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은 이번 패배의 원인을 50대 이상 유권자층이 평균 80%가 넘는 투표율을 보이며 박근혜 당선인에게 몰표를 준 데서 찾고 있다. 야권 지지층은 "은퇴 세대의 퇴행적 투표 행위가 생산 활동 세대의 삶의 조건을 결정짓는 게 말이 되느냐"고 분노와 한탄을 쏟아내고 있다. 20~30대 유권자는 2002년 대선 때에 비해 비중이 48.2%에서 38%로 줄고 숫자도 151만명 감소한 데 비해 50대 이상 유권자는 29.3%에서 40%로 늘며 숫자는 505만명 늘어났다. 이런 유권자 구성 변화가 선거 공학적으로 진보 진영에 불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외형상 진보 진영에 불리한 구도가 아니었다. 야권 후보 단일화 전 3자 구도에서 민주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지지율 합계는 45% 내외로 30%대 후반의 박 당선인에 비해 적어도 5%포인트가량 높았다. 그러나 개표 결과 문 후보는 안철수씨의 적극적인 지원에도 3.6%포인트 뒤졌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정권 교체'를 원하는 유권자가 '정권 재창출'을 원하는 유권자에 비해 늘 5%포인트가량 많았다. 유권자 절반이 분포한 서울·인천·경기 수도권은 정권 교체 욕구가 가장 강하게 표출된 지역이었다. 그 수도권 전체에서 문 후보는 박 후보에게 6만표를 앞서는 데 그쳤다. 2002년, 1997년 대선에서 진보 진영 노무현, 김대중 후보가 수도권에서 각각 58만표, 43만표 앞섰던 야당의 전통적 수도권 우위(優位)를 완전히 상실했다.
이번 대선서 진보 좌파 진영은 40년 전 박정희 시대 과거사를 들춰내는 데 바빠 진보 좌파의 단골 어젠다인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 이슈를 새누리당에 내주고 말았다. 진보 좌파의 낡은 시대감각과 뒤떨어진 현실 인식은 1970년대 문학 평론가가 40년이 흐른 지금도 '2013년 체제' 운운하며 야권의 선거 지휘부 역할을 했던 데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대체로 불황·경기침체·실업 증가는 선거에서 진보 좌파 진영에 호기(好機)를 제공한다. 그러나 한국 좌파는 자기들 멋대로 세상을 선(善)과 악(惡)의 이분법으로 가르는 70년대식 자기 최면(催眠)에 취해 바뀐 현실을 직시하지 못해 스스로 기회를 걷어차 버리고 말았다.
지난 1년 불어대던 '안철수 바람'은 국민의 열망·고통·분노·희망을 담아내지 못한 새누리·민주 양당 체제가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야권 사람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한자리씩 차지하며 기득권 세력, 구(旧)체제로 편입(編入)된 자신들을 여전히 독재 세력과 맞서 싸우는 피해자, 약자(弱者)라고 착각하고 있다. 진보 진영이 거리 불법 시위에 움찔움찔 놀라서 물러서는 이명박 정부를 '독재'라고 부르는 것도 국민과 동떨어진 야당의 현실 인식을 말해 준다.
이번 대선서 50대 이상 유권자들이 결집한 것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독설과 저주를 아무렇지 않게 뿌리고 다니는 좌파·진보 인사들의 행태를 보며 5년 내내 나라와 국민을 뒤집느라고 소란을 피우던 노무현 정부 시절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가 TV 토론에서 보여준 무례하고 독기(毒氣) 서린 태도가 50대 이상의 거부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이번 대선 결과는 극단(極端) 세력이 언제나 중도(中道) 세력을 변두리로 몰고 당내 정치를 장악하는 야당과 좌파 진영의 체질로는 현실을 직시할 수도 정권을 되찾을 수도 없다는 점을 보여 줬다. 한국 좌파 진영은 중도를 중심으로 새롭게 진화할 것이냐 아니면 도태(陶汰)될 것이냐의 갈림길에 섰다.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