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左翼이 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는 시기는 반드시 온다』
[편집자 注] 1988년 여름, 梁東安 교수가 「現代公論」 8월호에 기고한 「이 땅의 右翼은 죽었는가」라는 글이 파문을 일으켰다. 이 글에서 梁교수는 사회 각 분야의 左翼 세력들이 連帶하여 대한민국의 反共체제를 무너뜨리고 있음에도 이 나라의 右翼세력들은 속수무책인 현실을 고발하면서, 그러한 현상이 계속되면 「이 나라에는 처음에는 좌익 세력과 제휴한 정권이 들어서고, 그 다음 단계에는 좌익세력이 주도하는 연합세력의 정권이 들어서고,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공산정권이 들어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이 글은 이른바 민주화 세력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26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면 그 先見力에 놀라게 된다. 한반도에서 이념은 彼我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일 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도록 하는 '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념은 가장 큰 전략인 것이다.
....................................................................
확산일로의 左 공세
지금 이 나라에서는 左翼(좌익)세력이 사회 각 분야에서 치열한 사상적·조직적 공세를 전개하고 있다. 정부나 언론이 「左傾(좌경) 세력」이라고 관대하게 불러 주고 있는 이 나라의 左翼은 때로는 민주주의 세력으로, 때로는 민족주의 세력으로, 또 때로는 순수한 良心勢力으로 자기들을 위장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 침투하여 자기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左翼세력은 대학을 장악하여, 대학 캠퍼스를 혁명의 요새로 만든 지 오래다. 그들은 각 대학의 학생회와 대학신문·대학방송국 등을 장악하여 학생들을 선동, 소요행위에 끌어넣고 있으며, 교수들을 겁주어 그들의 행위에 감히 맞서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러는 통에 교수들 사회에서도 左翼 교수들이 대학 左翼 학생들의 조직적 지원을 받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左翼세력에 이미 장악된 또 한 분야는 노동자 사회이다. 左翼은 이 나라 노동자들을 혁명의 주력으로 만들기 위해 이미 1970년대부터 노동자 사회에 침투했다.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빈곤과 소외로 고통받고 있는 노동자들에 접근하여 그들을 의식화하기 시작했을 때 노동자들은 그들의 의식화작업에 쉽게 끌려 들어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이 나라의 대부분의 하층노동자들은 左翼을 그들의 진정한 동맹자로 알고, 그들의 지휘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 물론 그들 중 절대다수는 자신들의 행동이 左翼의 혁명전략에 따르는 것인지를 모르면서 행동하고 있다.
左翼은 대학가와 노동자사회 이외에도 문화예술계·언론출판계·종교계·교육계 등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에 빠짐없이 침투하여 그들의 세력을 부식·확대하고 있다. 추측컨대, 野黨(야당)은 물론이요 與黨(여당)까지도, 심지어는 관계와 법조계에도 左翼이 침투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제 목소리 못 내는 右翼세력
이처럼 각 분야에 침투한 左翼은 각 분야에서 민주주의자·민족주의자·양심인사로 자처하면서 주변 인사들의 反共의식을 약화시키고 反美 감정을 고조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左翼 문필가들은 글이나 말을 통해 불특정 多衆(다중)에게 反共의식을 약화시키고 反美감정을 북돋우는 활동을 하고 있다. 左翼이 각 활동영역에서 反共의식을 약화시키고 反美감정을 고조시키는 목적은 국민의 反共의식과 韓美(한미) 유대가 남한의 사회주의혁명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이기 때문임을 더 말할 것이 없다.
지난 수년 동안 이 나라가 권위주의적이고 도덕성이 의심스런 세력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만 되면 左翼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민주화가 대폭 진전된, 그리하여 각 분야에서 無政府(무정부)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는 現시점에서 左翼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그 勢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민주화의 진전으로 左翼에 동조하는 非右翼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左翼세력 자체는 민주화 진전으로 얻어진 합법적 활동공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그들의 세력을 확대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左翼의 세력이 이같이 확대되고 左翼의 목소리가 이같이 커지고 있는 데도 이 나라의 右翼은 그에 대해 적절한 대응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명백한 공산주의자를 「양심세력」이라 부르고, 左翼인물을 「容共분자」로 규정하면 「容共조작」이라고 떼쓰면서, 국민에 대해 反共을 포기하고 이 나라에 대해 反共국가이기를 그만두라고 요구하는 左翼의 목청높은 주장에 대해 右翼은 반론 한번 제대로 전개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나라가 진정 右翼 지배국가이며 反共국가인지가 의심스럽다. 左翼은 활보하고 右翼은 고개 숙이고 다니는 오늘의 우리 사회를 두고 누가 右翼 지배사회요 반공사회라고 확언할 수 있겠는가?
이 나라에서 右翼 인구와 左翼 인구를 맞비교하면, 右翼 인구가 압도적인 다수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左翼세력은 이같은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얼핏보면 이 나라 사상계를 左翼 우세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고, 사회 각 분야에서, 특히 지식인이나 準지식인으로 구성된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신통술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左翼의 신통술은 주로 그들의 조직력과 連帶(연대)의식에서부터 비롯된다.
左翼은 혁명이라는 공격적 목표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또 그들이 따르는 이데올로기와 각국에서 성공한 左翼혁명의 경험이 그들의 조직력을 강하게 해 주고 있다. 그들은 각 활동분야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비록 수적으로 열세라 할지라도 강한 조직력으로 인한 해당 활동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된다. 그에 반해 右翼은 비록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각 활동분야에서 左翼의 헤게모니 장악을 저지하지 못한다.
강한 연대의식으로 활동영역 넓히는 左翼
左翼은 또 연대의식이 강하다. 궁극적으로 혁명, 그리고 단기적으로 「뒤엎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자기들의 생각, 또 그러한 뒤엎는 일과 혁명에 성공하면 자기들 세상이 되지만 실패하면 자기들이 탄압받게 될 것이라는 공통된 인식이 左翼들 사이에 강한 연대의식을 형성해 주고 있다. 이같은 左翼들의 연대의식은 다른 직능, 다른 직장, 다른 분야, 다른 지역에 종사하는 左翼끼리의 보조일치와 상호 지원을 가능케 하며, 필요할 경우 연합투쟁을 전개할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서 이같은 연대의식으로 인해, 左翼은 그들의 역량을 필요한 곳에 집중시킬 수 있으며, 그러한 역량 집중을 통해 자기들이 희망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左翼 또는 左翼 동조세력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한다.
신문사를 예로 들면, 편집국 기자와 공무국 노동자는 직능과 이해관계가 상이하다. 그러나 편집국 내의 左翼 기자와 공무국 내의 左翼 노동자는 혁명이라는 또는 「뒤집어 엎기」라는 공동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긴밀히 협력하게 된다. 편집국의 左翼 기자들은 공무국의 左翼 노동자들의 물리적 지원을 얻어 편집국의 투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고, 공무국의 左翼 노동자들은 편집국의 左翼 기자들의 지원을 얻어 공무국의 투쟁에서 주도권을 장악한다(이 말은 이 나라 언론계가 左翼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 것이니, 독자는 오해 없기 바란다). 이같은 左翼들의 연대투쟁은 비유하자면 재벌기업들의 상호출자와 같은 것으로서 左翼들은 이같은 상호출자式 연대투쟁으로 각 직장에서 주도권을 장악한다.
左翼세력의 연대의식에 입각한 협력과 투쟁은 각 분야, 각 지역단위로도 전개된다. 학계를 예로 들면, 가령 어느 대학의 어느 학과에서 교수를 신규 채용한다면, 左翼세력은 해당 학계 내의 모든 左翼 교수들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그리고 左翼 대학생들의 역량까지도 동원하여 左翼 또는 左翼 동조적 인사를 그 자리에 집어넣는다.
물론 이러한 左翼의 인사 작전에는 때로는 右翼인사나 정부의 고위관료들이 그러한 左翼들의 노력의 실상을 알지 못한 채 아는 사람의 부탁을 받아 협조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 만일 右翼인사가 그들에 맞선다면, 이 나라에는 아직도 右翼 인구가 다수이고, 이 사회는 아직 右翼이 지배하는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百戰百敗(백전백패)한다.
또한, 각 대학 및 연구기관의 左翼교수들은 전체 학계의 문제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개별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문제에 대해서도 연대투쟁을 전개한다. 뿐만 아니라 어느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左翼 교수가 불이익을 당하게 되면 학계의 모든 左翼 교수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그를 옹호·지원한다. 심지어 학계에서의 상황이 이러한 지경이니, 다른 분야에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ㄱ공장의 左翼 노동자들이 투쟁을 전개하면 ㄴ공장의 左翼 노동자들이 ㄱ공장의 모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지원공작을 전개하고, A신문의 左翼기자·노동자들이 투쟁을 전개하면 B신문의 左翼 기자·노동자들이 지원공작을 전개해 주는 것은 이제 항다반사가 되었다,
左翼세력은 직장이나 부문 내에서만 연대협력하고 연대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문별 경계를 뛰어넘어 유기적으로 연대협력하고 투쟁한다. 예를 들면, 左翼 연극인이 연극을 공연하면, 언론사 문화부의 左翼 또는 左翼 동조기자들은 그 연극을 선전하는 기사를 써 주고, 左翼 대학생과 左翼 노동자들은 관객을 동원하여 협력하며, 左翼 연극은 연극 속에 左翼 사상을 내포시켜 관객을 의식화한다. 또 左翼 기자가 월간잡지의 기자로 들어가면 左翼 내지 左翼 동조 필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원고청탁을 하고, 左翼 대학생들은 그 잡지를 구독하고, 일간지의 左翼 기자들은 左翼系 필자들의 글을 좋다고 평가한다. 또 신문사에서 노조가 쟁의를 전개하면 左翼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몰려와 진치고 꽹과리치며 그들을 지원하며, 左翼노동자의 투쟁현상에 左翼 교수가 지원나가고 左翼 기자가 취재를 하여 左翼에 유리하게만 보도한다.
左翼은 국내에서만 연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긴밀한 연대를 형성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左翼활동을 외국에 미화하여 소개하고, 투쟁적인 左翼 인사들에 각종 상을 수여하고 성금을 보내주며, 투옥된 左翼 인사를 「양심수」로 미화하여 그들에 대한 국제적 석방운동을 전개하는 일은 모두 左翼세력의 직·간접적인 국제적 연대에 의해 이루어지는 일들인 것이다.
이 나라에서 左翼의 세력확대가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자신들의 역량에 의한 것이지만, 左翼이 아닌 다른 세력에 의해서도 힘입은 바 적지 않다.
左翼을 돕는 俗物 리버럴리스트들
非左翼 세력으로서 左翼의 확산에 기여한 대표적인 세력은 「俗物的 리버럴리스트」들이다. 이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학계·언론계·정계·법조계·종교계 등에서 활동하면서 左翼에 대한 사회와 정부의 관용을 유도해 왔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사회와 사상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대신에 그들은 발달된 감각을 갖고 있어 대중의 유행적 기호에 잘 영합하며 歐美 리버럴리스트들의 생각과 행동을 무조건 흉내내는 것을 통해 자신들의 무지를 쉽게 감추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는 우리 사회에서 진정한 문제가 무엇이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긴급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그들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다르며, 다른 나라의 사상정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모른다. 게다가 이들은 左翼에 대해 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 탓으로 해서, 그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교양서적 수준의 천박한 지식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리고 사상문제에 대해 歐美의 리버럴리스트가 취한 태도를 이 나라에서도 그대로 답습한다. 뿐만 아니라 左翼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적어도 겉으로라도 左翼에 대한 동정적 태도를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이 나라의 경제문제는 무조건 민간주도의 자유경쟁원리 도입만으로, 이 나라의 정치문제는 무조건 다수결적 민주주의 원리의 적용만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 그들은 또 반공이란 冷戰(냉전)시대의 유물이므로 그것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 나라의 경제문제는 민간주도의 자유경쟁원리의 적용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고, 이 나라 정치의 많은 문제는 대중의 기호에 따른 다수결원칙만에 의해 올바로 해결될 수 없다. 또 비록 歐美에서는 냉전이 끝났을지 모르나 한반도에서는 이제부터 냉전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의 주장은 정확히 따져보면 모두가 잘못된 것들이지만, 그들의 대중에 영합하는 기술 때문에 그들의 오류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천박한 지식에 근거한 이 나라 현실에 대한 비판은 左翼을 고무하고 左翼 동조 세력을 양산하게 한다. 또 그들의 반공에 대한 비판의 左翼의 활동에 중요한 지원이 된다.
게다가 그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언론계·정계·법조계 등에서 左翼에 대한 관용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여 左翼의 세력확대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 그들은 左翼을 「순수한 세력」 「이상주의 세력」으로, 그리고 左翼의 反국가 범법행위를 순수의 발로라고 호도해 주고, 민주화만 이루어지면 左翼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엉터리 주장으로 정부와 대중을 誤導(오도)한다. 그들은 左翼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강구하는 사람들을 「강경파」 또는 「매카시스트」로 매도하여 무력화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左翼으로 하여금 보다 자신을 잘 보호할 수 있게 해 주고, 보다 활발하게 「운동」을 전개할 수 있게 해 준다.
모기소리 같은 右翼의 목소리
左翼이 이같이 세력을 확대하고, 목소리를 높이며, 각 분야에서 단계적으로 헤게모니를 장악해 가고 있는데도 그에 대한 右翼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각 직장, 각 분야에서 右翼 인사들이 공격당하고 수모를 겪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적절한 보호조치조차 취해지지 않고 있다.
예를 들면, 어떤 대학교수는 TV에서 이 나라 左翼을 비판하는 反共的 연설을 한 탓으로 左翼 학생들에 의해 자기대학 교정에서 조리돌림 당했다는 소문이 있다. 그러나 조리돌림을 당하는 그 교수를 구해준 右翼인사가 있었다는 이야기나, 당국이 그의 보호를 위해 어떤 대책을 취했다거나, 수모를 가한 左翼들에 대한 보복이 취해졌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 지금 이 나라 대학가에서 左翼 학생들을 비판하는 학생들은 캠퍼스나 하숙방·자취방 등에서 左翼학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고 있다. 또 이 나라의 노동자 사회에서는 右翼적 노동운동가들은 모조리 「御用(어용)」으로 몰려 매도당하고 노동조합장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右翼인사들의 피해와 수모에 대한 분노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나라의 右翼인사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左翼 도전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右翼인사들의 일부는 左翼 도전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알더라도 「설마 어떻게 되겠어」라며 고의적으로 현실도피적 태도를 취해버린다. 극소수의 右翼인사들은 左翼 도전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지만 그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지 못한 채 개탄만 하고 있다.
左翼의 도전은 날로 거세어져 심각한데, 그에 대항하는 右翼의 목소리는 모기소리처럼 가냘프고 힘이 없다. 마치 이 나라 右翼이 모두 죽어버린 것처럼, 左翼의 도전이 이토록 심각한데도 右翼의 진정한 분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이 나라의 右翼은 죽어가고 있거나, 이미 죽어버린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이 나라의 右翼들은 거센 左翼의 도전 앞에 양순하게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左翼을 직접적으로 도와 주는 일까지 하고 있다. 左翼은 右翼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집단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이용하는데, 右翼인사는 그런 것도 모르고 그들을 돕는다. 左翼은 右翼의 어떤 인사를 집단적으로 이용하려 하면 그를 공개적으로 칭찬해 준 다음 그로 하여금 어떤 문제에 대해 자기들 편을 들어 주도록 한다. 또 관계나 정계나 재계나 언론계나 학계의 영향력 있는 지위에 있는 右翼의 사람들은 左翼 인사가 친구나 동창, 친·인척, 그리고 동향인이라는 것을 빌미로 접근하여 도움을 요청하면, 그 左翼인사도 개별적으로 쉽게 도와 준다. 그러한 영향력 있는 右翼 인사의 左翼인사에 대한 도움이 다른 영향력 없는 右翼인사에 치명상을 입히는 경우라도, 그런 결과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도움을 제공한다. 左翼은 철저히 사상에 입각하여 움직이는데, 右翼은 너무도 사상적 차원을 무시하고 행동한다. 이러한 각계의 영향력 있는 右翼인사들의 행태 역시 「右翼의 죽음」을 입증하거나 예고하는 하나의 지표인 것처럼 생각된다.
조직력도, 연대의식도 없는 右翼
이 나라 右翼은 목소리가 낮을 뿐만 아니라 左翼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준비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右翼세력은 조직화되어 있지 못하다. 右翼은 조직력이 없는 것이다. 또 右翼인사들 간에는 左翼인사들 간에 나타나는 연대의식이 없으니, 비록 숫자가 많다하여도 右翼이 左翼에 효과적으로 대항할 수 없다. 모래가 1t이면 무엇하겠는가? 1㎏의 단단한 돌멩이를 당할 수 없는데.
이 나라 右翼이 조직력이 없는 것은 右翼세력의 본질 때문이기도 하다. 右翼은 본시 공격적 입장에 있지 않고 방어적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열성이 없고 조직력이 없다. 이 나라 정치에서 여당만 해온 정치인은 조직력이 없고, 야당을 오래한 정치인은 조직력이 강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이 나라 右翼이 조직력이 없는 보다 큰 이유는 이 나라 사상 상황의 특수성에 있다.
이 나라에서는 6·25 이후 全국민이 반공右翼으로 되었다. 적어도 그런것처럼 간주되었다. 따라서 右翼의 특별한 조직이 필요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右翼의 조직은 정부가 독점했다. 역대 정권은 右翼세력 또는 반공세력을 사상전선이 아닌 정치 전선에 이용하기 위해 독점적으로 조직 관리했다. 이처럼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장기간 무조직 상태에 순치되었고, 官독점적 조직관리 하에서 민간의 자율적 조직활동을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이 나라 右翼은 조직력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情實主義가 右翼세력 결집 저해
이 나라 右翼이 연대의식이 없는 것은 이 나라의 全국민이 右翼이라는 고정관념과 이 나라 右翼인사들의 유별난 情實主義(정실주의)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다 右翼이라면, 특별히 右翼인사끼리 연대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국민이 右翼이라면, 적어도 이 나라에서만은 右翼은 右翼끼리 경쟁해야 하므로, 경쟁상대인 右翼에게 반감을 가질망정 연대의식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이 나라 右翼인사들은 이 나라의 전통적인 정실주의로 사회화되어 있어서 사상적 경계선에 따른 右翼인사 간의 연대 같은 것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 사상전선에서의 동지보다는 私的인 연줄을 중시하는 것이 이 나라 右翼의 전통적인 정실주의 관행이다. 이러한 관행은 左翼의 도전이 심각해진 지금에 와서도 변하지 않고 있다. 左翼 도전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주로 이러한 체질화된 정실주의 때문에 右翼세력 사이에는 공고한 연대의식이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右翼인사가 자기와 연줄이 닿지 않는 다른 右翼인사보다는, 연줄이 닿는 左翼인사를 도와줌으로써 그 左翼인사와 싸우고 있는 다른 右翼인사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이 자주 일어나는 상황에서 右翼세력 간의 연대의식이란 생성될 수가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으로 해서, 이제 左翼의 도전은 심각해지고 위협적으로 되었지만 右翼은 그에 대응할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右翼은 분열된 채 右翼 내의 어느 집단이 左翼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려 하면 다른 분파에서는 그것을 비웃거나 비판하여 그런 움직임을 내부로부터 無力化(무력화)한다. 그래서 독하게 덤벼들고 있는 소수의 左翼 앞에 압도적인 다수의 거대한 右翼은 조직력의 연대의식도 없이 내부분열작용만 하면서 무력하게 널부러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일어서면 제까짓 左翼은 금방 박살낼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인 헛소리만 하면서.
이 나라 右翼세력이 숫자는 많으면서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많은 右翼인사들이 左翼의 공격을 받고 수모를 당하고 있으며, 右翼의 나라에서 右翼이 「핍박」받는 상황이 나타나게 된 데는 위에 말한 것 이외에 다음과 같은 까닭들이 있다.
첫째로 右翼인사들은 思想戰을 남이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左翼과의 대결에서 약하다. 이 나라 右翼인사들의 대부분은 사상전은 사상전 전담인사들, 또는 직업적인 「꾼」들이나 하는 것이지 자기들은 그런 「흙묻히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右翼인사들은 남이 싸워준 사상전에서 右翼 승리의 혜택만을 향유하려 한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사회의 각 분야에서 지위가 높은 右翼인사들일수록 그러하다. 그들은 左翼과의 사상전은 자기들이 직접 할 일이 아닌 것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左翼들로부터도 「칭송」을 받고 싶어서 점잖고 우아한 미소로서 左翼을 대하고자 한다. 右翼인사들의 경향이 이러하니 左翼의 도전 앞에 右翼이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둘째로 이 나라의 右翼인사들의 상당수는 동포와 체제에 대한 애착심이 희박하며, 그러기 때문에 右翼은 左翼의 도전 앞에 무력하다. 우리나라의 右翼인사들, 특히 소위 「지도층」으로 불리우는 右翼인사들은 「피난민 의식」을 갖고 있다. 난리가 나면 그 난리에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곳으로 피난가려는 의식, 즉 「피난민 의식」은 이 나라의 역사 때문에 형성된 것이기도 하지만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동포와 체제에 대한 애착심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포를 사랑하고 체제를 귀중히 여긴다면, 난리가 일어나면 피난갈 궁리를 그토록 치밀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나라 지도층 右翼인사들은 그러한 애착심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외국에 피난가서 살 재산을 미리 빼돌려 놓고, 자녀들을 미리 외국에 보내서 살리고 있는 것이다. 또 그들은 동포와 체제에 대한 애정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동포가 경제성장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해도 그것을 방치하고, 非윤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세력에 의해 자유민주체제가 박살나도 그러한 부패·독재세력에 빌붙어 꿀 빨아먹기만 했던 것이다.
이처럼 많은 右翼인사들, 특히 지도층 右翼인사들이 동포와 체제에 대한 애착심을 갖지 않고 피난민 의식만을 갖고 있으니, 左翼의 도전 앞에 右翼이 강할 수 없다. 이 나라 땅, 그리고 자유민주체제 하에서가 아니면 살지 않겠다는 확고한 각오가 없는 한, 右翼은 左翼의 공격 앞에 제대로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셋째로 이 나라 右翼인사들의 많은 수가 左翼에 대해 도적적 우월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右翼은 左翼의 도전 앞에 강하지 못하다. 이 나라의 政治史는 복잡했고, 이 나라의 역대 정권은 도덕성을 결여해 왔다. 또한 이 나라 경제는 사회정의나 경제윤리를 너무도 외면해 왔다. 복잡한 정치사 속에서, 그리고 도덕성이 결여된 정치권력 밑에서 살아오면서 어느 정도 이상의 지위와 富를 달성하려면 누구라도 도덕적으로 완전히 결백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지위와 富를 누리고 있는 대다수의 右翼인사들은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이러한 右翼인사들은 순수성 콤플렉스에 걸려 있어, 순수한 자이면 左翼이건 反국가 행위자이건 간에 그들 앞에서 오금저려 한다. 右翼임을 자칭하는 이 나라 지도층인사들이 이처럼 도덕적 우월성을 상실하고 순수성 콤플렉스에 걸려 있으니 左翼이 순수성을 표면에 내걸고 도전해 오는 앞에서 右翼이 힘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 맥 못추는 右翼
넷째로 이 나라의 右翼세력은 이론무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젊은 세대 속에서 右翼세력을 양성하는 노력을 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左翼들 앞에서 무력하다.
이 나라의 左翼세력은 주로 40代 이하의 젊은 세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左翼이론에 입각하여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우리 사회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수립해 놓고 있다. 또한 그들은 1970년대 이후부터 이 나라의 대학가와 노동자 사회를 중심으로 거의 狂氣(광기)에 가까운 열기를 가지고 左翼세력을 양성·훈련하고 조직해 왔다.
그에 반해 右翼 기성세대는 무엇을 해왔던가? 기성세대의 右翼 세력은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책에 관한 이론적 학습을 해오지 않았다. 기성세대의 右翼들은 대부분이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해 보려는 「문제의식」 자체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또한 자기들이 左翼과 사상전을 전개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左翼과 대결하기 위한 이론학습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론무장을 철저히 한 젊은 세대의 左翼의 도전 앞에서 무력하게 된 것이다.
또한 기성세대의 右翼은 젊은 세대에서 右翼세력을 양성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지 않았다. 노력을 전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 관한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기성세대의 右翼은 젊은 세대의 사상교육을 학교에만 맡겨버렸고, 학교에서의 반공교육을 非효과적이고 오류 투성이고 생활화되지 않은 것들이어서 학생들이 대학쯤에 와서는 「反反共」에 저절로 물들게끔 하기에 안성맞춤인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젊은 세대 사이에는 「反反共」이 당연시되는 左翼的 사고경향이 지배적이고 左翼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러니 右翼은 젊은 세대에 있어서는 극히 무력할 수밖에 없으며, 젊은 세대로 구성된 순수하고 열정적인 행동대를 가질 수 없게 된 것이다.
다섯째로 지난날 반공·右翼세력이 독재정권에 이용당해온 점 때문에 이 나라 右翼은 무력해졌다. 지난날 이 나라의 독재정권은 官주도의 반공조직을 독재정권의 정당화에 이용해 왔다. 그 결과, 반공조직은 독재정권의 하수인 집단처럼 되어 버렸다. 결국 대중에 의해 右翼은(반공조직에 참여했건 안했건 간에) 도매금으로 독재정권의 하수인 세력으로 간주되고 있고, 따라서 일반대중들에 대한 右翼의 호소력은 극히 미약하게 되었다. 민주화가 되면 마치 반공도 포기되어야 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풍토는 바로 그러한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결과 左翼이 민주화를 외치면서 「反反共」과 反右翼을 주장하면 右翼은 그만 기죽고 마는 것이다.
여섯째로 이 나라의 右翼은 너무도 심각하게 분열되었기 때문에 左翼 공세 앞에 허약하다. 이 나라 右翼은 與·野로 그리고 지역 감정으로 左翼과 너무 심각하게 갈라져 있어 左翼 도전 앞에 단합된 대응을 할 수 없다. 與黨은 권력을 독점하면서 같은 右翼의 野를 포용치 못한다. 與는 차라리 左翼에 대해서 관용을 베풀망정 右翼의 野에 대해서 권력의 몫을 나눌 수 없다는 입장이다. 與黨은 左翼이 野黨을 비판 할 때 左翼에 박수를 보낼 작정이 되어 있는 것 같다.
또 野黨은 與黨으로부터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左翼과 협력하고, 左翼의 협력을 얻기 위해 左翼을 보호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左翼 도전 앞에 右翼이 단합된 효과적 대응을 할 수 없다. 오히려 右翼의 어느 한쪽이 左翼과 대결하면 右翼의 다른 한쪽은 左翼과 제휴하여 같은 右翼을 견제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젊다고 순수한 것 아니다
민주화의 혼란스런 진행 속에 左翼세력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고 左翼의 도전은 날로 거세어지고 있는데, 그에 대응해야 할 右翼은 널브러져 무력하게 흐느적거리는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상황에 계속될 경우 이 나라에는 처음에는 左翼세력과 제휴한 세력의 정권이 들어서고, 그 다음 단계에는 左翼세력이 주도하는 연합세력의 정권이 들어서고, 궁극적으로는 완전한 공산정권이 들어설 것이다. 젊은세대가 주축을 이루는 左翼의 세력은 확대되고, 그들의 도전은 강해지는데, 右翼은 무력하고 젊은 세대에서는 右翼이 더욱 무력하다면 시간이 가서 기성세대가 은퇴하고 오늘의 젊은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도세대가 된다면 그러한 각 단계의 左翼 정권 등장을 무엇으로 막겠는가?
이 나라의 기성세대 右翼인사들은 左翼세력의 정체와 세력을 올바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다. 기성세대의 右翼인사들은 左翼세력의 위장전술과 「속물 리버럴리스트」들의 誤導로 인해 左翼세력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특히 순수한 젊은이들이나 과격한 이상주의자들쯤으로 오해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젊으면 순수하고, 순수한 사람이면 잘못도 너그럽게 봐줘야 한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이 있다. 바로 이러한 고정관념 때문에 이 나라의 右翼은 左翼의 정체를 잘못 알고 그들에 잘못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혁명의 주역인 레닌·트로츠키·스탈린은 10代 末부터 공산주의혁명운동을 전개해온 사람들이다. 중국대륙을 공산화한 毛澤東·周恩來·劉少奇·鄧小平 등 모두 10代末이나 20代初부터 공산주의혁명운동을 전개해온 사람들이다. 또 캄보디아를 공산화한 크메르 루주는 20~30代를 지도그룹으로 하고 불과 12~13세의 나이어린 소년소녀들로 그들에게 추종하는 「어린애들의 집단」을 만들었다. 젊거나 나이 어리거나 간에 공산주의자는 어김없는 공산주의자요, 젊은 左翼분자는 나이든 左翼분자와 다름없는 左翼분자인 것이다.
젊으니까 순수하고, 순수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는 이유로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이 나라 左翼을 가볍게 알고 관대하게 대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머지 않아 크메르 루주가 캄보디아를 공산화했듯이 이 나라에서도 젊은세대를 주축으로 左翼은 기성세대 중심의 右翼을 제압하고 左翼정권을 수립하게 될 것이다.
캄보디아에서 기성세대 중심의 右翼세력이 허무하게 무너진 것은 크메르 루주가 나이든 사람들이었고 순수하지 않은 연령층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기성세대의 右翼이 그들의 정체를 잘못 알고 자신들의 무력한 자세를 수습하지 못하고 잘못 대응했기 때문이었다. 캄보디아의 기성세대 右翼들은 크메르 루주의 10代 소년병들의 총칼에 쓰러지면서야, 공산주의자는 젊다는 이유로, 순수하다는 이유로 관대하게만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젊은 左翼」 「순수한 左翼」이 오히려 더 무서운 존재들이라는 것을 이 나라의 右翼세력은 올바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
左翼정권 들어설 우려 있다
기성세대 右翼이 이 나라 左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또 하나의 것은 그들의 세력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이 나라에서 左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게다가 그 숫자는 左翼의 개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쉽다. 그러나 개괄적으로 말하여 그 혁명의 명칭을 뭐라고 부르건 간에 左翼 혁명운동을 주도하고 그에 참여하고 그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의 숫자는 매우 많을 것이다. 우리는 仁川사태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숫자나 1987년에 있었던 소위 좌경세력 주도의 각종 군중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하고, 그들의 10분의 1만을 左翼으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이 나라 左翼세력의 규모는 일반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클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엄청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나라의 左翼들은 공식적으로는 스스로를 左翼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또 이 나라의 기성세대 右翼들은 左翼세력의 규모가 작을 것을 희망하는 나머지 左翼세력의 규모를 축소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左翼세력의 규모는 정부의 공권력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젊은 세대를 주축으로 한 이 나라 左翼의 혁명신념이 매우 확고하고 그 규모가 공권력에 의해 통제가능한 수준을 초월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와 같은 상황이 계속될 경우 이 나라에 左翼정권이 들어설 우려가 있다는 점은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이미 이 나라는 左翼에 의해 크게 영향받고 있다. 정부는 야당들의 영향을 받고 있고, 야당들은 在野의 영향을 받고 있고, 在野는 左翼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오늘의 상황에 대해 右翼들은 올바른 깨달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左翼이 나라를 지배하게 되는 시기는 반드시 온다. 그것이 10년 후가 될 것인지, 한 세대 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그런 사태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한 비극을 막으려면 이 나라의 右翼이 현재의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나아가서 右翼이 左翼을 제압하고 제거해야 한다.
그런데, 기성세대 右翼들은 이러한 작업을 정부나 軍部(군부)에 기대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左翼이 더 설치면 정부가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고, 그래도 안 되면 軍部가 나서서 左翼을 쓸어버리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右翼이 일어설 때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정부나 軍部에 그같은 기대를 하는 것을 용납해 주고 있지 못하다. 現정부(노태우 정부)는 취약한 지지기반 때문에 자신의 정권유지에 급급하고 있어 그같은 左翼 숙청작업을 전개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정권을 유지하려면 변덕스런 대중의 기분을 맞춰야 하는 바, 대중은 대체로 정부가 강경조치를 취하는 것을 무조건 싫어한다. 또한 야당들은 혹시나 강경세력이 등장할까봐 現정부를 적당히 도와주면서, 강경조치를 취하지 못하도록 설득할 것이다. 그런 탓으로 인해, 현재 정부는 左翼을 「左翼」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약화된 의미인 「좌경세력」으로 부르거나 심지어는 「진보세력」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에 대해 첫째도 관용, 둘째도 관용, 셋째도 관용의 관용일변도 자세를 취하고 있다.
左翼을 그 본래 이름대로 「左翼」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는 이러한 現정부가 左翼세력을 척결해 주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명백한 무리이다. 현정부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민주주의를 하면서 정부의 힘만으로 左翼을 척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軍部가 左翼을 척결해 주리라는 기대도 무리이다. 이 나라 軍部는 지난날의 잘못된 정치개입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불신당하고 있다. 軍의 정치개입 역사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이토록 좋지 않은 상황에서 軍部가 나선다고 하면, 그것이 아무리 左翼 척결만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쉽게 얻을 것인지 의문스럽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급속도로 전개되고 있는 左翼 지휘하의 노동자 조직화는 軍部의 그러한 노력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하고 있다. 軍部의 정치개입은 反軍部 노동자가 조직화되지 않았을 경우에만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것이다. 軍部가 정치에 개입하게 될 경우 左翼이 겉으로 「민주 수호」를 외치면서 학생·노동자·야당의 연합전선을 조직하고 私製(사제)무기로 무장하여 대항한다면 사태가 어떻게 결말 날 것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軍部가 左翼을 척결해 주겠지 라는 안이한 기대는 무리인 것이다.
그러면 누가 左翼을 제압하고 제거하는 작업을 전개할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은 민간 右翼세력뿐이다. 민간 右翼세력이 조직화하고 연대를 강화하여 左翼의 도전에 대응하는 작업을 주도해야 한다. 그러면서 필요하다면 정부와 非민간분야의 右翼의 협조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 나라 민간 右翼세력은 左翼의 도전에 대항하여 일어서야 한다. 이러한 右翼의 궐기는 빠를수록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조금만 늦어도 右翼의 희생이 커질 단계에 이르렀다. 右翼세력은 자신의 보호를 위해, 그리고 오늘의 젊은 세대와 후손들이 공산체제하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금 일어서야 한다.
사회 각 분야의 右翼은 총궐기하여, 이론가는 이론으로, 조직가는 조직으로, 재력가는 재력으로, 완력가는 완력으로 左翼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 나라의 右翼은 분명 左翼보다 월등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힘을 제때에 사용하지 못하면 마치 캄보디아에서 그러했듯이 右翼은 가지고 있는 힘을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左翼에 나라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동원할 수 있는 힘이 훨씬 더 강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제때에 동원·행사하지 못하여 불과 10代의 나이어린 붉은 소년들에 어이없게 나라를 빼앗기고 그들에게 온갖 수모와 짓밟힘을 당하다가 끝내는 눈물도 제대로 흘려보지 못한 채 백골이 되고만 캄보디아 右翼세력의 허망한 꼴을 이 나라 이 나라 右翼은 잊지 말아야 한다.
新右翼이 필요하다
그러면, 이러한 右翼의 궐기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 이미 앞에서도 시사했었지만 이러한 右翼의 궐기는 정부도 軍部도 주도할 수가 없게 되었다. 민간 右翼세력만이 주도가 가능하다. 그리고 이번의 右翼 궐기가 左翼의 제압·제거라는 목표달성에 효과적이려면 민간 右翼세력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춘 세력이 주도를 해야 한다.
첫째로 일반 국민대중에 대해 강한 사상적 및 윤리적 설득력을 갖춘 세력이어야 한다. 이제부터의 左翼과 싸움은 사상의 싸움이며 대중을 누가 더 강하게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느냐의 싸움이다. 따라서 右翼의 궐기를 주도할 세력은 右翼 중에서도 이론무장이 잘 되어 있어서 대중에 反左 궐기의 필요성을 쉽게 인식시킬 수 있고, 대중 앞에서 전개되는 左翼과의 이론투쟁에서 左翼을 압도할 수 있는 세력이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公·私생활에 있어서 윤리적인 흠결이 없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지난날 독재에 기생했고 부패에 동참했으며, 오늘날에도 대중의 빈곤과 소외의 아픔을 외면하고 저만 잘 살려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이론무장이 잘 되어 있더라도 대중에 대한 호소력을 가질 수 없다. 그런 사람들이 右翼 궐기의 전면에 나서면, 「저 사람들이 또」라는 회의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둘째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교정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개혁의지가 확고한 세력이어야 한다. 左翼의 도전에 대응하는 右翼의 궐기는 우리 사회의 기존구조와 각종 기득권·기득이익을 보호하려는데 목적이 있지 않다. 右翼의 궐기는 일차적으로 左翼의 제압·제거에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가 향후 내부로부터의 左翼의 위협을 받지 않을 건강한 사회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현재의 우리 사회는 어떤 면에서 보면 혁명적 左翼분자들을 생산해 내기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사회 각 분야에 모순과 비리가 많아 그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분노가 젊은이들을 左翼혁명가의 길로 안내하고 있으며, 그런 것들에 분노하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左翼들의 「뒤집어 엎자」는 주장에 박수를 보내게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左翼과의 싸움에 나선다면 右翼의 승리가 보장될 수 없다. 따라서 左翼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한 右翼의 궐기를 주도할 세력은 개혁의지가 확고하며, 개혁의 프로그램을 선명하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셋째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어야 한다. 左翼의 조건을 물리치기 위한 右翼 궐기의 목적은 이 나라의 요지부동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실천하는 데 있다. 때문에 右翼 궐기를 주도할 세력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회의를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방해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비록 그 방해 세력이 같은 右翼진영의 세력이라 할지라도 그에 단호히 맞서 싸울 태세를 갖춘 세력이어야 한다.
또한 지난날 이 나라의 右翼 운동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파괴하는 독재정권을 도와주었다는 좋지 않은 기억이 이 나라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右翼 운동과 관련된 이러한 국민의 좋지 않은 기억을 씻어주지 않는다면 右翼의 궐기는 대중의 광범한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때문에 右翼의 궐기를 주도할 세력은 국민의 뇌리에 있는 그러한 좋지 않은 기억을 씻어줄 수 있도록 강력과 행동방식에 있어서 자유민주주의 실천의지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右翼 내에서 이러한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세력을 우리는 「新右翼」 또는 「改革的 右翼」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지난날 이 나라의 右翼주도자들 중에는 이론무장이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고 경력과 생활면에서 윤리적 흠결이 많으며 개혁의지가 희박한 사람들이 많았다. 또 그들 중에는 자유민주주의에 반대되는 독재에 협력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는 「舊右翼」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들 舊右翼이 右翼 궐기를 주도하면 그 결과가 성공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左翼의 도전을 물리치기 위한 右翼의 궐기에는 新右翼과 舊右翼의 구별이 있을 수 없고 여권 右翼과 야권 右翼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이 나라의 모든 右翼세력이 단합하여 궐기해야 한다. 다만 그러한 右翼의 궐기가 左翼을 제압·제거하는 목적을 보다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新右翼·개혁적 右翼이 右翼 궐기의 전면에 나서서 그것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後記:오늘날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左翼의 右翼에 대한 공격이 강화되고 있는 실정에 비추어 볼 때, 이같은 글은 필자로 하여금 左翼으로부터의 여러 가지 핍박을 받게 할 것이다. 우선 左翼과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필자를 매카시스트라고 매도할 것이다. 필자는 결코 매카시스트가 아니며 매카시스트를 혐오하는 사람이지만, 그들은 필자를 그렇게 매도함으로써 지식인 사회에서 필자가 고립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극렬한 左翼들은 필자에게 심리적 및 신체적 피해를 주기 위한 각종 조치들을 취할 것이다. 이러한 左翼으로부터의 핍박에서 필자를 구해 줄 제도나 세력은 이 나라에는 아직 없다. 정부는 지금 그런 일을 해 줄 의욕도 능력도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右翼세력도 아직은 조직화되지 못하여 그러한 핍박을 막아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러나 필자는 모든 양심적인 애국적 지식인이 左翼으로부터의 핍박이 두려워 左翼의 도전을 경고하지 못하고 右翼의 궐기를 촉구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의 장래가 너무 암담하다는 생각 때문에 이 글을 썼다. 右翼의 나라에서 右翼의 궐기를 주장한 지식인이 핍박을 받아야 한다는 아이로니가 역겹고 전율스러울 뿐이다)●
右翼의 沒落
[편집자 注] 梁東安 교수는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를 발표한 지 12년이 지난 2000년 12월 「한국발전리뷰」에 「우익의 몰락」을 발표했다. 梁교수는 이 글에서 東歐공산권의 몰락으로 한때 주춤했던 국내 좌익세력이 좌익에 대한 경계심 약화, 좌익의 학생운동 및 언론계 장악, 우익의 나태와 비겁을 틈타 계속 확산되어 왔다고 진단하면서, 우익의 각성을 다시 한번 촉구하고 있다
좌익을 「진보」라 부르는 것은 잘못
[필자 注] 현대에 와서 사상운동 세력을 분류함에 있어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용어는 「右翼 對 左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광복 직후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사상운동세력을 「右翼 對 左翼」으로 분류해 왔다.
그러나 요즈음에 와서는 사상운동 세력을 「보수세력 對 진보세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분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右翼」으로 호칭되어야 할 세력을 「보수세력」으로 호칭하고 「좌익」으로 호칭되어야 할 세력을 「진보세력」으로 호칭하는 이러한 용어사용은 右翼에게 불리하고 좌익에게 크게 유리한 것이다.
「보수」는 통상 현상유지란 다소 부정적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는 데 반해 「진보」는 좋은 상태로의 변화라는 극히 좋은 의미를 가진다.
右翼을 보수세력으로 부르고 左翼을 진보세력으로 부르는 것은 좌익은 진보를 지향하는 좋은 세력이고 右翼은 진보나 개혁에 반대하는 좋지 않은 세력이라는 함의를 수반한다.
그래서 필자는 西歐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장기간 사용되었던 「右翼 對 左翼」이라는 가치중립적인 세력분류 용어의 사용을 고집해 왔다.
이 글에서도 그러한 이유에서 「보수세력 對 진보세력」이라는 용어 대신에 「右翼세력 對 좌익세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 글의 독자들도 좌익에 유리하도록 고안된 「보수 對 진보」라는 용어보다 가치중립적인 右翼 對 左翼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주기 바란다.
위축된 右翼세력
필자는 1988년 「右翼은 죽었는가?」라는 글을 발표했었다. 당시 이 나라에서는 右翼세력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확고히 장악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국민이 반공을 지지하는 右翼지배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좌익이 학생운동권과 노동운동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문화적 헤게모니까지 장악하려 하는 등 右翼세력 위축의 前兆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필자는 좌익의 공세 앞에 힘 빠진 右翼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 「右翼은 죽었는가?」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글을 발표했었다.
그 글에서 필자는 右翼의 각성과 분발이 없을 경우 좌익세력이 계속 확대되어 머지 않은 장래에 이 나라에서 좌익세력과 제휴한 정권이 들어서고, 다음에는 좌익세력이 주도하는 연합정권이 등장하고, 그 다음에는 공산정권이 등장하게 될 것임을 경고했었다.
현재 이 나라의 사상적 상황을 보면, 10여년 전에 필자가 우려했던 것이 꼭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엇비슷하게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1988년 이후 이 나라의 좌익세력은 그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할 국내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크게 확대되어 왔다.
1989년부터 1991년에 이르는 기간 동구에서 사회주의 체제들이 전체적으로 붕괴되면서 우리 사회의 좌익세력들의 사기도 한 때 크게 저하되었다.
그러한 사기 저하로 인해 상당수의 좌익인사들이 『이제 사회주의 혁명은 안 된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좌익혁명 전선에서 발을 뺐다. 동시에 좌익혁명 운동의 苗板(묘판)이라 할 수 있는 좌경학생운동도 「신병 충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좌익세력의 확대추세는 한풀 꺾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1992년∼1993년부터 학생운동을 제외한 여타 분야에서의 좌익운동은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했으며, 일부 좌익분자들은 「남한을 세계 사회주의 부활의 메카로 만들자」는 주장까지 하면서 좌익운동의 再활성화를 추구했다.
때마침 사상문제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金泳三(김영삼)씨가 대통령으로 되고, 金泳三 정부에서 좌익분자들이 각종 연줄을 타고 정부와 여당의 고위직에 기용되었다. 이러한 金泳三 정부의 움직임은 東歐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 여파로 인해 사회주의 몰락에 대한 우리 국민의 지나친 낙관론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좌익세력에 대한 경계태세를 크게 약화시켰다.
좌익세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경계태세 약화는 좌익분자 및 좌경분자들이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로 진출하는 좋은 여건을 조성했다.
그 결과 좌익분자 및 좌경분자들은 노동·언론·학술·예술분야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고, 정계와 관계에도 많이 진출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는 金大中씨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부터 더욱 강화되었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는 右翼세력은 사회로부터 시대 착오적인 존재로 경멸 당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좌익사상에 동조하는 인구가 더 많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좌익 및 좌경세력이 우리 사회의 몇 개 분야, 특히 언론과 문화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 나라의 언론과 문화 분야에서는 반공을 舊시대의 악습인 것처럼 취급하고 있으며, 미국과 북한 간의 회담은 항상 「北-美 회담」으로 호칭되며, 좌익 및 좌경세력을 「진보세력」이니 「개혁세력」으로 美化하는 용어들이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사항들은 이 나라의 언론과 문화 분야가 좌익 및 좌경세력의 헤게모니 下에 있음을 단적으로 입증해 주는 것이다.
좌익세력 및 좌경세력이 이처럼 언론과 문화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右翼세력의 목소리는 마치 右翼세력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右翼세력을 한층 더 위축시키고 있다.
이러한 右翼세력의 위축은 「右翼의 몰락」이라고 불러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좌익에 대한 학생운동의 전면 양도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와 같은 右翼의 몰락을 초래한 원인은 무엇인가?
그 첫째 원인으로는 1980년대에 이 나라 대학가에서의 학생운동을 통째로 좌익세력에 내맡긴 것을 들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학생운동은 미래의 사상 정치운동의 묘판이다. 왜냐하면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자들은 자기들의 세대에서 가장 사상적으로 각성된 자들인 동시에 자기 세대를 이끄는 자들이며, 학생들이 성장하여 사회에 진출하면 학생운동의 지도자들이 사회 여러 분야 특히 정치·문화운동의 지도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거칠게 단순화하여 말하자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학생운동을 장악한 세력이 국가의 미래를 장악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을 예로 들면 오늘날 미국의 정치와 문화 분야는 1960년대 이후 미국의 대학가에서 경쟁했던 「뉴레프트 운동」 지도자들과 「보수주의 학생운동」 지도자들의 경쟁무대라고 말할 수 있다.
젊은 행동대가 없는 사상, 정치운동은 병졸과 장교 훈련생이 없는 군대와 같다. 그런 사상 정치 운동은 조만간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 나라의 右翼세력은 학생운동이 침체상태에 있었던 1970년대는 물론이고 학생운동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1980년대에도 학생운동의 중요성을 알지 못한 채, 좌익세력이 대학가에서의 학생운동을 전면 장악하는 것을 방치했다.
右翼세력은 좌익학생 운동을 비판하기만 했고, 자기의 자녀들이 학생운동에 휩쓸리는 것을 막으려고만 했을 뿐 대학가에서 右翼학생 운동을 조직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의 정치상황이 非민주적이었고, 지배세력이 도덕성을 갖추지 못하여 대학생 사회에서 右翼사상이 호소력을 갖기가 어렵기는 했지만, 그래도 右翼진영이 자유민주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는 학생운동을 조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더라면 이 나라의 학생운동을 전면적으로 좌익에게 양도하는 결과는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좌익세력에 전면적으로 양도함에 따라 그 이전에 좌익운동을 전개했던 자들이 1980년대부터 젊은 행동대를 확보하여 다시 힘을 얻게 되었고, 1980년대의 좌익학생 운동 지도자들은 성장하여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정치·문화 운동의 「젊은 피」가 되었다.
오늘날 이 나라 정치 문화 운동 또는 언론계에서 실무 일꾼들의 대부분은 1980년대 학생 운동의 간부들이거나 그 동조자들이다.
이처럼 정치·문화 운동의 실무 일꾼들의 대부분이 학생운동의 간부들이거나 그 동조자들이므로 右翼세력의 정치 문화 운동은 신념에 찬 젊은 일꾼들을 확보할 수 없다.
또한 모든 右翼 성향의 정치인이나 문화인 및 언론인들은 신념에 찬 젊은 추종자들을 거느릴 수 없다. 따라서 右翼 성향의 정치·문화운동은 위축되고 유명무실해졌으며, 정치·문화 분야의 右翼 성향 기성인들은 좌익 성향의 젊은 부하들로부터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받아 사상적 입장을 바꾸거나 아니면 도태되고 있다.
反右翼 세력의 언론매체 장악
우리 사회에서 右翼의 몰락을 초래한 두 번째 원인으로는 언론매체의 편집 활동의 헤게모니를 反右翼적인 세력이 장악한 것을 들 수 있다.
사상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선전기관 운영의 헤게모니 장악이다. 문화·선전기관 운영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면 매일 같이 불특정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일정한 사상적 방향으로 세뇌공작을 전개할 수 있다.
문화·선전기관 운영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들에 의해 세뇌 당한 대중들은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과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非정상적인 사람들」이나 「부도덕한 사람들」로 간주하게 된다.
그 결과 문화·선전기관 운영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들의 사상이나 그 사상에서 파생된 관념과 용어는 그 사회의 지배적 내지 보편적 사상과 관념 및 용어가 되고 그에 반대되는 사상과 그에서 파생된 관념과 용어는 非정상적인 것이 된다.
아울러 그런 헤게모니를 장악한 사상진영의 세력은 날로 확대되고 그와 반대되는 사상진영의 세력은 날로 위축된다.
오늘날 한국의 대부분의 문화·선전기관 운영의 헤게모니는 反右翼 세력(그 중에는 좌익분자나 좌경분자도 있다)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문화·선전기관, 특히 언론기관의 운영 헤게모니를 反右翼세력이 쉽게 장악하게 된 데는 한국 언론기관 운영의 특수성이 상당한 기여를 했다. 한국의 언론기관들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편집권의 독립이 매우 확고하게 이루어졌다.
또한 이 나라의 언론기관들에서는 젊은 기자들만 일선에서 취재 보도활동을 하며, 편집간부들은 그들 젊은 기자들에 의해 선출되기 때문에 나이든 편집간부들은 젊은 기자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이러한 언론기관의 내부사정은 일선에서 취재 보도 활동을 하는 젊은 기자들이 편집방침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만들고 있는데, 오늘날 일선에서 취재 보도 활동을 도맡고 있는 젊은 기자들은 모두가 좌익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대학생활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압도적 다수는 좌익 학생운동에 직접 간여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자기들이 대학생 시절에 좌익 학생운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사회의식, 즉 좌경화된 사회의식, 최소한 反右翼的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한국 언론기관들의 편집정책은 反右翼的 내지 좌경화된 사회의식을 가진 젊은 기자들에 의해 좌우된다.
이와 같은 언론기관 편집활동의 反右翼 경향은 언론사 소유주들의 상업주의적 태도와 언론노조연맹에 의해 보강된다.
이 나라 언론사들의 대부분의 소유주들은 사상적 각성이 부족하고, 오로지 영업이익 내지 언론사 소유에서 파생되는 사회적 이익을 챙기는 데만 급급하여 편집방향의 反右翼 경향 내지 좌경화에 대해 큰 신경을 쓰지 않는다.
따라서 자기들이 소유하고 있는 언론기관의 편집방향이 좌경화되어도 그것을 바로 잡을 생각을 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언론기관들의 편집방향의 反右翼 경향 내지 좌경화에 대해 교정압력을 직접적으로 가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 나라의 언론노조연맹은 사상적 성향이 反右翼的이다. 언노련이 그와 같은 성향을 가지면서 각 언론기관의 기자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행사한다. 그러한 영향력 행사는 각 언론기관의 편집방향의 反右翼 경향 내지 좌경화를 해당 언론기관 외부로부터 보강해 주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해서 한국의 다수 언론매체들의 편집활동에 관한 주도권이 反右翼세력의 헤게모니 下에 놓이게 되었고, 그에 따라 이나라 대중은 매일 같이 反右翼세력에 의해 세뇌 당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右翼은 언론매체로부터 소외되고 나아가서 대중으로부터 소외되면서 세력이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 右翼의 몰락을 초래한 세 번째의 원인으로는 右翼진영 인사들의 나태와 비겁성을 들 수 있다.
우리 사회의 右翼진영 인사들은 右翼의 몰락이나 이 나라의 불안한 장래에 대해 말로만 개탄하고 걱정할 뿐 右翼세력의 전열을 再정비하거나 국가 장래를 불안케 하는 요소들을 축소시키기 위한 행동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말로만 걱정하고 그러한 걱정을 해소하기 위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은 右翼진영 인사들이 公的인 문제에 대해 나태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익에 무관심한 右翼진영도 문제
이 나라의 右翼진영의 인사들은 지난날 대체로 과거 정권에서 고위직을 담당했거나 정권의 비호 아래 활동해 왔다.
따라서 정권이나 어떤 정부기관의 지원이 없으면 독자적으로 右翼진영을 위한 일이거나 국가를 위한 일을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이나 기득이익 및 소비구조의 보호를 위한 일에는 매우 재빨리 행동하나 사상을 위한 일이나 공익적인 사업에는 매우 나태하게 행동한다.
右翼진영의 인사들이 이와 같이 나태하여 입으로만 걱정을 하고, 고작 행동을 한다는 것이 팸플릿이나 찍어내는 일을 하고 있으니 右翼세력의 위축은 피할 수 없다.
쇠퇴하는 右翼진영의 세력과 대중 설득력을 강화하기 위해, 그리고 右翼진영의 장래를 위해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세대에 대한 투자와 右翼진영의 이론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右翼진영에는 젊은 행동대가 없고 좌익을 이론적으로 격파할 정보와 이론이 부족하게 된다. 이처럼 젊은 행동대가 없고 상대세력을 이론적으로 격파할 정보와 이론이 결여한 사상세력은 쇠퇴하고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右翼진영 인사들은 집권세력에 대해 매우 비겁한 태도를 취한다. 이 나라의 右翼진영 인사들은 지난날 金泳三 정권 초기 右翼진영의 지지를 받아 집권한 YS가 전향여부가 불분명한 좌익 전력자들을 정부와 여당에 대거 기용할 때도 그것을 과감히 비판하지 않았다. 또한 金大中 정부에 와서도 전향 여부가 불분명한 좌익 전력자들을 정부와 여당에 대거 기용하는 문제나 사상적으로 잘못된 정부의 정책에 대해 단호한 반대의사를 강력히 표명하지 못하고 있다. 혹간 그런 반대의사를 표명한 인사들도 그러한 반대의사를 관철하기 위한 행동은 일절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DJ가 대통령 되면 나라가 뒤집힌다」고 주장하면서 그의 당선 저지를 위해 노력하던 右翼진영 인사들 가운데 꽤 많은 사람들이 金大中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 밑에서 한 자리 해보려고 분주히 뛰는가 하면, 그보다 더 많은 수의 右翼인사들이 金大中 정부 하에서 손해보지 않으려고 정권에 추파를 던졌다.
右翼진영 인사들의 이러한 비겁한 태도는 집권세력으로 하여금 右翼진영을 무시하게 만들고, 대중으로 하여금 右翼진영을 경멸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집권세력으로부터 무시당하고 대중으로부터 경멸당하는 세력이 위축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右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설 때
右翼의 몰락을 초래한 원인으로는 위에서 열거한 세 가지 이외에도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右翼 진영의 구심점 부재, 金大中씨의 집권과 金大中 대통령의 對北정책, 대중의 사상문제에 대한 무관심 등 다양한 요인들이 右翼의 몰락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右翼의 몰락을 초래한 가장 기본적인 원인은 위의 세 가지이다. 위의 세 가지 원인들이 없었다면 다른 요인들이 있더라도 右翼의 몰락이 현재와 같이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계 전체의 조류를 보면, 좌익이 몰락하고 右翼이 득세하는 것이 대세이다.
유독 이 나라에서만 右翼이 몰락하고 있다. 좌익의 몰락이 세계 대세인 상황에서 이 나라에서만 右翼이 몰락하는 것은 분명 非정상적인 것이다.
만일 右翼 진영이 이러한 非정상적인 몰락을 운명적인 것으로 수용하거나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생각한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右翼의 몰락에 대해 무슨 노력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생각이 아니라면 右翼 진영의 인사들은 지금부터라도 말이 아닌 행동으로서 무엇인가 노력을 해야 한다.
만일 右翼 진영이 右翼의 몰락을 반전시키기 위해 무엇인가를 노력하기로 했다면 위에서 열거한 右翼 몰락의 원인을 제거하는 일부터 착수해야 할 것이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나태와 비겁성을 벗어 던져야 한다. 그리고 학생운동에 투자를 하고, 언론매체의 편집 방향을 중립화 내지 우경화시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일단 右翼 진영의 인사들이 고질적인 나태와 비겁성을 털어 버리면 그러한 노력들은 적은 규모로나마 쉽게 전개될 것이며, 또한 머지 않은 장래에 결실을 거두게 될 것이다.●
조갑제 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