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답답한 가슴을 속을 쑥 훑어주고, 막혔던 곳을 뻥 뚫어주며, 쌓였던 숙변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그의 세 마디는 1. 한국과 대화 없이 북(北)은 미(美)와 관계 못 맺는다. 2. 후계자 문제로 인하여 북한이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3. 김정일 만날 계획 없다.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쉬운 소리이며 무슨 특별한 능력도, 각별한 수고도 요구되지 않는 소리인데, 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까? 그것은 지금까지 ‘콘돌리자 라이스’나 ‘크리스토퍼 힐’이 보여준 것처럼, 처음엔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룰 것처럼 화려할 정도로 무섭게 굴다가 은근슬쩍 북괴의 시간끌기작전에 녹아버리고는 맹물탕 떠오기가 창피해지니까 결국은 북괴의 양자회담 수작에 굴복하고는 애매모호한 변명하는 꼴에 사람들은 염증 나고 신물 났기 때문이다. 원래 국무부라는 게 분쟁거리를 말로써 해결하는, 즉 ‘말리기’ 전문이지 군사력을 사용하는 ‘때리기’ 전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국무부의 힘은 “같이 안 놀아주기”에 있는 것이지 “같이 잘 놀아주기”에 있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을 겁먹게 만들려면 상대방이 국무부와 접촉하고 싶도록 안달 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상대방을 아쉽게 만들어야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는 극히 단순한 논리가 밥줄인 것이다. 외교에 있어서 업무경험이나 전문지식이 전혀 없는 힐러리가 이번 같은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도 그 원인을 알고 보면 국무부의 이러한 속성에 충실한 것 밖에 없다. 오히려 공화당 부시 대통령 시절 ‘곤돌리자 라이스’나 ‘크리스토퍼 힐’의 경우, 그들의 업무경험이나 전문지식에 있어서의 우월감 때문에 쉬운 것을 괜히 어렵게 비비 꼰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북괴의 약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다가 오히려 스스로 수세로 몰려서 결국 헤게모니를 빼앗겼다. 이번 힐러리 방한에 있어서 그의 세 마디 언급을 분석하면, 1. 북괴가 추구하려던 통미봉남(通美封南)을 좌절시키고 한미동맹의 공고화에 기여하였다. 2. 현 위기조장에서 답답한 쪽은 미국이 아니라 북괴임을 천명함으로써, 외교 심리전에 있어서 우위를 확보하였다. 3. 북괴가 추구하던 미북 양자구도 전략을 간파하여, 북 핵 폐기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보였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가장 시의적절한 급소만 골라 찍은 힐러리의 언급은 통쾌한 전략적 승리이다. 이번 힐러리의 김정일 ‘염장지르기’ 전술은 ‘곤돌리자 라이스’나 ‘크리스토퍼 힐’의 ‘달래주기’보다 백배 낫다. 굳이 그 여파로 볼 수는 없겠지만, 이상희 국방부장관도 20일 천명했던 북한이 해안포나 미사일 등으로 선제공격을 해올 경우 타격(발사) 지점을 공격하겠다는 원칙도 힐러리와 궤를 같이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도 공식적으로 ‘아스팔트 우파’에 대한 우호적 언급을 하였다. 그런데 김정일이 만나기 싫다는 힐러리 뉴스에 가려서 존재조차도 잊혀질 것 같은 사람이 있다. 나라가 시끄러울 때마다 딴에는 눈치보다가 얌체 같은 양비론을 떠드는 박근혜는 도대체 뭐하는 걸까? 믿을 수 있는 정일이가 걱정되는가? 아니면 미국 민주당 지지하다 똥줄 타는 슨상님 걱정인가? 왜 아무 기척도 내보이지 않는 것일까? 또 수첩 뒤져서 어디다 휴대전화 걸어 훈수 물어보는 것일까? 뜬금없이 정부 김 빼고 국민 염장 지르는 양비론에 젖은 얌체소리나 하지 말길 빌 뿐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