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개성공단 중단 결단은 일시적 정책 변화가 아닌 대북(對北)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 이후 남북관계의 두 핵심축이던 ‘6자회담’과 ‘개성공단’이 사실상 모두 폐기된 것이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의해 강제된 것이다. 김정은이 핵 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남북관계는 앞으로 상당 기간 대결과 긴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낭만적 평화통일론을 완전히 접고 냉철한 현실 인식의 기반 위에서 망전필위(忘戰必危) 원평비전(願平備戰)의 국민적 의지를 결집하는 일이 더 없이 중요해졌다.
이미 북한은 남남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공작에 나섰다. ‘전쟁공포심’ 조장을 통해 국론 분열을 꾀하고 있다.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11일 “대가가 얼마나 뼈 아프고 혹독한지 몸서리치게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실제로 후속 도발이 전개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이런 불안한 상황이 장기화하면 우리 내부에서 안보 피로감이 생기고, 과거 천안함 폭침 직후처럼 ‘전쟁이냐 평화냐’ 식의 선동이 먹힐 수도 있다. 2개월 뒤 총선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이미 야권 일각에서는 북핵을 저지할 대안은 내놓지 않은 채 정부의 조치만 비난하면서 6자회담과 개성공단 복구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북한에 의해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완전히 부정됐고, 햇볕정책이 북한에 핵무장을 위한 돈과 시간을 제공함으로써 북한의 ‘독재 외투’를 벗기기는커녕 대한민국의 ‘안보 외투’를 벗겼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석고대죄해야 할 일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 안보의 최종 책임을 지고 있다. 박 대통령이 중심을 잡고 국론(國論)의 결집을 이끌어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아직 대증적(對症的) 단기 대응만 보일 뿐, 남북관계의 패러다임 변화에 따른 총체적 전략이 안 보인다. 당국자들도 확신을 갖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는 것으로 비치고 일반 국민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국가와 민족의 실존(實存)이 걸린 엄중한 안보 상황이다. 그러나 모든 위기가 그러하듯 좋은 기회로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 북한의 위협에 굴하지 않는 국민의 단결되고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대북 정책의 본질과 비전을 국민에게 알리고 공유해야 한다. 어느 정도 희생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도 진솔하게 밝혀야 한다. 결코 안보에 불통(不通)이 있어선 안 된다. 박 대통령이 직접 소상히 설명하고 국민의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우는 일이 무엇보다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