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 사후 100년 동안은 기파氣波가 있다-
지난 달은 음력으로 10월 상달이었다.
이 달은 추수를 마치고 정통적으로 시향(時享)을 드리는 달이기도 하다. 시향이란 1년에 한번 조상의 묘소 앞에서 후손들이 제수를 차려 놓고 제사 드리는 것을 말한다.
시조로부터 5대조 이상까지가 시향제의 대상이 된다. 이 때는 어느 문중이든 모든 자손들이 참여하여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자손의 무궁한 번영을 조상 앞에서 마음속으로 기원 한다. 그리고 각 종친들이 이 시향의 모임을 통하여 촌수의 원근을 따지지 않고 모두가 한뿌리의 가지임을 서로가 확인 하며 씨족의 유대를 다지는 기회 이기도 하다.
또 제례를 끝내고 음복례를 통하여 제수를 나누어 먹는 것은 여기 모인 제관들 모두가 한가족, 한혈친임을 확인하는 의례이다.
그런데 시향은 왜 5대조 이상 부터인가? 우리 전통에서는 5대조 이상은 집에서 지내는 기제(忌祭)를 모시지 않는다. 이 기제에서 제외된 조상들을 묘소에서 모시는 것이 바로 시향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정에서 지내는 기제는 4대조 까지에 국한 된다. 한 집안의 최고 제주로부터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고조부, 이들 조상들에 한해서만 기제사를 모시는 것이다. 이른바 4대봉사 이다. 그렇다면 왜 4대조 까지만 집안 기제일까. 의문이 없을 수 없다. 거기에는 많은 수의 제사 자체를 간소하게 축소한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유교의 ‘혼백(魂魄)’ 관념에 있다고 하겠다. 결론부터 먼저 말하면 인간 사후의 혼백은 사후 100년까지는 후손과 기의 파장(氣波)을 통하여 감응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혼백이란 인간을 형성하고 있는 두 가지 요소로서 정신과 육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혼백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귀곡자鬼谷子> 등 중국 고대 여러 문헌에 나오는데 이들에서 혼은 양(陽), 백은 음(陰)이라고 한다. 그리고 음양은 기(氣)를 말하는 것으로 이들 문헌대로 해석 한다면 인간은 음양기를 받아 태어 난다. 그리고 송(宋)대 이후 성리학에서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이(理)와 기(氣, 陰陽)의 합(合)인데, 기가 응취(凝聚)하면 만물이 생겨나고 그것이 다시 흩어지면 만물이 소멸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사 역시 기(氣)의 취산(聚散)에 있다. 즉 기가 모여 응취하고 흩어짐에 있다는 것이다. 생은 기가 응취한 것이고, 반대로 사(死)는 뭉친 기가 흩어져 다시 태허(太虛) 본체의 우주로 돌아 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에게 있어 생과 사는 오로지 기의 뭉침과 흩어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기속의 양(陽)은 혼(魂)이기 때문에 하늘로 돌아가고, 음(陰)은 백(魄)이므로 땅으로 돌아간다.
한편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육신과 정신이 흩어지지만
살았을 때 행한 업식(業識)이 남아서
인연에 따라 다시 몸을 받아 태어나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선한 업을 행해야 선한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이다.
이상과 같이 본다면 죽은 사람의 혼백은 역시 사람의 기(氣)가 다른 형태로 화(化)하여 천지 우주로 돌아 간 것에 불과 하다. 혼이란 혼령(魂靈), 영혼(靈魂)이라고 할 수 있고, 백은 체백(體魄)을 뜻한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의 혼백은 유형화(有形化)되었던 인간을 떠나서 무형화(無形化)한 기의 파장 형태로 우주 속에서 존재 한다.
그리고 이 기의 파장은 적어도 100년 정도는 자기와 파장이 같은 후손과 함께 감응(感應)할 수가 있다고 한다.
사후 100년 까지는 자기와 DNA가 같은 후손과 파장을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1대를 약 25년으로 칠 때 4대는 100년까지 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후손은 적어도 4대조 까지의 조상과는 기의 파장으로 서로 감응하여 통할 수가 있고, 동시에 조상의 영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성립된다.
4대조 이하의 조상들은 후손들과 파장(氣)이 맞으므로 후손들과 함께 할 수 있고 후손의 삶을 좌우 할 수 있는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전통 사회에서 4대조까지 기일에 제사를 집안에서 드렸던 것은 바로 조상과 산 사람, 즉 조상과 후손들간에 무형적으로 통 할 수 있는 이와같은 기(氣)적 감응의 원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상은 영(靈)으로 존재하고 영은 곧 기이다. 그러나 영으로서의 기는 유형적 육체가 아니므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위(無爲)의 존재 이다. 그래서 조상은 자기와 기의 파장이 맞는 유형(有形)의 후손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행할 수 있다고 한다. 파장이 맞으므로 4대조 이하의 조상의 혼은 그 후손의 몸에 임할 수가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조상의 영혼이 후손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TV채널을 맞추어서 어떤 특정 방송국의 방송을 수신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는 변화,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혼백이 사후 100년을 지나면 기의 파장이 자기 후손과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4대조 까지만 집안에서 기제(忌祭)를 지낸 이유를 위와 같은 관찰을 통하여 이해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제사를 공경과 정성으로 모셔야 하는 이유 또한 알만하다.
조상과 나는 결코 떨어져 있는 남이 아니라 혼백의 기를 통하여 상호 감통(感通)하는 일체(一體)적 사이이므로 일호(一毫)의 불성(不誠)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에 불성이 있다면 조상은 그 후손을 괘씸하게 여겨 그 후손에게 곤경을 안겨 줄 수도 있음이다.
불교식으로 말해도 자기와 DNA가 가장 가까운 조상을 공경하는 것은 좋은 업을 짓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점을 명심하여 성심과 공경으로 조상의 제사를 받들어야 할 것이다. (2013.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