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과 위험한 한반도
2013년 2월 12일, 북한은 3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변 나라들의 우려와 걱정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핵실험을 한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한반도의 평화는 점점 위험해지고 있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확률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에게 핵은 무엇이며, 이렇게 될때까지의 북한의 행보는?
- 북한과 핵 -
1. 김일성의 '핵개발' 단계
- 사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부터 핵과 관련되어 있었다.
당시 북한의 지도자였던 김일성은 핵폭탄 개발에 관심이 있어서, 1953년 3월에 북한은 소련과 원자력 평화적 이용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1952년에는 소련과 '연합 핵 연구소 조직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소련 드브나 핵연구소에 북한 과학자들을 파견해 '방사화학연구소'를 설치했다.
1962년에 북한은 북한 영변에 원자력 연구소를 설립했고, 1963년에는 소련에서 연구용 원자로 하나를 도입했다. 1965~1967년까지는 연구용 원자로를 준공하고 이를 가동하는데 힘썼다.
그 후, 1974년에 북한은 '원자력법'을 제정했고, 그 해 9월에 국제원자력협력기구(IAEA)에 가입했다. 그 동안 북한은 원자력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면서 여러 실험을 하였고, 여러 방사능 연구소를 세우고 우라늄을 탐사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1985년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기도 했다.
1992년 2월 19일에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은 한반도의 핵에 대한 위험에서 조금 벗어나게는 해주었지만, 그 이후로부터 북한은 IAEA와 마찰을 일으켰고, IAEA는 북한에 미신고 시설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사찰 요청을 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리고나서 1993년 북한은 'NPT 탈퇴 서한'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다. 이에 한국은 비난했으며, 미국과 유엔은 사찰을 계속 요청하였다. 1994년 북한이 여러 조건을 제시로, 핵사찰을 수용했지만, 계속 해서 핵개발을 지속화했으며, 한반도의 위기는 증폭되었다.
결국 미국이 '대북 공격'과 '대북제재 결의안 초안'을 제시하는 상황까지 갔을 때, 김일성의 사망으로 '제네바 합의문'의 합의로 김일성 시대의 핵개발은 드디어 끝이 났다.
2. 김정일의 '핵실험' 단계
- 사실 '핵'은 북한에게 무기이자, 방어수단, 그리고 매우 중요한 협상카드였다. 미국 클린턴 정부 시절만 해도 이 핵은 좋은 협상무기로 활용이 되었다. 그러나 2001년 부시 대통령의 집권은 북한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명하였으며, '북한 체제 붕괴'를 목표로 양자회담을 거부하고, 북한을 고립상태로 만들었다. 또 북한에게는 불리한 6자회담을 건의하기도 했다. 또 미국은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 은행(BDA)의 북한 자금 2400만 달러(288억 원)을 동결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북한은 2003년에 NPT를 탈퇴하고, 2006년 10월 9일, 함북 길주군 풍계리에서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한이 핵이 있는 것을 미국이 안다면 함부로 북한을 공격하거나 고립시킬 수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의 정권을 지키면서 원하는 것을 그대로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결국 2007년 10월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이 열려, 북한은 핵프로그램 신고와 핵기술 전래 금지를 약속했다. 그 이후 핵 주요시설 3곳을 폐쇄하는 진전을 보였으나, 2008년 11월에 핵시설 검증을 위한 시료 채취를 거부하고, 2009년 4월에는 다시 핵시설을 복구하겠다고 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함북 길주군 풍계리에서 다시 한 번 핵실험을 한다. 2차 핵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이 후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 결의안을 발표했지만, 북한은 이를 비난하며 우라늄 농축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뒤이은 9월에 유엔 안보리 의장은 '우라늄 농축 실험에 성공했다'라는 북한의 편지를 받았다. 그 후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은 죽고 그의 아들 김정은이 3대 세습을 통해 북한의 새 지도자가 되었다.
3. 김정은의 '본격적 핵실험' 단계
- 김정은은 3대 세습 이후에도 그의 지위를 흔들리지 않았다. 도리어 그의 아버지 김정일과 똑같이 한국과 미국에 대하여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며 무기와 핵개발에 열중했다.
김정은은 2012년 4월 13일, 은하 3호 로켓을 발사하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2012년 12월 12일에 은하 3호 로켓을 발사 성공시키면서 북한은 자신감을 얻은 듯 핵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결국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단행한다.
-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의 미래는 불투명해지고 있으며, '핵무장론'이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하지만 '핵무장론'은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의 '핵무장'을 의미하는 '핵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동아시아의 핵무장은 북한 핵문제와 함께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 핵문제가 핵전쟁, 동북아 핵확산과 연결되어지는 복잡한 상황에 우리는 북한과 대화라는 타협적인 자세와 강경적인 자세를 잘 활용하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
출처 : 네이버 카폐-한국정치모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