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추값 폭등’ 원인 놓고 ‘각종 說’이 난무하면서 이상 급등한 채소값의 원인이 사회적 담론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유통업계 등 이해관계자들은 불규칙한 기온과 늦장마 등 이상기후로 인한 작황 부진을 가격 급등의 주원인으로 보고 있는 반면, 정치권 등에서는 중간 유통업자의 폭리나 대형마트의 사재기 등 유통구조상 문제를 배후로 지목하는 ‘음모론’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서 한술 더 떠서 야권과 그 야권에 대한 호불호보다는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을 에너지원으로 삼고 있는 일부 시민단체와 좌파 언론들은 4대강 공사를 배추파동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가 출처 불명의 주장을 하기 시작하자 다음 아고라 같은 곳에서 펌질이 시작되고 좌파 언론이 이를 적극 보도하는 가운데 국감이 시작되자 야권에서 이를 호재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4일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감에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전병헌 의원(서울 동작갑)은 배추, 양배추, 상추를 검은 비닐봉지에서 꺼내 놓은 뒤, “배추는 (한 통에) 1만5000원이고, 양배추는 8000원, 상추는 100g에 3500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배추가 비싸니까 양배추 김치 먹겠다’고 하는데 양배추 김치도 해먹을 수 없는 게 서민들의 실정”이라고 말해 기선을 잡았다. 이어서 전 의원은 “이 대통령이 집중 관리하라고 지시했던 (배추를 포함한) 52개 생활필수품 물가 중 48개가 대폭 올랐다”고 몰아세웠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만하다. 대통령의 배추-양배추론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고, 30% 싸다는 배추 세포기를 사기 위해 5시간 씩이나 줄을 서는 서민들의 아픔을 호도한 면이 없지 않았다. 비판받아도 마땅했고 희화돼도 마땅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민주당 특유의 오버질이 시작된다. 정범구 의원(충북 증평-진천-괴산-음성)이 “과도한 4대강 때문에 재배면적이 줄어들면서 채소값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하자, 김영록 의원(전남 해남-진도-완도)도 식단에서 배추가 사라지는 단군 이래 최대의 ‘밥상공황’이 벌어지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채소경작지 감소도 큰 원인이다”라고 질타했다. 그러자 무소속 송훈석 의원도 같은 취지의 발언을 하며 가세했다. 이에 유정복 농식품부 장관은 “4대강 유역의 채소 재배면적은 전국 재배면적 중 1.4%가량이다. 특히 배추는 전체 재배면적 가운데 4대강 유역은 0.3%에 불과하다. 게다가 최근 가격 폭등을 일으킨 것은 고랭지 배추로, 4대강 사업 지역 배추와 달라 연관성이 거의 없다”고 반박하면서 배추값 폭등의 가장 큰 원인은 여름철에 반복된 폭염과 잦은 강우 탓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4대강과 배추값 파동을 연결시키는 민주당의 논거는 진짜 NQ지수가 높지 않으면 안 될 ‘신과학적 논법’이다.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했던가. 이런 해프닝에 가까운 해괴한 논리는 민주당 일부 의원만의 삽질이 아니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이날 취임 인사차 방문한 김황식 국무총리와 정진석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배추값 안정을 주문했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손 대표로서는 당연히 했어야 할 말이다. 문제는 그 말에 씨가 있었다는 것인데.... “서민과 농민 생활을 생각했다면 (배추값 폭등에 대한) 대비가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냉해와 폭염 때문에 모든 농작물이 피해를 봤고 4대강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당장 급하니 배추를 수입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공정사회 실현을 위해선 국민 일상을 더 챙겨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 수석은 “4대강 사업을 배추 파동과 연관 짓는 것은 사실 왜곡”이라고 응수했다.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며 갓 취임한 손 대표는 이날 아침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국민을 잘살게 하는 반대를 해야 한다”고 말했었는데, 그 말이 귓전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손 대표와 민주당은 4대강과 배추 파동을 억지로 연결하려는 상투적인 정치공학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게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지, 그리고 무엇이 자신과 민주당이 지향하겠다는 대안있는 반대라는 것인지 손 대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민주당의 그러한 견강부회식 논법은 바로 그날 있었던 우호세력인 오마이뉴스와 민노당 강기갑 의원에 의해 철저하게 해부당하는 최대의 희극이 연출되었다. 사필귀정이라고나 할까. 4대강과 배추값 파동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이라면 사실 민주당보다는 민노당일 가능성이 더 클 것이며, 그 선두에는 역시 천성적으로 낄 데 안 낄 데 못 가리는 ‘배추도사 강기갑’이 있었다. 민노당 강기갑 의원이 배추값 파동과 4대강 문제를 연결시키기 위한 대장정의 일환으로 낙동강 김해 매리 지역 둔치 배추밭을 찾은 기사가 대표적 좌파 찌라시인 오마이뉴스에 대서특필됐지만 도리어 4대강 때문에 배추값이 오른 것이 아니라는 상식만 재확인시켜줌으로써 이후 배추값 파동과 4대강을 연결시키는 억설이 다 사실보다는 믿고 싶은 것만 믿겠다는 이념적 주장이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강 의원은 4일 낙동강 구간 8공구 하천부지(김해 상동면 감로리)에 수십 만t 이상으로 추정되는 매립토가 발견된 현장을 확인하러 이 지역에 들렀던 차에 인근 배추밭을 찾아 국회의원들이 좋아하는 인증샷을 대거 작성했고 이를 언론에 뿌렸다. 강의원은 이 자리에서 "사질토는 원래 배추뿐만 아니라 농사가 잘 된다"면서 "4대강사업으로 사라진 채소 재배 면적이 전체의 4.7%라는 자료를 냈더니 농림수산식품부는 1.4%라고 하더라. 국정감사 때 따지겠다"고 말했다. 동행한 민노당 관계자도 "인근에 보니 많은 땅이 놀고 있는데, 배추라도 심도록 해주었더라면 채소값 폭등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강의원이 들렀다는 배추밭에는 어린 배추가 속이 차지 않은 채 밭에서 한창 자라고 있는 곳이었다. 바깥 잎이 퍼지고 고갱이가 차지 않아 통을 묶어주지도 않은 상태였다. 결국 지금 낙동강에 둔치에 있는 배추는 시장에 출하되지도 않는 배추라는 것만 확인해준 셈이었다. 지금의 배추파동 원인이 고랭지 배추의 작황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인증샷이 된 셈이다. 강 의원의 배추밭 방문 기사를 본 네티즌은 “사진을 봐라. 낙동강 배추는 아직 덜자라 출하하려면 적어도 1개월 기다려야하는 모습이다. 4대강 때문에 배추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배추는 고랭지배추인데 여름철 고랭지 이상고온으로 배추농사가 다 망가진 탓”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4대강 사업으로 줄어든 0.38%의 농경지 중에 배추농사 짓는 땅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오히려 작년에 배추 값이 전년대비 가격이 너무 싸서 올해 배추농작지가 작년보다 7% 줄었다. 차라리 작년보다 줄어든 배추농사 탓을 하는 게 더 신뢰가 간다. 무조건 정부만 욕하면 영웅 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만 모인 것 같다”고 꼬집었다. 아무리 일부 ‘엇갈이 무’같이 설익은 시민단체가 난리를 치고 제1야당까지 나서서 백코러스를 담당한다 해도 지금의 배추값 파동을 4대강 때문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없다. 배추값 파동의 원인이 된 것은 4대강 때문이 아니라 유통구조나 생산량 감소 때문으로 보고 있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배추의 대부분이 고랭지 배추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농협 충북유통 관계자는 "올해는 잦은 비와 고온 현상으로 강원도의 배추, 무 수확량이 많이 감소하면서 충북지역에 공급되는 물량이 예년의 60% 수준에 불과해 가격이 크게 뛴 것"이라고 말했고, 안동 농산물도매시장 관계자는 "최근 채소, 과일가격 강세는 날씨 탓이 크다"고 말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5일 “추석 이후 물량이 쏟아져야 하는 강원도 고랭지 배추가 여름 늦장마와 불순한 기온으로 생산량이 급감한 것이 가을 배추값이 가파르게 오른 이유”라며 “최근 배추값 폭등을 둘러싸고 불거진 여러 가지 의혹들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롯데마트 관계자도 “예년에도 9∼10월 가을에는 배추물량이 줄어 가격이 일시적으로 오르는 경향이 있었다”며 “더욱이 올해는 생육기 기후가 나빠 가을 배추 공급량이 지난해보다 40% 이상 줄었지만 중부 이남에서 배추가 출하되는 10월 중순 이후부터는 가격이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물론 기후나 유통구조상 폐단보다는 대형마트들의 무분별한 사재기나 배추 농가의 폐업 사태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파동의 원인이 여름철 기상 불순으로 고랭지 배추의 작황이 나쁜 데 있음은 국민적 상식이다. 물론농산물 가격파동이 있을 때마다 중간 유통업자의 폭리를 지적하지만 그때뿐이고 농산물 유통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등한시 했을 뿐 아니라 채소 작황이 나쁠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대책마련 역시 등한시한 농식품부에 가장 큰 잘못이 있다. 하지만 당장의 응급대책과 함께 농정과 시장 측면에서 접근하여 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때를 만난 듯 사실을 호도하면서까지 민심을 부채질하고 있는 정치인이 더 문제일 수도 있다. 어느 의원은 중국산 배추가 긴급 수입되자 몇 년 전 중국산 김치에서 기생충 알이 검출된 일을 환기시켰다. 본질과 무관한 정치적 논란은 국민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물가 전반에 대한 불안감을 퍼뜨릴 우려가 있다. 벌써 대형 마트의 포장김치는 값을 올려도 진열하기 무섭게 동나고 있다. 채소농사는 수요공급 상황에 민감하다. 이미 고랭지 채소의 작황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 남부지역 채소농가들은 파종 면적을 크게 늘렸다. 가을재배와 늦가을재배 배추가 출하되면 배추값은 곧바로 안정될 수도 있는데, 정략을 앞세워 일을 벌였다가 어떻게 수습할 지 걱정된다. 특히 더 잃을 것도 없는 민노당의 배추도사야 그렇다쳐도, 서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하면서 한나라당에서 민주당 대표로 180도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손학규 대표까지 ‘배추도사’ 내지 ‘무도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된다. “배추값 폭등의 근본 원인은 농민이 배추 재배를 안한다는 것”이라며 “매년 김장철 배추가격은 아무리 높아도 포기당 3000원 미만이니 수지가 안 맞는 농사를 어떻게 짓느냐”는 하소연과 함께, “현 정부가 물가 잡는다고 농산물을 통제한 것이 배추 농가 폐업의 발단”이라며 “이번 사태를 통해 농가 지원대책을 원점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고 꼬집었던 네티즌이 있다. 민노당, 민주당 등 야당의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하는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이니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은데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는 모르겠다. 배추 세포기를 30% 싸게 사려고 다섯 시간이나 줄을 서서 세계적인 이슈가 된 지금, 김치가 먹고 싶어 배추 10여 포기를 훔치는 사건이 화제가 되는 지금, 국정감사장에 검은 비닐봉지에 배추와 양배추를 싸들고 와서 촌극을 벌이는 의원도 그렇고 단군 이래 최대의 밥상 공황이라는 황당한 과장법을 쓴 의원도 그렇고, 낙동강까지 가서 아직 속도 들어차지 않은 배추 인증샷을 찍는 의원도 그렇고 제정신 차려서 진짜 사실관계에 입각한 장단기 대책 마련에 힘썼으면 좋겠다. 그게 민생이고 그게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