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 등의 혐의로 구속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국회의원은 헌법이 규정한 질서를 인정하고 있을 것이라는 상식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일회성으로 치부할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대한민국 체제를 부정하는 세력이 공직에 발 딛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논의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도 높다.
전문가들은 먼저 총선이나 지방선거에서 지역구 후보자에 비해 비례대표 후보자의 신상에 대한 정보 공개가 상대적으로 제한돼 있는 점을 제도적으로 손질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권자가 이 의원 같은 비례대표 후보자를 사전에 최대한 알아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은 지난해 8월 비례대표 후보자에 대한 정보 공개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에게 배포하는 선거공보물에 각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자 명단만 넣지 말고 지역구 후보자와 마찬가지로 △등록재산 △최근 5년간 세금 납부·체납 증명 △병역 △학력 △전과 기록 증명을 모두 넣자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은 비례대표 후보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에만 선거일 20일 전 게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의원처럼 과거 헌정질서와 체제를 부정해서 사법적 처벌을 받은 인사에 대해서는 복권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더 나아가 1972년 일명 ‘극단주의자 훈령’을 제정해 반(反)국가 극단주의자들의 공직 임용을 제한했던 독일처럼 ‘반국가 이적행위자’에 대해서는 공직 임용을 배제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 “비례대표 후보 ‘과거’ 꼼꼼히 공개해 깜깜이 투표 막아야” ▼
○ 누가 이석기 ‘의원’을 만들었나
거시적으로 보면 이 의원 사건의 단초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적 폭압 통치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맞서는 반정부·민주화운동 세력은 곧 진보라는 등식이 성립됐고, 이로 인해 북한을 맹목적으로 찬양하는 ‘종북(從北)’마저 진보라는 범주로 받아들이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토양이 조성됐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정치학)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진보세력에 대한 맹목적인 관대함이 있었다”며 “북한체제를 지향하는 ‘종북진보’, 민주화 세력의 ‘민주진보’, 생활 속 진보를 실현하는 ‘민생진보’를 동일하게 취급했다”고 분석했다. 가까이로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이뤄진 민주당(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를 들 수 있다. 선거 승리나 정권 획득을 위해 정당이 다른 정당과 연합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긴 어렵다. 그러나 지난해 이뤄진 야권연대는 오로지 ‘선거 승리’만을 위해 이념, 정체성의 차이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연합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이 의원 사건의) 반쪽의 책임은 민주당에 있다”며 “야권연대라는 이름 아래 무차별적으로 연대했다”고 강조했다. ‘종북주의’를 이유로 2008년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진보신당(현 정의당에 포함돼 있음)의 일부 세력이 근본적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았음에도 총선을 앞둔 2011년 말 다시 통합진보당으로 합친 일도 정치공학에만 집중한 근시안적 통합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 체제 부정 인사 복권 함부로 못 하도록
2002년 민혁당 사건으로 도피하다 체포된 이석기 의원의 당시 공소장에는 그가 “김일성은 민족을 자주독립 국가 건설로 이끈 절세의 애국자”라는 발언을 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그는 2003년 3월 항소심에서 2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은 지 5개월 만에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2005년 8월 다시 광복절 특사로 복권됐다. 그 덕분에 그는 피선거권을 회복했고, 지난해 총선 때 통진당의 비례대표 후보 2번으로 당당하게 국회에 입성했다.
이를 근거로 전문가들은 이 의원처럼 대한민국 헌정질서와 체제를 인정하지 않은 혐의로 사법적 처벌을 받은 인사에 대해서는 선출직 공직에 입후보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사자의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에 대한 자격 제한을 풀어 주는 사면·복권을 막자는 것이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헌법)는 “외국의 입법례를 보면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며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해치는 범죄 행위를 저지른 자에 대해서는 사면·복권을 제한하는 방안을 사회공익적 차원에서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전우현 한양대 법학과 교수도 “범죄 경중에 따라 국가의 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사면권이 제한되어야 한다”며 “관련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이와 같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사면권을 자제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했다.
유동열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관은 더 나아가 헌정 질서와 체제를 부정한 자에 대해서는 공직 임용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72년 일명 ‘극단주의자 훈령’을 제정한 독일은 1990년 통일 전까지 반국가 극단주의 경력자 3000여 명의 공직 임용을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 유권자의 적극적 정치 참여 의식 있어야
정당이 선정한 후보자를 뽑는 유권자도 이번 사건에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유권자라면 최소한 현존 체제를 옹호하지 않는 후보자가 누구인지 꼼꼼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유권자들은 지역과 국민의 대표자로서 어떤 사람이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지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희민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정치학)도 “우리나라 유권자는 정치에 관심이 많다고들 하지만 후보자 정보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이 의원 사건은 하나의 사회적 통증이라고 본다”며 “앞으로 유권자들이 투표할 때 이런 정당은, 이런 후보는 안 되겠다고 되새기는 자정 작용이 생길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이 의원 사건을 계기로 유권자가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 국가 정체성, 헌법 질서 등을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출처: 동아닷컴 / 민동용·황승택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