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노역' 판결 논란의 당사자인 장병우 광주지방법원장이 29일 법원장 취임 44일 만에 사표를 냈다. 장 법원장은 광주고법 형사부장 시절이던
2010년 1월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벌금 254억원을 선고하면서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일당(日當)을 5억원으로 환산해 노역을 시키라는 판결을 내렸다. 장 전 법원장은 2005년 대주그룹 계열사가 지은 아파트를 분양받아 2007년
이사했으며, 이사 5개월 뒤 원래 살던 아파트를 대주그룹 계열사에 팔았다.
장 법원장의 아파트 거래는 사고판 게 대주그룹 계열사라는
점이 공교롭기는 해도 무슨 불법 정황이 드러난 것은 없다. 본인도 부적절한 일은 없었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렇다면 장 전 법원장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이 진상 조사 절차를 밟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당 5억 회장님' 소동은 애초 검찰이 허 전
회장에 대해 1심에서 '벌금을 1000억원으로 하되 선고를 유예해 벌금을 내지 않아도 되게 해달라'고 구형(求刑)할 때부터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 허 전 회장에 대한 구형에서부터 지역 출신 검사들이 지나치게 처벌 수위를 낮춰줬다는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장 법원장이 2심에서
검찰의 선고유예 요청을 거부하고 벌금형을 부과했지만, '일당 5억 판결'은 정의(正義)에 대한 법원 감각이 국민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해줬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法)은 사회 구성원인 국민이 함께 지키자고 약속한 일종의 공동 서명 계약서(契約書)이다. 그러나
법관이 국민의 재산·명예·자유가 걸린 문제를 놓고 특정 인물·집단에만 유리한 판결을 내리면 나머지 국민은 그 계약을 거부하려 들 수밖에 없다.
다수 국민이 법관 판결에 불복(不服)하는 풍조가 생겨나면 법은 무력화되고, 재판을 통해 사회 갈등을 정리하고 불법·범죄에 대한 적절한
처벌·응징으로 정의를 세워가는 사법 제도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지도적 역할을 맡아야 할 집단의 권위가
차례차례 무너지는 일을 겪어왔다. 정치인은 약속을 뒤집는 직업인의 대표격이 되었고, 기업인들은 탈세·횡령 같은 혐의로 언제 감옥에 들어갈지 모를
예비 범죄인처럼 돼버렸다. 성직자, 교수, 의사, 검사들의 권위도 줄지어 조금씩 붕괴 조짐을 보이더니 이제 사법부마저 신뢰와 권위가
파산(破産)될지 모르는 위험선에 다가서고 있다. 사법 시스템이 국민 신뢰를 잃고 나면 억울한 사람은 누구에게 호소하고 사회의 분쟁·갈등은 누가
풀어줄 수 있겠는가. 법관들은 자신들에게 요구되는 윤리와 절제의 수준이 다른 직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높다는 것을 인식하고 스스로
자계(自戒)의 수준을 대폭 높여야 한다