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도자의 기근(饑饉)이다. 여(與)건 야(野)건, 이른바 보수건 진보건 그렇다. 대통령을 삼을 만한 리더가 보이질 않는다. 막스 베버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로 ‘지도자’의 존재를 뽑았다. 지도자 있는 민주주의와 지도자 없는 민주주의. 카리스마를 갖춘 지도자가 없는 민주주의는 정치가 ‘직업 정치가’ 좋게 말해 명망가, 실제는 정치 자영업자들의 도당(徒黨)·파벌(派閥)·붕당(朋黨)이나 동업집단이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대의(大義)도 명분(名分)도 사라진 밥그릇 싸움, 대중의 야유와 조롱의 대상이 된 정치, 이른바 반(反)정치의 지배이다. 보수와 진보가 생산적 경쟁을 하면서 선거는 대중의 축제가 되는 좋은 정치가 아니다. 나쁜 정치. 정치적 이성의 실종이다. 지도자는 중요하다. 전제주의나 권위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는 더욱 그렇다. 이들이 사라져 버리면 민주주의는 일종의 중우정치(mobocracy)로 타락한다. 한국의 위기는 그래서 지도자 결핍의 위기다. 다음 번 대통령 선거도 도대체 ‘깜’이 보이질 않는다. 2. 지도자의 첫 번째 조건은 사랑이다. 공자는 최고의 윤리적 덕목인 ‘어질 인(仁)’의 정의를 애인(愛人),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 말했다. 사랑을 이루기 위한 자신의 죽음을 말했다. 그것이 살신성인(殺身成仁)이다. 멸사봉공(滅私奉公)이요, 견위치명(見危致命)이요, 견리사의(見利思義)다. 예수는 ‘선한 목자’를 말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나는 선한 목자라...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한복음 10장 11-15절)” 사랑을 실천할 선한 목자, 인(仁)을 이룰 군자는 사랑의 리더다. 약(弱)한 대중, 가련한 백성을 위해 죽는 것만이 아니다.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증오하는 대중, 없는 말을 지어내며 음해하고 참소하는 백성을 위해 기꺼이 죽는 자다. 영웅처럼 떠받드는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만이 아니다. ‘내 무덤에 침을 뱉는’ 사람들, 돌을 던져 내리 치는 사람들, 십자가에 못을 박는 무지하고 몽매하며 사악하기까지 한 군중을 위해 죽는 자가 진정한 리더다. 3. 선한 목자와 군자에겐 미움이 없다. 증오가 없다. 시기와 질투가 없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향한 연민과 긍휼과 사랑이 있다. 모함(謀陷) 앞에서 담담하고 찔림을 당해도 잠잠하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쉼 없이 일하며 그들을 죽이는 집단이 있다면 공적인 분노를 할 뿐이다. 양떼를 살리려 늑대를 막아낼 뿐이다. 이순신은 그렇게 조선을 구했고 시몬 볼리바르는 남미를 살렸다. 하늘을 원망치 않았고 사람을 탓하지 않았다. 삯군과 소인(小人)은 율법(律法)과 판단(判斷)과 정죄(定罪)의 칼날만 서 있다. ‘이 사람은 저래서 나쁘고 저 사람은 이래서 악하다. 이 조직은 이래서 안 되고 저 모임은 저래서 안 된다.’ 삯군과 소인이 모이면 다툼과 분열이 생긴다. 서로 비판하고 비난하며 싸움판이 반복된다. 열심(熱心)이 있어 뵈도 시간이 지나면 결실이 없다. 다툼이다. 분열이다. 분쟁의 끝이 없다. 야권이 그렇게 쪼개져 버렸듯 새누리당이 지금 그렇다. 16년 지켜본 보수층 역시 그랬다. 4.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정치적 영역 뿐 아니다. 모든 영역 정치·언론·교육·문화·경제 모든 영역이 그렇다. 조직과 조직의 멤버를 위해 희생할 리더가 나와야 조직이 살아날 것이다. 나라가 살아날 것이다. 모두가 그런 리더가 되어야 민주주의가 죽지 않는다. 쉽게 화내고, 쉽게 삐지고, 쉽게 다투고, 쉽게 욕하고, 쉽게 비난과 비판만 일삼는 똑똑이들은 누구도 살리지 못한다. 자신을 망치고 주변을 망치고 세상을 수렁에 몰아갈 뿐이다. 악에 대한 분노는 김정은 악행에 대한 것으로 족하다. (사)한국자유연합 대표 김성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