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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癌)철학과 그 정치적 함의(含意)

암(癌)철학과 그 정치적 含意(함의)
한 승 조 (고려대 명예교수)




Ⅰ. 암(癌)의 병리와 그 치료 이야기

지난 09년 1월 4일 대한불교 연심회(蓮心會)의 성지순례(강원도 상원사 적멸보궁)를 가고 오는 노상(路上) 버스 안에서 연심회장 최세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소견발표를 하였다. 암에 잘 걸리는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들의 성격이나 생활태도에 관한 미국 이상구 박사를 비롯한 여러 전문의나 의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가 있었다는 것이다.

암에 대한 대처방법
근래에 와서 온갖 종류의 암이 사회에 널리 퍼져서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 문제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현대인에게 흔한 생활병으로 일반화되어 가고 있다는데 있다. 전에는 누구라도 암에 걸렸다고 하면 거의가 다 죽는 것으로 알고 크게 당황하며 사형선고를 받은 것처럼 절망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각종 암이 너무나 흔해졌고 또 최신 의술의 발달로 인하여 어떤 종류의 암도 조기(早期)에 발견만 하면 거의가 치료될 수 있는 시대에 와 있다.

심지어 제3기에 들어선 암환자도 치료와 그 후의 섭생만 잘하면 죽지 않고 치료 되어서 생존가능성이 높아져 간다. 암 전문의는 말한다. 암에 걸렸다고 모두 죽는 것은 아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암이라는 병 자체보다도 암에 걸리면 곧 죽게 된다는 공포심이다. 특히 자포자기하려는 환자들의 정신태도가 큰 문제이다.

젊은이들은 그 암균(癌菌)들이 강력하고 전파력이 강하다. 그러나 나이든 노장년(老壯年)층은 암균도 노쇠한 상태이므로 퍼짐과 전이(轉移)도 힘이 약하고 또 느리다. 또 현대의학이 만들어낸 약도 많이 발달해 있다. 그래서 암이란 병에 걸린 사람들이라도 무조건 사형선고를 받은 듯이 크게 놀라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나이든 사람들일수록 과거처럼 모두 강력한 항암치료를 받을 필요도 없다. 상당기간 암균과 공생할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지내야 한다.

다만 암환자들도 각자의 성격 나름으로 또 섭생 여하에 따라서 치료가 앞당겨질 수도 있고 또한 반대로 계속 늦춰질 수가 있다. 즉 암에 잘 걸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는 치료과정도 빠르고 거뜬히 투병에서 이겨 건강해질 수 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암치료를 하는 데도 시간이 남들보다도 더디며 회복이 빨리 되지 않는다. 이것은 각자의 정신상태나 섭생의 태도 및 방법여하에 따라서 다르며 성격의 차이도 크게 작용한다.

암이란 병에 걸리지 않을 성격과 걸리기 쉬운 사람들의 성격
1. 잘 걸리지 않는 사람들은 대체로 평소에 낙천적이며 모든 문제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 그에 비하여 암에 잘 걸리는 사람들은 평소에 기분이 저조하며 노여움이나 짜증을 자주 내며 남들이나 세상 일들에 대하여 늘 부정적이며 비관적이어서 매사를 나쁜 쪽으로 생각하려고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2. 남들과 잘 어울리며 수다스럽고 주책과 실수가 잦은 편이며 남들로부터 놈이란 말을 듣기 일쑤인 사람들과, 또 한편에는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으며 말수가 적어서 실수가 매우 적은 대신 친화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비교할 때 후자가 암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았다.

3. 잘 웃으며 남들 일에 나서거나 심부름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웃는 얼굴을 보기가 어렵고 자신의 자존심과 위신을 내세우며 경쟁심과 질투심이 많아서 남들과 각을 세우기 좋아하는 경향을 보인다. 남들을 불신하는 버릇이 있고 불화를 일삼는 사람들일수록 암에 걸리는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4. 가족관계가 대체로 원만하며 늘 평화로운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비교해 보아도 전자가 암에 걸릴 확률이 후자보다 훨씬 적다라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의 성격과 대인관계의 차이가 암 발생이나 치료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더라는 것이다.

부언하고 첨가하는 말
현재 한국사람들을 볼 때 여자는 5명 중의 1명, 남자는 4명 중의 1명이 암에 걸린다고 한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암발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암의 가장 보편적인 발병원인은 정신적 스트레스라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흥분하지 말고 남과 싸워서 속상해 하지 말고 남들을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화내지도 말라는 이야기인데 우리가 사는 고해(苦海)인 이 사파세계, 특히 한국현실에서 그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우리가 사는 사회는 바꿀 수가 없지만 스트레스의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능력은 각자가 개발해야만 한다. 이것은 특별한 정신훈련 내지 수양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모두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많이 연구하고 또 공동으로 노력을 해 나감이 바람직하다.


Ⅱ. 히노 오끼오 교수의 암(癌)과 공존하는 시대의 처방전 - 쇄도하는 환자와 그 가족이 웃음을 되찾게 되려면

2008년 1월부터 3월까지 일본 순천당대학 의학부 부설 순천당병원 암치료센터는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특별외래치료 프로그램을 개설하였다. 그 프로그램을 개설한지 5일 만에 전국 각지에서 문의와 예약 신청이 쇄도하였으며 그 중 55명의 환자 및 가족들이 진찰과 상담을 마쳤으나 거의 同數(동수)의 사람들이 대기자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특별외래치료 프로그램을 제안하며 진찰에 나선 사람이 ‘癌哲學(암철학)’이란 용어를 만들어내고 직접 진찰과 치료를 맡았던 히노 오끼오(樋野興夫) 박사이다. 그의 암치료활동의 경험에 기초하여 암환자와 그 가족들이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암철학외래(치료)이야기>라는 책을 2008년에 저술하였다.

히노씨는 평소에 늘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수술에 앞서 병리를 진단하며 환자의 사망 후에는 환부를 해부하고 분석하는 병리학 교수이다. 그런 병리학자가 왜 임상 치료의 최전방에 나섰는가?
이 癌철학 外來활동의 key words는 ’한가로운(초연한) 風貌(풍모)와 위대한 간섭‘이라고 볼 수도 있는 엉뚱한 오지랖이다. 일본의 암치료에서 결여되어 있음에도 모르고 지내왔던 면을 메우려는 ‘틈새과학’이며 또 암치료의 방식을 개혁하려는 새로운 방법의 발견이다.

실제로 현재 일본의 병치료의 현황이 어떠한가? 환자들이 너무 많은 대학병원에서는 의사와 환자의 대면시간이 너무 짧아서 의사와 환자사이의 충분한 대화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나마 치료가 인터넷화했으므로 의사는 환자의 얼굴을 쳐다보기 보다는 컴퓨터의 화면을 더 열심히 들여다보는 경향이 생겨났다. 더구나 의료사고로 인한 의료재판이 빈발하자 병원측도 치료행위를 망설이게 되어 있다.

그래서 히노씨는 말한다. 의사들이 병치료를 하려면 환자들의 말을 충분히 들어야만 하는데 의사들이 모두 바쁘니 그럴 시간이 없다. 또 환자들도 마음을 활짝 열기를 주저한다. 그러나 나와 같은 병리학자는 많은 환자들에 쫓기지 않으므로 자신의 병치료에 시간을 비교적 자유롭게 배정할 수가 있다. 또 죽음이라는 문제로부터 인생을 생각하게 되므로 돈벌이, 명예, 출세의 욕심보다도 자신의 역할을 더 진지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요즘은 의사가 정보를 제공하고 환자가 치료법을 선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환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의사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것이 의사의 직업윤리가 아니냐?

저자는 암철학이 과학으로 연구하는 한편 또 암에 대하여 철학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정의한다. 암환자의 고뇌는 병자로서의 고뇌만이 아니다. 암이란 중병을 얻었을 때 그것을 안고 살아야하는 인간으로서 어떻게 사느냐는 고뇌이다. 그러므로 암은 정신적인 문제에 그치지 않고 그 자신의 존재 자체의 문제가 된다. 그러므로 병자라는 측면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고뇌라는 데도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어느 환자는 부모의 유산상속 문제로 다투었던 그의 형과 10년이나 만나지 않고 지냈다. 그러나 병이 재발하자 그 형과 화해하고 싶어졌고 그의 뜻을 알아차린 부인이 만남을 주선하여 대면을 하게 되어서 그 후 화해를 이룩할 수가 있었다,

저자는 말한다. 암 그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현재 일본인의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암을 앓고 있는 것으로 진단되고 있으며 또 한편에 암의 치료율은 거의 50%로 육박하고 있다. 앞으로는 70%로 높아질 것인즉 사람이 그의 天壽(천수)를 다 할 때까지는 암과 공존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있다. 그러니 암에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더 중요해졌다. 그러므로 암과 공존하면서 인생을 어떻게 즐기느냐하는 문제도 중요해 졌다.

인간이 죽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언제 죽느냐는 것은 확률의 문제이다. 자신이나 가족이 암환자라면 더욱 그럴 것이나 그러지 않더라도 生死(생사)의 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게 만든 책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암철학의 문제가 인생철학의 중요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이유
생사(生死)의 문제는 인생문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문제이다. 암과 공존한다는 말은 삶과 죽음이 공존 공생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암을 크게 두려워하는 이유는 인체의 중요부분과 그 세포가 계속 파괴되며 또 전위 확산되어서 죽음으로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암이란 병을 앓는다는 것은 그 환자의 몸에 죽음의 씨앗이 퍼지며 커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물론 생자는 필멸(必滅)이라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나 암병은 사람의 생로병사의 정상과정을 비정상적으로 앞당겨 버리기 때문에 걱정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일본인들 두 사람 중 한사람이 암이란 말을 처음 듣는다. 의사의 말이니까 근거없는 말이 아닐 것이다. 일본에게 일어나는 사회현상은 곧 한국에도 오게 된다. 현재 한국사회에도 각종 암이 확산되어 창궐하고 있는 중이니 한국도 그런 추세로 곧 바뀌게 됨을 예측하지 않을 수 없다. 암병의 확산은 단순한 의술(醫術)상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인생과 사회철학의 가장 심각한 문젯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불교에서는 생사가 일여(一如)하다고 말한다. 하기는 선악(善惡)도 가리지 말고 복도 화도 애써 피하지 말라는 초상식적인 말을 예사로 하는 것이 불교이다. 삶도 죽음도 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며 善惡 禍福(화복)도 가리지 말라니 상식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나 죽기보다는 사는 것을 좋아함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그러나 암으로 생사가 공존 공생해야 한다면 불교철학으로 도피하거나 위안(慰安)을 받는 것도 상책일 수가 있다.

불교의 참선은 생사를 초월하는 연습을 하는 행위로 볼 수가 있다. 참선으로 선정(禪定)으로 진입(進入)하면 자연 생사를 초월하는 것이 되므로 생사는 그 안에서 공존 공생하더라도 별로 염려될 것이 없다. 그런 경지에서는 생과 사가 긴밀하게 상호 지지 내지 보완하는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과 믿음 그리고 참선 수행은 누구에게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 확실하다.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모두 잘 살기를 바라며 노력을 하지만 본의 아니게 죽어도 어쩔 수가 없으니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불교인들이 염려하는 것은 사후(死後)의 세계이며 윤회의 문제이다. 살아있는 동안에 선업(善業)을 많이 지었으면 좋은 상태로 윤회하지만 악업을 많이 지었으면 惡途(악도)에 빠지거나 이미 지은 죄업에 상응하는 과보를 받게 된다. 그래서 살아있는 동안에 가급적이면 악업을 회피하고 선업(善業)을 많이 짓기를 기약한다.

사람들이 암에 걸려서 천수(天壽)를 다 하지 못하고 일찍 죽는 것은 이미 지어 놓았던 악업에 대한 과보(果報)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요즘은 암에 걸려도 치유가 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에 절망할 필요가 없다. 건강관리만 잘하면 치유될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매사에 긍정적(肯定的)인 사고(思考)방법을 갖는 일이다. 긍정적인 사고방법과 감정은 그 자체가 선인(善因)이 되고 선업(善業)을 짓는 것이 되므로 좋은 과보를 만들어낸다.
현대사회에서 암질환의 확산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건강관리나 정신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특히 격렬한 경쟁이나 갈등의 상황에서 정신적인 평정성을 유지하며 스트레스를 덜 받는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을 하는 습성이 길러져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사람들이 동물적인 욕정이나 원시적인 감정상태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수준 높은 인생철학과 종교신앙이다. 그런 높은 철학과 정신문화를 갖추어야만 암과 같은 질환에 걸릴 가능성도 적어지며 또 신체의 어느 부위에 암질환이 생기더라도 공존 공생관계를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암균에 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제압하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한다.

필자가 히노 오끼오교수의 저술의 요점을 소개하고 논평하며 소감을 적었는데 이것을 히노교수의 원저(原著)를 구해서 읽은 것이 아니라 일본의 격주간지인 Sapio誌(08년 10월8일자)안의 Book Fight Club이 제공한 책의 요약소개에 기초하여 썼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없지 않다.

Sapio지의 소개 중에서 주목을 끄는 부분에 언급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히노교수는 그 저술에서 “암세포의 세계는 현실을 살아가는 예지(叡智)의 보고(寶庫)이며 거기서 일어나는 현상은 인간사회의 현실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그 미시(微視)의 세계 속에 거시(巨視)의 세계라고 할 인간사회 현실의 문제나 해결방법을 말해주는 진리(眞理)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암세포는 처음 한 세포(細胞)의 유전자(遺傳子) 이변(異變)에서 출발한다. 그것이 초기 암으로 성장하려면 5년에서 10년이 걸리며 그것이 암균으로 성장하는 데는 20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것이다. 그런 세포가 1000개가 있더라도 진짜 암세포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은 한 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암세포는 얼마나 인내성이 강한지 자체의 형태를 고집함이 없이 수시로 형태를 달리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는 능력도 과시한다는 것이다.

굶주림의 상태에서도 잘 버티며 정상적인 세포의 10분의 1의 영양(榮養)을 가지고도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이 부분은 이 정도 이상의 소개가 없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원본이 그 정도의 암시에 그쳤는지 아니면 요약에서 생략되었는지 앞으로 본인이 그 원본을 구해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짧은 요약으로나마 내 상상의 나래를 펼 수가 있어서 다음 주제로 넘어가고자 한다.


Ⅲ.‘癌(암)철학’의 정치적인 함의

공산주의와 같은 좌경과격사상의 암질환과의 유사성
20세기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지적한다면 민족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를 드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러한 현대세계의 이데올로기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사회변화를 촉진하였던 사상적인 동력은 마르크스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였다. 민족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도 위와 같은 좌경사상이 개입 가미됨으로써 보다 더 강력한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 세계의 가장 큰 정신적 사상적인 원동력 내지 촉매제는 마르크스사상과 마르크스-레닌주의였다는 말이 성립된다. 소련의 스탈린이 죽은 다음 소련의 수장이 된 후르시쵸프는 말했다. 공산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탄생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제3차 세계대전을 통해서 세계 전체가 共産化될 것이나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의 발달로 인하여 3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평화공존과 교류를 통하여 전 세계를 공산화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동서냉전을 거치면서 무너진 것은 서방사회가 아니라 공산권국가들이었다. 여기서 마르크스주의와 좌경사상의 한계가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와 좌경과격사상이 20세기 세계의 정통사상으로 공인받지 못하게 된 계기였던 것이다. 공산주의를 겪었던 나라일수록 공산주의사상과 체제에 대한 불신이 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인데 유독 남북한과 남한에서는 좌경사상과 그 세력이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한반도의 좌경세력도 자신들의 사상과 행동을 마르크스주의나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 민주주의 내지 민중주의의 명분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또는 사회복지주의는 보편적이며 정당한 정치사상으로 공인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런 정통성의 간판과 옷차림으로 민중선전 선동을 계속해 온 것이다. 한국의 좌경사상과 행동이 얼마나 사회공동체의 암질환과 유사한가를 제시해 보겠다.

(1) 암질환은 인체의 특정부위로 침투해 들어가서 그 신체유기체의 세포조직을 파괴함으로써 그 기능을 왜곡 내지 방해한다. 또 그에 그치지 않고 그 세포파괴활동을 타부위로 전위시키며 확장을 멈추지 않는다. 남북한의 좌경이데올로기는 기존의 국가공동체, 사회공동체를 파괴하여 불신과 불화, 증오와 갈등을 확산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도 노사분규를 부추겨서 국가사회는 분열과 해체로 치달으며 기업도 쇠퇴해 나가다가 망하는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이런 점에서 인체내에서 암세균의 기능과 매우 흡사한 바가 있지 않은가?

(2) 암부위를 수술한다고 칼을 대면 그 암균의 전위와 확산은 더욱 빨라진다. 좌파의 행태도 그들에 대한 공격이 단호할수록 그에 대한 대응이나 보복이 치열해지고 과격해진다. 그 결과로 사회의 치안은 파괴되고 좌파의 해독(害毒)은 극심해진다. 되로 받으면 말로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좌파세력과 생사존망을 거는 싸움을 할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악행은 눈감아주고 분란을 더 키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하다는 말도 나올 수가 있다.

(3) 암의 병균이 둥지를 튼 부위나 암균이 전위한 인체의 환부를 수술로 도려낸 다음에는 병균의 재발을 억지하기 위하여 주사 또는 약물에 의한 항암치료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때 투입되는 항암제는 인체의 다른 부위에게는 독약과 다름이 없는 해악과 큰 부담을 안겨주므로 환자의 건강은 물론 생명에도 매우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다.

좌파세력의 도발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처하려는 정부의 반공조치도 바로 이런 항암(抗癌)치료와도 다름이 없다. 그런 반공체제가 취하는 여러 가지 반공조치는 때로는 일부 사람들에게 숨이 막히는 억압체제의 반인권 억압행위로 비춰져서 반민주독재국가라는 인상을 주게 될 수가 있다. 공산주의자들이나 좌경범법자들이 아닌 양순한 일반시민들에게 미치게 되는 부자유와 억압은 보수정권이나 세력에 대한 좌파세력의 꾸준한 악선전과 선동의 소재가 된다.

공산주의자들이나 좌파세력도 남들로부터 받은 친절이나 혜택 또는 좋은 대접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자신들에 대한 푸대접이나 응징 또는 해악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그리고 자기들이 받은 해약에 대하여 몇 십 곱절로 보복하고마는 잔인무도한 사람들임을 부인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보수우익이나 중도파들에 대한 보복과 해악의 수준은 가공할 만큼 유력하고 효과적인 이유는 우리 사회의 언론과 문화예술 그리고 영화산업까지 거의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반공정권이나 보수우익인사들에게 악구와 비방 폄하, 잔인한 인격살해를 하는데 매우 능란하다.

암(癌)과의 공존과 공생, 또한 악마세력과의 공생과 동침(同寢)
한국의 좌파세력을 암과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어둠의 세력이며 악마(惡魔)와 같은 무리들이라고 말한다면 이런 말이 너무 심한 말이라고 공감하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하며 검토해 보라. 암이 인체(人體)의 각 부위를 구성하는 세포를 파괴 괴멸시키듯이 국가유기체나 사회공동체를 파괴하고 괴멸시키는 작용면에서 암균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을 부인할 수가 있겠는가?

또 공산주의자들이나 용공분자들이 대한민국과 그 정부에 대하여 악마와 같은 간지(奸智)와 악의(惡意)를 가지고 파괴와 멸망을 위하여 공작하며 투쟁해온 사실로 보아서는 적어도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민에 대해서는 악마적인 활동을 해왔음을 부인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좌파사상으로 인하여 국가는 분열과 해체로 치달으며 기업은 쇠하다 망하는 위기에 내몰리는 일이 없었던가? 사회공동체 안에 불신과 증오, 원한의 감정을 심어주며 꾸준하게 민중과 하위계층을 선동함으로써 사회의 상층과 하층 그리고 빈부대립은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되는 경향이 없었던가? 한국의 좌경이데올로기가 기존의 국가공동체, 사회공동체를 파괴하여 불신과 불화, 증오와 갈등을 확산 증폭시켜왔음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운동이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어지럽히고 또는 이적행위를 일삼는다하여 그들의 활동을 억압하거나 좌파세력의 항의나 반란행위를 폭력 또는 무력으로 진압하게 되는 경우에 사회의 불신과 분열은 더 깊어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사회분위기가 악화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의 항쟁사건이 그 현저한 예였다. 전두환정권은 광주사태에서 전투에 이기고 전쟁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어둠의 사상’이나 ‘악마’의 군단세력은 자신들이 개심(改心)하기 전에는 신불(神佛) 이외에는 그들을 이길 방법이 없다. 神佛은 굳이 힘으로 그들을 없애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애써서 잘못 그들을 없애려고 서두르다가 더 크게 봉변을 당하기가 쉽다.

이런 과거의 실태를 감안하여 차라리 암세균처럼 당분간 공존 공생하는 것이 좋지 않는가? 악마들도 본래 머리가 좋아서 자신들의 힘의 한계를 의식하고 있다. 그래서 이쪽에서 없애려고 서두르지 않으면 어거지로 덤벼들려다가 자신들의 명을 단축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악마들이 스스로를 자각하여 개심 변신하기 전에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평화공존하고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도대체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하는 소리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한국의 국민들이 특히 보수우파나 중도파들이 神佛과 같은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면 된다. 또 악마들은 본래 천사가 되려다가 못된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들도 마음가짐 여하에 따라서 신불(神佛) 쪽으로 접근하려고 하며 또 대한민국이 그런 기회를 제공한다면 그 역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바람직스러운 해결책일 것이다.

좌파의 폭력혁명 전술과 그들의 가공할 언어폭력의 위력(威力)
세월이 지날수록 세상은 개명되어 가며 소련이 멸망한 다음 세계의 좌파세력은 거의가 소멸해 버렸거나 소멸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유독 한반도에서는 좌파세력이 강세를 부리며 그 세력이 줄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의아해 하며 또 혼돈감을 지울 수가 없다. 이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첫째, 한국사람의 국민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인의 지식층에게는 조선조 성리학의 절의(節義)사상이 어느 듯 국민성격화된 면이 없지 않다.

비록 세가 불리하여 당장 맞아죽을지언정 배신변절을 하지 않음이 나의 자랑이다. 공산주의운동을 하다가 세가 불리해지니까 과거의 몸가짐을 바꿀 수가 없지 않은가? 이런 한국인의 파토스적인 고집이 깔려있는 것 같다. 고대 그리스인들처럼 한국인들도 비극을 좋아하는 것 같다. 둘째는 공산주의자와 좌파운동권 특유의 폭력관습, 특히 언어의 폭력에서 보이는 무자비한 폭력의 위력과 폭력의 위협이 그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좌경사상은 공산주의나 용공세력을 억압하거나 박해를 하려고 드는 반공정권과 그 주요 인물들에 대하여 언론과 문예, 연극이나 영화산업을 이용하여 가차 없는 악구와 사실왜곡을 가미한 비방을 퍼붓는다. 특히 반공정책에 앞장서거나 옹호하는 사람들은 매우 부도덕한 비인간적인 악인 내지 흉물스러운 괴물로 묘사됨으로써 철저한 성격살해를 당하게 된다.

반면에 공산주의운동이나 반정부 투쟁에 의하여 박해를 받거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애국자, 성인군자, 매우 도덕적이며 정의로운 양심분자로 칭송되며 추켜올려진다. 이런 연유로 공산주의자나 주사파 운동권세력이 죽음이나 다름없는 고생과 피해를 입으면서도 견뎌냈던 사람들은 그런 칭송과 숭배광풍에 황홀해지는 모양이다. 그래서 공산주의사상이 그 진실이 엉터리이며 확실한 양심도 정의가 아님을 알게 되었는데도 그 언저리에서 떠날 수가 없게 되는 모양이다.

또 한편에 공산주의가 아님은 물론 종북좌파에 편들어 본 일이 없고 또 그들 노선에 동조할 생각이 없으면서도 그들에게 적대하기를 두려워하며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다가 찍히기를 겁내는 사람들의 심리도 이해할 수가 있다. 공산주의나 과격좌파의 사회적 정치적인 영향력은 그들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찍히기를 두려워하며 그 때문에 언동을 조심하려고 용을 쓰는 많은 정치인들이나 고급관료들, 또한 많은 학자나 언론인들과 사회명사들이 세상의 변화에도 아직도 줄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이러한 개탄스러운 한국의 사회문화풍토가 한국선진화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재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의 불안정성은 그동안 나라의 위상과 안정을 좀먹어왔던 암적인 요인들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을 요구하고 있다. 좌파의 폭력과 폭력의 위협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정신력의 근원을 이루는 사상과 도덕성의 고양이라는 말로써 이 글을 매듭짓고자 한다. ○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