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물가高 잡은 전두환 리더…“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 김재익 구상에 힘 실어줘 [중앙일보 허귀식] 위기는 되풀이되는가.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의 경제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김대중 전 재통령은 97년 외환위기 때 국민의 힘을 결집하고 직접 발로 뛰며 활로를 찾았다. 80년 "부실 경제"를 인수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물가 안정"을 지상 목표로 내걸고 국민을 설득했다.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힘으로 눌러 위기를 타개했다. 중앙SUNDAY는 두 전직 대통령의 위기관리 리더십을 분석했다. 다음은 중앙SUNDAY 기사 전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리더십은 ‘저돌적 해결사형’으로 통한다. 재임 중 물가 안정 목표를 집요하게 밀어붙였다. 많은 사람이 무모한 목표라고 했지만 그는 군사작전하듯 장애물을 돌파했고 마침내 고물가를 해결했다. 권위주의 시대의 전두환식 리더십을 민주화 이후의 위기를 다룰 때와 평면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에 임하는 지도자의 자세나 처신은 시대를 초월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전 전 대통령은 10·26 사건 이후 12·12와 5·17을 통해 정권을 잡았다. 경제는 최악이었다. 6·25 전쟁 이래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오일 쇼크로 기름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은행에서 신용장 개설이 어렵고 해외에서 차관을 빌리기 힘들었다. 쌀 흉년까지 겹쳤다. 박정희 대통령 말기 경제팀이 성장일변도 정책에서 안정화·자율화 정책으로 선회를 추구했으나 성과는 지지부진했던 터였다. 전두환은 형편없는 부실 경제를 안고 출발했다. 선택과 집중, 집요한 설득 전 전 대통령은 정책이 결정되면 과감히 밀어붙였다. 그가 재임 중 가장 역점을 둔 정책 목표는 물가 안정이었다. 안정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정치권 논리가 경제 정책에 스며들지 못하게 했다. 목표를 선택한 뒤 집중했다. 군대 정신교육처럼 국민을 상대로 ‘경제교육 작전’을 펼쳐나갔다. 국민을 향해 귀가 닳도록 안정 정책을 전파했다. TV에 경제교육 프로그램이 신설되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물가 안정의 필요성이 강조됐을 정도다. 추곡수매가와 임금을 눌러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정치권의 불만을 샀으나 전 전 대통령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가격이나 임금을 올려 봐야 손해라고 맞받아쳤다. 1983년 물가 안정을 위해 극약처방으로 예산을 동결할 때다. 전두환은 불만을 품은 두 현역 장성이 문희갑 예산실장 방에서 소동을 부렸다는 보고를 받고 그들을 한직으로 좌천시켰다. 개혁 구상 가진 인재 발탁 전 전 대통령은 경제를 몰랐다. 그러나 어떤 인물이 적합한지 간파했고 그들을 중용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 고 김재익 경제수석이다. 김재익은 경제기획원 기획실장으로 있다 왕따를 당하자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 옮기려던 참이었다. 전 전 대통령은 우연히 그를 경제 가정교사로 쓰다 개혁적 경제 구상을 높이 평가해 경제수석으로 전격 발탁했다. 전 전 대통령은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는 유명한 말대로 김재익의 구상에 힘을 실어 줬다.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하면 크게 가리지 않고 활용했다. 국보위 시절에도 경제 정책을 관장하는 일은 관료와 학자 몫이었다. 전두환은 박정희 시대에 경제를 꾸려 온 남덕우 등 전문가 그룹을 중용했다. 경제 부문에 군 출신을 쓸 때는 국세청장이나 조달청장 정도였다. 한 번 믿는 사람은 오래 썼다. 믿음이 가는 사람은 정권 내부의 견제로 퇴진 압력을 받더라도 끝까지 신뢰했다. 권위주의 정권이었으나 경제 전문가의 안목을 존중해 수입 자유화 등 개방, 은행 민영화 등 민간 자율을 추구했다. 공정거래제도 도입, 공기업 경영 개선 등 개혁 정책도 폈다. 논란거리는 확실히 매듭 전 전 대통령은 과외 공부를 해 가며 경제에 몰입했다. 정권 말까지 안정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다. 정책의 일관성은 일면 과외 공부를 통한 ‘의식화’와 성공에 도취한 결과였다. 자신감이 생기자 언론사 간부나 정치인 앞에서 경제 전문가임을 자처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81년 13.8%, 82년 2.4%로 떨어졌다. 독재 정권의 완력이 동원된 것이었으나 경제 체질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경제팀이 늘 일사불란했던 것은 아니다. 내부적으로 논쟁과 대립이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늘 확실히 매듭을 지었다. 공식적인 보고 채널뿐 아니라 개인적 채널로 정보를 입수해 정책 결정에 활용했다. 일단 결론을 내면 두 목소리는 용납하지 않았다. 불안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문제는 언론을 통제해 감췄다. 때때로 버거운 목표를 제시해 경제팀을 긴장시키고 성과가 좋으면 화끈하게 상을 줬다. 기회 잡으면 올인 전두환은 기회를 포착하면 확실히 잡았다. 타격 목표를 정하고 돌진하는 식이었다. 85년 9월 G5 정상회담을 계기로 저금리·저유가·저환율의 3저(三低) 시대가 열리자 설비 투자를 늘리는 등 역량을 올인했다. 성장·물가·국제수지라는 이른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경제는 86년부터 88년 사이에 12%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 경상수지는 3년간 무려 286억 달러에 달했다.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구가한 셈이다. 전두환은 재임 기간 내내 민주화 이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전제적 수단을 동원했다. 시행착오와 친인척이 연루된 경제 사건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위기 관리 리더십은 한국 경제가 80년대 초 고비를 넘고 세계 경제의 호황에 편승할 찬스를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허귀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