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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인터뷰

한국의 국가이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념은 사라져야 할 것도, 낡은 것도, 실용을 위해 양보해야 할 것도, 뛰어넘어야 할 것도 아닌 것이다. 이념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인의 엄숙한 다짐인 것이다.

조선대학교 이영록 교수가 쓴 "우리 헌법의 탄생"(서해문집)이란 책은 대한민국 헌법 제정이 진지한 토론과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이뤄졌음을 잘 보여준다. 1948년 5월10일 총선으로 출범한 국회가 開院式을 가진 것은 그해 5월31일, 국회가 30명의 헌법기초위원을 확정한 것은 6월2일, 헌법안을 확정한 것은 6월22일, 본회의에 상정한 것은 그 다음날, 국회에서 통과된 것은 7월12일, 공포된 것은 7월17일이었다. 7월20일 이 헌법에 따라 李承晩이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8월15일 建國이 선언되었다.
이 기간에 주요 쟁점사안에 대한 토론이 전문적으로 열띠게 이뤄졌다. 대한민국 헌법이 졸속으로 急造되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한번 읽어봐야 할 것 같다. 制憲에 참여한 국회의원들의 열정, 識見, 순수성이 오늘날의 국회의원들보다 훨씬 낫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대한민국은 헌법대로 운영될 수가 없었다. 동내 야구팀이 메이저 리그의 야구 규칙을 채택했다고 하여 당장 뉴욕 양키스처럼 경기를 할 순 없는 것이다. 國力과 국민 수준이 약해서 헌법대로 하다간 나라가 망할 판이었다. 단 한 사람도 민주국가를 운영해본 사람이 없는 나라였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헌법이란 규범과 이상을 갖게 되었다. 정부가 불가피하게(?) 헌법을 위반할 때는 "너희들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어기고 있다"고 질책할 수 있는 채찍을 국민들이 쥐게 되었다. 李承晩, 朴正熙, 全斗煥 같은 강력한 지도자들도 이 채찍을 의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모든 권력자는 대한민국 헌법을 기준으로 하면 독재자나 反민주주의자가 될 운명이었다. 우리 헌법은 항상 현실보다 훨씬 높은 이상이었다.

이영록 교수는 대한민국이 아무리 외견적 입헌주의로 출발하였다고 해도 "놀라운 점은 (헌법이) 立憲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한 그 실질화의 과정은 피할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고 썼다.
<정신 자체를 말살하지 않는 한, 정신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다. 立憲주의가 거의 假死상태에 빠져 있다가도 다시 놀라운 복원력을 발휘해온 것이 우리 헌정사가 아니었던가? 그런 점에서 立憲주의를 향한 결단, 그 자체가 갖는 역사적 義意(의의)가 결함 때문에 과소평가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 헌법의 제정은 立憲주의의 불안한, 아니 매우 결함 많은 출발이기는 하였지만, 확실히 출발은 출발이었던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이념의 大章典이다. 전쟁, 쿠데타, 민중봉기, 암살, 부패, 반역을 뚫고서 무럭무럭 커 가고 있는 우리의 憲政질서는 이념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이념은 사라져야 할 것도, 낡은 것도, 실용을 위해 양보해야 할 것도, 뛰어넘어야 할 것도 아닌 것이다. 이념은 조롱의 대상이 아니다. 한국인의 엄숙한 다짐인 것이다.

왜 北傀로 불리게 되었는가?

대한민국의 建國이 총선과 制憲국회 구성, 그리고 민주적 절차에 의한 헌법 제정과 이에 따른 정부 수립의 과정을 거쳐서 이뤄진 것과는 반대로 이른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건국"은 스탈린의 명령에 의하여 북한사람들의 참여가 철저히 배제된 가운도 "제조"된 것이다. 북한정권은 "메이드 인 소비에트 유니온"이다.
일본의 法政大 교수 시모도마이 노부오(下斗米伸夫)가 쓴 "아시아 冷戰史"에 따르면 스탈린이 북한을 국가로 만들려고 결정한 것은 1948년4월24일이었다.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스탈린은 몰로토프와 주다노프 등 소련공산당 간부들과 만나 북한 헌법 제정 등의 절차를 결정했다.

<헌법은 1947년부터 소련헌법을 기초로 하여 준비되었으나, 일부는 스탈린 자신이 집필했고, 또 당초 있었던 임시헌법에서 임시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도 스탈린이었다. 이 회의에는 북한 지도자는 아무도 참가하지 않았다. 소련이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이 4월 회의의 결정에 따라 8월에 조선최고인민회의 선거가 이뤄지고 9월2일에 제1회 회의를 소집했으며, 8일엔 헌법을 채택, 9일엔 인민공화국 창설이 선언되었다. 國名이 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러시아語로부터 直譯한 것이다>

스탈린은 그 전에 朴憲永과 金日成을 모스크바로 불러 직접 시험문제를 내고 답안을 즉석에서 쓰게 했다. 스탈린은 답안을 평가한 다음 김일성을 북한의 지도자로 지명했었다.
지도자, 헌법, 國名까지 스탈린이 만들어준 것이다. 李承晩 정권이 북한을 北傀(북괴)라고 호칭한 것은 그런 점에서 정확한 표현이었다. 김일성과 북한정권은 "가짜"이고 "외세에 의한 조작품"이란 태생적 콤플렉스를
우상숭배로 덮으려 했다. 북한정권은, 태생적 진실이 알려지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정보의 流入과 유통을 뜻하는 개방이 불가능한 체제가 되었다. 북한정권의 탄생은 죽음을 예약한 셈이다.
이런 북한정권과 대한민국의 건국을 同格視하거나, 대한민국 대통령과 그 충직한 측근들이, 두 정권의 이념을 同質視하여 모두 낡은 것이라고 욕을 하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필경 정신 나간 행동을 하게 된다.
- 조갑제 / 조갑제 닷컴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