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09 (목)

  • 맑음동두천 14.1℃
  • 맑음강릉 20.1℃
  • 맑음서울 15.4℃
  • 맑음대전 14.5℃
  • 맑음대구 18.8℃
  • 맑음울산 16.8℃
  • 맑음광주 15.6℃
  • 맑음부산 16.0℃
  • 맑음고창 12.4℃
  • 맑음제주 15.6℃
  • 맑음강화 13.7℃
  • 맑음보은 13.5℃
  • 맑음금산 14.2℃
  • 맑음강진군 12.8℃
  • 맑음경주시 14.6℃
  • 맑음거제 16.6℃
기상청 제공

칼럼/인터뷰

“국사 교과서, 이렇게 북한 책을 베꼈다”-역대 국사 교과서 모두 분석한 정경희 교수

교육부가 가장 영혼없는 관료집단. 교과서 문제에 관심 자체가 없어"

교학사 발간 역사 교과서의 채택 문제를 두고 논쟁이 격렬하다.

현재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는 모두 8종이다. 이 가운데 교학사의 교과서를 채택한 학교는 전무(全無)한 상황. 당초에는 전국 2300여개 학교 중 20여개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었지만, 좌파 단체와 언론, 야권의 집요한 철회 압박에 굴복해 대부분 선택을 취소했다.

현재 고등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는 2010년 검정(檢定)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다. 국사 교과서의 좌편향 논란이 불거진 것은 2002년 검정을 통과한 7차 교육과정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부터다. 7차 교육과정에서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신설되면서 국정(國定)과 검정이 뒤섞이게 되었다. 1학년 때 배우는 <국사> 교과서는 여전히 국정이었고, 2~3학년 때 선택하는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검정 교과서였다.

7차 교육과정에 따라 2002년 검정에 통과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모두 6종이었다. 이들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를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북한 정권을 감싸는 바람에 처음부터 ‘좌편향’ 논란에 휩싸였다. 이는 이후 수년간의 ‘교과서 파동’으로 이어졌다.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편향성을 바로잡기 위해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문제가 된 <한국 근·현대사> 과목은 폐지되었다. 그후 또 한 차례 개정이 이루어진 결과, <국사> 교과는 <한국사>로 명칭이 바뀌고 국정 체제에서 검정으로 바뀌었다.

검정 <한국사> 교과서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10년이다. 그런데 이 해 처음으로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 6종도 편향되기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와 별 차이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편향성을 바로잡기 위해 작년에 <한국사> 교과서가 새로 만들어졌고, 그 가운데 교학사 교과서를 포함한 8종이 검정을 통과했다.

국사 교과서가 왜 이념논쟁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나?

교학사 교과서는 작년 5월 30일 1차 검정을 통과하자마자 좌파세력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았다. 아직 그 내용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좌파세력은 교학사 교과서가 ‘유관순은 깡패’ ‘김구-안중근은 테러리스트’라고 표현했다는 글을 SNS 등을 통해 전파하면서 교학사 교과서에 ‘친일(親日)’이라는 딱지를 붙이려고 그야말로 ‘기’를 썼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르쳐야 하는 국사 교과서가 좌편향 논란에 휩싸인 것 자체가 사실은 ‘비정상’이다. 이 ‘비정상’을 정상화하겠다고 펴낸 교학사 교과서는 단 한 곳의 학교에서도 채택되지 못했다. 나라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단결의 구심점에 서 있어야 할 국사 교과서가 왜 이념 논쟁의 최전선에 서게 되었을까?

역사 교과서를 두고 벌어지는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역대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를 모두 분석한 학자가 있다. 바로 정경희(丁慶姬) 전 탐라대 교수이다. 정경희 교수는 지난 2년간, 1차 국사 교과서부터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에 이르는 역대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모두 분석해서 그 결과를 작년 10월에 <한국사 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라는 책으로 펴냈다.


	정경희 교수는 지난 2년간, 1차 국사 교과서부터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에 이르는 역대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모두 분석해서 그 결과를 작년 10월에 <한국사 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라는 책으로 펴냈다.
정경희 교수는 지난 2년간, 1차 국사 교과서부터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에 이르는 역대 국사 교과서의 내용을 모두 분석해서 그 결과를 작년 10월에 <한국사 교과서 어떻게 편향되었나>라는 책으로 펴냈다.
정 교수는 국사 전공자가 아니다. 서울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서양사학과에서 석ㆍ박사학위를 받은 정교수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처음에 국사에 대해 잘 몰랐으니까 이 일을 시작했다”며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다면 절대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저도 교과서를 분석하기 전까지는 우리 국사 교과서가 이 정도로 심각한 상태인지 몰랐습니다. 직접 교과서를 보지 않았으면 저도 믿지 못했을 겁니다. 한마디로 우리 아이들이 십여 년 전부터 이런 교과서로 공부했다는 것이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건 대한민국의 국사 교과서라고 하기에는 사관(史觀), 용어, 기술방식 등에서 북한의 역사책과 너무도 유사한 부분이 많은 교과서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국사학자들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그냥 지켜보고 있었는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사실을 알고 나니 저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더군요.”

민중사학의 등장

먼저 정경희 교수로부터 국사 교과서의 편향성을 분석하게 된 계기에 대해 들어보았다.

“러시아 대사를 지내신 이인호 교수(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께서 일찍부터 국사 교과서 좌편향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깊이 우려하고 계시다가 저에게 이 문제를 연구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저는 국사 교과서를 1950년대 것부터 모두 구해다 놓고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건국 이후의 국사 교과서를 죄다 분석해보니 국정체제이던 6차 교육과정까지는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7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모든 분란이 시작됩니다. 7차에서 이전에는 크게 다루지 않던 근·현대사 부분이 국사에서 분리되면서 검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왜 갑자기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신설되었는지, 그리고 누가 국사 교과서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꾸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정 교수는 “10년 가까이 일선 고등학교에서 사용된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6종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좌편향이 심각한 상태”였다고 말한다.

“6종 모두 편향된 교과서였는데, 그 중에서도 금성교과서는 극도의 편향성을 드러냈습니다. 금성교과서는 1987년 이전의 모든 정권을 ‘독재’라고 비판하면서 북한의 독재체제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습니다.

예를들면, 남한에 대해서는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40년 독재’ 등 13번이나 독재라는 표현을 쓰면서 북한의 김일성-김정일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독재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6·25를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북한의 남침 책임을 희석시키고, 대한민국의 성공과 성취는 부정하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매우 우호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정경희 교수는 “교과서가 극도의 편향성을 띠게 된 것은 19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민중사학’의 관점에서 쓰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중사학은 북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가 남한에 유입되면서 대두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일종입니다. 즉 마르크스-레닌의 사적유물론(史的唯物論)에 바탕을 둔 북한의 역사학과 남한의 폐쇄적 민족주의 사학이 접목되어 생겨난 것이지요. 따라서 민중사학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기본적으로 반봉건의 근대화와 반제국주의 항쟁의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현대사의 주류 학풍으로 자리잡은 민중사학

정 교수는 “민중사학은 ‘역사발전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하는 역사관”이라며 “한마디로 민중이 주체가 되고,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변혁을 모색하는 게 그 주요 목표”라고 설명했다.

“민중사학은 대한민국을 여전히 제국주의 미국의 식민지라고 인식하고 있으며, 우리의 근·현대사를 지배계급과 기층 민중의 대립구도로 파악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역사관의 한 형태입니다. 실례로 ‘일제시대’를 북한식 용어인 ‘일제강점기’라는 말로 바꾼 것도 바로 이들 민중사학자입니다.

이는 북한이 광복 이전과 이후의 남한의 역사를 각각 ‘일제강점기’, ‘미제강점기’로 구분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일제강점기’는 ‘미제강점기’와 짝을 이루는 북한식 용어인데 민중사학자들이 이 용어를 선택했다는 것은 북한의 역사 해석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정 교수에 따르면 1980년대 중후반에 오면서 진보좌파 성향의 소장학자들은 본격적으로 역사단체를 세워 이를 기반으로 조직적인 학술운동을 전개했다.

역사문제연구소(1986), 한국역사연구회(1988), 구로역사연구소(현 역사학연구소, 1988) 등이 바로 이 때 결성된 민중사학 연구단체이다. 이렇게 해서 1980년대 말 역사학계는 강단(講壇)사학과 반체제적인 재야(在野) 연구소로 양분되었다.

정 교수는 “민중사학이 민주화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1980년대 후반 현대사 연구의 주류(主流) 학풍으로 자리 잡아가는 동안 주류 역사학계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들 민중사학자는 1980년대 말 민중사학 연구단체를 설립하고 나서 두 가지 일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첫째는 교과서의 국정제를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국정 교과서를 대치할 대중용 국사 교과서를 발간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보는 우리역사><교실 밖 국사여행> 등의 민중사학 서적이 이렇게 해서 탄생했습니다. 동시에 이들은 역사교사, 대학생, 시민 등을 대상으로 한국사와 사회주의 운동사 등을 강의하는 대중교육을 통해 민중사학의 전파에 나섰습니다.”



		</div>
			
		
		<script type= var MYNEWS_PHOTO_LIMIT_WIDTH = parseInt("680"); var imageLoaded = function(obj) { // Run onload code. var title = obj.attr('title'); obj.attr('alt', title); obj.removeAttr('title'); var image_align_class = ""; var clazz = obj.attr('class'); if (clazz != null && clazz.length > 0) { image_align_class = " "+clazz; } // 에디터에서 들어간 기사가 아닐 경우, 태그 씌우지 않음 if(obj.attr('xtype') === undefined) { return; } obj.attr('class', 'img'); obj.removeAttr('xtype'); var w = obj.width(); if (isNaN(w)) { w = 0; } var h = parseInt(obj.css('height')); if (isNaN(h)) { h = 0; } if (w <= 0) { var timg = new Image(); timg.src = this.src; w = parseInt(timg.width); if (isNaN(w)) { //... } } if (w > MYNEWS_PHOTO_LIMIT_WIDTH) { var pct = parseFloat(MYNEWS_PHOTO_LIMIT_WIDTH) / parseFloat(w); w = MYNEWS_PHOTO_LIMIT_WIDTH; if (pct > 0 && pct < 1 && h > 0) { h = Math.floor(parseFloat(h) * pct); } } obj.css('width', w+"px"); if (h > 0) { obj.css('height', h+"px"); } if(image_align_class.trim() == "sm-image-c") { obj.wrap("
"); } else { obj.wrap("
"); } if (title != null && title.length > 1) { // 기본 공백 무시 if (title.indexOf('▲') == -1) { title = '▲ ' + title; } // obj.after("
"+title+"
"); obj.after("
"+title+"
"); } // 이미지 테이블 처리 if(document.getElementsByClassName('news_body_area').length > 0){ if(document.getElementsByClassName('news_body_area')[0].getElementsByTagName('img').length > 0){ imgTag = document.getElementsByClassName('news_body_area')[0].getElementsByTagName('img'); for(i = 0; i < imgTag.length; i++){ width = imgTag[i].width; tableTag = imgTag[i].parentNode.parentNode.parentNode.parentNode.parentNode; if(tableTag.tagName == 'TABLE'){ tableTag.setAttribute('style',"width:" + width + "px;margin:10px auto"); } } } } } var img_caption = setInterval(make_caption, 1000); function make_caption() { /* $("img[xtype='photo']").each(function() { if($(this).width() > 0) { imageLoaded($(this)); clearInterval(img_caption); } }); */ $("div.news_body_area img").each(function() { if($(this).width() > 0) { imageLoaded($(this)); clearInterval(img_caption); } }); }


혁신학교? 혁신은 개뿔! 애들 학력만 퇴행중! 교무실 커피자판기, 교사 항공권 구입에 물 쓰듯...특혜 불구 학력은 뒷걸음 일반학교에 비해 연간 1억4,000~1억5,000만원을 특별히 지원받는 서울형 혁신학교가 예산을 엉뚱한 곳에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특별예산(학교운영비)으로 교사실의 각종 책장이나 가구를 구입했고, 수백만원을 들여 학습자료 저장용 USB와 외장하드를 사서 나눠 갖은 사실도 밝혀졌다. 교무실 커피자판기를 구입하는데 특별예산을 쓴 혁신학교도 있었다. 이밖에도 여직원 휴게실 가스보일러 교체, 부장교사 워크숍 항공권 구입, 교직원 전체 체육복 구입 등 본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곳에 특별예산을 물 쓰듯 전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학생들에 대한 선심성 예산 집행 정황도 나왔다. 일부 혁신학교에서는 학생 티셔츠 구입, 진공청소기 구입 등에 특별예산을 수백만원씩 사용했다. 학생들의 생일축하용 떡케익 구입비용으로 매달 70~90만원을 사용한 곳도 있었다. 반면 서울형 혁신학교의 학력은 일반학교에 비해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내용은 서울시교육청이 새누리당 강은희 의원에게 제출한 2012년 혁신학교 정산서 통합지출부를 통해 밝혀졌다.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