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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군벌의 할거

12.12. 17:00! 세 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전두환 합수부장은 최규하 대통령 집무실에서 정승화 연행에 대한 재가를 청하다가 최규하가 노재현 국방장관을 부르기로 하면서 지연되어 기다리고 있었고, 정승화 연행조는 이미 약속해 놓은 대로 총장공관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으며, 30경비단에 전두환이 초청해 놓은 8명의 장군은 장태완으로부터 협박성 전화를 받으면서 대통령실에 간 합수부장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초청된 장성은 유학성(군수차관보), 차규헌(수도군단장), 황영시(1군단장), 노태우(9사단장), 박준병(20사단장), 박희도(1공수여단장), 최세창(3공수여단장), 장기오(5공수여단장)이었다. 이들은 전두환이 정승화 연행의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 위해 초청받은 사람들이었다.

전두환이 대통령실에서 나와 30경비단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윤성민 참모차장이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30경비단을 무력 공격하겠다는 협박성 전화를 했다. 대통령실에서 재가를 받지 못하고 돌아온 합수부장으로부터 전후 사정을 전해들은 유학성, 차규헌, 황영시, 백운택, 박희도 등 5명의 장군들은 "수경사령관은 협박을 가해오고, 참모차장이 반발하고 있는 긴박한 시기에 마냥 노재현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수는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 후 대통령을 찾아가 호소하기로 하고 전두환과 함께 대통령실로 갔다.

이들은 국방장관의 행방이 모연한 상태에서 대통령이 전권으로 재가해 줄 것을 정중하게 건의했다.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 사건을 놓고 신군부가 대통령을 협박하러 갔다고 비난한다. 22시10분 노재현이 최규하 대통령과 통화를 했고, 곧 가겠다고 했지만 그 후 노재현은 계속 잠적했다가 그 다음날 아침 4:00경에야 헌병에 의해 국방부 계단 밑에서 발견됐다.

12월12일, 육군본부에서 일어난 상황

육군본부는 정승화연행 사실을 19:40분에 알았다. 육본 상황실은 총장 공관 사병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총장이 괴한에 납치됐고, 부상자가 생겼습니다. 구급차를 빨리 보내주십시오.” 상황실 근무장교는 사실여부를 더 캐지 않고 주번 총사령에게 보고했고, 이는 즉시 윤성민 참모차장에게 보고됐다.

한편 윤성민 참모차장은 19:30분에 총장부인으로부터 이미 구조요청을 받은 바 있었다. “지금 아래층에서 총장이 소리를 지르고 총소리가 났다. 붙잡아 가려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빨리 와서 도와 달라.” 상황실로 달려온 윤성민은 정승화가 괴한으로부터 납치된 것으로 오해하고, 전군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각 초소에 총장납치차량‘을 잡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20:00시, 육군본부 비상소집에 따라 육본 보안대장 변규수가 육본상황실에 갔다. 당시 상황실이 파악하고 있는 내용은 “우경윤 대령 등이 총장을 납치했고,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연행계획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는 변규수는 이 정보를 즉시 합수부 보안처장 정도영에 보고하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정도영 역시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정도영은 이내 사태의 진상을 파악한 후 변규수에게 전화를 걸어 “정승화 총장은 10.26과 관련하여 합수부가 조사차 연행한 것이니 육군 지휘부에 이를 알려주고 병력출동을 하지 말라”고 조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변규수 보안대장은 이를 즉시 윤성민에게 보고했다. 이후 윤성민을 정점으로 한 김재규-정승화 계열의 군벌들은 어떻게 움직였는가?

총장 연행 직후의 육군본부

정승화가 연행된 상태에서는 윤성민 참모차장이 총장 대행자였다. 20시10분경, 그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수도권 일대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통해 9공수여단을 육본으로 출동하라고 지시했다. 윤성민은 합수부로부터 "연행"의 진상을 보고받고도 이를 예하 지휘관들에게 알리지 않아 국방부 및 육군본부 참모들이 우왕좌왕 혼란 상태에 빠졌고 추측들만 무성했다.

이런 와중에 노재현 국방장관이 행방불명이 됐다. 한편 경복궁에 있던 30경비단에서는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등 전두환이 초청한 장군들이 총장 연행 및 총격전에 대한 사실을 전해 듣고 걱정들을 하고 있었다.

이 때, 김진기 헌병감 등 정승화 직계 장군들이 나서서 강경분위기를 조성했다. “황영시, 차규헌, 유학성 등이 이끄는 영관급 장교들이 30경비단에 모여 정승화 연행을 지휘하고 있으니 무장헬기를 보내 정승화를 구출하고 경비단에 있는 장군들을 체포하자". 그러나 이러한 강경기류는 김종환 합참의장 및 대다수 군수뇌부 간부들의 반대에 직면해 수그러들었다. 총장광관에서 발생한 총격사건 이후 피신했던 노재현 국방장관이 21:30분에 육본상황실에 나타났고, 이 때 김용휴 차관이 장관에게 정승화 연행과 총격전의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노재현 장관이 상황실에 온지 얼마 안 돼서, 하소곤 작전참모부장을 통해 박희도 1공수여단장이 부대를 이끌고 서울로 출동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러나 그 때 박희도는 30경비단에 있었다. 21:00경, 특전사령관 정병주는 전 특전부대에 무장해제를 명령했고, 1공수여단(육사출신 준장)이 가지고 있던 모든 차량을 9공수여단(비육사출신)으로 이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는 1공수여단의 부대출동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당시 1공수여단은 수경사에 작전 배속되어 있어 지휘권은 수경사에 있었지 정병주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이 바쁜 정병주는 5-6회에 걸쳐 똑같은 명령을 반복해 내렸다. 혼란에 빠진 이기룡 부여단장은 사태파악을 위해 육군보부로 직접 찾아갔다. 따라서 12.12. 22:00경에는 1공수여단이 출동할 처지가 아니었다. 부대이동 상황에 대해서도 이처럼 정보가 어두웠던 것이다. 1공수여단이 출동했다는 보고를 들은 노재현은 또 다시 미8군 영내로 도피했다. 이로 인해 국방부는 지휘공백상태가 이어졌다.

내편 네편 갈라진 군벌

윤성민-장태완-정병주-이건영-윤성민-김진기-하소곤 등 육군본부 참모들은 정승화-김재규의 계열이었다. 정승화는 1979.11.16. 수경사령관에 장태완, 육군 작전참모부장에 하소곤 장군을 중용했다.

장태완 수경사령관은 신촌에서 특전사령관 정병주, 헌병감 김진기 준장과 함께 신촌의 모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다가 20:00경, 총장이 납치됐다는 보고를 받고 총장공관에 갔다가 33헌병과 해병대 사이에 총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수경사로 돌아갔다.

“그리고 20:40분에야 장태완은 비로소 총장 연행의 진상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장태완의 첫 반응은 이러했다. “합수부장은 계엄사령관의 부하인데 부하가 어찌 상관을 연행할 수 있느냐, 이는 명백한 하극상이다. 합수부를 용서할 수 없다.” 이어서 장태완은 비상령을 내려 수경사 전병력을 사령부로 집결시키라고 지시했다. 심지어는 청와대 외곽경비를 맡고 있던 33경비단 3개 중대 병력까지도 근무지를 이탈해 수경사령부에 집결하라고 지시했다.

이 때, 김기택 참모장이 30경비단에 장군들이 모여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장태완 소장은 이들이 연행의 배후세력이라 단정하고 30경비단장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 전화는 유학성 중장이 받았다. 장태완 소장은 유학성 중장에게 “그 곳에서 여러 사람이 모여 무슨 작당을 하느냐, 계엄사령관을 납치해서 어쩌자는 거냐, 빨리 총장을 원상위치로 돌려보내라.”고 호통을 쳤다. 유학성 중장이 상황의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이에 장소장은 유중장에게 욕을 했다.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너희놈들 거기 있거라, 내가 전차를 몰고 가서 싹 깔아죽이겠다.”

장태완 소장의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평소 장소장과 친분이 두터운 황영시 중장을 바꾸어주었다. 황중장이 또 다시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못 미더우면 여기에 와 보라고 했지만 장태완 소장은 “이놈들! 꼼짝말고 거기 있어, 내가 포를 갖고 와서 네놈들의 머리통을 모두 날려버리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술이 취한 상태에서 흥분돼 있었던 것 같다.

같은 시각에 윤성민 차장은 행정학교 교장인 소준열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행정학교에 주둔하고 있는 20사단의 박준병 소장(육사)을 즉각 체포하라 했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71시단장인 백운택 소장(육사)을 즉시 체포하라 하였지만 이들은 경비병들을 뚫지 못해 체포를 단념하였다.

30경비단을 무력으로 공격했다고 결심한 장태완은 21:30분경, 김용휴 차관과 윤성민 차장에 전화를 걸어 “30경비단을 공격하여 정승화 총장을 구출하려 하니 26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 9공수여단을 출동시켜 자기 지휘 하에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어울러 이건영 3군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30경비단에 쳐들어 갈 수 있는 병력을 동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경사는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청와대 경호실장의 지휘를 받는 부대이다. 따라서 장태완의 이런 자세는 본분과 정상적인 지휘체계를 벗어난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이건영 대장은 한수 더 떴다. “그 못된 놈 들이 장난을 치는 모양인데 장장군이 잘해야 한다. 황영시 1군단장, 차규현 수도군단장 두 놈들의 지휘 하에 있는 부대는 질대 서울로 출동할 수 없도록 조치할테니 걱정말고 그 놈들을 즉시 소탕하라”고 부추겼다. 여기에서부터 군의 지휘체계는 완전히 붕괴되고 군은 내편, 네편으로 갈라져 힘겨루기 모드로 돌입한 것이다.

장태완은 이어서 정병주에 전화를 걸어 30경비단 공격의 성공여부는 26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을 먼저 출동시켜 합수부와 30경비단을 제압하는 방법밖에 없으니 육사출신이 여단장으로 있는 1,3,5 공수여단은 출동하지 못하게 하고, 9공수여단을 출동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정병주 중장은 육본 작전처장(이병구)와 특전사 작전참모(신우식)의 만류를 뿌리치고 9공수여단에 출동을 지시하고 이를 장태완에게 알렸다.

글 지만원 /시스템클럽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