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3월호 / 출처 조갑제 닷컴 [10년 만의 격정 토로] 崔淳永 前 신동아그룹 회장 “그들(DJ정권 실세)은 굶주린 이리떼처럼 달려들어 20조원짜리 회사를 뜯어먹었다” 지난 10년간 가슴 속에 묻어뒀던 신동아그룹 해체 진상을 털어놓다! 2001년 8월 박某 부장검사, 최 회장에게 ‘기소유예 처분해 줄 수 있으니 조선일보와 관련된 비리자료를 달라’고 요구 “대한생명은 1999년 2월 현재 자산 규모 14조6800억원이었다. 매월 3조5000억원 이상의 유동자금이 있었고, 매월 5000억원 이상의 수입보험료를 걷어들였다. 3조5500억원의 公的자금을 투입한 것은 국민혈세 낭비였고, 그 과정에서 金大中 정권 사람들이 각종 이득을 챙겼다.” ⊙ 1992년 大選 때 金泳三 후보 측에 선거자금 100억원 전해 ⊙ 1997년 大選 때 金大中 후보의 핵심인사가 와서 ‘최소 1992년 김영삼 후보에게 준 돈 이상을 주셔야겠다’며 선거자금 요구. ⊙ 김대중 정권 실세 9人으로 구성된 秘線조직에서 신동아그룹 손 보기로 논의… 이수동 아태재단 상임이사가 주도 ⊙ 장관들과 식사하며 용돈으로 1억원씩 줬다 ⊙ 金宇中 대우그룹 회장에게 속아 4000억원 떼이기도 ⊙ 정·관계 비자금으로 1800억원 사용… ‘최순영 리스트’ 있다 ⊙ 구속되기 6개월 전 옷로비 사건 터져. 실체적 진실은 옷로비 사건이 아니라 옷값 대납요구 거절 사건 ⊙ 대한생명 국영화는 법적 절차 위반, 매각은 특혜매각. 8개월 만에 20여 개 계열사 사실상 다 팔아 치워 최순영 회장 인터뷰 동영상을 月刊朝鮮 홈페이지(monthly.chosun.com)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金成東 月刊朝鮮 기자〈ksdhan@chosun.com〉 白承俱 月刊朝鮮 기자〈eaglebsk@chosun.com〉 “잠깐 같이 가 주셔야겠습니다.” 1999년 2월 10일 오전 7시, 서울시 한남동 崔淳永(최순영·70) 신동아그룹 회장 자택에 검찰 수사관 3명이 들이닥쳤다. 최 회장과 신동아그룹에 狂風(광풍)이 불어닥친 순간이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오. 영장을 보여주시오.” “가보시면 압니다.” 최 회장은 영문도 모른 채 검찰로 연행됐다. 이튿날 그는 외화밀반출, 계열사 불법대출 등의 혐의로 전격 구속됐다. 그는 검찰조사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자산규모 20조원의 신동아그룹이 흔적 없이 사라질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구속은 ‘그룹 해체’라는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는 신호탄이었다. 두 차례의 구속. 평생 일군 회사와 사회적 지위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치욕뿐이었다. 그는 그룹 총수치고는 꽤나 긴 2년6개월간 구치소 신세를 졌다. 구속 8개월 만인 1999년 10월 보석으로 석방됐다가 2005년 1월 다시 법정구속됐다. 해를 넘겨 2006년 9월 건강악화로 구치소에서 쓰러지자 병원으로 실려갔다. 몸은 밖에 있었지만 지루한 법정공방은 계속됐다. “신앙의 힘으로 참고 견뎌” 신동아그룹이 공중분해된 지 10년 만에 입을 연 최순영 前 회장. 李明博(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 8월, 그는 광복절 特赦(특사)로 자유의 몸이 됐다. 그러나 세상까지 그를 자유인으로 만든 건 아니었다. 거액의 추징금을 내지 않은 부도덕한 기업인이라는 이유로 세상은 그의 사면을 ‘특혜’로 봤다. 그래서 그는 큰 마음을 먹었다. 세상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10년간 묻어뒀던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아야 할 때가 됐다고 용기를 낸 것이다. 취재진은 서울시 양재동에 있는 횃불선교재단을 찾았다. 최순영 회장은 선교재단 이사장실 옆 작은 방을 얻어 쓰고 있었다. 10년 만에 언론과 만나는 탓인지 그의 얼굴은 긴장된 표정이 역력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신앙의 힘으로 참고 버텨왔다”고 했다. 10년 만에 터진 말문은 질문할 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억울함을 호소할 때는 격정적으로, 자신으로 인해 피해를 본 임직원들에게는 용서를 바라는 죄인의 심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10년이라는 세월 때문인지, 올해 일흔이 된 나이 때문인지, 그는 세상사를 초월한 사람처럼 보였다. “10년 동안 정신적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재판하느라, 구치소 들락날락하느라 하는 동안 정권이 두 번 바뀌었네요. 정치적으로 엮인 사건은 사회적 여건이나 개인의 희망으로 풀 수 있는 게 아니더군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정치가 경제를 앞질러 가고 있어요.” 그는 잠시 숨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딱 10년 전이네요. 1999년 2월 10일 아침 7시쯤이었어요. 회사에 출근하려고 하는데 건장한 수사관들이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영장도 없이 강제로 연행당했죠. 요즘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죠. 그룹 회장에서 순식간에 범죄자가 됐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조선 3월호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