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 연합뉴스는 가히 충격적이다. 50대의 김시 성을 가진 사람이 설득력 있는 증거자료와 증인까지 신청하여 자기가 김영삼의 아들이라며 친자확인 소송을 냈는데 김영삼이 법원의 유전자 검사 명령에 일체 응하지도 않고 소송 대리인조차 선임하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하여 결국 법원은 김씨의 손을 들어 주었다 한다. 김영삼이 혼외 아들을 만들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온 것이다.
혼외 아들이 있다면 그 자식을 자식으로 인정하고, 응분의 사랑을 베풀고, 그늘에서 살게 한 데 대해 눈물을 흘리며, 최소한의 책임을 지고 용서를 구하고 얼마간의 봉사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도리일 것이다. 못 배운 젊은 인간들이 베트남이나 필리핀에 가서 아이들을 뿌려놓고 나 몰라라 하는 양아지 족속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이런 장돌뱅이보다 더 못하고 개보다 더 못한 인간이 어쩌다 대통령이 되었다. 이런 더러운 장돌뱅이 밑에서 12.12와 5.18역사를 뒤집은 판사, 검사, 정치인들의 얼굴을 다시금 훑어보고 싶다.
재판부는 김씨가 김 전 대통령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하며 제기한 증거의 일부가 인정되고 김 전 대통령이 유전자 검사 명령에 응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판결했다. 김씨는 각종 서류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김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주장하고 증인까지 신청했으나, 김 전 대통령은 수검명령에 응하지 않은 것은 물론 소송 대리인도 선임하지도 않는 등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김씨는 2009년 10월 소송을 제기했으며, 김씨의 친어머니는 아직 생존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2005년도에도 김 전 대통령의 딸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이모 씨가 김 전 대통령을 상대로 친자 확인을 요구하는 소송을 낸 적이 있다. 이 사건은 딸이라고 지칭된 인물이 직접 소송을 낸 것이 아니었고 당사자가 DNA 검사에도 응하지 않아 나중에 위자료를 요구하는 재판으로 형태가 바뀌었으며, 선고를 2주 남기고 갑자기 소 취하 의사를 밝혀 사건의 진실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필자는 2000년 설날 아침, 김영삼씨를 상도동 자택에서 정확히 60분 동안 만날 수 있는 영광(?)을 가진 바 있다. 그 때 필자는 김영삼만이 김대중을 빨갱이라고 공격할 수 있으니, 그렇게 해달라며 그 근거를 정리하여 제공했다. 만 한 시간 동안의 독대가 끝나고 상도동 좁은 찻길을 나오면서 나 자신도 모르게 내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운 말이 있었다. “어휴, 저 사람 밑에서 어떻게 장관들을 했지?”
필자의 요청을 수용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의사소통 자체가 어려웠다. 뉴스를 통해서는 김영삼씨가 그렇게 답답한 분인 줄은 몰랐다. 만나보고서야 비로소 답답한 정도를 피부로 느낀 것이다.
이런 자에게 충성했던 당시의 인간들은 일생의 불명예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출세했다고 좋아할 일 아니다. 이런 자 밑에서 출세한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머리 숙이고 숨어 살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