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이 세종시의 정부 부처 과장급 이상 공직자 중 출장 횟수가 많은 사람들에 대해 '최근 3개월간 어떤 건으로 출장을 가
누구를 만나 뭘 했는지' 행적을 제출받고 있다고 한다. 이번 점검은 한 기획재정부 과장이 몇 달 동안 출장이라며 주로 서울서 근무하는 걸로
해놨지만 실제론 소재(所在)가 불분명했던 사실이 적발된 게 계기가 됐다.
선진국 어느 나라의 중앙 부처 간부 공무원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근무 태만 여부를 조사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행정의 중추 역할을 맡는 간부 공무원이라면 누구보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사명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 총리실이 근태(勤怠) 점검을 나서야 할 정도로 공무원 조직 분위기가 흐려져 버린 건지 한심한
일이다.
이는 세종시 근무 중앙 부처 공무원들의 근무 환경이 '말로는 출장 갔다고 해놓고 행적이 묘연한' 근무 태만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로 서울서 일을 보는 장·차관을 보좌하고, 여의도 국회 호출에 대비하고, 관련 회의에 참석하다 보면 중간
간부들도 서울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작년 7월에 하루 평균 220명의 중앙 부처 공무원이 세종시 오송역에서 서울행
KTX를 탔다. 버스를 탄 사람도 상당할 것이다. 서울로 출장 와 업무를 끝냈다 하더라도 다시 세종시로 내려가는 것은 엄두를 내기 힘들다.
공무원들이 업무도 할 수 없고 갈 데도 없는 자투리 시간에 뭘 하는지 확인해보면 별의별 사례가 다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공무원
출퇴근 버스를 이용하는 공무원도 2000명쯤 된다. 이 사람들은 하루 4~5시간을 길에서 보내야 한다. 150㎞를 출퇴근하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저녁 시간에 추가 업무를 시킨다는 것도 힘든 일이다. 국·실장, 과장은 서울에 출장 가고 세종시에 남은 서기관·사무관·주무관이 전화·팩스·메일로
일 처리를 한다지만 보고·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질 리가 없다.
기왕 국무조정실에서 나섰다니 이번 기회에 세종시 공무원들이 무슨
용무로 서울로 출장을 오고 그것이 얼마나 업무에 지장을 주는지 정밀 조사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보고나 국회 업무 때문에 세종시 부처들의 업무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 거라면 세종시에 청와대 분실, 국회 분원(分院)이라도 설치해 국회 상임위원회는 여의도와 세종시에서 교대로 여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각종 자문 회의도 일부를 세종시에서 분산 개최하거나 화상(畵像) 회의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지금처럼 중앙 부처
공무원이 떠돌이같이 각자 알아서 근무하는 상황이 5년, 10년 더 지속되면 대한민국 공직 사회의 기강(紀綱)은 다시 세우기 힘들 만큼 흐트러져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