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서의 518]의 저자 김대령은
그의 cafe <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에
최근 5.18당시 북한군 침투를 증언한
김명국<탈북자>씨의
본인이 5.18당시 북한군으로 침투를 하였고
광주지산동에서 국군과 교전이 있었다는 증언과
일치하는 동영상을 찾아
김명국씨의 증언을 뒷받침 하고 있다는 글을 게재하였다.
논쟁이나 특히 유언비어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을 때 발생하고
과도한 논쟁은 국력을 약화 시킬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최선의 대책은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5.18의 북한군 침투 여부에 대한 논쟁을 종식시키려면
긍정, 부정에 대한 보다 많은 정보가 수집되고 국민에게 제공함으로서
국민의 지헤가 모아져 바른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으로 판단되어
이 글을 게재합니다.
물론 이 하나의 첩보로 단정적으로 판단한 다는 것은 곤란 할 것입니다.
보다 많은 긍정과 부정의 첩보가 수집되면 퍼즐을 맞출수 있을 것입니다.
- 반목하지 아니하고 슬기롭게 답을 찾는 시민의식으로 성숙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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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국씨의 증언과 일치한다는 전투상황 증언 동영상
http://tvpot.daum.net/v/88msunSHuGw%24
<동영상의 요지>
광주 광산구 지산동은 야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5월 27일 아침
여기서 시민군으로 위장한 <북한군이 쏜 총이>< 계엄군 몸에 명중>하였다.
계엄군 편에서는
맞은 편의 시민군이
같은 한국 사람이요,
동생들이라 생각하고 총을 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아침 시민군 배치 지역은
전남도청과 YMCA와 광주공원 이었으므로
지산동에 무장시민군이 있어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으며,
더구나 시민군이 아무런 이유 없이
단지 상대편 복장이 국군 복장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격을 하여 사살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광주시민은 그렇게 무자비하게 국군을 사살하지 않는다.
시민군이 광주에서 데모하는 대학생이려니 하고
총을 쏘지 않은 계엄군은
맞은편 시민군 복장의 무장세력이 쏜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자, 아무런 이유 없이
지산동 야산에서 국군을 사살한 그 시민군은
5.18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라고 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북한군 일까? 하는 의심은 비약일까?
김명국씨는
그 시민군은 <시민군 복장으로 위장한><북한군>이었다고 증언한다.
이것을 부정할려면 동감할 수 있는 증거를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 계엄군 희생자 옆의 군인이 바로 20사단 62연대 소속 김응래씨였다.
김응래는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사람 싹쓸이하러 왔다는 유언비어와 달리 전라도 여수 사람이었다.
상대가 광주의 대학생들인 줄로만 인식하고 있던 김응래씨는
같은 동족이 더구나 광주시민이
국군에게 총을 쏘아 사살하였다는 사실에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정신이 이상해졌다.
마침내 정신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이 비운의 5.18 스토리 주인공은
2003년 정신병원에서 퇴원한지 8일 만에
여수 농촌마을 철로에서 달려오는 열차를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었다.
이렇게 공식 5.18 계엄군 사망자 수에 포함되지 못한 채 사망한 <김응래씨가 남긴 증언>은
그 날 아침 야산을 타고 철수하다가
20사 62연대 병사들을 발견하고 사격한 <김명국씨의 증언>이 <사실임을 입증>하여 준다.
2013년 6월 4일 역사학도
일부 교정
출처 : 역사학도 의 시사토론 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