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9일의 대통령 선거는 左右간의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정권교체의 전통은 단계적으로 진화되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선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뤄졌다. 전두환 대통령이 노태우 민정당 대표를 후계자로 지명하여 盧 후보가 당선 된 것이다. 1992년 大選에선 군인출신 대통령 시절을 마감하고 30년만에 처음으로 민간출신 대통령을 뽑았다. 1998년 선거는 정권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넘어간 최초의 경험이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는 정권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넘어간 두번째 경험이자 우파가 평화적으로 정권을 다시 차지한 최초의 경험이었다. 이런 맥락속에서 1987년의 최초 정권교체를 되돌아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5공화국의 史官이기도 했던 金聲翊 비서관의 기록중 관련부분을 소개한다. 金 당시 비서관은 대통령의 言行을 기록하는 일을 맡아 공사석에 많이 배석했다. 아래 기록에 따르면 全斗煥 대통령은 1987년 당시 평화적 정권교체와 함께 서울올림픽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몰두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또 한국 대통령은 남북대결 상황을 관리할 수 있을 정도의 군사적 지식을 가져야 하며 그런 점에서 노태우 대표를 후계자로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다. 1987년 민정당의 후보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명으로 결정되었다. 그 5년 뒤 여당내에선 경선이 이뤄졌다. 이종찬 후보가 투표 하루 전날 경선관리의 불공정을 이유로 삼아 사퇴했다. 김영삼 후보가 경선에서 당선되긴 했으나 일종의 반쪽 선거가 되었다. 다시 그 5년 뒤인 1997년 여당인 신한국당내에서 제대로 된 경선이 이뤄져 이회창 후보가 탄생했다. 이번엔 2등을 한 이인제씨가 경선결과에 불복, 탈당하여 출마했다. 다시 그 5년 뒤인 작년엔 與野가 다 치열한 黨內경선을 통해서 후보를 선출했고 불복자가 없었다. 이처럼 민주주의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바른 방향으로 발전해가는 모양이다. ==================================================== 1987년 3월 25일 저녁 6시부터 2시간 동안 全斗煥 대통령은 민정당 주요 당직자들을 청와대 상춘재(常春齎)로 불러 만찬을 겸한 주요 모임을 주재하였다. 참석자는 盧泰愚 대표위원, 權翊鉉 고문, 蔡汶植 고문, 李春九 사무총장, 張聖萬 정책위 의장, 李漢東 원내총무, 林芳鉉 중앙위 의장, 南載熙 서울시 지부위원장, 郭正出 부산시 지부위원장, 鄭東星 경기도 지부위원장, 李致浩 경북도 지부위원장, 金正男 강원도 지부위원장, 鄭宗澤 충북도 지부위원장, 曺淇相 전남도 지부위원장, 申相式 경남도 지부위원장, 全炳宇 전북도 지부위원장, 金正福 의원, 총재 비서실장 柳興洙 씨였다. 대통령: 오늘 육사 졸업식 날씨는 춥다는 정도가 아니라 얼어 죽을 뻔했어요. 유시를 하는데 손이 얼어서 장이 안 넘어가서 애를 먹었어요. 요새 민정당 월급 타기가 미안하겠어요. 관람료를 내야지요. 蔡 고문은 신민당 잘 알 거 아닙니까. 蔡 고문: 요새는 하도 요지경이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대통령: 당헌 자체를 무시하니 쿠데타지. 나라는 헌법이 있고 회사는 정관이 있고 학교에는 학칙이 있는 것 아닙니까. 정당은 당헌이 있는 건데 힘을 써도 당헌을 가지고 해야지. 당헌에도 없는 6인조니 7인조를 만들어 당헌에 있는 정무위원도 무시하고. 그런 사람들이 입만 벌리면 민주주의다 뭐다 하는데 저 사람들은 자기네 사욕(私慾)을 위해서는 당헌도 없고 당헌도 고치고, 집권하면, 필요하면 국회도 정부도 자기들 마음대로 할 아주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대통령 임기도 10개월 밖에 안 남았어요. 내가 저런 사람들 하고 대표든 당수든 만나서 얘기할 처지가 못 돼요. 그 사람들을 만나 처리하는 모든 것은 당의 정치 책임자인 盧 대표가 다 알아서 하시오. 나는 그 사람들은 안 만날 거요. 나 보고 만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정치는 어디까지나 현실을 바탕으로 해서 풀어나가야 해요. 대통령: 우리 민정당이 열심히 아주 잘 하고 있어요. 우리 당이 구국 정당 아닙니까. 민정당이 안 나왔으면 경제 문제 때문에도 나라가 온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盧 대표: (건배 제의) 영광스런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충성을 다짐, 끝까지 모시고 중단 없는 전진, 각하와 더불어 모든 영광 나누기를 다짐합니다. 대통령: 앞으로는 나를 신민당 총재와 만나게 하지 마시오. 사면복권을 시켜도 좋고 모든 권한을 줄 테니 盧 대표가 알아서 해요. 대통령: 우리 민정당이 통일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런 자신감을 가져야 됩니다. 2000년까지는 목숨 걸고 통일을 위해 싸울 겁니다. 여러분이 정국을 주도하시오. 盧 대표: 각하를 통일 영도자로 모시는 잔입니다. 오늘 민정당을 위해서는 영광스런 자리인데 감기 드시면 어쩌나 걱정했었습니다. 대통령: 오늘 추위는 내가 군 생활에서도 못 느낀 추위였습니다. 오늘 낮 육사 졸업식에서 내가 사실은 혀가 얼지 않도록 혀를 계속 입 속에서 움직였어요. 일본 사람들은 욕을 하면서도 자민당을 찍는다고 해요. 우리나라가 안정 되려면 민정당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민정당 총재가 누굽니까. 나 아닙니까. 우리 민정당은 통일 정당이지. 金日成이를 제압해야 됩니다. 내 임기가 이제 11개월 남았는데 나한테 수모스러운 일이 없게 해 주시오. 여러분이 힘을 합쳐야 당이 삽니다. 盧 대표: 나는 책임이 무겁습니다. 단합해서 도와주기 바랍니다. <김성익씨의 해설: 이 자리는 全 대통령이 盧 대표에게 정국의 주도권을 부여한, 즉 盧 대표를 후계자로 가시화한 1단계 조치의 의미를 지닌 셈이었다. 盧 대표위원에게 정국 주도권을 부여한 시기가 4.13 담화를 준비하고 있던 시기와 일치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국 주도권 부여는 후계 구도의 일차적인 가시화 조치였으며 4.13은 거기에 따른 정치 일정으로 준비된 것이다. 이렇게 보는 근거로는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全 대통령의 장남 宰國 씨가 全 대통령께 보내 온 편지의 내용을 들 수 있다. 필자는 4.13 담화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4월 1일 安賢泰 당시 경호실장이 담화 작성에 참고하라고 하면서 그 편지를 보여준 것을 읽어 본 일이 있다. 그 편지 내용은 아버지에게 참고가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그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었는데 주요 골자는 향후 정치 일정과 관련해서 대통령 차원의 헌법 문제에 관한 입장 정리와 담화 발표가 필요하다는 점, 후계자를 선정해서 개헌 주도권을 위임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점, 후계자로는 현재로서 盧 대표위원이 자연스러운 선택일 것 같다는 점, 지자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점 등이었다. 그러면 全 대통령은 언제 盧 대표를 후계자로 굳혔을까. 이에 대해서 全 대통령은 퇴임 후 나에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나는 80년에 이미 盧 대통령에게 잘하면 내 다음에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언질을 주었다. 그 뒤 대통령 후보로 키우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자리를 골고루 맡겨 의식적으로 경험을 쌓게 했다. 그러다가 6월 2일 민정당 중집위원(中執委員) 만찬에서 추천한 것이다. 그 사이에 특별히 다시 얘기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張世東 전 안기부장은 이와 관련해 “86년 2월 내가 경호실장에서 안기부장으로 나갈 때 全 대통령은 이미 결심이 서 있었다. 대통령은 나한테 여러 가지 지침을 주는 가운데 누구라고 말은 안 했지만 99%는 盧 대표라는 뜻을 알 수 있도록 말을 해주면서 거기에 맞는 일을 알아서 하라고 했다” 고 말했다. 그러나 全 대통령은 87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서 퇴임을 앞두고 제임 기간을 회고하는 가운데 “내가 민간인 출신 후임자를 염두에 두고 중책도 주어보고 했지만 우리나라의 남북 대치 상황 때문에 안보를 아는 후임자를 선택했다”고 술회했었다. 이 말은 盧 대표위원 이외에 한때 항간에도 나돌았던 盧信永 국무총리, 張世東 안기부장 등의 이름과 관련, 盧 총리를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었다. 張씨에 관한 부분은 張씨 자신이 언젠가 대통령에게 “시중에는 제가 후계자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라고 보고했더니 “나도 그런 얘기를 들었어” 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수석비서관을 지낸 한 인사는 “86년 6월경에는 대통령의 얘기로 미루어 봐서는 후계자가 盧 대표로 기울었으나 확정은 아니었던 것 같고 민간인 후계자 얘기는 나도 들은 일이 있다. 대통령 장남이 미국에서 편지를 보내 왔을 때가 盧 대표로 확정되는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87년 정초 무렵이었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결국 全 대통령으로서는 처음부터 후계자로 盧 대표를 생각했으며 중간에 잠시 다른 대안도 검토했었으나 끝내 盧 대표를 밀고 갔다는 얘기가 된다. 全 대통령은 87년 정초 무렵에 盧 대표위원을 후계자로 결심한 상태에서 정치 일정을 짜고 있었으며 그것을 자신의 심중으로부터 세상으로 드러내는 1단계 공식화 조치가 이 날 모임이었다. 4.13 선언은 그러한 구도에 따른 정치 일정으로서 全 대통령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어 안기부에 실무 검토를 시켜 시행한 것이었다.> ▶ 1987년 6월 1일 오후 2시에 全斗煥 대통령은 필자를 불러 민정당 중집위(中執委)에서 盧泰愚 대표를 대통령 후보자로 추천할 때 연설문 초안에 대해 검토한 뒤 약 50분간 보완 지시를 내렸다. 대통령: 내가 후임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통을 시작하는 뜻이 있다. 평화적인 정부 이양을 시도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우리 5,000년 민족사에서도 이번이 처음이야. 후보 지명을 상춘재에서 하는 것은 이 건물이 전통적인 건물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서양식으로 의자에 앉아서 하는 회합이 아니라 모두 마루에 앉아서 회합을 갖는 게 우리의 문화적 전통에 부합하듯이 우리의 의식에 맞는 우리 식의 정치 전통을 발전시켜 나가자는 뜻이다. 정치하는 사람은 야심이 있어야 개인이나 당의 발전이 있다. 그러나 그 야심이 자기의 위치와 분수를 모르는 오판이나 허욕에만 차서 집권욕에 눈이 어둡다거나 당리당략에만 집착하는 것은 안 돼. 그것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시련을 겪은 사례들이 있다. 그 표본이 선조 24년에 일본 통신사로 갔다 온 서인의 黃允吉 정사와 동인의 金誠一이 서로 다른 보고를 내어 그 결과가, 李栗容의 10만 대군 양성 주장을 듣지 못하고 임진왜란을 당한 계기가 된 것이다. 근대 정치사를 봐도 자유당 때 개인 중심으로 주류 비주류로 나뉘어져서 李 대통령께서 하야하신 이후에 자유당이 살아남았나. 공화당에도 주류다, 비주류다, JP, 반JP다 해서 파벌이 있었는데 박 대통령이 돌아가고 나서 공화당이 지금 있나. 야당만 해도 신파, 구파로 나뉘어서 싸웠는데 이런 것이 우리의 민주주의 정치 발전에 장애가 된 것이다. 자신의 분수와 실력을 모르고 야심만 채우려 하다가 개인도, 당 자체도 멸망시킨 교훈이 있다. 역사는 우리의 선생이야. 우리 정치인들이 앞으로 이런 사례를 반복하면 우리 역사와 국민한테 큰 죄인이 되고 나라를 망치는 일이 되다. 대통령: 우리 민정당만큼은 당 총재가 중심이므로 총재가 지명해야지 그렇지 않고 서구식 민주주의 방식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한다면 당이 분열되고 만다. 우리의 남북 대치 상황과 주변 정세의 격동을 감안해서 당의 단합을 위해서는 총재인 내가 후임자를 지명하는 하나의 불문율을 중집위원들이 명예롭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인사말에 포함시켜야 되겠다. 그것이 민정당의 전통이 될 수 있다. 정당에서 개인 플레이를 하기 시작하면 감당할 수가 없어. 결국 신민당도 그래서 분당이 된 거고 통민당도 역시 개인 중심이 될 거다. 후임자의 자격은 서울올림픽 성공과 선진국 창조 과업을 위해 정치 사회 안정과 국민 단합을 이루어낼 수 있는 정치지도자로서의 역량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안보 역량이 중요하다. 한반도의 남북관계에 비추어 볼 대 국민의 생존권 보장이 제일 어려운 문제 아니냐. 우리는 소련이나 중공과는 국력에 있어서 상대가 안 되고 일본의 국력과도 상대가 안 되니 미국의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 우리는 동족간에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므로 지도자는 군부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사람이 아니면 정권을 잡아도 유지를 못 한다. 군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세력이야. 사상적으로도 절대적 반공조직이 군대야. 야당이 아무리 떠들어도 군부 지지가 없으니 안 돼. 군부가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게 65만과 예비군 400만이 있지 않나. 선거에도 절대적으로 영향을 주는 거다. 남북이 사생결단을 하는 우리의 특수한 상황에서는 대통령이 군부의 신뢰와 존경을 받아야 하고 작전에 깊은 지식이 있어야 돼. 盧 대표를 후임으로 하는 것은 내 동기생이고 대장을 지냈기 때문보다도 군의 주요 지휘관을 역임했고 내무, 정무, 체육부 장관을 지내 정부 조직과 군부도 잘 알고, 당에 있으면서 당의 생리와 정치인의 생리를 상당히 체험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나의 후임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여러 사람이 있지만 盧 대표가 가장 적임이라고 생각해서, 내가 총재로서 추천한다, 그러니 흔쾌히 받아 들여서 전 당원이 단합해서 盧 대표를 후보로 해주기 바란다고 표현하도록 해봐. ▶ 1987년 6월 2일 저녁 6시 30분 全 대통령은 민정당 중앙집행위원 및 민정당 소속 국회 의장단을 상춘재로 초청하여 盧泰愚 대표를 대통령 후보로 추천하는 의식을 진행했다. 全 대통령은 앉은 자세로 미리 준비해간 ‘추천의 말씀 자료’를 육성으로 낭독해갔다. 대통령: (준비된 자료를 낭독) 오늘 이 자리는 우리나라와 민족의 지나간 역사는 물론 미래 역사에 비추어 실로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평화적인 정부 이양은 우리의 근대사에서, 아니 우리 5,000년의 민족사에서 처음 있는 일일 뿐 아니라 그 후보자를 결정하는 이 순간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정치를 발전시키는 데 역사적 이정표를 세우는 엄숙한 순간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겠지만 우리가 모인 이 상춘재는 원래 양식 건물이었던 것을 본인이 대통령에 취임하여 청와대에 온 이후에 우리의 전통 양식으로 다시 지은 것입니다. 내가 이 건물을 지으면서 춘양목을 구하고 전문가의 고증을 받았던 것은 국가 원수의 관저에, 후대에까지 문화재가 될 만한 한국식 전통 건물을 세워서 물려주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인이 이 모임을, 다른 회의실이 아니라 이 상춘재에서 가지기로 한 것도 우리 나라 민주주의와 정치를 서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적인 전통과 역사적 배경, 그리고 우리 토양에 맞게 발전시켜야 하겠다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중략) 우리 민정당의 새로운 전통을 세우는 지금 본인이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라와 국민을 책임지는 정치인은 누구나 私心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은 물론 야심이 있어야 개인이나 당의 발전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야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되어서 자신의 위치와 분수도 모르고 허욕에 빠져서 집권욕에만 눈이 어두워 黨利黨略에 집착하면 개인은 물론 당과 나라까지 파멸시킨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입니다. (중략) 민주국가에서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방법은 그 나라 정치 관행이나 전통, 그리고 국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서양식, 특히 미국식 관행은 말단 당원들의 각급 선거 절차를 거쳐서 후임자를 결정하는 것이고, 일본은 파벌 정치에 따라서 현직 수상의 뜻으로 결정하는 불문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조건 미국식의 관례를 우리 현실에 적용하려 한다면 당의 분열을 가져올 우려가 큰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처한 국가 상황에서는 격동하는 주변 정세의 추이와 특수한 안보 상황, 그리고 정치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고 당의 단합을 이루어나가기 위해서 본인이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뿐만 아니라 창당을 한 총재의 입장에서 후보자 지명에 대한 의사를 밝히고 중앙 집행위원회가 당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서 이를 받아들이는 자세가 소망스럽고, 이러한 관례가 민정당의 튼튼한 전통이 되어야 한다고 본인은 확신합니다. (중략) 앞으로 2, 3년은 국내외적으로 매우 어려운 여건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남북 긴장이 그 어느 때보다 고조되는 이 어려운 시기에 제1의 과제는 우리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 안보입니다. 이러한 격동의 시대에 나라의 안보와 번영을 책임질 지도자는 선진 조국 창조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하고 당과 정부는 물론 광범한 공직사회와 특히 군부 등 여러 분야를 이끌어 갈 통솔력이 있는, 유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지도자가 요청되고 있습니다. 특히 남북이 死生결단으로 대처하고 있는 우리의 특수 상황에서 군부의 신뢰와 존경, 그리고 군사 지식을 매우 필요한 조건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여 단안을 내릴 수 있는 결단력과 용기는 물론 국민적 에너지를 결집시킬 수 있는 지도력과 이러한 모든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건강 등 여러 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할 것입니다. (중략) 우리 민정당에는 본인의 후임자가 될 수 있는 훌륭한 분이 많고 그것이 우리 당의 자랑이고 저력이기도 합니다. 그간 각계 여러분들과 상의하고 당원들의 의사도 집약해 본 결과 오늘의 국가 상황을 감안할 때 그 동안 우리와 함께 개혁의 선봉에 섰던 구국의 동지이자 조국 선진화 과업을 함께 추진해 온 이념적 실천적 평생동지인 盧泰愚 대표위원이 가장 적임자라는 판단에 이르러 이 자리를 통해 추천하는 바입니다. 대통령: 여러분이 잘 아는 바와 같이 盧泰愚 대통령 후보는 그 동안 국군 보안사령관 등 군의 주요 지휘관을 역임해서 누구보다 군부를 잘 알고 탁월한 안보 식견을 갖추고 있으며 내무 장관과 정무, 체육부 장관 등 행정부의 직책을 맡아 정부 조직에 정통할 뿐 아니라 올림픽 조직위원장과 국회의원, 집권당 대표위원 등을 거쳐 당과 정치인의 생리를 알고 체험을 쌓음으로써 국정을 책임질 수 있는 정치 지도자의 경륜을 두루 쌓았습니다. 따라서 우리 당에 대한 국민의 지속적인 신뢰를 확보하고 평화적 정권 교체와 88올림픽의 국가 양 대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최적임자로 盧 대표를 추천하는 나의 이 뜻을 여러분이 흔쾌히 받아들여주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것은 훌륭한 지도자는 주위 사람에게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혼자서 스스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중략) 오는 6월 10일 당대회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를 선출해서 집권 제2기를 향한 준비를 본격화하게 되는데 이 재창출이란, 출범 못지않게 어려운 일이지만 특히 지금과 같이 주변 여건이 순탄치 않은 상황하에서는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조국의 안전과 민족의 번영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결코 중단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정(否定)과 청산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그 동안 이룩한 성과를 역사 속에서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과제를 안게 된 것입니다. (중략) 우리에게는 그 동안 이룩해온 빛나는 업적이 있고 국민의 확고한 지지가 있으며 나라를 구하고 발전시켜온 경험과 저력, 그리고 자신감이 있습니다. 역사 창조에는 전통과 시련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우리가 용기와 신념으로 단합한다면 못 해낼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빛나는 신화를 창조해온 성과를 바탕으로 영광스러운 민족사를 창조해 나가는 데 우리 모두 단합해서 매진해 나갈 것을 엄숙하게 당부합니다. (20분 간의 낭독이 끝난 뒤 참석자들 박수로 동의 후 함께 축배) 盧 대표: 두려움으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각하, 끝까지 지도해 주십시오. 동지 여러분, 지도해 주십시오. 대통령: 盧 대표는 대통령후보가 되면 전 국민한테 벌벌 기어야 돼요. 대통령이 되면 그럴 필요가 없지만. 야당이나 언론에서 앞으로 우리 후보한테 공격을 할 겁니다. 여기에 대해서 당에서 대비책을 잘 세워 나가야 합니다. 유언비어나 모략이 굉장히 많이 나올 거요. 후보가 되고 나면 신변 안전 문제도 생각해야 돼요. 우리나라가 특수 상황이기 때문에 이북에서 특공대가 노릴 수도 있고…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집권당 대통령 후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위험 요인도 많아요. 사실은 후보지명 시기를 늦추려는 생각도 했지만 우리 정치 상황이 특수하기 때문에… 우리 경호 법에는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서만 경호해주는 규정이 있고 후보한테는 해줄 수 있는 규정이 없어요. 우리 경찰은 주요 인사에 대해서 경호 경비를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경찰이 후보 경비에 지나치게 나서면 국민의 저항이 있을 수 있으니 당에서 전문가들이 신변 안전 문제를 특히 고려해야 할 것으로 봐요. 대통령: (尹吉重 의원에게) 내가 대통령 그만두고 나가면 연희동의 내 표를 한 표라도 얻어야 돼요. 내가 고정표가 1,000표는 있어요. 盧泰愚 후보는 金日成이와 남북회담을 해도 문제없어요. 웃는 사람이 무섭더라. <김성익씨의 해설: 민정당 대통령 후보를 총재가 추천하는 의식은 청와대 경내 한식 건물인 상춘재 대청마루에서 상석에 총재가 앉고 대표위원, 국회의장, 고문들과 중집위윈들이 저녁 술상을 앞에 두고 책상다리 자세로 앉은 가운데 1시간 반 동안 진행되었다. 全 대통령은 엄숙한 표정으로 준비된 발언 자료를 또박또박 낭독해 나갔으며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기침소리 하나 없는 조용하고 긴장된 분위기였다.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냈고 盧泰愚 대표위원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감격과 흥분으로 상기된 표정으로 좌중에 인사했다. 그리고 모두 축배를 들었다. 낭독을 마친 全 대통령이 웃으면서 盧 대표위원은 대통령 후보가 되면 全국민한테 벌벌 기어야 된다고 하면서 가벼운 어조로 돌아가자 굳어졌던 분위기는 다시 풀어지기 시작했다. 盧 대표위원은 잔을 들고 좌중을 한 바퀴 돌면서 일일이 술을 권하고 마시며 악수를 나누었다. 全 대통령이 참석자들에게 한 사람씩 술잔을 보내고 참석자들 역시 여느 만찬 모임 때와는 달리 자유스럽게 자리를 옮겨가면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흥을 돋우어 떠들썩한 축하연으로 바뀌었다. -조갑제 닷컴, 조갑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