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泰愚 대통령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폴란드, 헝가리에 이어 체코에서도 공산당 정권이 민중봉기로 무너지고 있던 1989년 11월 유럽을 방문하면서 영국 수상 대처와 회담했다. 1989년 11월 28일 오후, 그리고 그날 저녁 수상관저에서 있었던 만찬에서 "철의 여인" 대처 수상은 盧 대통령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대처는 그해 6월에 있었던 중국의 天安門 사건에 대해서 분개하고 있었다. "등소평은 문화혁명 때 고생을 많이 해서 절대로 그런 일이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고 늘 말해왔고, 조자양과는 홍콩 반환교섭 때문에 자주 만났는데, 교섭결과도 대체로 만족스럽고, 1997년 반환까지 잘 될 줄 알았는데... 등소평은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고, 조자양도 퍽 합리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그런 무자비한 짓을 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외국 귀빈이 와 있어서 나라 체면도 있었다지만, 그 사람들은 최루탄도 없는지... 꼭 총을 쏘아 사람을 죽여야만 되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盧泰愚 대통령은 노사문제를 화제로 삼았다. "우리는 지난 30년간 열심히 배우고, 일하고, 수출해서 많이 발전했습니다. 요즈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노사분규나 젊은층의 극단주의 등 어려움이 많습니다. 수상께서는 노사분규를 과감히 처리하여 산업평화를 이루는 데 성공하셨는데,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노사관계의 비결은 간단합니다. 일반 노조원들은 순진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일합니다. 문제는 노조 지도층인데, 그들이 모든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노조지도자(union boss)가 파업을 하려면 노조원 전체의 비밀투표에 의한 동의를 받아야 되도록 법을 고쳤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그에 가담치 않았고, 간혹 파업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가 있으면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도록 되어 있습니다. 요는 노조 지도층의 독재적 권위를 분쇄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사업장 출입방해 등 부분 파업에 대하여도 규율합니다. 영국에서는 자동차 업체에서의 노사분규가 제일 심했었는데, 한 업체에 다수의 노조가 있어서 서로 경합적으로 문제를 야기하기 때문에, 새로운 공장에서는 하나의 노조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원지주제를 실시해서 자기 회사뿐 아니라, 다른 회사의 것이라도 다만 몇 개의 주식이라도 소유하게 되면 노동자 스스로가 소자본가가 되어 생각이 변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