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제1 이슈는 일자리 창출이다. 박대통령이 집권하기 이전에 한국엔 일자리가 없었다. 공장이라고는 겨우 제분, 제 당, 제약 회사들뿐이었고, 기계공업이라는 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손톱깍기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강도와 정밀를 규정하는 스펙이라는 것은 개념조차 없었다. 사회 전체가 무력감으로 가득 차 있었고, 청년들에겐 앞길이 막막했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그 시대에 어떻게 한글을 만들어낼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하고 감탄한다. 이와 똑같은 감탄사가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붙을 만하다. 앞이 안보였던 그 시대에 어떻게 엉뚱하게도 기능공을 양성해서 일자리를 폭발적으로 만들어 낼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감탄사다. 첫째 그는 기능학교들을 만들어 기능공을 대량으로 길러내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이들 기능공들의 친구가 됐다. 기능공들은 국제기능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게 소원이었다. 매년 금메달은 한국이 독차지했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기능공의 나라가 됐다. 공장장이 사장보다 더 높은 월급을 받았다. "대학가야 소용없다, 기술을 배워야 대접받는다"라는 말이 사회적 유행어가 됐었다. 박대통령은 외국에 특사들을 내보내 한국에 값싸고 질 좋은 기능공들이 많으니 들어와 공장을 지어달라고 호소했다. 박대통령의 약속을 신뢰한 외국기업들이 줄줄이 들어와 공장을 지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하는 일이라 중간에서 공무원들이 장난질을 하지 못했다. 한국이 조립을 많이 해서 팔면 그만큼의 부품과 소재들을 앉아서 팔 수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공장을 짓는 것은 외국기업에게 또 다른 매력이었다. 한국의 일자리는 이렇게 해서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둘째 그는 한편으로는 대규모 공단을 지어 기업인들을 입주시키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들 기업들에게 외국에서는 이미 사양화 돼 가는 수많은 제품들에 대한 기술도면을 얻어다 주었다. 그러나 공장에는 외국어로 쓰여진 기술자료를 해석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외국에 나가있는 과학기술자들을 대거 유치하여 기업을 지도케 했 다. 생활필수품 마저 고갈됐던 당시엔 한동안 물건이 없어서 못 팔 판이었다. 굶주린 배에 음식이 한없이 들어가듯 만들기만 하면 팔렸다. 공장을 가진 기업들은 한동안 땅 짚고 헤엄 치듯이 돈을 긁어 부자가 됐다. 기업은 날로 번창하고 생산 설비는 더욱 팽창했다. 그만큼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과학적인 방법이었다. 이는 미국이 그토록 자랑하는 1932년의 뉴-딜 정책보다 몇 수위의 정책이었다. 그는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당장에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에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원동력을 키우는 데에도 착안을 했다. 참고로 그가 얼마나 미래 지향적이었는지는 창원 공단에 나있는 광활한 도로 폭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주위의 의아심을 무릅쓰고 그는 넓은 도로를 건설할 수 있는 땅을 그때에 사두었다. 훗날 땅값이 오르면 넓은 도로를 건설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가 경부 고속도로를 지을 때 당시의 야당 지도자들, DJ와 YS는 얼마나 반대를 했던가. 그러나 지금 이 도로들을 넓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와 똑같은 시각으로 그는 빠듯한 나라 살림에서도 오늘날의 과학 단지를 만들어 냈다. 과학 단지야말로 미래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핵심적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자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고 그들 곁을 자주 찾았다. 대통령을 좋아한 나머지 과학자들 중에는 과로를 반복하다가 순직한 이들도 꽤 있었다. 과학촌 수장들이 박대통령을 만나기 원하면 대통령은 국무회의 중에도 만나주었다. 대통령이 이렇게 하니까 장관들이나 공무원들이 과학자들을 지금처럼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대전에 있는 국방과학연구소에는 그가 몇 일씩 머물던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 은 과학기술에 대한 그의 일선 지휘소였다. 그러나 그가 떠나고 난 지금까지 그 방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후의 대통령들에게는 과학이 입으로만 중요했다. 일자리를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원동력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과학기술집단이고 다른 하나는 설계집단이다. 과학기술잡단의 크기가 100명이라면 설계집단은 수만 명이라야 한다. 과학기술 집단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고 설계집단은 기술들을 수많은 분야에 응용하여 다양한 제품을 설계해 낸다. 설계 인력이 많아야 일자리가 많이 생긴다. 그러나 한국엔 그런 설계인력이 없 다. 이 설계인력은 그 후의 대통령들이 키웠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설계 인력을 키우기는커녕 30년 전에 박대통령이 일으켜 세운 과학촌 마저 무너지고 있다. 지난 3년간 외국으로 빠져나간 과학자 수가 2만명이라고 한다. 능력 있는 사람부터 나간 것이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연구장비를 덮어놓고 더러는 고시 준비를 한다고도 한다. 기술은 그릇에 담기는 것이 아니라 팀웍에 담긴다. 팀웍이 깨지면 기술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한 사람의 과학자나 한사람의 기술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들이 상품 또는 기술 단위 별로 팀웍을 이루고 있어야 의미가 있다. 이스라엘은 과학 기술자들이 팀웍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자본이 많은 미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의 훌륭한 투자대상이 되고 있다. 과학자, 기술자, 설계자들의 팀웍 자체가 고부가가치 상품인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벤쳐기업의 토양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지금 이스라엘 같은 나라와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과학자, 기술자, 설계인력이 없는 나라에 어떻게 부가가치가 생길 수 있으며 일자리가 만들어 질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와 일부 경제학자들은 지금 이대로라도 앞으로 전자 통신 등 벤처기업들을 통해서 일자리는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고 말한다. 일자리에 대해 이렇게 낙관하는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그때에는 박대통령이 아니었더라도 누구든 똑같은 경제성장을 이룩했을 것"이라고. 그때부터 한국은 미국을 보고 배웠기 때문에 누가 대통령을 했어도 경제는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에 대해 잠깐 생각해보자. 첫째, 박대통령이 집권하기 전에 북한은 우리보다 2배나 더 잘살았다.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은 까마득한 선진국이었다. 이들 3개국은 우리보다 미국에 더 가까워 있었다. 더구나 그들은 미국이 알아주는 선진국들이라 미국과 직접 대화를 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한국의 애로를 일본을 통해 미국에 전달해야하는 처지에 있었다. 이렇듯 우리보다는 훨씬 더 미국에 가까웠던 선진국들이 어째서 지금처럼 낙후돼 있는가. 누구나 비슷한 경영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아이야코카, 잭 웰치, 빌 게이츠, 마쓰시타고노스케, 이부카, 모리타아키오 같은 경영자들이 왜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는 반면, 한국의 재벌들은 왜 국민들로부터도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가? 둘째, 레이건 대통령이 미국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살펴보자. 그리고 그때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 살펴보자.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저자는 미국에 있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는 일자리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미국의 경쟁력이 일본과 유럽의 경쟁력에 이어 3류화돼가고 있다는 여론으로 사회 전체가 들끓고 있었다. 라디오를 틀어도 경제 토론이고 TV를 켜도 열띤 토론으로 핏대들을 올리는 모습들이 보였다. 동료 교수들을 만나도 경쟁력과 일자리 문제가 화두였다. 1987년 2월 미 국방과학위원회는 반도체 기술에 대한 연구결과를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결론은 5년간 총 35억달러를 투입해 반도체에 대한 기술 연구를 하자는 것이었다. 이 건의에 따라 레이건 대통령은 불루리봉위원회를 만들어 미국기술의 전반적인 좌표를 다시 평가시켰다. 1985년 미국의 3대 D램 제조업체인 모토롤라, 인텔, 몰스텍이 일본의 집중 공략을 받고 생산 라인을 페쇄했다. 이로부터 몇 년간 미국은 비메로리 반도체 연구에 몰두했고, 일본은 메모리 반도체 생산기술에 집중 투자했다. D램의 용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수록 문제가 되는 것은 제조공법이었다. 일본정부는 일본의 13개 반도체 업체들에게 독자적으로 연구비를 투자하지 말고 인력과 자금을 공동으로 염출해 통합적으로 연구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싱크로트론 엑스레이에 의한 새로운 제조공법이 개발됐다. 반면 미국은 레이건 시대로부터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비메모리 분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의 반도체 시장 구조가 미국 주도형으로 바꾸어진 것이다. 오늘날 미국 경제 그리고 미국의 경쟁력이 일본을 능가하게 된 것은 바로 레이건 대통령이 취했던 이니시어티브의 결과였다. 오늘날 반도체 시장은 비메모리 시장이다. 수학과 응용능력이 좌우하는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일본의 수학과 응용능력이 미국을 따라잡기 여렵게 되어 있다. 메모리 칩은 복사 능력이고 복사 능력에서는 일본이 미국보다 앞서 있었다. 그래서 과거에는 일본이 미국을 충분히 앞설 수 있었던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러한 조치를 취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무엇을 했던가. 전두환 대통령은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박대통령이 유치했던 과학자들을 다시 내보냈다.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에 나가 기술을 달라고 조르다가 국제적 망신만 당했다. 오늘날의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그리고 툭하면 우리도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고 뽑내는 한국인들에게 일본이 어떻게 신기술을 거져 줄 수 있었겠는가. 그후의 대통령들은 무엇을 했는가. YS시대의 5년과 DJ 시대의 5년은 소모적 정쟁으로 일관된 정치 공황기였다. 미국의 경쟁력을 일으켜 세운 레이건이 취했던 근본적인 접근 방법과 한국 대통령들이 취했던 황당한 조치를 비교해 보자. 그래도 "박대통령 시대에는 아무라도 경제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확신한다. 박대통령의 능력과 자질이 100점 위에 올라앉아 있다면 지금의 DJ는 마이너스100이다. 박대통령의 업적을 플러스 100점이라고 한다면 DJ의 업적은 마이너스 100이라고. 이는 감정이 아니다. 전문가는 전문가를 볼 수 있다. 그는 타고난 경영 전문가이고 나는 사후에 훈련된 경영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런 대통령을 다시 가질 수 있는가? 지금의 정치 시스템을 통해서는 절대로, 정말 절대로 이런 대통령을 가질 수 없다. 지금의 선거제도에서 뽑힐 수 있는 대통령은 가장 유능한 마피아다. 뒷골목에서는 험상한 얼굴로 돈과 조직을 가장 잘 관리하면서 겉으로는 가장 청렴하고 능력 있는 척 하기에 가장 뛰어난 사람만이 대통령이 된다. 훌륭한 대통령은 시스템 밖에서 나와야 한다. 시스템 밖에서 나온 대통령이 바로 박대통령과 전대통령이다. 그러면 쿠데타를 하란 말인가? 아니다. 지금의 군 장성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을 것이다. "세상사는 눈치"가 약삭빠른 장교들이 주로 장군이 되기 때문이다. 쿠데타가 아니라도 방법은 또 하나 있다. 바로 히틀러식 등극과정이다. 히틀러가 등극해서 저질렀던 미친 짓은 생각하지 말자. 등극과정이 우리에게 시스템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독일 국민은 당시에 정치가들에게 염증을 느꼈다. 히틀러는 무명인이었다. 그는 거리의 연사로 나섰다. 가는 곳마다 사을 모여들었다. 썩은 정치인들에 비하면 너무나 신선했다. 22개월만에 그는 일약 무명인에서 총통이 된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2008.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