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영 박사는 육군사관 학교 제18기 출신으로서 KAIST 산업공학 박사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군 안팎에서 존경 받는 戰略연구가이다.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국방부 군사혁신기획단장 등 現業에 평생 종사하였고, ‘21세기/통일대비 국방발전방향’ 등 많은 著書가 있다. 그가 노훈 박사(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와 함께 쓴 ‘21세기 군사혁신과 미래전’(法文社. 23,000원. 2008년 7월 초판)은 우리나라가 급변하는 주변정세에 맞추어 ‘先制공격’을 포함한 적극적, 예방적, 억제적 방위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權 박사는 이 책을 포함한 자신의 著書에서 북한군에게 기습을 절대로 허용하여선 안 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였다. 1. 북한군은 핵무기, 화학생물 무기, 그리고 長射砲 등 장거리 기습 및 타격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2. 수도권에 인구의 반, 國富의 70% 이상이 집중되어 있는데다가 휴전선과 인접한 포천, 의정부, 고양 지역이 급격하게 개발되었다. 따라서 기습을 당하였을 때 물러날 공간이 없다. 물러났다가 반격작전으로 승리한다고 하더라도 수도권의 황폐로 實益이 없다. 3. 따라서 과거와 같이 敵에게 영토를 양보한 다음 반격해서 失地를 회복하는 방위개념으로부터 벗어나 영토 밖에서 단기간 내 결정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전쟁을 사전에 예방, 억제하는 방위개념의 채택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억제 및 예방차원의 방위(Preventive Defense)를 하려면 과거의 ‘守勢-소극’방위에서 ‘攻勢-적극방위’로 전환하고, ‘선제 기습적 공격/타격(Preemptive Attack/Strike)’도 필요시 허용한다는 ‘위엄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4. 방위의 목표와 수준을 ‘적극, 예방, 억제 방위’로 格上시키려면 군사력을 첨단 情報技術軍으로 탈바꿈시켜야 하며, 많은 예산이 소요된다. 先制공격 개념은 이스라엘이 實戰에서 활용한 바 있다. 1967년 6월의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기는 아침 출근시간에 맞추어 이집트 공군 비행장을 기습, 수백 대의 전투기를 활주로와 격납고에서 파괴하여 전쟁의 향방을 전투 30분 만에 결정지었다. 당시 이집트의 낫셀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 공격을 천명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의 先制공격은 自衛的 차원의 결단이란 인상을 국제사회에 심어주었다. 1973년 10월의 제4차 중동전쟁 때는 이스라엘이 오히려 이집트의 기습을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습을 허용하였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중대한 誤判을 하였다. 이집트 군이 開戰 전에 여러 차례 벌인 훈련은 전쟁 企圖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여기에 속아 넘어갔다. 開戰 직전의 이집트 군대가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것을 알고도 “또 훈련이군”이라고 안심하였다. 그 몇 달 전에 이스라엘은 이집트군의 훈련을 전쟁준비라고 판단, 예비군에 비상을 걸어 약4000만 달러의 예산을 날린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이건 전쟁이다”는 판단을 내린 것은 開戰 여덟 시간 전이었다. 골다 메이어 수상, 모세 다얀 국방장관, 그리고 참모총장이 모여 先制공격 與否를 놓고 토론하였다. 결론은 “얻어맞자”는 것이었다. 만약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하면 침략자로 규정되어 미국으로부터 軍援을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 대신 예비군 10만 명을 우선 소집하기로 하였다. 미국 닉슨 행정부에 긴급 연락을 취하여 소련과 아랍 국가들에 압력을 넣어 이집트가 기습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닉슨의 안보 보좌관 키신저도 메이어 수상에게 “先制공격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였다. 만약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하였더라면 미국은 여론의 악화로 이스라엘을 도울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이집트와 시리아로부터 기습을 당한 이스라엘 군대는 처음 1주일간 苦戰하였다. 한때 다얀 국방장관은 수상에게 핵폭탄을 사용할 준비를 하자고 건의하였다. 수십 개의 히로시마급 원자폭탄을 점검하였다. 곧, 이스라엘 군대는 미국이 急送해준 수만 톤의 신무기의 도움도 받고 해서 반격작전에 성공하였다. 보름간 계속된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은 약3000명의 전사자를 냈다. 부상자까지 합하면 1만 명이 戰死傷한 것이다. 그때 인구가 500만 명도 되지 않던 이스라엘로선 큰 손실이었다. 막강한 이스라엘도 기습을 당하면 이렇게 어려운 전투를 해야 하는 것이다. 權 박사는 “한국과 이스라엘은 안보 환경이 비슷하다. 특히 縱深이 얕아 기습을 받은 뒤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先制공격 개념을 배제하여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군은 기습당하는 것을 前提로 한 防禦전략을 세웠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고 한국 내에 막강한 從北세력을 구축해놓은 현시점에서 기습을 허용하는 것은 自滅의 길이다. 초장에 기습이 성공하여 서울이 대혼란에 빠지거나 북한군에 포위되면 從北세력은 폭동을 일으키고 연약한 정부라면 현위치 休戰까지도 감수할지 모른다. 수세적 방어개념을 가진 군대는 士氣에도 문제가 생긴다. 반면 북한군은 ‘武力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고 항상 공격적이다. 한국군은 자유통일을 뒷받침하는 武力이라는 自覺과 先制공격도 감행할 수 있다는 각오를 가져야 북한군을 누를 수 있는 "위엄성"을 갖추게 될 것이다. 한국군은 先制공격 개념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일단 전쟁이 일어나면 敵의 지휘부를 집중 타격하는 ‘참수작전’ 을 위한 신무기 개발에 돈을 쓰고, 첨단 NCW(Network-Centric Warfare) 戰力도 갖추어야 한다. NCW는, 敵陣에 대한 실시간 정보와 敵의 지휘부와 신경계통을 同時병렬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신무기 체제의 결합을 의미한다. 敵의 戰略重心거점(Center of Gravity)을 수백, 수천 개 選定하여 놓았다가 開戰 즉시 미사일, 전투기, 유도폭탄 등으로 동시다발적 공격을 감행하면 순간적으로 敵의 지휘체제가 마비된다. 지휘체제가 마비된 군대는, 머리가 잘려나간 뒤의 몸통으로 변한다. 權 박사는 이런 공세적 방어체제를 구축하면서 김정일 정권에 대하여도 적당히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재자는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기는 자들이므로 전쟁을 企圖하다간 敗家亡身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전쟁을 포기한다는 논리에서다. 이런 공세적, 예방적 防禦戰略은 國家지도부의 意志 없이는 군인의 손만으로써 만들 수 없다. 文民優位의 군 통제가 시행되는 한국에선 민간인 대통령의 國防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自主국방 의지가 신념화되어 있는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安保는 정치인들의 몫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의 몫이다. 安保는 보통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