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안보 위기가 깊어가는데, 갈수록 정국은 꼬이고 국정 표류는 길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했고, 이를 보완할 새로운 국정 시스템이 쉽게 마련될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8일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하면 실질적 내각 통할권을 부여하겠다”며 초헌법적 수습 방안을 제시했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문제점이 수두룩하다. 위헌(違憲) 요소를 줄이거나 없애려면 박 대통령과 여야(與野)의 합의가 대전제이며, 국회 차원의 단일안 마련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현재의 정치권 사정을 보면 여야 협의체의 실질적 가동부터 난항이 예상된다.
박 대통령의 ‘국회 추천 총리’ 수용 입장에 대해 야당은 여전히 ‘2선 후퇴’와 ‘장관 임면권의 전면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청와대 측은 “각료 제청권과 해임 건의권을 가진 실질적 내각 구성권을 부여한다는 의미여서 사실상 2선 후퇴”라고 하지만 야당은 일축하고 있다. 2선 후퇴의 구체적 의미는, 박 대통령이 대통령 권한을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인데, 그것은 ‘위헌’에 해당한다. 정치적 합의로 그런 시스템을 운영할 수는 있어도 ‘공식화’는 안 된다는 입장을 야당이 대승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국회가 후임 총리의 권한·인선은 물론 내각 개편까지 ‘단일안’을 만들면 박 대통령이 어떻게 거부하겠는가. 그때에는 탄핵에 나서도 국민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장 필요한 일은 여야가 헌법 테두리 안에서 합리적 방안에 합의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박 대통령은 스스로 ‘하야’를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물론 검찰 수사와 범죄 혐의 특정(特定)이 이뤄지면 국면이 바뀔 수 있다. 그런 중대 고비를 앞두고 있더라도 박 대통령의 의중이 그렇다면 야당이 2선 후퇴를 강제할 방법은 ‘탄핵’밖에 없다. 야당도 이것을 알지만 ‘노무현 탄핵’의 학습효과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야당이 국민과 국가, 국정과 국익을 앞세운다면, 이미 무력한 대통령에게 다시 공을 넘길 것이 아니라 정치권의 단일안 마련을 주도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