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문제의 제기
최근 동북아의 안보정세는 중․일 영토분쟁으로 불안정한 면을 노정하고 있다. 동북아 안보불안정을 심화시키는 여러 동인이 있지만 그 핵심에는 역내국가간 도서영유권 분쟁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센카쿠(중국명:댜오위다오)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일∙중간 대립은 일촉즉발의 무력충돌 상황에 있으며 예측 불가능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동안 중·일간 잠재되어 있던 영토분쟁은 2010년 9월 7일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과 중국어선의 충돌사건 이후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일·중간의 외교적 갈등이 증폭되었고, 2012년 9월 10일 일본내각이 센카쿠열도 5개 도서 가운데 3개를 국유화하기로 결정하면서 더욱 표면화되었으며 이에 대응하여 중국은 센카쿠열도 영해기선을 선포하는 등 맞대응함으로써 분쟁이 격화되어 왔다. 여기에 파네타 미 국방장관이 센카쿠열도가 미국의 방위공약에 포함된다고 밝히면서, 중․일간 도서영유권 분쟁이 미․중 패권경쟁으로 확대되는 양상까지 보여주고 있다.
최근 일본은 육·해·공 자위대 3만4000명이 동원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낙도(落島) 탈환 훈련(2013.11.1-18)’을 실시하는 등 실전에 대비하는 강도 높은 훈련을 하고 중국은 중국에 대한 도발이라며 반발하고 나서는 등 중·일간 긴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 글은 중·일 영토분쟁과 우리의 안보를 분석하기 위한 것이다. 영토분쟁의 개념과 센카쿠열도분쟁의 배경․원인, 중․일간 센카쿠열도분쟁의 전개와 현황, 우리의 안보:제주해군기지의 중요성 등을 살펴본 후 결론을 도출해보기로 한다.
II. 영토분쟁의 개념과 센카쿠열도분쟁의 배경․원인
영토(領土, territory)란 국가의 3대 구성요소(국민, 영토, 주권) 중의 하나로서 국제법에서 국가의 통치권이 미치는 구역을 의미하며, 흔히 토지로 이루어진 국가의 영역을 이르나 영해와 영공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영토분쟁은 크게 ‘내륙영토분쟁’과 ‘해양영토분쟁’으로 대별되고 다시 각각 영유권분쟁과 국경경계분쟁으로 구분될 수 있다. 해양영토분쟁은 ‘도서영유권분쟁’과 ‘해양경계획정분쟁이 있다. 특히 도서영유권분쟁은 그 도서를 중심으로 영해와 접속수역, 그리고 배타적 경제수역(EEZ) 및 대륙붕의 경계까지도 정해질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영토분쟁이라 할 수 있다.
영토분쟁은 역사를 거듭하면서 세계국가들의 영토 자체가 변경되면서 끊임없이 발생해왔으나 특히 근․현대에 들어서 발생한 영토분쟁의 원인은 식민지배 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후(戰後)처리 과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독도를 청일전쟁(1894~1895)과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한 이후 1905년 자국영토로 편입시켰으며, 센카쿠열도는 청일전쟁이후 1895년 대만과 함께 점령했다. 그런가 하면 남쿠릴열도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하고 1945년 소련에게 점령당했다. 그야말로 동북아 지역의 영토분쟁, 특히 일본과 그 인접국들간의 영토분쟁은 19세기말 성장했다가 20세기 중반에 패망했던 ‘일본제국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센카쿠열도분쟁은 ①근본적 원인으로는 식민지주의와 제국주의의 결과에서 찾을 수 있고, ②촉발적 원인으로는 1994년 발효된 영해를 3해리에서 12해리로 확대하고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제도를 확립한 유엔해양법협약의 제정 내용 및 발효와 관련이 있으며, ③전략적 원인으로는 미국과 일본을 축으로 하는 아태지역 해양 전략과 21세기 해양대국을 꿈꾸는 있는 중국의 해양 전략이 상충하면서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일본과 중국이 동중국해 남서부에 있는 센카쿠열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기점으로 할 때 경제적 가치가 높고 센카쿠 주변해역에는 풍부한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양주도권을 둘러싼 군사전략적 고려가 추가되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III. 중일간 센카쿠열도분쟁의 전개와 현황
센카쿠열도분쟁과 관련해서 중․일 양국의 입장을 보면 일본측은 1895년 주인이 없는 땅이라고 확인한 뒤 일본에 정식 편입했다고 말하고 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협정에서도 미국과 합의를 본 바도 있는 명백한 일본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중국측은 1403년의 이 도서가 중국측 자료에도 표기되어 있고 1863년에 그려진 중국측 지도에도 복건성(福建省) 영토라고 표기되어 있는 중국측 영토로서 일본 제국주의시대의 청일전쟁으로 인해 침탈(강탈)된 것이 때문에 전후에 당연히 반환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일간 센카쿠열도분쟁의 시기별 단계를 보면 대체로 ① 1990년대 중반 이전까지의 영유권분쟁의 잠재적 단계, ②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적 이득을 둘러싼 영유권분쟁단계, ③ 2000년대(특히 2010년) 이후 전략적 고려에 의한 영유권 분쟁단계로 구분해볼 수 있다.
2010년 9월 7일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에 중국어선과의 충돌사건 이후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일·중간의 외교적 갈등이 증폭되었다. 간 나오토 정부는 센카쿠열도 주변해역에서 중국어선 선장을 국내법으로 엄정히 징벌하고자 함으로써, 그 때까지 중∙일간에 유지되어 오던 ‘판단보류’의 암묵적 합의를 깨트리게 되었다. 일본 해상보안청이 중국어선 선장을 체포하여 일본 국내법에 근거하여 기소하자 이에 맞서 중국은 일본제품의 불매운동 등을 전개하고 희토류의 일본 수출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결국 중국정부의 이러한 압력행사로 일본측은 처분보류로 중국어선 선장을 석방하였다. 중국외교부는 2010년 9월 25일 선장의 석방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영토와 주권, 중국국민의 인권을 현저하게 침해한 것에 대해 강렬한 항의를 표명한다.”라고 성명을 발표하였고, 나아가 일본측에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였다. 이 사건은 일·중 양국의 단순한 영유권 갈등을 넘어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구조적 변동이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그 후 일본정부는 2012년 9월 11일에 사유지였던 센카쿠열도 3개의 섬(우오쓰리 섬, 기타코 섬, 미나미코 섬)을 구입하여 국유화시켰다. 이와 관련해서, 중국의 공선(公船)은 지난 2012년 1년 중 60여일을 일본이 실효적으로 관할하고 있는 센카쿠열도의 12해리 영해 내에 진입하여 시위했다. 이러한 분쟁상황에서 새로 취임한 중․일 두 정상은 영토내셔널리즘을 강화했다. 지난 2012년 12월 취임한 아베정권은 센카쿠열도의 영해를 침범하는 중국의 공선에 대해 무력으로 강력하게 대응한다고 표명해왔고, 중국의 국가주석 시진핑도 ‘해상권익을 보호할 능력을 향상시켜 해양권익을 굳건히 지킨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해왔다.
2012년 9월 국유화 이후 중국 해경선과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의 센카쿠 근해에서의 잦은 추격전, 센카쿠가 미․일안보조약 대상이라고 한 케리 미국무장관의 발언(2013.10.3), 중국 전투기의 인근 왕복비행 및 군사훈련, 아베의 무인정찰기 격추방침 승인(2013.10.11), 무인정찰기 격추시 전쟁으로 간주하겠다는 중국의 강경입장 표명(2013.10.26)과 무력위협, 실전을 방불케 하는 일본의 독자적 대규모 훈련(2013.11.1-18) 등이 최근 센카구열도분쟁과 관련된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IV. 우리의 안보적 대응
2000년대에 들어 영토분쟁 현상의 격화는 특히 중․일 양국의 영토내셔널리즘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과거에 경제적으로 일본에 의존하던 중국이 경제성장으로 자립의 길을 걷게 됨으로써, 종래 경제발전을 우선시했던 ‘주권은 중국, 자원은 공동개발’의 슬로건을 변경하여 강력하게 일본의 영토도발에 대응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중국이 인도양 진출을 강화하려는 것은 국가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가까운 남중국해나 동중국해 등지에서는 중국은 전혀 다른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중국은 2010년 제1차 도련선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하여 내해화(內海化)한 데 이어, 2020년까지 2차 도련선 내의 통제권을 확보하고, 2040년까지 태평양과 인도양에서의 미 해군의 역량을 억제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곳에서 동중국해를 따라 좀 더 올라오면 우리나라의 제7광구가 나오고, 이어도로 연결된다. 우리에겐 생명선이다. 연일 격돌하는 중․일 양국이 군사적 충돌은 아니더라도 해상봉쇄를 단행하여 1962년 쿠바사태처럼, 이 해역을 지나는 모든 나라의 선박 운항을 금지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를 향하는 유조선 등 모든 선박 운항이 차질을 빚게 됨은 물론이다. 유류를 많이 필요로 하는 겨울철 이런 안보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것은 또 다른 악몽이 될 수 있다. 남중국해 분쟁에 대해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는 것도, 우리 해군이 대양해군으로 거듭나야 하고, 그 이전에 제주민군복합항이 조속히 건립되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어도와 독도는 후손대대로 물려주어야 할 우리의 소중한 고유영토이다. 향후 중일 양국의 영토내셔널리즘이 그릇된 방향으로 작용하여 큰 파장을 일으킬 경우 이어도와 독도는 물론, 더 나아가 북한정권 붕괴시 북한에까지도 쓰나미 처럼 밀어닥칠지도 모른다. 따라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패권구도 속에서 첨예하게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인 한반도에서 사는 우리는 동북아 국제질서의 변화추이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여 우리의 소중한 영토를 튼튼히 수호해 나가야 할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궁극적으로 진정한 평화나 영토유지에는 외교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을 지킬 수 있고 또한 뒷받침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만 가능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센카쿠열도분쟁을 타산지석적 교훈으로 삼아 어떤 해양안보위협에 직면하더라도 이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있도록 자체 군사전력의 강화(특히 해․공군전력보강)와 한미공조를 튼튼히 다져 나가야 할 것이다. 삶의 터전이자 영원불멸의 근원지인 굳건한 영토수호는 물론, 국운융성․남북통일․세계평화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때라 생각된다.(konas) 출처:월간자유
김 강 녕(조화정치연구원장, 정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