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 더해 국회가 동행명령장까지 발부하며 청문회장에 세웠던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증인 선언을 거부하면서 여야의 소모적 공방만이 난무했다. 형사 재판 중인 증인들이 현행법에 따라 자신에게 불리한 선서나 증언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대비하지 못한 민주당의 실패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17일 자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김 전 청장과 원 전 원장의 증인 선서 거부와 두 사람의 의혹 부인을 비난하기 바빴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증인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선서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민주당의 증거 제시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민주당의 준비 부족이나 국정조사의 한계를 지적하기보단 증인들에게 책임을 돌리기 바빴다.
한겨레신문은 이날 <죄의식 없는 그들, 진실 규명 바랐던 국민들 ‘모욕’> 제하의 기사에서 “진실 규명을 바랐던 국민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준 하루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겨레는 “국가정보원의 조직적인 대선 여론조작과 이를 축소·은폐했던 경찰 수사의 전말을 파헤치려는 국회 국정조사는 사실만을 말하겠다는 ‘증인 선서’마저 거부하는 증인들의 ‘꼼수’ 앞에서 무력화됐다”며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기를 기대했던 이들은 비현실적으로 당당한 증인들의 태도에 결국 실망감만 곱씹어야 했다”고 적었다.
이어 증인들이 선서를 거부하면서도 “대선 개입 및 수사 축소·은폐와 관련한 검찰 공소사실과 의원들의 추궁에는 적극 부인하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야당의 요구로 파행을 거듭한 끝에 어렵사리 이루어진 청문회였던 만큼 여당과 증인들의 태도는 충분히 예상됐던 터였다. 민주당이 단순 의혹 제기나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보다 심층적이고 결정적인 증거 제시가 이루어졌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겨레는 국정조사 실패를 지적하면서도 민주당의 준비 부족이나 증거가 미흡한 사실을 별달리 지적하지 않았다.
국정조사특위 청문회가 실패한 근본 원인을 짚기보다 김 전 청장과 원 전 원장에 대해 감정적 분노에 그친 것은 경향신문도 대동소이했다. 경향신문은 이날 <농락당한 청문회…위증 처벌 피해 ‘변론의 장’ 활용> 제하의 기사에서 무력하게 끝난 청문회를 언급하며 “특위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지 못한 채 안하무인적 태도를 보인 두 증인에게 농락당했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언급했다.
경향신문은 두 증인이 자신들의 변호는 적극적으로 하면서 야당 의원들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서는 답변을 거부하거나 부인한 점을 비판한 뒤 “(앞으로 청문회에서) 선서를 거부하는 게 트렌드가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든다”면서 “증인들은 지나치게 당당한 태도를 보이고, 의원들은 그동안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등 시종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고 명지대 신율 교수의 분석을 덧붙였다. 결국, 두 증인의 청문회 선서 거부를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면서 “확정 판결 때까진 무죄추정을 한다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고개를 들지 못할 두 사람의 뻔뻔함을 보노라니 그들이 국가기강을 바로잡는 권력기관장을 지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라는 감정적 비난만을 덧붙였다.
경향은 이날 <그들이 국가기관장이었다니 부끄러울 뿐이다>란 사설로도 증인 선서 거부를 비판하면서 “국가기관장까지 지낸 그들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우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비판을 쏟아냈다.
앞서 한겨레도 <‘함량미달’ 원세훈·김용판 청문회, 국민이 분노한다> 제하의 사설로 “국정조사 일정은 남아 있으나 이들의 태도로 보아 대선개입의 배후와 몸통을 가릴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특히 증인들의 발뺌에 맞장구치며 ‘민주당의 정치공작’이라는 등 억지주장을 늘어놓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태도는 양식이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박근혜 대통령의 ‘묵언 지침’ 아래 꼭두각시처럼 바보놀음을 하고 있는 여권의 모습은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고 비난했다.
자유언론인협회 김승근 미디어위원장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두 증인과 여당의 반응은 이미 충분히 예상됐던 일이다. 실패의 이유라면 이런 뻔한 예상에도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민주당의 책임이 크다”면서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이 그런 민주당의 책임을 제대로 따지지 못하고 ‘분노한다’ ‘부끄럽다’ 등 감정적 수사를 동원해 증인 비난에나 열을 올리는 것 자체가 언론의 정치공세”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사건을 가지고 증인을 불러다 국정조사하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부분이 있다는 점, 정치공세의 측면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어야 했다. 어제와 같은 국정조사는 세금낭비일 뿐”이라면서 “증인 비판뿐 아니라 좀 더 차분히 냉정하게 청문회 실패의 이유와 원인 분석을 따지고 강조했었어야 옳다”고 지적했다.
소훈영 기자 firewinezero@gmail.com
[젊고 강한 신문-독립신문/independen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