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은 4.19폭동에 충격을 받았다. “국민이 나를 원하지 않으니 즉시 하야하겠다” 이런 성명을 발표한 즉시 그는 걸어서 이화동으로 향했다. 차를 대기하자 이승만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 대통령이 아니다. 더 이상 국민의 세금을 쓸 자격이 없다” 그리고 걸어서 갔다.
그는 대한민국에 일생을 헌신했지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지갑도 없이 황야의 무법자에 나오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으로 떠났다. 빨갱이들로부터 온갖 욕을 다 듣는 대통령이지만 그는 이 나라의 대통령과 공직자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어떤 모습으로 떠나야 하는지에 대한 모델을 남겼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했다. 그 역시 참으로 깨끗한 지도자였다. 거지의 나라를 부유한 나라로 등극시켰고 우리를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약간의 흠을 남겼다. 이승만 대통령은 자식들이 없어 남겨준 재산이 없었지만 박대통령은 자식들이 있기에 오늘의 자식들이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박근혜에게는 박근혜로서는 단독으로 축적할 수 없는 많은 재산이 있다.
그 다음 전두환 대통령이 나왔다. 그는 안목이 있고 독서를 많이 한 장군이었고 박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어린 장군이었다. 그는 대체적으로 국가경영을 잘 했고, 대통령이 되기 직전에는 참으로 엄청난 일을 했다. 김재규-정승화가 일으킬 수 있었던 쿠데타를 미연에 저지했고, 최규하 대통령을 보좌하여 5.18폭동을 조기에 진압하여 적화통일을 저지했다.
그러나 그는 친인척 비리를 허용했고, 그것이 노출됨에 따라 군사독재를 다시는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정서를 확산시켰다. 그 결과 그가 애국적 차원에서 일으킨 12.12도 부당한 판결을 받았고, 역사의 공과로 인정돼야 했을 5.18역사를 뒤집히게 했다. 그리고 빨갱이가 나라를 점령하게 만들었다. 이는 전두환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론적으로는 전두환이 후대에 지워준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다.
그 후의 대통령들은 앞서의 대통령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들이었다. 한마디로 모두가 건달들이고 사색과는 거리가 먼 도둑놈들이었다. 대통령이란 자식들이 이 모양이었으니 그 밑에서 충성하는 척 했던 장차관들, 각종 공무원들, 준 공무원들, 4성장군들을 위시해 소령급에 이르기까지의 로비대상의 계급들이 어찌 깨끗할 수 있었겠는가?
출세를 했으면 그 자체로 가문의 영광이다. 그런데 왜 도둑질을 하는가? 그것도 국민세금으로 연결되는 도둑질을! 맥나마라는 연봉 66만 달러의 높은 급료를 포기하고 연봉 2만5천 달러의 국방장관직을 택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들, 장차관들, 장군들 이 개자식들아! 너희들은 가깝게는 이승만과 박정희, 멀리는 외국의 모범적 인물들에 대해 부끄러움도 없는가?
오늘(2.7) 뉴스에 또 떴다.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이 재직 당시 거액의 돈(2.5억)을 유용한 혐의를 포착, 수사 중이다” “해군전력기획참모부장을 역임하면서 방위산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불확실한 것이지만 필자는 이런 정황들을 충분히 믿는다. 아니 이는 빙산의 극히 일부다. 출세한 인간들 치고 도둑놈 아닌 놈들이 참으로 드물다고 생각한다. 국방간부들이 도둑질한 경우는 매우 많다. 그 중 하나를 발췌해 사실적으로 묘사해 본다. 그 중에서도 극히 일부를! 아래는 일간지들에서 발췌 정리한 것이다.
“권영해는 안기부장으로 재임 중에도 군내에 별로 배경이 없는 공군 출신의 이양호를 국방장관으로 천거하고,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뒤에서 직접 모든 무기도입 사업을 주물렀다. 그마저도 만만한 이양호가 린다 김과 결탁하여 백두/금강 사업에 끼어들자, 얼마 가지 않아 잘라 버렸다. 그 후 김영삼 정권의 안보분야는 줄곧 그의 독무대가 되어 버렸다. 권영해는 안기부장으로 재임 중, 안기부 청사 내에 있는 공관으로 국방부 핵심 인사들을 수시로 불러 들여 직접 지시를 내렸고, 국방부의 인사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국방부에서는 “우리나라에 국방부 장관이 둘이 있다. 권영해 안기부장이 사실상 국방장관이고, 김동진 국방장관은 차관이다.”라는 자조적인 말들이 흘러 나왔다고 한다. 구속된 AM코퍼레이션 대표 이영우라는 자는 권영해의 오른팔 이자 개인 심부름꾼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무기 브로커 중 한 명이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이원형은 권영해 밑에서 무기도입의 실무를 담당했으며, 지난 김대중 정권 시절 자행된 모든 무기도입 비리의 최고위 실무 책임자 중 한 사람이다. 이영우는 뉴욕에서 보험 영업(외판)사업을 하던 교포 출신이다. 그의 부인은 뉴욕에서 뷰티서플라이 가게를 운영했다. 이른바 흔히 말하는 가발장사를 했다는 말이다.”
“권영해가 아직 군에 있을 때, 그의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는데, 그때 이영우가 그 딸을 돌봐주면서 서로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권영해가 안기부장 시절에는 주미 안기부 파견관이었던 최명주 공사라는 자가 권영해의 딸을 돌봐주기도 했다. 지난 98년 정권이 바뀌자 최명주는 그 일로 인해 전라도 출신(전주고) 이면서도 살생부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최명주는 지난 2001년 4월, 나종일의 후원으로 국정원 차장으로 승진 했다. 그는 임동원과는 사이가 좋지 못해 서로 부딪히기도 했다.”
“이영우는 권영해의 아파트 옆집에 살면서 권영해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다. 그는 권영해의 심부름으로 프랑스를 수십 차례나 갔다왔다 했다. 이영우가 프랑스 무기 도입과 관련하여 대한민국 최대의 브로커로 알려진 것도 이러한 연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영우는 AM 코프레이션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미스트랄 도입 사업의 에이젼트를 담당했다. 그는 이 사업을 하기 전에는, F-16 전투기의 시뮬레이션 장비를 1대 납품한 것 이외에 전혀 실적이 없었다”
“한편, 이영우는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천용택 장관, 문일섭 획득실장, 이원형 획득정책관 등과 상당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었고, 박지원과는 뉴욕에서부터 서로 아는 사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영우는 미스트랄 사업을 성사시킨 후 프랑스로부터 산업기사 작위(훈장)를 수여받았다. 이영우 이외에 이 훈장을 받은 사람으로는 조중훈 회장과 김우중 회장이 있다고 한다.”
필자는 권영해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12년간이나 감옥생활을 했다. 권영해는 필자보다 육사 7년 선배다. 상대적으로 보면 그는 빨갱이들의 부정에 비해 양반 축에 속한다. 그러나 그는 육사에 대한 프라이드를 접고 김영삼이라는 정치건달에 농락당한 수치스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는 비교적 마스크가 깨끗하고 똑똑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는 김영삼이라는 인간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했고, 그래서인지 빨갱이들도 살아보지 못한 12년간의 감옥 생활을 한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장군들은 오직 영광, 국가의 영광까지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가문의 영광 정도는 택하기 바란다.
출세도 하고 돈도 벌면? 이제까지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사회에 기증한 애국자들은 누구이고, 공직에 있는 너희들은 누구란 말인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중 돈을 탐내 부정을 저지른 인간들은 개자식들이다.◇
지만원(http://www.systemclu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