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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과 금욕 : 왕과 상인들의 불교

  • No : 67280
  • 작성자 : 루이스 랭카스터
  • 작성일 : 2008-04-01 22:46:38

보살과 금욕 : 왕과 상인들의 불교
 
루이스 랭카스터
엄성민 옮김
(고려대 철학과 박사과정)

불교의 다양한 전통들을 어떤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불교는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천 오백년간 널리 전파되었다. 이 방대하고 이질적인 권역 안에서 어떠한 단체나 개인도 불교 전체를 대표하는 전통이 될 수 없다. 심지어 승가 전통들마저도 수세기에 걸쳐서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 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 자명한 사실들이 욕망과 수행이라는 본 국제회의 주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금욕’이라는 것이 깨달음의 필수 조건인가? 이 문제가 바로 국제 회의기간 동안 우리가 논의해야할 주제이다. 여러 발표에 의해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긴 하겠지만, 이 주제에 관한 해답은 쉽게 도출되지 않을 것이다. 금욕은 수행의 중심에 위치할 수도, 혹은 불교 전통의 다양한 발전 사이에서 주변 어디쯤에 위치될 수도 있다.

파알리 경전에 나타난 금욕에 관한 서술은 그들 자신이 직접 제정한 율장(律藏, Vinaya)을 실천하는 승려의 생각을 반영한다. 그러나 금욕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다양한 경구를 통해 우리는 이 문제가 얼마나 지속적으로 화제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수행에 있어서 욕망에 관련된 이야기들은 여러 불교 경전에서 찾을 수 있다. 한 가지 유명한 이야기는 여성에게 과도하게 집착했던 난다의 일화이다. 그는 여성보다도 훨씬 매력적인 천상의 여신들과의 삶을 약속받고 한시적으로 금욕적으로 살게 된다. 그 이후에 수행이 깊어져서 정신적 상태가 성숙해진 후에 그는 그 댓가를 거부한다.

또 다른 파알리 문헌에는 ‘출가한 재가자(在家者)’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묘사하고 있다. 즉, 재가자는 세속을 떠나 고행하는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가족이라는 굴레가 그를 억압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석가모니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난다까에게 설법을 듣는 비구니들은 전생의 부인들이었다. 이시싱아(Isisinga)의 전 부인은 승려의 삶을 포기하고 환속하라고 그를 유혹한다. 많은 일화들에서 출가자의 전 부인이나 가족이 그로 하여금 종교적인 출가 생활을 포기하도록 종용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포시야(Posiya) 장로의 아내는 그를 찾아와 환속을 간청하였지만 랏타팔라(羅托渤羅, Ratthapala)장로는 그의 전 부인들을 ‘자매들’이라고 호칭하여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또한 비라(Vira)장로는 아들이 태어나자 집을 떠났는데 그의 아내가 그를 말렸으며, 승가라마(僧伽羅摩, Sabbakama) 장로의 장인은 그를 환속시키기 위해 딸과 가족들까지 동원하였다.

이러한 모든 일화들은 많은 수의 승려들이 가정을 꾸려나가던 재가자였으며, 출가라는 행위가 그렇게 가볍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기독교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들이 나타난다. 11세기의 교황 그레고리 7세는 여전히 많은 성직자들이 결혼생활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마침내 그는 서기 1074년 이후 성직을 수임하려 하는 사람은 독신을 맹세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아내라는 굴레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선언하였다. 500년 후 트렌트 회의에서도 이 주제는 여전히 화제였다. 결국 회의는 ‘욕망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영적인 계발도 없다’는 견지에서 독신생활과 처녀성이 결혼보다 우위에 있다고 결론 내렸다.

오늘날 인도와 스리랑카의 금욕생활을 살펴보면 심지어 같은 힌두교 안에서도 종교 지도자들간의 금욕에 대한 언급이 서로 상충됨을 알 수 있다. 스리 스와미 시바난다(Sri Swami Sivananda)는 금욕이 정신적인 수행에 필요조건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스리 스와미 치다난다(Sri Swami Chidananda)는 사람이 네 번째 단계의 구도자(sannyasin)가 되기 위해서는 금욕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스리랑카의 승려 헤네폴라 구나라타나(Henepola Gunaratana)는 금욕하지 않으면 절대로 깨닫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승불교 전통으로 오게 되면 금욕의 문제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난다. 대승경전에서는 ‘재가보살(在家菩薩, Householder Bodhisattva)’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면서 높이 칭송받는다. 기원후 2 세기경에 한역된 경전들에서 이미 세속적 삶에 대한 입장의 변화가 나타난다. 소품반야경(小品般若經, Astasahasrikaprajnaparamita-sutra)에서 그러한 보살에 대한 묘사와 찬양을 발견할 수 있다. 재가보살은 자신의 깨달음을 훼손하지 않고서도 모든 감각적 쾌락을 즐길 수 있다고 전해지며, 불교의 가르침을 깊이 수행하였으나 일상의 안락함과 부를 향유하는 부유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경전 속에서 재가보살의 삶이 긍정적인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 근거로 재가 보살은 부와 감각적인 쾌락에 집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집착함이 없다면 승가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삶의 방식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재가 보살의 등장은 전혀 새로운 불교의 장을 열었다. 대승 이전의 파알리 경전에서도 아나타핀다카(給孤獨, Anathapindaka)와 같은 유복한 지지자들을 볼 수 있다. 그는 승가에 대한 헌신으로 내생의 보답을 약속받았으나, 자신을 위대한 스승으로 여기지는 않았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대승경전에서는 유복한 세속인이었던 유마(維摩, Vimalakirti)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방문하기 위해 보내졌던 붓다의 어떤 제자들보다 훨씬 지혜롭다는 점에서 아나타핀다카와 구분된다. 이 점에서 그는 재가 보살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재가 보살에 관심을 가졌는가? 불교가 인도 아대륙(亞大陸)에서 중앙아시아로 전파된 이면에는 상인 집단의 후원이 있었다. 그들은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상로(商路) 상의 작은 오아시스에 세워진 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졌다. 이들은 어떤 경우에는 상인이자 그 도시의 지배자로서 부와 권력을 동시에 소유하기도 하였다. 이 전문 상인들 중의 일부는 중국의 북부와 동부에서 건너온 유목집단의 일원이 있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는 기반이 되었던 집단이 바로 이들이다. 끊임없는 충돌과 권력의 압박에 지친 파르티아인을 비롯한 여타의 사람들은 종교적 삶에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되었다. 우리는 이들이 중국으로 건너와서 번역한 경전들이 중국 불교경전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세속’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특정한 부류의 상인을 지칭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것이 불교가 사회에서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상인들에게 삶을 향유하면서도 여전히 깨달음을 추구하는 재가 보살의 개념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반야바라밀경(般若波羅蜜經, Prajnaparamita-sutra)의 경우에도 재가 보살과 승려를 동일선상에 놓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후기 한역 경전인 대보적경(大寶積經, Maharatnakuta-sutra)에서는 재가 보살에 대한 보다 발전된 개념을 볼 수 있는데, 이 경 ‘지혜의 칼’ 품에서 문수사리(文殊師利, Manjusri) 보살이 자신에게 세속적인 삶을 버리라는 하는 자를 내칠 것이라고 말하여 청중들을 놀라게 한다. 그 근거는 만약 세속적인 삶과 출가한 삶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들이 진실로 부처의 가르침을 이해하였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수사리 보살이 말하였다.

    “만약 당신이 승복(僧服)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세속적인 삶을 떠났다고 말하겠습니다.”

같은 경전에서 계속하여 권유의 가르침과 금지의 가르침에 대해 상술한다. 금지의 가르침은 열등하고 성문(聲門, Sravaka)에 속해져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 보살은 권유하며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행위라도 하는 존재이다. 권유는 어떤 이들에게는 금욕을 깨뜨리는 형식으로 적용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부처의 전생에 범행자(梵行者, brahmacarin)의 삶을 영위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가 여자와 깊은 사랑에 빠져 있다면, 그 사랑을 거부하는 행위는 그녀에게 크나큰 고통을 줄 것이다.

이를 알기에 그는 그의 수행적 삶을 떠나와 그녀와 결혼한다. 그리고 12년 후에 그녀가 결혼에 얽매이지 않는 지혜의 단계에 도달하자 그는 다시 수행자로 돌아간다. 경전은 그가 그녀를 절망에서 구해내었기에 좋은 업을 쌓아서 끝없는 고통에서 벗어났음을 말하고 있다. 전생담(前生譚, Jataka)의 일반적인 형태가 그렇듯이, 부처는 청중에게 그가 바로 전생의 자신이며, 그녀는 현생의 전 부인이었던 야소다라(耶輸陀羅, Yasodhara) 공주임을 밝힌다.

보살은 중생들의 깨달음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거나 일견 윤리적 덕목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행위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러한 행위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인식되는 순간, 그는 즉시 그 행위들을 멈춘다. 경전은 보살이 중생을 끌어안기 위해서 요구되어지는 어떠한 행위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동시에 그는 중생을 내치거나 고통속에 내버려 둘 수 있는 어떠한 행위나 가르침에 대해서는 경계하여야 한다. 성적 욕망에 관한 계율을 파하는 것이 증오를 일으키거나 자비를 행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작은 죄과였다.

이상의 전거를 기반으로, 우리는 대승불교 전통이 종종 세속적 인간으로서 나타나는 보살이라는 이상적인 역할 모델을 확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유마경에서 보여지듯 중앙아시아의 상인들이 그들 자신을 재가 보살로 여길 무렵, 중국으로 건너간 불교는 새로운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우선 당시 한(漢) 왕조는 중앙아시아와는 달리 상인계층을 상위에 두지 않았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불교가 중국의 외부에서 유입된 상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안에, 불교는 중국에 있어서 주변집단일 뿐이었다. 따라서 중국 안에서 지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수 십년 간 장안(長安)으로 경전이 유입되고 승려가 정착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지원한 이들은 중앙아시아의 상인들이었다.

한 왕조가 몰락하고 북중국을 유목민족이 점령하였을 때, 중국 불교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북 중국을 점령한 이민족의 지배자들이 재가 보살의 이상을 부활시켰던 것이다. 다만, ‘세속’이라는 말은 그들의 지위를 형용하기에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그들 자신을 ‘고귀한 보살(Royal Bodhisattva)'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우리는 재가 보살을 염두에 둔 많은 북위(北魏)시대의 예술품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세속인은 상인들이 아니라 유목민 제국의 왕족들이었다. 윈강 석굴에 나타난 미륵상들은 왕족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불교에 새로운 후원자로 왕국의 왕족들이 등장하였고, 이들은 스스로 보살이 되고 싶어 했다.

불교에서 왕들의 역할은 너무 복잡하여 본문에서는 간단히 언급하도록 하겠다. 북조(北朝)는 과거에 선업을 쌓았기 때문에 왕족으로 태어났다고 설명하는 경전과 가르침을 지원하면서, 그들이 정복한 지역의 왕권을 합법화시키는 근거로 불교와 보살의 이상적 모습을 이용하였다. 동시에 일상으로 돌아가는 왕권 포기 의식은 신실한 왕을 상징하는 한 부분이었다. 왕위 포기가 당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전생담에는 타카실라의 왕이었던 카스미라 간다라가 옥좌를 내려가서 벽지불이 되는 이야기가 있다.

하리스찬드라와 고피찬드와 같은 인도의 왕들도 왕위를 포기하였다. 고피찬드는 1600명의 부인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였다. 마카데바는 첫 번째 흰머리가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숲으로 들어간다. 유럽에서도 이와 같은 왕권 포기가 있었다. 18세기 후반 스페인 국왕 필립 5세는 왕위를 거부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간 왕의 대표적인 예이다. 심지어 셰익스피어의 작품 ‘사랑의 헛수고’에서도 나바르의 왕 페르디난드가 그들의 신하와 함께 삼년 동안 세속의 욕망을 끊고 공부에 전념하자는 계획을 묘사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서원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였다. 샴발라의 첫 번째 왕으로 여겨지는 수찬드라는 세속적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고 불법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이를 행하기 위해 칼라챠크라의 의식을 받는다.

불교가 동아시아로 성공적으로 전파되는 동안 인도에서는 큰 변화들이 일어났고, 이 변화는 새로운 모습의 불교가 나타나는 토대가 되었다. 로널드 데이비슨(Ronald Davidson)은 6 세기 경 인도 아대륙에서 전쟁과 그것을 수행하는 왕이 신성함의 화신으로서 찬양받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서사시에서 미화되었던 왕과 전쟁행위에 관한 관심과 더불어 사회적으로는 특정한 계층의 이동이 있었다. 브라흐만 계층은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국가의 지원 하에 힌두교적 가치를 사회 규범화 하였다.

당시 수많은 힌두교 사원이 세워졌지만 인도의 불교 승단은 심한 탄압을 받게 된다. 팔라왕조 시절 번영하였던 대승불교는 결국 그 힘을 잃고 인도 북부 일부 지역과 남부의 작은 지역에서만 불교 사원을 발견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들 사원 중 일부는 그들에게 주어진 지역에서 여전히 살아남아 번성했다. 중앙 아시아의 사원은 강대한 이슬람 세력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8세기 경 발발한 탈라 전투 이후 중국은 이 새로운 문화적·종교적 요소의 전파를 막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였다. 인도 내에서 불교는 이 모든 사건들의 영향을 받는다. 삼야신이 불교의 승가를 대체하여 자라나고 권력자들이 사이바이트로 개종함에 따라서 불교에 대한 지원은 점점 줄어들었다. 동시에 여성의 역할도 줄어들어 끊임없이 체제 밖으로 밀려나는 압박을 받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형태의 불교가 요청되었다. 이때는 상인들의 지원도 끊어졌다. 8세기 중엽, 싯다(Siddha)라는 불교와 요기니 탄트라(yogini tantras)라는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 불교의식 또한 왕들에 의해서 행해졌던 것을 모방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미륵이 왕세자의 존재와 흡사해지고, 관정(灌頂, abhiseka)의 의식이 즉위식과 닮아지는 것이다. 북위에서 왕들이 자신을 미륵과 동일시한 것과는 달리, 인도에서는 신(devaraja)의 옷을 입은 왕세자가 자신을 시바(Siva)로 여겼다.

불교도들에게 싯다(siddha)는 악마를 제어하거나 정복할 수 있는 초능력을 갖춘 존재이다. 이 새로운 불교 수행자들이 금욕 수행 대신에 특정한 성적 행위를 찬미했다는 사실은 무수한 불교의 전통이 살아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야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네팔과 티벳의 수행 방식은 이러한 중세 인도 불교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들 중 하나가 네와리 족의 방식이다. 네팔은 힌두의 세력이 강한 지방이지만 현재까지도 불교의 수행을 지켜오고 있다. 네와리의 불교 지도자는 독신이 아니다. 그들은 성적 행위를 삼가는 것을 포함하는 수행 형태를 갖추고는 있지만 지도자들의 결혼생활은 일반적인 것이다. 삶의 시작부터 수년간 계속되는 수행기간 동안 수행자들은 금욕해야 한다. 그러나 수행이 끝나면 그들은 승복을 벗는 의식을 행한다. 그 의식에서 스승과 제자가 나누는 대화는 다음과 같다.

    스승이시여.

    당신의 은혜로 저는 수행·정진하겠다는 처음의 맹세[初發心]를 지킬 수 있었으며, 다섯 가지 감각[五根]과 여덟 가지 의식[八識]에서 비롯된 열 가지 헛된 죄[十不善業]를 버렸고, 제자로서의 배움의 길을 감당해 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마하야나[大乘]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스승이 말한다.

    좋다. 이제 제자의 길을 내려놓고 마하야나의 길을 가거라. 위대한 해탈자이시고 신묘한 바퀴의 주인이신 바즈라사트바(Vajrasattva)의 수행을 따르거라. 마하야나의 수행은 무엇과 같은가? 잘 듣거라. 내가 배우자 없이는 절대 충족될 수 없는 대승에로의 유일무이한 종교적 수행의 가장 근본을 말해주리라. 탄르타를 전수받지 않고서는 마하야나도, 의식도 완성될 수 없으리라. 해탈하기 위해 탄트라를 전수받는 이유는 이토록 많으니라. 그러므로 너는 방편과 지혜를 잘 닦은(prajnopaya) 최고의 신과 여신을 알아 마하야나의 수행을 따르고 슈라바카(聲聞)의 수행을 버리거라.

여기에서 승가 계율의 반전이 일어난다. 결혼은 대승을 실천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된다. 특정한 의식 전에 행하는 나흘 간의 일시적 금욕 생활만으로 결혼은 이제 신성한 것이며 종교적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 금욕은 성문승의 지위와 관계되는 하등한 단계로, 공부하고 배우는 시기에만 존재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전수받은 뒤에 수행자는 성문(聲聞)의 수행 의복을 벗고 금욕의 서약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러한 수행을 따르는 자를 ‘재가 비구(Householder Monks, grihasthi bhikshu)’라고 칭한다.

금욕생활에서 세속으로 돌아가는 수행은 몽골의 불교에서도 유사한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승가의 가르침을 받은 승려 중 소수만이 승단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대부분의 승려는 유목생활로 돌아와 일반인의 관습처럼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사회에서 특별한 위치를 유지하며 의식과 법회를 연다. 금욕을 서약한 겔룩빠(善宗者, dGe lug pa) 교단 등은 이러한 수행을 비판한다. 예를 들어서 달라이 라마는 비구로서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지만 이는 티벳과 몽골에 널리 퍼져 있는 대부분의 불교 종파와는 다른 예외적 모습이라 하겠다.

일본의 승려들에게 독신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미 헤이안 시대부터 재가 승려들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재가 승려를 최초로 주창한 이는 신란(親鸞)이었다. 그리고 1872년 메이지 칙령에서 재가 승려를 인정하였으며, 따라서 일본 식민지 시대의 한국에서도 이 규정이 적용되었다. 1920년에는 사찰의 세습 제도가 일본의 상속법과 재산권 등을 제정하는 표준이 되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불교에는 인도에서 최초로 발생하였던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속적 모습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몇몇 전통에서 금욕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으나, 이것이 불교 내부에서도 보편적인 수행은 아니었다. ‘금욕’이라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개인의 정신적 삶을 평가하는 것은 적합한 방법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불교에서 독신생활을 하지 않는 형태의 집단을 배제시킨다면 우리는 불교에서 티벳, 네팔, 몽골, 일본 그리고 심지어 한국 불교 내의 몇몇 분파들까지 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깨달음이 금욕에서만 얻어지는 것으로 불교의 역사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억지이다. 물론 이러한 금욕 개념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불교 역사에서 수행이 출가를 필요로 한다는 무수한 전거들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요구되어지는 자세는 불교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정반대의 다른 상황을 모두 수용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불교 내에서 의견의 충돌이 있을 경우 그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논쟁이 수 백년 간 이어질 것이고 언젠가는 한쪽의 승리로 결말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여전히 논쟁이 진행되고 있기도 한데 금욕에 관한 것이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 이번 국제 학술회의는 어떻게 이러한 문제가 제시되고 진술되며, 그것이 어떻게 근거지워지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마도 다시 한 번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게 될지도 모르는 그저 하나의 예시로 마무리될 지도 모른다. 모든 경우를 고려하는 열린 마음은 다양한 갈래를 지닌 불교 전통이 가진 위대한 특징들 중 하나이다. 불교는 불교 전통 안의 다양한 모습들을 모두 용인해 왔다. 그리고 여전히 이러한 입장을 동의하지 않는 이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주는 것이다.

루이스 랭카스터(Lewis R. Lancaster)
미국 버클리대학 불교학 교수 역임. 현재 서래(西來)대학(University of the West) 총장.
엄성민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철학과 동양철학전공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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