한 과제였자만 이것은 탁월한 기량과 비젼을 가지고 실현시켰다.
하지만 불행히도 또 다른 하나의 커다란 과제를 불공정하게 희생시킨 것이 있다.
긴급성이나 영향력의 관점에서 중요성은 다소 덜한 과제 즉, 미국의 최대 동맹제국의 植民時代 종언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이다.
이들 국가들은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지역에서 정치적 때로는 군사적으로 독립을 희구하는 세력의 도전을
받고 있었다. 동맹국의 구식민지를 둘러싼 문제에 관해서 와싱턴의 자세는 현저히 일관성을 잃고 있었다.
전연 다른 두 종류의 공산주의가 또 전혀 다른 위협을 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유럽에서 赤軍이 밀어부치는 완고한 공산주의와 제3세계에서 부르짖고 있는 변형공산주의 두 유형이었다.
후자는 반식민지세력의 편리한 도구가 되었던 것이다.
인도차이나와 같이 와싱턴으로 하여금 지원요청을 거부당한 후 모스크바에 의존하는 해방식민지국들이 늘어나
고 말았다.
북한의 6.25남침은 누가 뭐래도 지금까지 침략이라고 불려온 것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는 침략이었음에 반해
인도차이나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미국은 인도차이나를 한국 및 유럽의 공산주의 세력과의 대결과 연결시키고
있었지만 그런 인도차이나는 순저한 식민지전쟁이었다.
그날 밤 제복의 군 수뇌와 사복의 문관수뇌들 전원이 블레어하우스에서 회식을 했다.
식후 침공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몇가지 사실들이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북괴군이 어디까지 침투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으니 明明白白한 것은 대규모 침공이라는 것과 한국군은 고전하고 있고 자력으로는 버텨낼 수없다는 것등이었다.
오늘은 이만......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