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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휴가는 허위날조의 극치

  • No : 67276
  • 작성자 : 이법철
  • 작성일 : 2007-09-18 21:51:09


'화려한 휴가'는 허위날조의 극치


"권력에 환장한 영·호남의 정치인들이 없었다면
광주사태는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것"



이법철( http://jabg.net)



작금에 경향의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화 ‘화려한 휴가’는 우리 민족의 비극인 ‘5,18 광주사태’를 영화화 한 것이다. 영화제작자는 사마천(司馬遷)같이 궁형(宮刑)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한 역사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영화제작에 나선것이 아닌 상혼(商魂)과 좌파정치인과 부화뇌동(附和雷同)을 한 것 같이 광주사태에 대하여 왜곡 날조를 했다는 설이 항간에 지배적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을 상기하면서 나는 8월13일 오후 7시 종로 3가에 있는 단성사 10관(館)에서 문제의 화려한 휴가를 관람했다. 객석은 대부분 텅 비어 있고, 내 옆자리에는 40대초반의 수녀 두 명이 앉아 있었다. 수녀들은 영화를 보면서 영화사의 의도대로, 군인들이 무자비하게 쏘아대는 총탄에 죽어가는 광주시민들을 보며 연신 훌쩍이고, 국군에게 분노를 보이고 있었다.

영화 ‘화려한 휴가’는 역사 왜곡과 허위날조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극(劇)은 전 공수부대 대령이라는 자의 입을 빌어 “국군은 폭도요, 반란군”이라고 매도하고 있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식이 아닌가? 무장을 하여 국군을 향해 발포하는 소위 시민군은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회복을 외치는 무죄한 자들로 각색되어 있었다. 역사는 승리자의 마음대로요, 색안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더니 헛된 말이 아닌 것 같았다. 영화에서는 시종, 국군은 민주를 외치는 광주시민을 잔인무도하게 무차별 난사로 죽이는 악(惡)이요, 국군을 죽이는 시민군은 선(善)이었다. 해방이후 극장가에 국군과 시민간의 이간질을 붙이는 영화로서 화려한 휴가만한 영화는 전무할 것 같았다.

영화는 광주시민이 왜 무장봉기를 해야 했고, 국군이 왜 중무장하여 광주에 투입되어야 했는가에 대해서는 설명이 태부족이다. 이 세상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 법이다. 광주의 시민군이 무석(無石), 무화염병(無火焰甁), 무각목(無角木) 등으로 간디의 무저항적 데모를 했어도 국군은 진압봉으로 구타하며 마침내 발포를 했을까? 영화의 도처에서 국군은 오직 민주의 구호를 외치는 무고한 시민들에게 잔인무도하게 진압봉으로 시민을 구타하고, 인명살상을 위한 발포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당시상황을 전혀 목도하지 못한 사람들과 후생(後生)들은 오직 국군에게 억울하게 죽어가는 광주시민을 동정할뿐, 국군은 저주하고 증오할 살인마집단의 대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영화사가 국군의 위상을 모독하는 뜻은 나변에 있을까? 누구를 위한 음모인가? 김정일세습독재를 지지하기 위해 광분하는 한국내 좌익들을 향한 추파인가, 좌파 정치인들이 국군을 대량감군하기 위해 돕는 서곡(序曲)인가?

국군과 시민군의 총성이 광주의 하늘을 진동할 때, 나는 조계종 총무원의 국장(局長)으로서 광주사태의 진상을 알기 위해 총무원장에게 출장신청을 했다. 나의 목적은 광주사태의 진상을 목도하기 위해서였다. 총무원은 기사가 있는 차량 1대와 나 외에 승려 2명의 광주행을 허가했다. 나 외의 사람들은 익명을 요청하기에 여기서 거론하지 않는다. 나는 육본으로 가서 광주행에 대해 협조를 구했다. 육본은 광주에서 국군과 시민군의 상호교전을 막기 위해 시민군의 무기회수를 돕는다는 차원에서 협조를 해주었다. 광주로 가는 호남고속도로는 정읍시에서 장성으로 넘어가는 터널에서 군용트럭 2대에 의해 봉쇄되어 있었다. 터널을 사이로 하여 각기 다른 사단(師團)의 병력이 지키고 있었다. 나는 정읍을 관장하고 있는 전주 35사단장을 만나 협조를 받았다. 헌병중위의 안내로 정읍터널을 통과했다. 그 때 정읍터널을 통과할 때 미국의 CBS기자들이 함께 통과했다. 터널을 지나 장성에 이르니 그곳에는 31사단의 병력이 고속도로 주변의 숲속에 총검을 한 채 도처에 은신해 있었다. 나는 다시 31사단의 헌병장교의 안내로 상무대 사령관실로 안내되었다. 사령관실에 들어가니 눈이 부리부리 한 호상(虎相)의 소장(小將)이 반기며 손을 잡았다. 그는 갓 부임했다는 소준열 장군이었다. 사령관실에는 참모장이라는 준장(准將)과 보안사의 준장이 대령급 장교들과 부산하게 움직였다. 소장군은 나에게 “전투에는 시가전이 매우 어렵다, 그러나 나는 베트남 시가전의 경험이 있다. 광주사태는 진압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사령관실을 나오는데 소장군이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우리 아버지도 스님이셨습니다.” 나는 놀라워 “어느 곳의 스님입니까?”고 물었다. 그는 쾌활하게 “구례 화엄사의 스님이었지요”라고 말했다. 소장군은 시민군의 무기회수와 국군과의 교전을 막아달라고 간절히 말했다.-삽화(揷話)로, 훗날, 광주사태를 군사적으로 수습한 소장군은 말년에 화엄사의 연기암(緣起庵)에서 출가위승하듯이 하여 참회와 업장소멸의 기도를 하다가 고승이 입적하듯이 입적했다.-

소장군의 사령관실에서 나오니 하늘에서는 헬기가 무수히 오르내리고, 5월의 잔디밭에는 국방의 의무를 하러간 병사들이 적국(敵國)의 총탄이 아닌 자국(自國) 시민군의 총탄에 의해 무참히 죽어 관속에 들어가지도 못한채 비오는 잔디밭에 판초우의아래 즐비하게 누워 있었다. 독자여 상상해보시라, 빗속의 잔디밭에 피흘려 죽어있는 젊은 국군들을..... 그들은 국방의 의무에 채 피워보지 못한 꽃으로 광풍(狂風)에 꽃이 지듯이 죽어 있었다.

광주에는 국군이나 시민군 모두 무탄무석(無彈無石), 무화염병(無火焰甁)의 간디식 무저항의 대결었다면 양측 모두 사상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국군과 시민군은 교전을 하고 말았다. 내가 보기에는 상호교전은 누구의 시나리오가 아닌 양측 모두 상황이 악화되자 제살기위해 총성을 울리고만 양비론(兩非論)이 맞는 것 같았다. 광주사태가 아니더라도 서울시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부 데모는 미국의 백악관앞 길에서 데모를 하는 데모대와는 천지차이다. 한국의 데모는 전시상황을 연상하는 극렬 데모이지 않는가.

영화에서는 국방의 의무를 하러간 국군들의 주검에 대해서는 조명하지 않았다. 나는 비내리는 잔디밭 판초우의에 덥혀진 죽은 국군들을 위해 기도하고, 이어 국군통합병원을 찾았다. 병원에는 시민군의 총탄에 맞은 국군들이 고통속에 신음하고 있었다. 엽구리를 관통당해 죽어가는 어느 젊은 장교는 말을 못하고 어렵게 내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나는 버스가 불타는 시가지를 걸었다. 경찰이 도망친 파출소도 찾아 보았다. 도청앞에 상무관을 찾으니 하얀 천으로 덮힌 관들이 국군의 주검보다 더 많이 누워 있었다. 관앞에는 망자의 사진이 있었고, 향연(香煙)속에 망자를 부르는 호곡소리가 상무관을 넘쳤다. 거리에는 시민수습위원회의 띠를 멘 시민군들이 총을 메고 지프차에 타고 부산하게 오갔다.

광주거리의 도처에는 벽보의 대자보(大字報)가 시민군을 독려하고 있었다. 대자보는 하얀 대형종이에 검은 매직 글씨로 광주시민에게 결사투쟁을 하자는 선동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대자보에 강조되는 부분에는 붉은 매직 글씨로 “미 7함대의 항공모함이 광주시민을 구원하기 위해 부산항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서울과 부산, 대구, 등의 전국의 도시의 시민이 무장봉기하여 광주를 지원하기 위해 곧 도착할 것이니 조금만 참고 결사투쟁하자는 선동이었다. 도대체 누가, 미국의 항공모함의 병력이 광주시민을 구원하기 위해 출동했다고 하며, 전국의 도시에서 무장시민이 광주시민을 구원하기 위해 출동했다는 선동을 시작했을까? 이제와서 생각하면 허망한 새빨간 거짓말로 시민군의 결사항전을 독려하는 것이었다. 시민군을 주검으로 내모는 세력은 어떤 세력이었을까? 진실한 민주화 세력이었을까? 광주사태에 북한에서 밀파된 북한군의 공작이었을까? 아니면 정권을 잡으려고 환장한 그 지역의 정치인들의 배후 선전선동이었을까? 순진한 민초들의 시민군은 피흘려 죽어가며 구원의 미군을 기다렸고, 각지의 무장봉기군들이 지원해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의 바램대로 전국적 무장봉기가 현실화 되었다면, 대한민국은 내전과 함께 김정일이 무혈입성하는 호기(好機)가 되었을 것이다. 시민군은 무장을 하여 버스와 트럭에 탑승하여 교도소를 해방하고, 전남의 시군읍(市郡邑)으로 진출하여 무장봉기를 시도하려 했다. 바람에 번져가는 들불을 막듯이 국군은 확산되어가려는 무장봉기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광주사태를 목도하면서 여자의 선전선동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절감했다. 동서 고금을 통하여 데모와 폭동의 발화점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이 여자이다. 일제시대의 광주학생 사건도 한국여학생이 못된 일본 학생들에게 당했다는 소식이 한국학생들을 분기(奮起)하게 만들었다. 일본 동경의 데모대가 폭도로 돌변하여 일본국회로 난입한 사건이 있었다. 폭도들은 데모대속의 여대생을 죽이고서는 책임을 경찰에게 전가했다. 그것을 선전선동으로 데모대는 폭도로 돌변하여 국회의사당을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광주사태에도 여자는 시민군의 분기에 이용되었다. 총을 멘 시민군의 호위속에 지프차를 타고 선전선동의 방송을 하던 여자가 광주시내를 돌고 돌면서, “공수부대원이 대검으로 임산부의 배를 난자하고, 유방을 도려내었다”는 선전선동을 했다. 이러한 선전선동은 광주시민을 분기하게 만들었다. 화려한 휴가의 영화속에서는 대학병원의 간호사가 시민군의 호위속에 지프차에 탑승하여 마이크를 잡고 광주시민의 동참을 호소하며 다닌다. 그것은 허위요, 날조이다. 진짜 선전선동의 방송을 하던 무서운 여자는 간호사가 아니었다.

영화속에는 신부가 도청에서 도청을 사수하려는 시민군들과 생사를 함께 하여 국군을 향해 발포하기 위해 총기를 받아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허구요, 날조의 극치이다. 당시 도청에는 시민군에게 독려를 하는 신부와 승려가 있었다. 신부중에는 자신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자도 있지만, 세계의 절대 권력인 바티칸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자도 있고, 해방신학에 심취하여 민초들과 정부간에 피흘리는 쟁투를 하게하는 신부도 있다. 한국에는 신부가 장관직의 벼슬에 올라 공산주의자요, 세습독재자인 김정일을 위해 헌신하는 것 같은 자도 있다. 광주사태에도 해방신학(解放神學)을 실천하는 듯한 신부의 활동을 볼 수 있었고, 해방신학의 아류(亞流0같은 해방불학(解放佛學)을 실천하는 듯한 승려의 준동도 보였다. 나는 아직도 그 승려의 정체를 알 수 없다. 그 승려는 승복을 입고서 배의 허리 띠에 권총을 꼽고, 등 뒤의 띠에도 권총을 소지하고는 시민군과 생사를 함께 하여 국군에 맞서 싸울 것같이 선동하고,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국군의 도청진입으로 시민군이 몰사하다시피 되어 광주사태가 끝난 후, 나는 서울의 종각 근처의 골목에서 우연히 그 승려를 길에서 마주쳤다. 그는 시민군을 선전선동하고는 광주를 빠져나와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배를 보았다. 권총은 없었다. 그는 사태의 현장에서 선동하고 빠지는 게릴라인 것 같았다. 광주사태 당시 일부 신부, 승려 등은 국군과 시민군과의 교전을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보다 국군과의 일전불사(一戰不辭)의 교전을 부추기는 자도 없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민초들의 시민군은 죽었지만, 신부와 승려들은 죽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자유월남을 패망하게 한 신부와 승려들이 제살기위해 재빨리 프랑스로 줄행랑친 역사를 잊어서는 안된다.

광주사태를 회상하는 지금에 이르러서 절감되는 것은 광주사태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배후에는 권력을 잡기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치인들의 야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광주사태에 목숨을 바친 시민군들은 대부분 민초요, 민초의 자녀들이었다. 특히 도청사수에서 장렬히 죽어간 시민군은 가난하고 소외받는 민초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광주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국군의 병사들도 국방의무를 필하기 위해 복무하는 민초의 아들들이었다. 시민군과 국군은 광주사태의 상황이 아니었으면 손을 잡고 술잔을 나누며 친구요, 동지가 될 수 있는 민초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민초들은 양측에서 서로 저주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총을 난사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민초들의 배후에는 권력을 잡기위한 정치인들의 선전선동과 음모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순수한 광주의 애국청년 등에게 무장봉기를 하게 하는 선전선동의 지적기원(知的起源)은 정권에 광분한 전라도 정치인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국군의 이름으로 무장탄압에 이르게 한 배경에도 정권에 광분한 정치인들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민초들은 정치인들의 음모요, 농단으로 서로를 죽였다고 할 수 있다.

광주사태시 선전선동을 하는 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 사람 다 죽이려고 왔다.” 그 선전선동은 진입보 하여, “경상도 사람들이 전라도 사람들 다 죽이러 왔다,”로 변해갔다. 영, 호남의 이간질이 극치에 이른 것이다. 광주사태가 끝난 후, 전라도 정치인들은 광주사태를 자신들의 출세를 위해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광분하다시피 했다. 시, 군, 읍(市,郡,邑) 심지어는 면(面) 단위까지 광주사태를 상기시키며 지역감정의 골을 파고, 경상도 정치인에게 표를 주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외쳐대었다. 전라도 정치인들의 지역감정 불붙이기에 뒤질세라 경상도 역시 지역감정은 깊어만 갔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운의 기회로 삼는다는 속담처럼 광주사태의 비극을 발판으로 하여 수많은 정치인이 국회의원이 탄생하였고, 대통령과 노벨상을 받는 행운까지 안았다. 나는 권력에 환장한 영,호남의 정치인들이 없었다면 광주사태는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광주사태의 비극을 발판으로 영남의 정치인들이 권부를 장악하였고, 이어서 호남의 정치인들이 권부를 장악하였다. 영남이나 호남이나 권부를 장악했지만 결국은 개인의 부귀영달과 사복(私腹)을 챙기는 것외에 대한민국 발전에 무슨 역사적 도움이 되었는가?

광주사태를 발판으로 권부를 장악했던 정치인은 자신의 행악(行惡)에 대해 회개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이제는 한국사회 전체에 광주사태와 같은 운동을 야기 시키려고 하고 있는듯이 보인다. 이번에는 군부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쟁취하기 위해서 시민군에게 국군과의 교전을 부추기는 차원이 아니다. 역사를 되풀이 하려는 듯이, 해방직후의 좌, 우익의 대립시대를 연출하여 내전(內戰)을 일으키려는 듯이 보인다. 국민 대다수가 붉은 상의를 입고 일치단결하여 “아∼대한민국!”을 외치던 시절이 얹그제인데, 그 대한민국을 실종시키는 공작의 첫 단초인 좌우익의 대립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대한민국이 정통성이 있느냐, 세습독재인 김일성왕조가 정통성이 있느냐에 국론은 나날히 분열되어가고 있다. 국론을 분열시키는 자는 남북한에 햇볕정책이라는 주술을 걸고 있다. 남한에는 조국통일을 위해 햇볕정책으로 철의 장막같은 김정일의 옷을 벗기우겠다는 괴변(怪辯)을 늘어놓고, 북한에는 조국통일을 위해 민족의 태양이라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햇볕정책으로 북한체제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짜 그의 속셈은 나변에 있을까? 광주사태를 발판으로 정권을 잡듯이, 햇볕정책으로 자신이 통일된 한반도의 국가원수로 등극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을 실종시키고 한반도를 김정일에게 헌납하겠다는 것인가? 그의 선전선동으로 대한민국은 총성없는 내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민주화를 위해서 주검을 당했건, 조국을 위해서 주검을 당했건 너무도 빨리 억울하게 죽은 것은 슬픈 것이다. 나는 망월동 묘역에 누워있는 애국지사나 광주사태에서의 주검으로 국립묘지에 누워있는 애국장병들은 모두 조국을 위해 죽은 애국자요, 호국영령들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처럼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면 그들의 탄식이 슬프게 들려올 것만 같다. 그들의 슬픈 광주사태의 이야기를 왜곡, 날조, 영화화 하여 세상에 퍼뜨리는 행위는 혹세무민(惑世誣民)과 무엇이 다를까? ‘화려한 휴가’로 국민에게 국군에 대하여 혐오감, 내지 증오심과 적대감과 이간질을 초래하려는 복심(腹心)은 나변에 있는가? 좌파정치인들이 주장하는‘국군의 ’대량감군’을 재촉하는 서곡(序曲)인가? 북핵(北核)이 있으므로 동맹국인 미국의 핵(核 ) 보호 우산은 이제 필요 없다며 인민군에게 의지하려는 좌파 정치인들의 국군관(國軍觀)과 궤(軌)를 함께 하는 것일까?

우리 역사를 보면 어느 때고 민초들은 기아(飢餓)와 천대속에도 국난(國亂)이 일어나면 요원의 들불처럼 봉기하여 나라를 구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개인의 부귀영화를 위해 조국을 팔아먹는 행위를 무수히 자행하고, 난(亂)을 일으키어 민초들을 떼주검으로 내몰은 것이 역사가 증명한다. 이제 민초들은 정권욕으로 민초들을 선동하여 지역감정과 내전을 일으키는 정치인들의 주술에서 확연히 깨어나 해탈하여야 한다. 영호남이 친구가 되고 동지가 되어 오직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국가임을 확신하며, 하루속히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조국통일을 성취하여 저 북한의 세습독재에 고통받는 북한동포들을 해방하여 자유민주화시대로 영입하는 사명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 햇볕정책은 조국통일을 앞 당기는 것이 아닌 세습독재의 북한과 대한민국과의 분단을 영구 고착화 하는 음모임을 깨닫고, 세습독재에 충성하는 햇볕정책론자들의 정치활동을 원천 봉쇄하고, 남북의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국민 1인당 지엔피 4만불의 시대를 하루속히 열어나가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는 경세(警世)의 목탁을 치면서, 상혼(商魂)으로 국군과 국민간에 이간질을 붙이고, 호국영령들을 욕(辱.)보이는 자들에게 대성질타(大聲叱咤)를 하며,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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