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26 사건 직후 주한미국 대사 윌리엄 글라이스틴은 弔問(조문)특사로 한국을 방문할 사이러스 밴스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電文(전문)에서 朴正熙(박정희)를 냉철하게 평가했다.
<한국 역사에서 朴 대통령이 차지할 위치는 확고하다. 최근에 와서 정권의 정통성이 약화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를 한국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으며, 분단과 戰亂(전란)과 빈곤으로 신음하던 사람들에게 눈부신 경제 발전과 자부심을 가져다 준 지도자로 보고 있다. 농촌 출신인 그는 농민들을 위한 애정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물론 그는 사교성 있는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국민들에게 무엇이 最善(최선)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식의 자신만만함은 그의 모델이었던 일본 명치유신 시절의 영향이었다. 지금은 그의 위대한 성취에 대해서 경의를 표하면서 다른 해결책을 요구하는 미래에 대비할 때이다.>
미국의 강대한 힘을 배경으로 삼아 그렇게도 朴正熙를 몰아세우면서 민주화 세력을 비호해 왔던 글라이스틴 대사가 죽은 朴正熙에게 바친 최고의 찬사는, 그가 이른바 민주투사들을 아주 낮추어보는 보고를 워싱턴으로 보낸 것과 대조된다. 박정희를 압박하면서도 그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존 J. 무초 초대 한국주재 미국대사는 6.25 때 한국 편에 서서 본국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는 자주 갈등하였다. 무초는, 트루먼, 맥아더와 함께 우리 민족이 두고 두고 고마워해야 할 恩人(은인)이다. 그는 미국에서 은퇴생활을 하던 1971년 2월10일 역사자료로 남기기 위한 인터뷰를 했는데 6.25 前後(전후) 상황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이 증언에서 그는 李承晩에 대하여 이런 평을 하였다.
"李 대통령은 아주 머리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45년간 한국의 독립이란 한 목표를 위해 달려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었고 이것이 그의 정치적 강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의지의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독립투사로 단련된 성격을 국가원수가 되고나서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성적일 때는 훌륭한 역사적 이해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주 고차원의 시각에서 복잡한 세계 정세를 정확하게 이해했습니다. 감정적으로 되면 그는 독립투사 시절의 본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한국인의 생존과 자신의 생존에 집착했습니다. 그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그는 매우 복잡한 인물이었으나 그는 위기 때 일처리를 잘 했으며 자신의 뜻을 고급 영어로 잘 표현했습니다. 그의 영어는 글과 말 무엇이든지 유창했습니다. 그는 제퍼슨식 민주주의자임을 자랑했습니다. 이 분야에 대한 그의 레토릭은 미국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외국인 부인(注: 프란체스카 여사)이 그에게 큰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두 미국대사의 인물평은 李承晩, 朴正熙와 미운 정 고운 정을 다 나눈 1급 인물의 두 巨人(거인)에 대한 평으로서 경청할 가치가 있다. 내일은 이승만 탄신 139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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