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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의 새 판 짜기와 헌법개정

-한국정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한 승 조 (대불총 상임고문, 前 고려대 명예교수)




I. 왜, 한국정치는 이 시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 나서야 하는가?

1. 건국 60년 동안에 해결하지 못했던 정치문제를 매듭지음으로써 제2기 60년을 위한 새로운 정치패러다임을 찾아내야 한다. 한국의 미래를 순조롭게 발전시키려면 지난 60년간 계속 되어왔음에도 지금까지 해결되지 못했던 국론분열과 좌우대립의 고질병을 해소 치유하는 획기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데 이의(異議)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명박정부의 몰이념적(沒理念的) 실용주의가 내포하는 불명확성 불확실성을 보완하며 대통령 리더십에서의 확실성과 신뢰성을 높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과거의 정치패러다임을 가지고는 나라의 고질병이 치유되지 못해온 이유가 설명되어야 한다. 해방 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는 서구적인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 두 개의 다른 패러다임이 공존(共存)하며 대립해 왔다. 좌우대립과 남북갈등과 대결정치(對決政治)가 지속되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두 가지 상반하는 정치이념을 봉합하여 한국정치를 보다 더 성숙한 단계로 끌어들이는 방안을 우리는 찾아야 한다. 그러자면 한국정치의 패러다임을 보다 더 현실에 맞도록 선진화(先進化)함으로써 남북화해와 융합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5000년 역사와 문명을 이어온 한국민이 그 정도의 해답 내지 해결책도 찾아내지 못하겠는가?

2. 08년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발표하면서 이것이 앞으로 새로운 60년을 이끌어 갈 새 성장 정책임을 명시하였다. 이 나라가 앞으로 만들게 될 녹색산업, 녹색기술, 녹색정책 등이 나라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며 앞으로는 이 사업을 국토개조, 기업의 경쟁력, 나아가서 생활혁명으로까지 확대해 나가야겠다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계획이 성공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출마시 선거유세에서 공약했던 7-4-7의 실현도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것도 같다.

이것이 이명박정부의 새 비전이며 의지라면 우리 국민은 이러한 정책방향을 적극 지지하며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물론 李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국가와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의 새 비전과 국정방향을 뒷받침하는 정치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나 그것이 가능하려면 과거의 정치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과 행태를 가지고 하는 수밖에 없다. 종래의 정치방식을 가지고는 못해온 일이기 때문이다.

3. 이러한 李明博정부의 의지를 읽으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는 이 나라의 국민들이 다 같이 국운상승(國運上昇)과 지속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정부의 새 정책이 실패하거나 좌절함이 없도록 일치단결하여 지지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지지 협조하며 나서 주겠는가? 또 하나는 지난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배하여 대권(大權)을 빼앗긴 야당세나 친북좌파는 절치부심하며 보복하고자, 또 차기 정권을 기필코 탈취할 목적으로 현정권의 정책노선을 좌절시켜려고 노력할 것이다. 이들 반정부세력은 현 정권이 앞으로 5년동안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여 계속 죽을 쑤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무능한 정부로써 국민의 지탄을 받다가 차기 정권을 좌파집권에게 넘겨주기를 바랄 것이며 그를 위해 끊임없이 반대공작을 벌일 것이다.

문제는 정부・여당 편도 아니고 또 친북좌파이거나 친야당세력도 아닌 일반 국민대중의 태도와 반응이다. 다수민중이 정부여당을 믿고 따르려고 할 것이냐? 늘 부정심리에 사로잡히기가 쉬운 판에, 특히 요즘의 경제난으로 인하여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은 야당과 친북좌파의 영향을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려 들지 않겠는가? 늘 긍정심리보다 부정심리에 기울기 쉬운 터에 경제사정이 악화된 현 시기에 정부를 믿고 따를 가능성이 적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현재 이명박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나 지지는 30%선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상황이 악화되고 어려워지면 정부를 중상하고 민중을 악선전하며 선동하려는 반정부세력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 야당과 친북좌경세력에 동조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도 있다.

이명박정권은 애초에 대운하건설로 국민에게 일자리를 창출하며 국민경제의 안정과 번영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야당의 선동과 선전 그리고 친북좌파의 반대에 봉착하자 일조에 물러서서 그 기획을 백지화시키고 말았다. 이번 녹색성장 정책도 그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정부의 녹색성장 프로젝트도 말만 풍성하고 결과는 별 볼 일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리기가 쉬울 것이 아닌가? 정부측도 여러 가지 여건이 좋지 않은 이 때에 많은 반대와 비판의 여론에 눌려 밀려다니다가 끝내 물러서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또 녹색산업기술도 미국이나 일본의 도움이 아쉬울 터인데 좌파세력의 반대와 질타를 겁내는 이명박정부가 대미・대일 관계를 크게 접근시킬 수가 있는 조치를 취할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한국정치의 새 패러다임을 찾고자 하는 이유도 이러한 의구심과 위험성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본래 무능한 사람이 아님이 확실하나 난관이나 반대세력의 저항에 직면하게 되면 단호히 물리치고 어떤 어려운 일도 성취시킬 만큼 강력한 돌파력을 가진 지도자로 보이지 않는 것이 매우 아쉬운 일이다.

많은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쇠고기 수입문제로 좌파세력들이 전혀 이치에도 닿지 않는 악선전에 시달리며 반정부세력들이 정부하는 일에 사사건건 트집을 걸며 반대하며 연일 촛불시위를 벌였을 때 정부는 당황하여 사과를 거듭하면서 정당한 공권력마저도 행사하기를 겁을 내는 한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마키아벨리는 통치권자는 사자와 같은 사나움과 여우와 같은 교활성을 가져야 난국(難局)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그런 자질을 가진 정치지도자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좋게 말하면 그는 유순하고 부지런하게 활동하는 사람임은 틀림없으나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정치적인 난국을 거뜬하게 극복하고 해쳐나갈 정도로 강력한 지도자로 보이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통령 개인과는 관계없이 정치의 패러다임을 달리하여 정치제도와 환경을 바꿔 줌으로써 국가가 추구하는 장기계획이나 정책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새 파라다임을 만들어서 정치의 판을 바꾸려고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녹색정책을 추진하는 정부를 지원하고 협력하는 정당과 시민단체의 활동을 최대한으로 북돋아 줄 수 있는 방법이 어떤 것인가. 또한 그런 여건이나 제도 그리고 환경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정치 모형을 어떻게 만들어내며 또 그런 모형을 어디서 찾아낼 것인지 중지(衆智)를 짜내야 할 판인 것이다.


II. 새 정치 패러다임의 구성여건과 사상내용

한국정치의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 내는데 필요한 구성요건부터 말하겠다. 첫째는 한국의 정치적인 어려움을 해소하거나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는 현대문명이나 세계의 변화추세와 부합되거나 적어도 상반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런 행위로서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는 나라의 문화 내지 사상의 전통과도 부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선 세 번째 요건부터 역으로 부연 설명해 나가기로 하겠다. 나는 정치학 연구의 기본방향을 설정함에 있어서 서양학문이나 사상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루는 동양사상과 세계관, 또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의 신조와 부합되는 것 중에서 찾아봄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오늘의 국론분열이나 사상대립이 서양사상의 패러다임에서 연유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동양사상(東洋思想)에서 찾아보자면 유불선(儒佛仙) 삼교에 공통된 정치 사회의 원리로서 중도(中道)의 철학사상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동양의 중도사상(中道思想)은 생명유기체론적인 우주관에서 나온 것이며 화해(和解) 통합(統合) 조화(調和)의 정신을 지향하는 것이므로 서양사상의 대립(對立) 분화(分化) 모순 갈등의 정신과는 상반하거나 대조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서 서양의 자본주의나 보수주의(백색)와 공산주의나 급진과격사상(적색)은 화해하거나 융합할 수가 없다. 그러나 동양적인 中道사상은 모든 정치사상을 포용하며 융합시키는 특성을 갖는다,

적십자활동이 모든 적대관계를 초월하듯이 중도사상이라는 녹색(綠色)=친환경・ 친생명활동도 모든 대립과 투쟁의 관계를 포용하고 끌어들여서 녹이며 융합하는 능력을 갖는다. (중도사상을 녹색과 결부시키는 것은 자의적인 생각이지만 녹색은 생물을 먹이고 키우는 식물의 색깔이므로 인하여 친생명윤리사상과 결부될 수가 있다는 의미에서 중도사상과 결부시키고 있음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동양의 중도주의는 중간주의(中間主義)와 다르고 또 절충주의(折衷主義)와도 다르다는 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걸은 실리주의(實利主義)는 이념적으로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나 實利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쪽과도 거래할 수가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그러므로 중간주의에 가까운 개념이다. 이것은 중도주의 철학을 터득하려면 많은 연구와 공부를 해야 함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유럽에서는 ‘제3의 길’이란 말과 사상이 유행했다. 여기에는 折衷主義(절충주의)의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동양의 중도주의는 A도 아니고 B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C도 아니나 경우에 따라서는 A일 수도 B일 수도 C일 수도 있다.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서 어느 것이 될 수도 있다. 오로지 어느 한 가지에 집착하지 않을 뿐이다. 이와 같이 융통성이 많은 개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중도주의에서 보는 민주주의는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민주정치와 다음과 같은 면에서 매우 특이하다.

또한 中道사상은 단순히 정치 경제 사회의 영역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우주관 내지 세계관이며 생명유기체 전반 그리고 정신세계나 우주질서 전반에 적용되는 사상이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또 한국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녹색성장(綠色成長)이 있다. 녹색산업이다, 녹색문화혁명이다 하는 말은 동양의 전통적인 생명유기체적인 세계관을 지칭하는 현대적인 어휘이며 개념일 뿐이다. 전혀 새로운 개념이 아니면서 그 철학적인 깊이로 들어가려면 동양사상을 공부하지 않으면 그 본질과 진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음 두 번째 국제사회의 변화나 현대적인 사조(思潮)와의 부합성에 관해서 고찰해 보자. 이런 동양적인 중도사상을 우리는 동양사상의 중도주의 철학의 미래상이 외국의 많은 미래학자들의 낙관적 희망적인 미래한국의 상(像)과 정확하게 일치함을 보면서 이러한 바람직스러운 미래상을 염두에 두고 그러한 사상이나 신조(信條)를 한국정치학의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사상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립,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내지 전체주의의 대립, 세속적인 이익과 정신적인 가치의 대립과 갈등에서 쌍방을 수렴하여 조화하도록 만드는 원리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제반 현실여건으로 보아서 이런 원리를 한국적 패러다임의 뿌리로 삼아서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여러 모로 유용할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제 첫 번째 새 패러다임의 여건을 말해도 될 때가 왔다. 그 패러다임은 나라의 긴급한 정치문제나 오랜 숙환, 골칫거리를 치유하거나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국은 해방 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좌우대립과 남북갈등의 비극을 곱씹어 왔다. 그러니 이제는 그만 남북화해나 좌우융합의 문화나 사상을 그리며 적대관계를 화해와 융합을 위하여 어떤 노력이라도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할 수가 있다.

동양사상에 기초된 사상의 패러다임은 서양사상의 패러다임과 다음과 같은 면에서 매우 특이하다. 우선 그 패러다임의 내용은 서양문화에 뿌리를 둔 현대적 합리주의와는 너무나 다르다. 그 매우 특이(特異)한 면을 여기서 음미 검토해 보겠다.

(1) 사상의 기본방향이나 기초개념이 자기중심적이거나 주관적 또는 아집적인 요소가 없으며 자기초월적 초(超)주관성을 지향한다. 동양사상은 남을 이기려고 하기보다 차라리 자기 자신을 이기려는 극기(克己)의 사상이나 무아적(無我的)인 입장을 선호하며 추구하려고 든다.

(2) 그 사고방법이 고정적이 아니라 유동적이며, 대립적이 아니라 협조적 포용적이다. 동양사상은 주장도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향적 다변적이다. 또 물질주의 기계론적인 사고방법을 외면하고 정신주의적이며 융통이 자재로운 생명유기체의 우주관에 바탕을 두려는 경향을 보인다.

(3) 외부사람들에 대하여 지배적이 아니라 봉사적이다. 타산적이 아니라 박애주의적이다. 이지적(理知的)이 아니라 정의적(情誼的)이며 선락후고(先樂後苦)를 택하느니 차라리 선고후락(先苦後樂)의 길을 선호한다. 민족주의란 것도 개방적이며 평화주의적이며 세계일가사상(世界一家思想)을 더 선호하며 또 더 높이 받들려는 경향을 보인다.

한국적인 패러다임이라고 할 때 그 내용이 다양하므로 사고경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모델을 선택할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가까운 패러다임을 고집하려고 든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좌우익(左右翼)의 대립으로 갈라지고 또 남북한 관계도 갈등 속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해온 것이다.


Ⅲ. 한국의 정치현실의 모순과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패러다임은 東洋의 中道思想에서 찾아야

앞에서 우리는 동양사상(東洋思想)이나 아시아적인 가치(價値) 속에 담겨져 있는 중도주의 사상을 선택하게 되면 한국정치 속의 좌우대립이나 남북의 갈등문제가 차츰 해소(解消)되고 해결될 것임을 시사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동양의 중도사상에서만 찾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구미(歐美)사회의 미래학자들은 정보화사회의 변화추세의 관찰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유사한 미래전망을 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서구의 사회과학자들이 보는 21세기의 세계상, 특히 고도정보화사회의 모습을 요약해 본다면 사람들이 차츰 “대결로부터 공존으로, 반목에서 이해로. 적대에서 협력으로, 폐쇄로부터 개방으로, 분단에서 연합으로, 폭력으로부터 도덕으로, 격차 확대로부터 축소로, 부자유 불평등으로부터 자유와 평등으로 전진하는 시대” 라고 내다보았다.

과학문명도 계속적으로 고도화 하지만 정신도덕문명이 앞으로는 더 시대의 각광을 받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음을 본다. 극동 3국이 차츰 태평양문명시대의 주역으로 부상할 것이나 그 중에서도 아마도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면에서 한반도나 남북한의 갈등관계를 해결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 제3세계의 이익을 증진케 하려는 노력을 추가하려고 든다면 한민족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는 왜 이러한 노력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와는 반대되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런 악조건에서 벗어나지 못해 왔는가? 이것은 한국인들이 정치의 패러다임을 외래사조(外來思潮)의 영향을 받아들였던 산업화사회의 패러다임에 집착한 나머지 변화할 때가 지났음에도 변화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파들의 권력장악과 유지에만 급급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상 좌우대립은 산업화사회의 패러다임이었다. 남한은 산업화의 단계가 지났음에도 북한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좌우대립 남북갈등에 아직도 목을 매고 있음을 본다. 좌우대립 의식은 북한공산주의와 좌파세력에게 강한데 그들의 위협에 맞서려고 하는데서 사상대립이 여전하게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남한측이 북한측에 대하여 훨씬 너그럽고 포용적이며 관대함을 보여 왔던 이유는 남한은 북한과는 산업화단계에서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벗어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중도주의 패러다임에서 볼 때 한국의 민주정치도 다음과 같은 면모를 보이게 될 것으로 믿어진다. (1) 혁신성과 보수성의 화해와 조화 (2) 원칙성(불변성)과 융통성의 균형과의 화해와 조화 (3) 체제의 정통성과 효율성의 화해와 조화 (4) 수량주의와 질적인 秀越性(수월성)의 화해와 조화 (5) 세속적인 가치의 중시가 초세속적 가치의 중시와 화해하고 조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정치의 새 패러다임이 앞으로 한국정치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까? 한국정치의 선진화의 모습도 민주정치의 형식논리에 사로잡혀 있었던 과거와는 크게 달라짐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Ⅳ. 유기체론적 국가론과 중도사상에 바탕한 한국형 자유민주주의의 제도적인 장치

한국적 중도사상을 현실화하는 한국적인 패러다임은 그 시대와 상황에 알맞는 정치사회제도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런 정치구상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우선 유의할 것은 지난 건국 60년의 경험을 통해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결함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가 있는 이념적인 내용을 형체화 하며 그에 합당한 헌법구상을 생각해 내야 할 것이다.

지난 건국 60년의 한국정치를 돌아보면서 우리 눈에 띄는 두드러진 현상은 한국정치의 독재화 현상이었다. 독재권력이 없으면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혼란이 뒤따르는 현실을 간과할 수가 없다. 좌우익 대립이 그렇게 끈덕지게 지속되는 이유도 한 쪽이 그 이념싸움에서 밀리면 다른 쪽의 독점과 독재를 불러들인다는 염려가 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또 독재권력이 없어지면 체제의 비능률이 드러나고 사회혼란이 뒤따른다는 우려가 체제의 민주화를 저해한 면도 없지 않았다.

실제로 권위주의체제가 물러나면서 민주화조치가 체제의 불안정화를 가져왔지 않은가? 한국정치가 법치화(法治化)를 가져 온 것이 아니라 체제의 민중화(民衆化)를, 중도화(中道化)가 아니라 좌경화를, 온건화가 아니라 과격화를 불러들이는 경향이 없었던가를 반성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이러한 폐단을 예방하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사상을 제도화하는데 필요한 것은 이러한 한국정치의 새 패러다임이 여러 가지 헌법개정의 문제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가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1) 대통령권력의 분할 또는 보강조치
그동안 한국의 대통령이 너무나 강한 권력을 행사해 왔고 그에 대한 견제장치가 미약했던 관계로 한국의 대통령이 제왕적(帝王的)인 통치권력을 행사해 왔다고 생각하며 한국에서 독재정치가 방지되려면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연구가 활발하게 추진된 결과 (1) 대통령 권력의 분할 문제 (2) 대통령의 임기제한 (3) 대통령권력에 대한 견제장치의 강화방안 등이 논의되어 왔다.

또 장기집권을 할 수 없도록 그 임기를 단임제로 제한해야한다는 여론도 분분하였다. 그 결과로 전두환시대부터 대통령을 단임제로 묶어버렸다. 그러나 그 역시 폐단이 적지 않다는 이유로 다시 4년 연임제로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대통령의 독재를 방지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대통령권력을 분할하는 방법이다. 대통령은 국가안보와 외교를 전담하며 국내문제 곧 정당・의회, 경제・교육의 분야는 국무총리의 소관사항으로 만들어 버리면 대통령이 독재하지 못할 것이 아니냐? 이런 방법이 2원정부의 형태인데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거론을 했음에도 말에 그치고 만 이유는 대통령권력을 분할하면 비능률을 가져온다는 믿음과 주장이 만만치 않게 맞서왔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이런 안을 제5공화국 헌법에다 부착시켜 보았는데 결국 채택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에 굴하지 않고 나의 저술, <한국정치의 오늘과 내일>이라는 책에다 2원정부의 약점을 보완하는 방법을 자세히 제시했는데도 내 주장은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내 주장을 아직도 굽히지 않고 있다.

제왕적인 대통령제의 또 하나의 방지책은 중앙권력의 지방분권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지방자치문제를 거론할 때 다시 언급이 될 것이다. 그 외에 대통령권력의 입법부 및 사법부의 견제가 있다. 자세한 논의는 생략하겠으나 한 가지 말해 둘 것은 대통령을 선출했으면 능력껏 권력을 가지고 국사(國事)를 다스리게 해야지 견제하는 것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이것은 마치 경호하는 개가 사람 물 것을 걱정하여 입을 묶어버리는 것과 같다. 개를 짓지 못하고 물지 못할 바에는 번견(番犬)을 양육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는 대통령권력이 독재적이거나 권력을 남용해서 걱정이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의 권력도 제대로 행사 못할 만큼 나약한 것이 문제시 되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대통령권력의 분할이나 임기제한 또는 견제장치의 강화를 궁리할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권력행사를 방해하는 요인을 약화하며 대통령권력 행사를 돕는 요인을 강화시키는 작업이 급선무이다. 이것은 대통령의 통치능력과 정치적인 역량과 관련되는 문제이며 법적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일이므로 여기서는 상론하지 않겠다.

(2) 입법부의 제도계획
수직적인 권한분립의 문제이다. 그 지역발전과 교육 복지 그리고 문화는 지방정부의 몫이 된다. 물론 큰 방향은 중앙정부로부터 올 것이나 그 지역적인 특수성인 살림은 지방정부와 의회의 몫이다. 그러므로 삼권간의 권력 균형뿐만 아니라 상하층의 권력배분도 잘 시행함으로써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보장할 수가 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제도를 강화하는 방법을 제시하였으나 여기서는 입법부의 구성문제를 제시함으로써 검토해 보고자 한다.

입법부 개혁의 주안점은 입법심의의 질적인 향상과 국정능률의 향상을 위하여 양원제(兩院制)를 두어야 한다는 구상이었다. 한국의 정치체제가 대통령 독재로 되는 이유는 나라의 主權기관인 입법부의 인적구성이 행정부 요인들에 비하여 질적으로 너무나 뒤떨어져 있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였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늘 엉망이 되어 온 원인 중의 하나가 국회의원들의 자질문제 때문이었다. 그러니 국회의원의 자질을 높이지 않고서는 나라의 민주정치가 제자리에 올라설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국회의원의 자질을 강화하는 조치의 하나가 上下(상하) 兩院制(양원제)를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3) 上下兩院 제도의 설치
上下兩院(상하양원) 중 下院은 인구와 지역대표로 약 120명의 의원을 선출하도록 되어 할 것 같다. 上院은 직능집단의 대표자들로서 약 80명의 의원들로 구성된다. 10개의 주요사회집단에서 5명씩 약 50명을 선출하지만 3개 종교단체도 10명씩 그러므로 30명의 의원들을 지명하여 상원으로 보낼 수가 있다. 개신교와 가톨릭 그리고 불교단체 등 3 단체는 그들 교인들 중에서 학덕이 높으며 전문적 영역에서 뛰어난 사람들을 10명씩 상원의원으로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한다.

이처럼 3개의 종교집단이 10명씩 도합 30명의 상원의원을 국회로 보낼 수 있게 하는 목적은 하원의원들이 각 지역적 이익을 지나치게 주장하거나 또 각 직능집단에서 선출되어 오는 국회의원들도 너무 자신의 집단이익에 집착하는 경향을 완화하기 위해서이다. 공익(公益)을 저버리는 경향을 억제하기 위해서이다. 종교계에서 보내는 30명은 반드시 승려 신부 또는 목사를 보내라는 뜻이 아니다. 그 종교의 신도들 중에서 학덕 인격 및 사회경력, 그리고 국가경영에서 뛰어난 공헌을 할 수가 있을 것으로 믿어지는 사람들을 천거함으로써 국정의 수준을 높이자는 취지이다.
위의 설명 중에서 입법기관의 의원구성에 대하여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부연 설명하겠다.

(1) 120명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소선거구 중선거구 대선거구 등 어느 방식으로 선출할 것인지는 행정부와 각 정당간의 협의를 바탕으로 국회에서 결정할 일이다. 문제는 최대한으로 자질이 높은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그런 안목에 의거하여 결정되기를 바랄 뿐이다.

(2) 직능집단에서 50명의 국회의원을 뽑아 올린다고 했는데 나라의 수많은 직능단체가 모두 참여시키자는 것이 아니다. 국가를 경영하는데 중핵적인 기능과 역할을 하는 직능단체들 중에서 것으로 인정되어 온 직능단체에 국한되어야 한다. 기업인협회, 노동조합, 언론인협회, 법조인협회, 농어민협동조합, 대학교육협의회, 초중등학교협의회, 사립학교교육협의회, 과학기술단체협의회, 의사단체협의회, 환경문제전문기구 등 직능단체 중에서 10개 단체를 선정하여(일부는 교체적으로 참여할 수가 있음) 이런 단체에서 각 직능단체마다 5명의 대표자를 상원의원으로 보낼 수 있도록 입법화한다.

이들 직능대표 50인은 특히 그 분야와 관련된 인터넷 사이버세상에서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소견을 첨부하여 거론할 수가 있다. 사이버상의 여론은 이런 상원의원들과 정부의 각 부처에서 충분히 가려지고 처리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과거와 같이 사이버언론이나 시민단체가 행정부나 국회를 유린하는 일이 없도록 여과시켜야 한다.

위에서 지명된 직능단체 이외에도 많은 단체가 국가의 경영을 위해 핵심적인 기여를 한다고 주장하며 자기 집단이 위의 10개 직능집단에서 제외된 것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여 분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한의사나 대체의학의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국민의 보건을 위하여 보다 많은 기여를 해 왔음에도 입법부 요원으로 천거되지 못함을 불평할 수가 있다.

이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구의회 선거제도의 개선을 요구할 수가 있다. 다만 제도가 바뀌기 전에는 각 정당에 접근하여 지역구 공천을 받던지 아니면 종교단체의 수뇌부를 설득하여 그들의 추천을 받아서 상원의원으로 진출할 수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국회내의 이익단체로서 대표나 임원들을 파견함으로써 상하 양원의 국회의원들을 설득하여 그들의 지지나 지원을 받을 수가 있을 것이다.

(3) 종교단체는 수없이 많으나 오로지 개신교 10명, 가톨릭 10명, 불교 10명의 상원의원을 선발하여 파견할 권한이 주어진다. 물론 이것도 잠정조치이므로 그 제도가 개선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잠정조치가 변경되기 전에는 여타의 종교단체는 그들이 보내고자 하는 대표자를 지역대표로 천거하거나 그들 나름의 이익단체를 만들어서 상원이나 하원의 입법활동에 영향을 행사할 수가 있다.

각 종교단체는 그 신도들 중에서 국가와 세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전문지식과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되는 사람들을 선발하여 입법부의 상원(上院)으로 천거할 수가 있을 뿐이며 종교적인 영향력을 정책결정에 행사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천거된 사람들은 전직(前職) 정치인이나 고급관료나 군출신일 수가 있다. 또 언론인이나 의사, 또는 각 분야의 저명한 전문가 내지 대학교수직에 있었던 원로급 내지 최고전문인력을 종교단체의 천거로 상원의원이 되어도 上院에 가서는 각기 전문분야에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각 종교계를 대표한 의원들도 그 종교단체의 이익보다도 국가와 지역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봉사할 것이 요망된다.

현재의 지방자치제도의 문제점을 말한다면 너무나 많은 임원들이 선출제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도 도지사와 도의회를 구성하는 데는 정당화가 인정되겠으나 시군구의 지방단체장이나 의회도 선출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 비용에 비하여 효과가 매우 의심스럽다는 말이 들려왔다. 어떤 정치인들이 공천권을 팔아서 정치자금을 만들려고 만들어진 제도라는 말도 들리고 또 한국정치에서 민중주의적인 요소를 강화하려는 불순한 저의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의심도 해볼 만하다. 입법부에는 저질이나 무식한 인사류는 접근도 시키지 말아야 한다.

어찌했던 상하원의 권력분립이라는 발상은 나쁜 것이 아니나 현재의 한국선거민의 수준을 보아서는 과잉 민주주의에 해당하며 정치인들이 만들어내는 사이비(似而非) 민주주의의 제도적 낭비로서 불필요한 장식을 만들어냄으로써 국정을 그르치는 근거가 되어온 것은 아닌지 철저하게 검토해 볼 문제인 것 같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주민들의 자원봉사나 민간의 주민복지 차원의 협력으로서도 될 수가 있는 것인데 막대한 국고나 지방재정을 낭비케 하는 방법으로 치루고 있음은 국가경쟁력이 계속 바닥으로 처지게 하는 요인이 된 것 같다.

어떤 사람은 한국의 정치제도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의문할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헌법이 명시한 자유민주주의 정치형태와 어떻게 다른 것인가? 특히 오늘의 지방자치제도는 분명 필자가 제시한 민주정치나 지방자치의 모형에서 크게 빗나간 것이었다. 필자는 앞서서 서구적 민주주의와 동양적인 민본주의와 더불어 전통적 보수주의와 혁신적인 이상주의 간의 중도 균형을 말하였으며 민간주도적인 국민운동과 수직적 수평적인 권력분립제도간의 결합을 말하였다.

이런 이질적인 요소의 묘합(妙合)은 오랜 시간의 경과를 요구하는 것이며 민주도적인 국민운동과 권력분립제도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이다. 그 이유를 말하자면 필자가 말하는 민주도적인 국민운동은 그동안 설쳐왔던 저질성 시민운동과 성격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은 바람직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으나 앞으로는 여기서도 高質과 低質은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조합주의는 각 집단조합의 대표자들과 정부 당국과의 끊임없는 대화와 협조 그리고 협력의 체제이다. 그동안 시민단체들은 정부와 각 조합집단간의 대화와 협력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활동해 왔다. 앞으로는 각 집단과 정부 그리고 국민대중간의 대화와 협력을 저애하며 지인용(智仁勇) 또는 자유 진리 정의의 3덕에 위배되는 불순세력의 정치개입은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바람직한 미래상도 자연발생적으로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 국민들은 그런 목표를 위해 앞으로도 많은 연구와 토의를 계속하여야 할 것이며, 좌우대립이나 남북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아무리 비싼 대가(代價) 지불이 요구되더라도 회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로마가 하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로마가 이태리 반도를 통일한 나라로 만드는데 500년이란 세월이 소요되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더구나 통일한국을 만드는데 ‘빨리빨리’의 사고방법은 금물이다.

그러자면 많고도 어려운 문제가 하나하나 풀려 나가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아는 것이 행동으로 연결되려면 지식 이외의 요소, 곧 신념(信念)이나 서원(誓願)에 의하여 밑받침되어야 한다. 그런 힘은 지식자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확고한 신념과 용기 내지 행동의 서원(誓願)과 의지를 제공하는 것은 민족주의의 감정과 이데올로기이다. 이것이 한국민족주의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Ⅴ. 맺음말

한국정치의 문제점을 치유하고 해결할 수 있는 패러다임은 어떤 것이겠는가. 또 그것이 한국국민의 정체성과 어떻게 부합되기를 기대하는가? 내가 여기서 제시한 이른바 한국적 패러다임에 의한 정치개혁안은 현대의 선진국가들의 정치제도도 참조하였지만 오랜 동양적 정치사상이나 정치관습도 깊이 있게 참고한 것이라고 자부하고 싶다.

우리가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만드는데 있어서 고대 동양사상이 천지인(天地人) 三才를 똑같이 중요시하는 생명유기체의 우주관과 가치관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철학사상을 계승하여 한국정치의 패러다임을 만든다면 우리의 정치현실과 그 문제점 해결에 매우 유익하며 또 좋은 시사점을 얻게 된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었다.

물론 한국정치가 필자가 말한 대로 되어 나가야 된다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도 더 좋은 의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개진하여 충분히 토론한 다음, 보다 더 좋은 의견에 한국정치의 방향을 공동으로 결정하여 실천해 나가자는 것뿐이다. 필자는 여기서 하나의 토론거리, 정책자료를 제공한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우리가 서구문명으로부터 민주주의의 이념과 제도를 학습하고 도입하였으므로 우리가 말하는 동양적인 中道사상은 서구 민주주의를 밑받침하는 개인주의 세속주의 합리주의 평등주의 다수결주의를 유용한 학설로 인정은 하나 서양식의 해석이나 적용방법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 뿐이다. 오히려 그러한 원리들을 초월하여 전체주의・초세속주의, 종교도덕의 지배, 인간의 차등(差等)의 인정, 다수결주의가 아닌 현인(賢人)의 지배원리까지 포용함으로써 원융(圓融) 무애(無碍)의 입장에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평등주의를 전제로 하는 일인 일표의 지역대표를 줄이고 인구수로는 정당화되기 어려운 직능대표로 하여금 입법부의 상원(上院)을 구성케 하려는 목적과 취지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강조되는 中道의 정치이념을 현실화하려는 구상인 것이다.

이것은 과거의 반목 적대 투쟁의 정치노선으로부터 화해와 포용, 협력의 원리로 선진화하려는데 주안점을 옮김으로써 가능해진다. 그래서 앞으로는 민주적 정통성에 대한 논쟁보다도 체제의 효율성이 더 중요시되며, 수적(數的)인 우세의 개념보다도 질적인 秀越性(수월성)에 고려가 더 사람들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는 것이 앞으로 우리가 따르게 되는 녹색(생명)문명의 변화추세일 것이다.

본인이 앞으로 의회제도 개혁에서 소수이나마 종교집단의 의회의원 추천권도 정신적 가치를 세속적 가치보다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도가 잘 활용이 되는 상황이 되어야 정치적인 힘의 논리를 넘어선 도덕성에 대한 존중의 정신이 정치제도에 반영되는 여건이 생겨날 것이다. 사회의 중요사회집단들이 자신들의 사회이익만을 배타적으로 주장하고 고집할 우려를 완화하려는 조치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종래에 없었던 여러 가지 개혁안이 포함되어 어설픈 면은 적지 않겠으나 한국국민은 그냥 방치할 수가 없는 더 심각한 현실적인 폐단이나 결함을 완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단 수용함으로써 당분간 시험적으로 운영해 보아야 할 것이며 거기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면 좋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적인 패러다임을 모색하는데 있어서 중요시되는 바는 첫째, 좌파이던 우파이던 독재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러나 정당성만 고집하다가 국가의 체제의 효율성이나 국가적인 경쟁력은 결코 희생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특히 정치적인 저질성(低質性)이 민주주의 이름으로 보호받거나 지속되는 일은 없어야겠다. 셋째는 나라가 인존(人尊)사상과 홍익인간의 정신을 기본으로 하므로 인간의 수보다도 질적인 수월성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질적으로 높지 못하거나 무지무식한 사람들은 공직에서 배제하는 방안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민중주의나 포퓰리즘은 앞으로 한국정치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야 함을 재삼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전통적인 인존사상이나 현대적인 인권사상과 양립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세계화하게 될 녹색(생명)유기체적 우주관과 윤리관에 바탕한 새 인류문명의 취지에도 배치되는 구시대의 잔재임을 이런 요소 때문에 선진화가 방해 받아서는 안된다. 오늘의 세계는 더 좋아지라고 있는 것이지 나빠지거나 저질화 되어도 좋다고 방치되어서는 안될 일이니 말이다. ◇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