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나는 불교진흥원에서 주관하는 호국불교 세미나에 참석하여
발표와 토론을 들으면서 상당히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세미나는 호국불교의 훌륭한 전통을 강조하기보다
호국불교에 대한 강한 비판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경험은 나에게 호국불교에 대해 다시 살펴보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호국불교는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불국정토를 실현하려는 불교의 이상(理想)을 한국적 현실에 적용하면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이념이다.
호국경전들은 인도에 기원을 두었으며 중국과 일본에도 호국불교가 있었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 호국불교가 중요한 특징으로 정착했을까?
그 이유를 나는 한국에는 외침이 잦고 국민통합이 절실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호국불교는
신라 삼국통일의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고
고려가 거란, 몽고 등의 외침을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조선조의 숭유배불정책 속에서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산, 사명, 영규 대사 등 승려들은 호국의 기치를 내걸고
승군을 조직하여 크게 활약했다.
우리나라에서 불교가 민족종교로서의 위상을 굳힌 것도 호국불교의 덕이라 본다.
호국불교에 대한 비판을 살펴보니 그 요지는 두 가지다. 첫째, 호국불교가 역사적으로 지배계층의 특권을 옹호해 주는 사상이라는 비판이다. 둘째, 호국불교의 기치 아래 활동했던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등이 불교의 핵심 계율인 불살생계를 범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호국불교를 지배 계층의 특권을 옹호하는 사상이라고 해석하는 견해는
지배 계층과 피지배계층이 투쟁하던 서양의 역사관을 한국사에 잘못 적용한 것 같다.
불교의 호국사상은 지배 계층의 특권을 옹호해 주는 사상이 아니다
삼국시대 왕들이 불교를 받아들이고 신봉했던 것은 특권층의 보호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국가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질서와 가치 체계, 윤리 등이 요구되는 시대였기에
불교의 정법치국사상(正法治國思想)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국가가 불교의 정법으로 다스려지면 호국이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호국불교의 전통은 고려에 계승되었고
여기에 국토와 지세(地勢)를 중시하는 도참(圖讖)사상이 추가되어
우리 국토를 불보살의 불국토로 이상화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명산(名山)의 이름이나
봉우리를 금강산, 오대산, 비로봉, 문수봉, 보현봉, 관음봉 등과 같은
불교적 이름으로 명명한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이름들은 불보살의 숨결이 어려 있는 이 국토를 지키는 일이
곧 불국토를 지키는 일이라는 신념을 공고히 한 것 같다.
조선왕조는 유교로 입국하면서
승려의 관직 진출과 국정 참여를 배제함은 물론이고
승려의 도성출입마저 금지하는 등 불교를 탄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병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당했을 때
승려들이 목숨을 걸로 호국에 나섰다.
당시 호국승려들은 권력의 시녀역할을 할 이유도 없었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음을 기록에서도 볼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의승병(義僧兵)을 이끌고 조헌과 함께 청주를 탈환하는데 큰 공을 세운 영규대사는
격문에서 “오랑캐를 몰아내기 위해 우리는 일어섰다.
우리는 조정이나 관부의 명령을 받고 일어난 게 아니다.
오직 나라와 겨레를 구제하기 위해 스스로 일어났다.”고 의승병들에게 절규했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승병을 일으키면서 내건 명분도 같았다.
또한 승려들이 무기를 든 것이 불살생계를 위반한 것이라는 비판은
자기 손만 깨끗이 하고 자기 영혼만 구하려는 소승적 생각을 드러낸 논리다.
대승의 정신에 따른다면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살생 역시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것 아닌가?
침략자가 부모형제자매와 동족을 무참히 살육하고 있을 때
그러한 살생을 막는 것이야말로 불제자의 도리가 아닌가?
세속 법률에서도 정당방위는 인정된다.
유엔헌장에서도 침략전쟁은 부인하지만 침략을 막는 자위권은 인정하고 있다
(유엔헌장, 제7장 제51조).
나는 호국불교가 폄하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현대에 맞게 새롭게 조명해야 할 한국불교의 자랑스러운 전통이라고 본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호국불교는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붓다는 공화정체의 적극적인 조직자였으며
밧지 공화국이 강대국 마가다왕국의 침략을 받았을 때
“나라가 쇠망하지 않는 일곱 가지 법(七不衰法)”을 설하셨다.
여기서 붓다는
“밧지는 외교 도는 연맹의 해체에 의하지 않고는 전장에서 마가다 왕에게 정복될 수 없다”고 하셨다.
기록을 보면 당시 인도의 공화국들은 그리스의 공화국들과 마찬가지로
주민의 힘을 결집하는 회의체에 의해 운영되었으며
오늘날의 헌법과 같이 스스로 정한 법과 원칙에 따르는 나라였기 때문에
-외교적 농간과 국내 분열이 없는 한-
불패(不敗)였다고 한다. 호법이 곧 호국이라는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대목이다. ◇
정천구, 서울디지털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