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먹먹했다. 영화가 끝났으나 진한 감회가 남아 자리에서 한참동안 일어날 수가 없었다. 불과 두시간 남짓한 시간 안에 수십년의 역사를 담아낸다는 것은 애초에 무리한 시도이겠지만 그래도 생략과 압축, 반전을 통해 함의(含意)를 둠으로 대체로 잘 소화해 낸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나는 6·25전쟁이 끝나갈 무렵에 태어났으니 영화의 주인공은 나보다 10여년 가량 선배세대로 동세대가 느낄 감회는 나보다 더 진할 테지만 그 분들이 헤쳐온 시련을 곁에서 직접 바라본 세대이니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다만 지금 청장년 세대라면 압축된 영상에서 이면의 함의를 얼마나 찾아내고 이해할지는 모르겠으나 영상 자체가 주는 분위기만으로도 숙연한 감동을 주기에는 충분하리라 여겨진다.
오랫만에 아내와 아들 둘이 함께 한 영화감상이었다. 한동안 '동막골', '화려한 휴가', '변호인' 따위의 선배세대를 욕 보이거나 좌익성향으로 편중된 여러 영화들이 나오는 통에 나는 아예 영화관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는데 이런 순수한 영화가 나왔다는 것이 너무나 반가웠고, 마침 자식들이 연차휴가를 몰아 집에 합류해 기회가 생긴 것이다. 평소 역사에 관한 대화에서 더러는 나와 시각차를 드러내던 아들들이 영화를 보고는 말이 없다. 내가 한 수많은 말들보다 이 한 편의 영화가 선배세대를 이해하는 데 주효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보는 동안 눈물을 수없이 훔치는 것을 봤다.
영화에서는 이산가족이 생기게 된 안타깝기 그지없는 사연을 아주 간단하지만 극적으로 설명했다. 그리고 맨몸으로 정착하게 된 피난처에서 여러 자식들을 건사해야 하는 홀어머니 가장과, 홀어머니와 동생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장남을 통해, 피붙이인 고모를 통해, 희노애락을 같이 했던 친구를 통해, 자기만 아는 세대에 가족이나 주변인의 의미와 책임의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또한 비록 어렵고 힘들어 고단한 세월이었지만, 특히 영화는 비참할 정도로 험한 상황을 강조했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웃음도 있고 행복도 있고, 그 행복은 무엇보다 결코 놓칠수 없는 희망이 원천임을 꿰뚫어 봐야 한다. 지금은 보다 풍요롭고 자유로운 것 같으나 많은 이들이 절망 속에서 좌표를 잃고 있으니 이는 희망을 놓았기 때문인 것이다.
이 영화는 정치색을 철저히 배제시켰지만 무대의 시발인 흥남철수는 북쪽 주민들이 공산주의가 싫어 목숨 걸고 남으로 내려오는 현장이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 탈북민들의 사연을 듣고 눈물 짓는 이들이 있지만 당시는 이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박하고 처절했음을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군 지프와 쪼코렛, 부산에서의 쪼코렛과 지금은 망하고 없는 자유월남에서의 쪼코렛이 주는 의미도 한번쯤 짚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영화가 의도하는 바는 없지만 전후(戰後) 재기 과정의 독일과 월남 등 한 판 승부처의 무대에서 어른거리는 것은 바로 박정희의 그림자이다. 박정희의 업적은 경제개발에 앞서 국민들에게 절망하지 않도록 희망의 끈을 쥐어 주고 하면 된다는 의지력을 불러일으킨 게 가장 크다고 본다. 모두들 미래를 향해 치열하게 헤쳐 나갈 때 때아닌 '민주'라는 사치스런 단어를 들고 나와 사람들을 홀리고 힘을 빼는 이들이 있었으니 내가 박정희 입장이었다면 아마 쳐 죽여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때로는 다독이고 때로는 호령을 하며 선진국에 오를 튼튼한 사다리를 끌어다 놓은 것이다.
일부 좌익들이 이 영화를 두고 '박정희 영웅화'라고 시비를 거는가 본 데 박정희의 '박'자도 나오지 않은 이 영화, 주인공의 인생이 고달프고 끝내 다리 병신까지 되는 시련의 이 영화, 도통 말이 통하지 않는 수구꼴통 노인네의 과거를 그려놓은 이 영화를 두고 왜 박정희 욕 보이려는 게 아니고 영웅화하려는 영화라고 할까? 자기들이 그런 짓을 하도 많이 해 왔으니 제 풀에 오금이 저리는가 보다. 진실은 말로만 전해지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도 전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오늘은 어린날의 친구를 오랫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여 흠뻑 취한 기분이다.
출처 조갑제 닷컴 증인(회원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