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아프리카 사파리를 다녀온 선배로부터. 비행기 두 번 갈아타고 찾아간 야생동물 천국에서 현지 외국인학교 재학 중인 우리 초등생들을 만났다고 한다.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여 인사를 나눴는데, 예상외로 외교관 자녀도, 기업 주재원 자녀도 아니었다는 것. 사정을 알고 나니 더 놀라웠다. 돈 많고 수완 뛰어난 학부모들이 아예 팀을 짜서 현지에 외국인학교를 세웠다고 했다. 미국이나 유럽도 아니고 얼룩말 뛰어다니는 이 오지(奧地)에? 선배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함정은 서울대와 연세대 등의 '재외국민전형'에 있었다. 해외에서 초·중·고 12년을 모두 다닌 학생의 경우 일정 수준 이상의 언어 능력과 교과 성적이 확인되면 인원 제한 없이 정원 외 합격을 시켜준다는 것이다. 선배는 "자식 스카이 대학 보내려고 아프리카에 학교까지 짓는 재력과 노력이라면 인정해 줘야 하는 거냐"며 허탈하게 웃었다.
또 하나의 사례는 어쩌면 더 맥빠지는 경우. 애지중지 무남독녀를 미국 명문 대학에 유학 보냈던 선배 이야기다. 드디어 졸업반인데, 미군(美軍)에 입대하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알려왔다고 했다. 그것도 장교가 아닌 사병으로. "이러려고 수억 들여 공부시킨 줄 아느냐"고 고함치자 뭐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말라는 핀잔이 돌아왔다. 국내 적응 잘 못한다며 한국 대기업들이 해외 유학생 꺼린 지는 오래됐고, 미국도 불경기라 자국 출신 아이비리그 졸업생도 예전 같은 취직이 어렵다고 했다. 더욱이 졸업반이라 비자도 만기. 하지만 군 복무 5년을 마치면 미국 시민권을 준다는 것이다. 근무 희망지로 'Korea'를 적으면 배치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이 '오지'이고 '험지'이기 때문에 경쟁률이 낮다는 것. 선배는 "그나마 한국에서 얼굴 볼 수 있다고 나를 설득하는데, 이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라며 혀를 찼다.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던 그 선배는 자신을 중산층이라 생각한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딸이 미군 사병 입대를 고민하는 와중에도 좀 더 부유하고 능력 있는 부모를 둔 유학생 친구들은 한국으로 속속 귀국한다고 했다. 괜찮은 자리가 났다면서. 재능도, 노력도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을 바라보는 '나름' 중산층 자제의 박탈감과 열패감을 여기서 재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에 학교를 세운 학부모들은 그 나라의 적법한 절차 거쳐 내 돈 들여 지었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지 모른다. 서울대와 연세대의 '재외국민전형' 역시 규정 하나 어기지 않고 입학 전형을 실시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기회의 사다리' '희망의 사다리'다. 빈곤층뿐만 아니라 중산층마저도 사다리가 끊어졌다고 믿는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없다고 본다. 나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설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때다.
어수웅 : 조선/문화부 차장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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