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물에 나타난 문제점
(2014.1.20. 14:00 서울프레스센터,
‘제주4.3사건진상규명국민모임’ 주최
‘대한민국 애국진영이 제주4.3추념일을 말한다’ 세미나)
전, 제주경찰서장 金 英 仲
1. 서언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부지 395,380㎡(1,2,3단계 포함)내에는 제주4·3평화기념관이 21.7m 높이로 우뚝 서 있다.
이곳은 제주4·3사건의 모든 역사적 진실을 공평하고 정확하게 전시하고 해설해서, 대한민국 건국 과정의 어려움과 사건의 성격이나 올바른 진상을 후세들에게 교육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로당이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고 북한 노선에 따라 공산통일을 위한 무장반란과 만행은 묵살하거나 축소한 반면,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진압의 불가피성은 무시한 채, 진압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인명살상과 부정적인 면만을 과장하여 전시 해설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반미, 반이승만, 반군·경 사상을 각인시켜 대한민국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며, 4·3을 전혀 모르는 수많은 초·중·고 학생들과 관광객들에게 왜곡 편향된 역사교육장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상 남북대치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과 애국심, 국가관을 확립해야 할 마당에, 이를 저해함은 물론 국가 안보와 국민통합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이는 최근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을 능가하는 역사 왜곡 전파 현상으로서 조속한 시정이 요구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대한민국 육·해·공군·해병대영관장교연합회 등에서 수차례 시정을 요구한 바 있으나 시정할 기미는 전무하다.
2. 제주4·3평화기념관 현황
건물규모 : 지하 1층 지상 4층, 연건물 면적 : 11,445㎡(3,465평)
완공 : 2007년 8월 18일, 개관 : 2008년 3월
입주기관 : 제주도4·3사업소, 제주4·3평화재단
방문객 : 2008년 123,000명, 2010년 202,026명, 2011년 230,000명
■ 제주도 당국에서 인근 관광지와의 벨트화를 추진한 결과 다크투어리즘의 대표적 명소가 되었으며 특히 무료이기에 단체관광이나 수학여행단 등 방문객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됨
3. (1층) 전시 내용과 문제점
1코너 : 역사의 동굴 - U자형 동굴 끝에 큰 白碑가 눕혀 있음.
설명문 :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봉기, 항쟁, 사태, 폭동 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으나 분단의 시대를 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 날, 진정한 4·3의 이름을 새길 수 있으리라
■ 4·3의 正名은 ‘반란’인데 ‘민중항쟁’으로 새기려는 의도로 보인다.
2코너 : 흔들리는 섬 - 태평양전쟁 말기 영상, 일제로부터의 해방,
불안한 희망, 통일정부냐 단독정부냐
■ 북한의 先單政은 은폐하고, 유엔결의에 의한 남한 단정을 통일반대 세력으로 매도
▲ 4·3사건의 도화선 - 3·1절기념대회, 3·1발포사건, 3·10총파업
3·1사건 관련자 유치시설의 열악한 환경과 고문하는 모형물 전시
■ 1947년 3·1사건과 4·3은 별개의 사건임에도, 4·3사건의 도화선을 3·1 발포사건으로 설정하여 모든 책임을 경찰에 전가하고 민중항쟁으로 귀결시키려 함. 3·1발포사건이 없었더라도 4·3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음.
(2월 20일 남로당제주도당은 사회노동당을 위시한 일체의 기만적 회색분자들을 소탕하며, 우익이라 칭하는 반동분자들을 철저히 숙청하라고 지령함)
3코너 : 역사속의 민중저항
▲ 1168년 양수의 봉기, ▲ 1271년 삼별초의 난,
▲ 1901년 제주항쟁(이재수 난), ▲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
▲ 1932년 해녀항일투쟁
세계의 민중봉기
▲ 2·28사건 대만 민중봉기 ▲ 독재자 몰아낸 필리핀의 민중봉기
▲ 인종차별 철폐 남아프리카공화국
▲ 독재타도 민주회복 광주항쟁
광주 5·18 때 계엄군이 사람을 곤봉으로 구타하는 장면과 질질 끌고 가는 사진 전시
■ 고려시대 이후 제주도내 민중봉기 내용, 세계인의 민중봉기와 특히 5·18 부분과 4·3을 나란히 전시함으로서 제주4·3이 민중항쟁과 동일시하도록 유도하고 있음.(5·18 때는 인공기나 적기가가 없었고 스탈린이나 김일성 만세가 없었음.)
4코너 : 불타는 섬
▲ 초토화 작전 - 에니메이션 동영상(군인이 주민 학살 장면)
▲ 학살이 비극 시작되다 - 계엄령, 포고령, 소개령
▲ 여·순반란사건 - 동족상잔을 반대한다며 파병을 거부한 채 총부리를 돌렸다. 경비대와 경찰 사이의 누적된 갈등도 여순사건의 한 배경이 되었다.
제14연대 군인과 합세한 남로당원들은 행정을 장악하는 한편 경찰과 우익 인사들을 붙잡아 살해했다. 진압군은 8일 만에 여수를 탈환했으며 이 와중에 주민 수천 명이 진압군에게 희생됐다.
■ 반란군이 학살행위는 동족상잔이 아닌가? 반란군이 학살한 숫자는 없고 진압군에 의해 수천 명이 희생되었다고만 표현한 것도 형평성을 잃었음.
▲ 바다로 둘러싸여 고립된 섬 제주도는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다.
▲ 초토화 작전과 미군
▲ 원형공간에 각종 고문 형상을 백색 부조물로 만들어 전시
■ 4코너는 4·3평화기념관에서 가장 핵심적인 선동장임. 애니메이션 동영상 에는 군인들이 무차별로 어린이와 부녀자들에게 총질하고, 군인들이 민가에 불을 지르고, 도망가는 사람 등 뒤에 총을 쏘고, 시체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는 영상이 쉬지 않고 반복됨. 이런 영상을 보는 어린이들이 대한민국을 증오할 할 것인지 감사할 것인지 뻔함. 4코너에는 아예 시체 사진으로 도배해 놓았고 학살, 초토화, 감옥, 학살터 등의 자극적 용어 사용으로 군경이 죄 없는 양민들을 무조건 무차별 학살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음. 원형공간에는 고문형상과 쌓여있는 해골 형상 등을 부조로 제작해 전시하고 있음.
반면 인민해방군이 군경과 우익인사 살해 장면은 전무함
(2층으로 올라가)
‘세계의 제노사이드’
▲ 1941~45 홀로코스트 ▲ 1915~16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 1991~99 발칸반도 보스니아·코소보의 비극 ▲ 1975~99 동티모르의 희생
▲ 1937~38 난징 대학살 ▲ 1975~79 킬링필드
■ 4·3진압과정에서 많은 인명피해와 가혹행위가 있었음은 분명하나 홀로코스트나 킬링필드와 제주4·3은 그 성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4코너에 전시함으로서, 대한민국 정부의 정당한 진압작전을 ‘악의 작전’ 으로 취급하고 있음.
▲ ‘의로운 사람들’ - 김익렬
■ 김익렬 연대장에 대한 평가는 좌·우파 간에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으며 필자가 이에 대한 공개토론을 공개적으로 제의했으나 불응하고 있음.
(정부보고서는 김익렬의 기고문은 묵살하고 소설과 비슷한 유고문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김달삼측에 실탄을 제공한 인물을 의로운 사람으로 미화)
(1층으로 내려와)
▲ 4·28평화회담 ▲ 오라리 방화 사건 ▲제주도의 메이 데이
■ 평화회담은 4월 28일이 아니고 30일에 있었으며 실패한 회담인데 마치 경찰이 오라리 방화사건을 조작해 평화회담을 깼다는 등 경찰에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있음.
▲ 무장대에 의한 희생
설명문 全文
- 무장대, 경찰과 우익 지목 살해
- 남원리, 세화리 등 무장대에게 희생
- 식량탈취, 보초살해, 납치
■ 全 전시물 중 유일하게 단 3컷 3줄 전시
▲ 끝나지 않은 죽음의 그림자
불법으로 치러진 군법회의
가혹하게 이어진 학살 - 폭도지역에선 모든 사람을 사살하라
전쟁이 몰고 온 또 다른 희생 - 끔찍한 시체 사진으로 도배
▲ 다랑쉬굴 모형
백골 등 뼈만 남은 사체, 솥 등 당시 다랑쉬굴 내부 재현
양민 학살로 왜곡 표현
■ 다랑쉬굴의 진실은, 관련자의 진술, 제주경찰이 조사보고서 등을 보면, 죽창과 철창을 가지고 4~5명으로 조를 편성하여 기본적 경비를 하면서 상부의 지시에 따라 통신연락과 보급, 정보수집 등의 임무를 수행한 점과, 유격대 조장이 민간인 1명을 납치하여 살해했다는 진술, 철창·대검·철모·탄띠·도끼·군화 등 무기류가 발견 된 점 등으로 보아 남로당구좌면당 위원장 정권수 휘하에 있었던 유격대원임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살하였으며, 당시 군 책임자가 굴에서 나오도록 설득하였으나 불응한 사실 등을 완전 무시하고, 무조건 선량한 민간인이 은신해 있는 것을 살해했다고 왜곡하여 굴 모형을 만들어 놓고 해설하고 있음
5코너 : 폐허로 변한 마을
▲ 연좌제
▲ 이념의 희생양
총상자 상흔, 고문 상처 사진 전시
▲ 평화의 섬에 인권의 나무 심다
- 세계평화의 섬 선포
- 대통령의 공식사과
- 4·3특별법 쟁취
- 노무현 대통령 사과 담화 발표 동영상
끝 부분 복도 벽에 방문자 소감 기록 색종이 메모 부착 - 수천 매 부착
4. 기타 문제점
가. 4·3주체인 남로당에 대한 설명 누락
4·3 진압 과정에서 토벌대의 잘못만 자극적으로 표현하고, 남로당의 의도와 만행은 은폐 축소 미화 면책되고 있음.
나. 형평성 결여
남로당제주도당 당원은 4·3발발 당시 5천~6천 명, 초여름 경에는 3만 명,
주동자 김봉현이 스스로 밝힌 핵심세력 3,000명,
미군정청 ‘브라운 대령 보고서’에 의하면 4,000명
존 메릴의 하바드대 논문에는 3,500명인데, 500명으로 축소한 반면,
토벌대에 의한 인명피해는 19년간 신고, 심의하여 최종 희생자로 결정된 자가 14,236명1)임에도 불구하고 25,000~30,000명으로 확대 과장했을 뿐만 아니라 이 모두를 토벌대가 학살한 것으로 매도하고 있음.
인민유격대에 의해 살해된 인원도 1,729명에 달하며 그들의 세력권 하에서 저질러진 고문이나 살해 방법도 지극히 잔인하였고, 이 중에는 어린이 부녀자 노인들도 많이 있다. 토벌대에 의한 피해보다 수적으로 적다고 해서 이들이 책임이 완전 면제되는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로당인민해방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음.
다. 전시물이나 설명문 내용의 심한 왜곡
예: 해방정국은 신탁통치를 둘러싼 반대와 찬성 논쟁으로 뜨거웠다.
김구가 반탁운동을 주도했고, 이승만은 이를 따라가는 형국이었다.
좌익은 연합군의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의 핵심은 임시정부수립에 있다고 파악하고 3상회의 결정과 함께 신탁통치 조항도 지지했다.
이때 친일파들은 반탁운동을 이용해 ‘애국자’인양 변신하기도 했다.
■ 좌파가 당초 반탁 입장에 섰다가 찬탁으로 선회한 설명이 없고 찬탁 좌익은 옳고, 반탁 우익은 친일파이거나 ‘애국자’인양 변신한 사람으로 매도
라. 전시된 조형물, 그림, 동영상, 사진 등은 모두 군경에 의한 것만 전시, 사체 사진으로 도배한 듯한 느낌,
‘낮에는 토벌대가 무섭고 밤에는 산사람이 무서웠다’는 말이 있다시피 산사람들도 분명 무서운 존재였으나 묵살.
마. 미군정 책임만 강조
소련의 위성국 전략이나 대북한 정책, 소련군이 점령군으로서 북한 에서 저지른 일들은 전무하고 반미 감정만 자극하는 내용
바. 전시물 내용에 대해 틀린 근거를 제시하고 이의를 제기하면 정부보고서에 근거했다는 변명으로 일관
5. 대책
가. 성격규정도 안 된 반쪽짜리 정부보고서를 새로 써야함.
대한민국 국무총리가 대한민국 입장에서 쓴 정부보고서가 새로 나와야 하고 이것이 역사교과서로서의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함.
나. 4·3특위 위촉직 위원을 중립적 인사로 전원 교체
정부보고서는 결국 사람이 쓰는 것임. 따라서 특위 위원 위촉권자인 국무총리는 2000년 8월 28일 이후 계속 연임 중인 인사를 전원 교체.
다. 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물심의위원회 위원 및 문제의 전시물 일제 검토 교체
2013년 12월 17일 제주하니관광호텔 별관에서 개최한 제주4·3희생자유족회 주최 ‘국가추념일과 화해 상생의 길’ 주재 토론회에서 토론자로 나온 제주민족예술총연합 이사장 박경훈은 7년간 전시물 업무를 담당하였다고 실토함. 교체권자 - 제주도지사
라. 주제 이외의 4·3관련 현안 문제
1) 제주4·3평화재단 이사 공평한 구성
재단 이사 중 위촉직은 전부 좌파로 구성되어 있음,
재단이사장의 요구에 따라 제주도경우회에서 이사 1명을 추천하였더니 4·3관련단체와 재단이사들이 봉기하여 결국 무산되었음.
재단 정관상, 이사는 이사회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되어 있는 바 이를 개정하지 않으면 우익측 이사 위촉은 불가능함으로 개정 필요
(안행부장관, 제주도지사)
■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수호하는 세력은 배제 냉대 받고, 남로당의 반란을 항쟁이라 미화하는 수구좌파세력은 우대 받는 기묘한 현상이 대한민국 대명천지 하에서 계속되고 있는 실정임.
2) 對국회 4·3특별법 독소조항 개정 노력
본법 제4조2 - 업무상 취득한 비밀 누설 금지
위반자 2년 이하 징역 1천만 원 이하 벌금
민중항쟁이라면 주동자나 적극 가담자를 홍보 존경토록 해야 마땅한데
은폐 차단하여 역사적 검증을 원천 차단
■ 남로당의 행위가 지고지순하고 정정당당하지 못함을 반증
3) 4월 3일 국가추념일 지정 저지
박근혜 정부도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후계체인데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려고 무장폭력으로 반란개시한 날을 대한민국 정부가 국가추념일로 정한다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나며 역사적 비판을 면치 못할 것임(북한 김정은이 좋아할 일임)
특히 남로당도당 간부 다수와 북한인민군 사단장이 희생자로 둔갑하여 위패가 봉안되고 있음.
4) 화해 상생
도민 화해와 상생은 시대적 소명임. 단,
- 4·3항쟁론자는 남로당의 반란을 인정하고, 정부보고서 새로 쓰는데 동의하며, 4·3주동자인 남로당제주도당 간부와 북한인민군 사단장 등 부적격자를 희생자에서 제외하고,
- 4·3반란론자는 과잉진압으로 인한 무고한 인명살상과 인권침해를 인정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할 것임.
6. 결론
제주4·3평화공원 전시물의 전반적 맥락은 민중항쟁 시각에서 시종일관하고 있다.
해방정국의 혼란기에 대한민국을 건국하려다 보니, 특히 북의 사실상 先單政 수립과 소련군이 철수 다음에 있을 미군 철수 문제 등은 당국으로 하여금 4·3을 빨리 진압해야겠다는 조급함이 앞서서 많은 무리가 있었음을 절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국은 옳은 길, 생명의 길, 성공의 길을 선택한 긍정의 역사인 반면,
소련의 지령을 받은 북한 정권이나 그와 같은 노선을 택한 남로당은 잘못된 길, 죽음의 길, 실패의 길을 선택한 부정적 역사임이 증명되고 있다. 따라서 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물 내용은 이런 기조 위에서 제작 설치되어야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과 자긍심을 가지도록 한 연후에, 건국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나 과잉진압에 대한 비판도 함께 해서,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합치되고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가지도록, 전시물 전반에 대한 재검토를 거쳐 올바른 역사교육장이 되도록 새로 만들어 전시해야 한다. 끝.
주:
1) 현재까지 4·3희생자로 확정된 자는 14,032명(사망자 10,144명, 행불자 3,518명, 후유장애자 156명, 수형자 214명)이나, 제5차 신고자 383명 중 철회 및 중복자를 제외 한 204명을 제주도4·3실무위원회에서 희생자로 심사하고 4·3특위에 상신 중 (2013.12.30.제주일보 4면)이니 이들 모두를 희생자로 확정한다고 추정하면 희생자는 총 14,236명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