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과 통합진보당·정의당, 친야(親野) 성향의 단체와 진보 인사들이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반(反)정부 투쟁으로 몰고 가기로 작심한 듯
나섰다. 세월호 문제를 다루기 위한 여야 간 대화도 사라졌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4일 여야와 유족들이 참여하는 '3자 협의체'를 구성해
세월호특별법을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여야는 8월에만 두 번 합의안을 내놨지만 번번이 유족들이 거부했다. 3자 협의체 제안은 지금까지의 여야
합의를 또 뒤집자는 말이나 다를 게 없다. 1차 합의를 파기한 뒤 재협상을 요구했던 새정치연합은 '재재(再再)협상'을 요구할 처지가 못 되자
유족들이 포함된 협의체를 만들어 새로 협상을 하자고 나섰다. 새누리당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금 이 나라의 국정과 국회는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국회는 25일 본회의를 열어 지난해 예산 결산 보고서를 처리할 예정이었지만 본회의가 과연 열릴 것인지조차 불투명하다.
국회에서 발이 묶인 경제·민생 법안들이 언제 처리될지도 알 수 없다. 이대로 가면 9월 1일 시작되는 정기국회도 장기간 겉돌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어렵게 불씨가 살아나고 있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될 것이다.
세월호특별법의
최대 쟁점은 누가 수사권·기소권을 갖느냐는 문제다. 유족들은 진상조사위가 이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여야와 유족
등이 추천하는 민간인이 수사권·기소권을 갖게 될 경우 피해자가 처벌 권한까지 갖게 돼 형법(刑法) 체계의 기둥을 흔들게 된다. 이번에 예외를
인정해주면 당장 군내(軍內) 의문사 피해자들이 수사권·기소권을 내놓으라고 나설 것이고, 앞으로 대형 재난 사건 때마다 같은 논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여야가 수사권·기소권을 특검이 행사하도록 합의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그동안 역대 정권들이 독재 정권 시절의 숱한 고문(拷問)
사건과 민주화 운동 탄압 사건들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였지만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한 적이 없었다.
일부 세월호 유족들은
청와대 주변에서 며칠째 농성을 하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특별법 제정은 국회의 고유 권한이다.
대통령이 여야에 법안 세부 내용까지 지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회와 정당의 권위를 부정하라는 말이나 똑같다. 지금껏 대통령과 여당을 믿지
못하겠다며 외면하고 줄곧 야당만 상대해 오다가 갑자기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처신이다. 진보 쪽 인사들이 단식 농성을
감성적으로 미화(美化)하며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도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공세로 볼 수밖에 없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2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원할 때마다 언제든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진작에 그렇게 했어야 한다. 그러나 여당은 지금껏 유족의
상처를 들쑤시는 설화(舌禍)를 거듭해 왔을 뿐 유족의 마음을 얻으려는 제대로 된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다. 새정치연합 역시 세월호 문제를 통해
정치적 이득을 얻겠다는 생각은 당장 접어야 한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라면 세월호 문제를 농성장이 아닌 국회에서 풀어내는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