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남 도발을 할 때마다 대북 응징 수단으로 전가보도(傳家寶刀)처럼 등장하는 것이 우리 전투기의 투입이다. 연평도 포격 사건시에도 북한의 포진지를 분쇄하는 데 우리 공군력 동원이 거론되었지만 무산되었다.
군사력은 병법(兵法)을 아는 사람이 써야 하고 공군력은 공군을 잘 아는 사람이 쓸 때 그 효용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솔직히 대통령에서부터 국방 수뇌, 외교 안보를 담당하는 직위에 있는 인사들까지 그들의 공군력 운용에 대하여 발언하는 것을 보면, 공군에 대해서 무지함을 엿볼 수 있다. 죄송한 얘기지만 너무도 모른다. 국가를 움직이는 핵심 권력층 인사들조차 그런데 일반 국민의 수준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명박 전임 대통령의 홍보 수석 비서관을 역임한 이동관씨가 최근 발간한 자신의 자서전, '도전의 날들'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와 관련하여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한 비화(秘話)를 소개했다.
가. 이 대통령은, 연평도 상공까지 출격했던 F-15 전폭기 두 대를 활용해서 도발 원점인 개머리 반도 해안 포진지를 타격하도록 강력한 지시를 했다.
나. 청와대 지하 벙커 참석 군 관계자들이, '동종 동량의 무기로 반격해야 한다'는 유엔사 교전 수칙을 내세우는 바람에 지시가 실행되지 못했다. (전폭기에 의한 공격은) 미군과 협의 사항이다고 답변했다.
다. 더욱 한심한 것은, 출격한 F15 전폭기 두 대에는 공대지 미사일이 장착조차 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당시 정부 수뇌부와 군 지휘부의 대응 상황을 소개했다.
위 기사를 읽은 우리 국민들 중 국가 안보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 당시를 떠올리며, 李 비서관의 자서전에 지대한 관심과 북한의 만행을 속시원하게 응징하지 못한 군의 대응에 대하여 거듭 분개하고 있을 것이다.
국가 안보와 관련 국민들이 오해를 하게 되면, 정부의 대북 정책이나 대응이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다. 이런 자서전이 나오기까지 대통령이나 홍보 수석은 물론이고 국민들이 오해하도록 방치한 것은 국방부의 책임이 크다.
필자의 경험과 아는 상식을 바탕으로 李 비서관의 언급에 대하여 국민들이 잘 이해가 가지 않거나 오해하는 부분에 대하여 설명드릴까 한다.
1. 공군 전폭기 투입을 지시하자, 군 지휘관들이 ' 동종(同種) 동량(同量)의 무기로 반격해야 한다 ' 는 유엔사(연합사) 교전원칙을 들어 반대했기 때문에 이행되지 못했다.
북한이 야포로 공격했으니 우리도 야포로 대응하는 것이 동종이고, 100발의 포를 쏘면 우리도 100발 범위 내에서 포를 발사하는 것이 동량이다.
북괴 도발시마다 우리 정부가 몇 배로 응징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은, 유엔사 교전규칙에 위배된다. 그럼에도 그런 구두탄을 날리는 것은, 혹시라도 불안에 떠는 국민들에게 국군의 자신감과 결연한 의지를 보여 안심시키는 민심 수습용 립 서비스(lip-service)인 것이다.
이 교전규칙은 확전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전투기를 투입하는 것은 확전, 경우에 따라서는 예상치 못한 전면전으로 비화될 소지가 있는 것이며, 이는 유엔사 교전규칙에 어긋난다.
북한은, 우발적으로 포를 쏜 것이 아니라 미리 계획을 수립하고 상부의 지시를 받아서 도발 작전을 수행한 것임은 모든 국민이 알 것이다. 그들의 도발 계획에는, 국군이 반격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대응 계획이 마련되어 있을 것이다. 인민군 수뇌부는, 아마 자기들이 도발해도, 국군이 대응 사격도 못하거나, 대응 사격을 하더라도 유엔사 교전 규칙 범위 내에서 할 것임을 간파하고 이를 저들의 도발 계획 수립시에 감안하여 도발했을 것이다.
우리 군 지휘관도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전폭기를 투입했다면, 북한은 아군 전폭기를 격추시키기 위하여 대공포와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그기를 발진시켜서 공중전에 돌입하게 되는 것이 다음 수순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서 아군기가 격추되거나 발사한 상당수의 대공 미사일과 대공포탄이 휴전선 이남 수도권 지역에 비오듯이 낙하하고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더욱 걱정되는 것은, 북한이 이에 대한 반격으로 청와대나 국방부, 한미연합사, KBS를 향하여 장사정포를 발사라도 하여 63 빌딩과 국회의사당, KBS 본관 건물이 붕괴됐다고 치자.
그때는 국민들과 언론이, 유엔사 교전규칙을 위반하면서까지 전폭기를 투입하여 재앙을 만들었느냐고 대통령 탄핵, 심지어 군 지휘관들을 처형하라고 난리가 나지 않을까? 물론 이런 극단적인 확전까지 가기는 극히 어렵겠지만, 그렇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했으니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전쟁은 처음에 사소한 일에서 비롯됐음은 그간의 역사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2, 유엔사(미군)와 협의해야 한다는 문제
우리 군은 평시 작전권한을 유엔군으로부터 이양받아서 국군 통수권자인 우리 대통령이 이를 행사한다. 그럼에도 군 지휘관들은, 유엔사에 미뤘다. 연평도 도발에 대한 우리의 포 사격 대응은 평시 작전권에 속한다. 대한민국이 독자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다만 전투기를 투입하여 확전할 경우 전면전을 부르는 상황을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 전시 작전권과 평시 작전권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국군 지휘관들이 한/미 연합사와 상의해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연합사가 전폭기 투입에 동의한다면, 이는 평시 작전권의 연장선상으로 연합사가 동의한 것이라고 우리 군 지휘관들은 해석하고 미군의 지휘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전을 지휘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의 의미는, 미국에 통고했으므로 혹시라도 확전될 경우에 연합군 세력의 지원이 필요할 경우 미군을 투입하여 도와달라는 당위성을 함축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연합사령관의 반응은, '한국군이 알아서 하라'였다고 했다. 이 반응을 접한 국민들은, 미국이 반대했다로 해석하는 사람, 미국이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고 보는 사람, 또다른 부류는, 미국은 한국의 위기에 무관심하다고 보는 사람 등 해석도 다양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군의 4성 장군이 지나가는 말로, 아니면 신경질적으로, 그것도 아니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이런 발언을 한 것이 아니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린 발언인 것이다. 과거 북한의 도발에 대하여 한국군 수뇌가 전투기 투입과 같은 확전을 하려고 하면, 그 때마다 연합사는, '확전은 아니 된다'고 분명히 밝혀 왔다.
그런데 이번에, 알아서 하라고 한 말의 의미는, 한국측의 의도에 '동의한다'는 외교적 수사를 에둘러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동의한다'고 답변하지 않은 것은, 혹시라도 확전이 될 경우 연합사령관(CINC) 선에서 본국에 변명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든 것이다.
찬성한다, 동의한다, 지지한다는 표현이 적극적 동의라면, '알아서 하라'는 소극적 동의, 혹은 묵시적 동의, 간접적 동의를 달리 표현한 것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3. 더욱 한심한 것은, 출격한 F15 전폭기 두 대에는 공대지 미사일이 장착조차 돼 있지 않았다는 것” 이 부분은 필자가 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나 그 휘하 비서관까지도 이 부분에 무지하거나 오해를 하고 있으니 일반 국민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필자가 쓴, '이제는 공군에 투자할 때다'는 글에 대해서도 이 비서관과 같은 오해한 독자 분의 댓글을 봤다. 앞으로도 한반도에서 유사한 상황이 계속, 가끔씩 재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 다소 장황하더라도 자세히 소개하고자 한다. 전폭기를 투입했을 때의 예상되는 결과를 보자.
(1). 전투기는 고속이다. 높은 고도에서는 야포를 찾아낼 수 없다. 전폭기가 야포를 발견하려면 500미터까지는 내려와야 한다. 산악 지형 때문에 충돌을 피하려면 그 정도 고도로 내려오는 것은 안전상 대단히 위험하다. 1km에서는 남산에서 63 빌딩에 앉은 참새를 식별하는 것만큼 힘들 것이다. 야포 진지는 포를 발사한 연막으로 시야가 가린다. 총알처럼 고속으로 지나가면서 야포를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2). 야포를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면서 포 진지 상공을 반복해서 지나가는 동안 북한의 대공화기(지대공 미사일 및 고사 기관포)가 불을 뿜을 것이다. 고사 기관포로는 어렵겠지만 이 포가 발사되면 저공으로 내려오기가 어렵다. 미사일은 명중률이 비교적 높기 때문에 아군기가 격추될 가능성이 있다.
(3). 적의 미그기들이 아군기를 격추시키려고 접근할 것이다. 따라서 전폭기는 공중전은 거의 불가하기 때문에 엄호 전투기의 호위하에 폭격에 임한다.
아군 전투기들이 미그기와 대적하겠지만 홈 그라운드 잇점을 안고 있는 북한은 숫적 우세로 밀어붙일 것이다. 많은 미그기가 격추되겠지만 벌떼처럼 몰려드는 일부 미그기가 호위망을 뚫고 아군 폭격기에 달려든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F-15 라도 공대공 무장을 안 했기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마련이다. 더욱이 전폭기는 많은 무장을 한 관계로 동체가 무거워서 기동력이 떨어진다. 우리 비행 교범은, 폭격 임무에 투입된 전폭기는 아군기의 엄호를 못 받을 경우 공대지 무장을 해제(아무데나 떨어뜨려버리고), 공대공 무장이 남아있다면 교전을 하면서 가급적 빨리 퇴각하도록 되어 있다. 공대공 무장 대신에 공대지 무장을 했기 때문에 공대공 무장이란, 겨우 기총뿐이다. 상대가 안 된다. 도주해야 한다.
적기가 발사하는 미사일에 격추되는 전폭기들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무리 날고 기며 미그기 킬러 F-15라고 해도 공대지 무장 상태에서는 적기의 밥이 될 수밖에 없다.
(4). 북한의 장사정포를 비롯한 상당수의 야포들은 동굴 진지에 숨었다가 공격할 때만 진지 밖으로 나오는 형태다. 아군기 소리가 들리면 재빨리 동굴 속으로 피신할 것이다. 결국 아군기가 적기를 찾아내서 식별하고 조준하며 발사하기까지 여유 시간은 고작 1~2분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불가한 여유 시간이다.
우리 전폭기로 북한의 장사정포 등을 공격하여 괴멸시키려는 발상은,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으로 맞지 않다. 연평도 포격 사건에 만일 공군기를 투입했다면 목적을 달성하기는 커녕 아군의 피해만 입고 크게 망신 당했을 것이고 국민의 사기만 떨어뜨리는 그 후유증도 컸을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공군을 모르는 사람들이 오기와 만용으로 공군기를 투입했다면 확전으로 역사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공군기를 투입하지 못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다음 회에는 왜 공군기를 투입하지 못했는지 我 공군 쪽 요인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조갑제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