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대한민국과 북한정권 수립 기술
*비상교육
*351, 353쪽 소제목: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북한 정부의 수립
*본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352쪽)
<이후 헌법을 공포하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다(1948.9.9).>(353)
*금성출판사
*370, 371쪽 소제목: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북한 정부의 수립
*본문: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370)
<1948년 8월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북한은 9월 초에 김일성을 중심으로 내각을 구성하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하였다(1948.9.9.).>(371)
*미래엔
*313, 315쪽 소제목: 유일한 합법정부인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다, 북한에도 정부가 수립되다
*본문: <내각을 조직한 이승만은 8월 15일 미군정 종식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313)
<최고 인민 회의는 헌법을 제정하고 김일성을 초대 수상으로 선출하여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수립하였다(1948.9.9). 이로써 남과 북에 이념과 체제가 다른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어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315)
*천재교육
*308쪽 소제목: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311 북한 정부의 수립
*본문: <이승만 대통령은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308)
<곧이어 9월 9일 내각이 구성되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다.>(311)
*두산동아
*소제목: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다(272), 북한, 정부를 수립하다(273)
*본문: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였다.>(273)
<9월 9일에는 내각을 구성하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였다.>(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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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택률이 가장 높은 미래엔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역사 왜곡의 정도도 가장 심하다. 학교에서 가장 좌편향적인 교과서를 가장 많이 채택한 셈이다.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이 책은 308 페이지에서 이렇게 썼다.
<한편, 건준의 활동에 비판적이었던 반민족 친일 경력자들과 보수적인 민족주의 계열의 인사들은 김성수 등을 중심으로 한국 민주당을 창당하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귀환을 기다렸다.>
한국 민주당을 창당한 이들을 '反민족 친일 경력자들과 보수적인 민족주의 계열의 인사들'이라고 보는 것은 악랄한 왜곡이고, 이런 대비로써 건준을 독립투사들이 만든 조직인 것처럼 비치게 만든 것은 더 심한 왜곡이다. 建準, 즉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만든 呂運亨(여운형)은 조선공산당 출신이고 日帝 말기에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日軍에 지원할 것을 선동하는 글을 쓴 사람이며, 광복 직전 조선총독부와 협력한 사람이다. 그가 바로 '反민족 친일 경력자'이다.
2009년에 친일반민족진상규명위원회(규명위)가 이른바 친일 반민족 행위자 명단을 발표하면서 아예 조사대상에서 제외하였던 여운형의 친일행적에 대하여, 한국 언론사의 최고 권위자인 鄭晉錫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가 ‘신동아’ 2010년 1월호에 기고한 글이 있다. ‘여운형의 친일과 조선중앙일보 폐간 속사정-좌우 가리지 말고 똑같은 잣대 들이대야’라는 글에서 鄭 교수는 여운형이 한시(漢詩)까지 써서 親日을 맹세한 자료(사진)를 공개했다.
정 교수가 공개한 ‘대동신문’ 1946년 2월 17, 18일자에 따르면 여운형은 1943년 2월 6일 일본 검사에게 제출한 진술서에서 일본을 위해 對중국 공작을 할 수 있으니 기회를 달라며 漢詩까지 지어 충성을 맹세했다. 한시의 내용은 “포연탄우 속에 문필도 보답하고(砲煙彈雨又經筆·포연탄우우경필) 나라 위해 젊은 목숨 바치기를 청하네(爲國請纓捨一身·위국청영사일신) 천억이 결성하여 공영을 이루는 날(千億結成共榮日·천억결성공영일) 태평양 물에 전쟁의 티끌을 씻으리(太平洋水洗戰塵·태평양수세전진)”이다. ‘천억’은 일본이 중심이 된 동양을 말한다.
여운형을, ‘변명할 이유가 없는 친일분자’로 기록하고 있는 조선공산당 문서도 공개되었다. ‘한국인들 사이에 친일파로 널리 알려진 정치가’로 기록된 광복 직후 미군 사령부 정보보고서도 공개했다. 아울러 여운형이 쓴 것이 아니라고 일부에서 주장해 왔던 ‘반도학도 출진보’에 실린 학병 권유의 글 ‘반도동포에 호소함’의 원본(경성일보 게재)에는 여운형의 친필 사인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鄭 교수는 “친일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발표한 규명위의 기준으로 보면 이번에 밝힌 것만으로도 여운형은 무거운 친일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건준은 조선총독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친일 인사가 대표였지만 實權은 박헌영 등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하였다. 친일파와 공산주의자의 기회주의와 모험주의가 합작한 결과물인 건준과 건준의 後身인 조선인민공화국 세력은 광복후의 건국 과정에서 反자유민주주의-反美-親공산주의-親蘇-親北 노선을 걸었다. 이 세력이 건국의 주도세력이 되었더라면 대한민국은 공산주의 국가로 태어났을 것이다. 공산주의 建國 노선은 이제 와서 자신 있게 평가할 수 있듯이, 反민족적-反민주적 노선에 다름 아니었다.
공산주의 건국 노선을 분쇄한 것이 한국 민주당과 그들이 지지한 李承晩의 자유민주주의-親美 건국 노선이었다. 이 노선이 역사적으로 정당하였다는 것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物證이다. 세계 5위의 공업대국, 세계 7위의 수출대국, 세계 8위의 군사강국, 세계 12위의 경제대국, 세계 12위의 삶의 질(복지) 선진국, 세계 20위의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기적적 성공은 자유민주주의와 韓美동맹 덕분이었다.
이런 성공 노선을 선택하도록 한 主力 세력에 대하여 미래엔 교과서는 감사의 표시는커녕 '反민족 친일 경력자들과 보수적인 민족주의 계열의 인사들'이라고 쓴 것이다. 그것도 건준 세력의 反민족적-反민주적 正體性을 은폐하고서.
한국 민주당은 1945년 9월 21일에 당무를 책임질 총무위원 9명을 선출하였다. 수석총무 송진우(全南), 총무는 백관수(전북), 허정(경남), 서상일(경북), 조병옥(충남), 김도연(경기도), 김동원(평안도), 원세훈(함경도), 백남훈(황해도). 전남 출신인 변호사 김병로는 중앙감찰위원장으로 합류하였다. 청년 반공투사 李哲承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들 중 여운형처럼 '反민족 친일 경력자'로 불릴 만한 사람은 없다. 日帝 치하에서 외국으로 나가지 않고 한국에 살되 민족독립정신을 지켜가면서 교육과 언론과 법률 활동을 통하여 실력을 길러 광복과 건국을 준비하였던 이들이다. 한민당 세력 중에는 일본 군국주의 치하에서 조선의 지도층으로 살았으므로 압제에 항거하지 못하고 협조한 사람도 있지만 한민당 主流는 민족적 양심을 지켜내, '우파 민족주의 세력'으로 불릴 자격이 충분하였다. 여기서 '우파'는 공산주의를 반대한 자유민주 세력이란 뜻이다. 한민당 수뇌부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호남 출신들이 많은데, 日帝의 탄압이 극심하였던 末期에도 민족정신을 놓치 않으려고 노력했던 이들이다.
孫世一 선생은 月刊朝鮮에 연재한 '비교 評傳: 李承晩과 金九'에서 이렇게 평했다.
<이렇게 하여 우파 민족주의 세력의 집결체로 결성된 한민당은 미 군정청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군정청의 실질적인 여당이 되어 조선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좌익세력과 대결했다.>
미래엔 교과서는 한민당에 '보수적인 민족주의 계열'이란 말을 붙였는데, 좌익은 개혁적이고, 우파는 보수적이라는 뜻을 내포한 표현이다. 이 용어도 맞지 않다. 한국의 현대사에서 경제건설과 민주주의를 거의 동시에 이룩한 가장 성공적인 개혁세력은 우파, 보수라고 불린 反共자유민주주의 세력, 즉 이승만과 한민당 노선 계승 세력(박정희도 이 세력으로 분류된다)이었던 것이다. 이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主流이다. 반면 한국의 좌익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역사의 발전을 방해하여 북한에다가 생지옥을 만든 守舊반동 세력이었다. 미래엔 교과서는 이런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고 있다. 이런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이스라엘에서 가르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교육부는 대한민국에 대해선 '건국'이란 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립이란 말은 쓰게 하였다. 주체사상 선전은 허용하고 자유민주주의의 우위성 설명은 하지 않아도 검인정을 통과시켰다. 김일성의 과장된 보천보 사건은 소개하고, 대한민국을 살린 백선엽의 다부동 전투는 묵살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로 배운 학생들 속에서 제2의 이석기, 제2의 통진당이 나올 것이다. 역사는 이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기록하는 사람의 것이라고 한다. 우파 민족주의 세력이 현실의 勝者이지만 교과서를 이런 식으로 쓰도록 방치하면 역사의 敗者가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