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계 親日派는 빼버린 "親日인명사전" 金成昱 여운형 친일을 증명하는 사료들. 위의 사진 2개는 "반도학도출진보", 아래 사진은 1947년 대동신문 민족문제연구소가 29일 발표한 소위 親日인명사전의 편파성(偏頗性)이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좌파(左派)의 親日은 덮어주고, 그렇지 않은 이들의 親日은 침소봉대한 것. 사전(辭典)은 일제 말기 징병을 권유한 글까지 썼던 여운형(呂運亨, 1886~1946)은 親日派 명단에서 빼버렸다. 반면 1905년 11월20일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명문을 남겼고 이후 애국계몽운동을 벌여 온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은 1916년 일본총독 부임을 환영하는 넉 줄짜리 한시를 썼다는 이유로 親日派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두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여운형은 좌익(左翼)계열, 장지연은 민족(民族)계열이라는 점이다. 여운형의 親日행적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43년 일제가 출간한 「반도학도출진보」라는 책에는 여운형의 「반도 2500만 동포에게 고하는 글」이 수록돼 있다. 이는 학생들이 일제징병에 자진참여하라는 내용이다. 같은 책에는 안재홍(安在鴻, 1891~1965)의 글도 수록돼 있는데 안재홍의 글에는 『담(談)』, 여운형의 글에는 『수기(手記)』라고 표시돼 있다. 안재홍 같은 이는 마지못해 말로 했지만 여운형은 직접 손으로 썼다는 뜻이다. 해방 후인 1847년 「대동신문」은 『일제 때 여운형의 충성.,.親日의 활증(活證)을 보라』는 제하(題下)의 기사에서 여운형의 親日행적을 규탄했다. 당시 조선공산당 자료집을 보면 『여운형은 학도지원권고문 발표하고, 총독부와 밀접하여 김태준 등을 전향하게 했다』며 『親日분자라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누구의 親日에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누구의 親日은 무시해 버리는 사례는 이 뿐 아니다. 사전은 박정희 前대통령을 만주 육군훈련학교를 나와 만주군 보병중위로 복무했다는 이유로 親日派에 포함시켰다. 반면 일본 고위 장교 출신인 고종(高宗, 1852~1919)의 손자 「이우」는 親日派에서 배제시켰다. 「이우」는 일본 육사를 나와 육군 중좌(중령)까지 지냈던 인물로 33세 때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을 맞고 죽었다. 언론사학자인 정진석(鄭晋錫)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3월11일 조갑제의 현대사강좌에서 좌파들이 박정희의 親日 운운하는 데 대해 『국가정통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親日문제를 정치적 무기로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시를 살아보지도 않은 이들이 이데올로기로 상대방을 재단하며, 점점 더 親日派에 가혹해진다』며 좌파들이 주도하는 親日청산이 역사왜곡이라는 점을 강조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